
이런 말이 있습니다. 19세기의 학교에서 20세기의 선생님이 21세기의 아이들을 가르친다. 교육이란게 백년대계라고 하지만 백년이면 무려 1세기가 차이가나고 사회는 급속도로 변하니 신세대와 구세대의 갈등이 풀리지 않는 건 당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내용의 영화는 어느시대에서나 항상 존재했었나 봅니다. 로빈 윌리엄스가 맡은 키팅 선생님은 <전통, 명예, 규율, 최고>가 전부인 웰튼 아카데미에서 지쳐가는 아이들에게 사색하는 법을 가르치고자하거나 교과서의 'j. 에반스 프리챠드'의 시를 중요도와 완성도를 xy축에 놓은 상태에서 시를 평가하는 당시 세대의 통상적인 이론이 쓰레기라고 말하고 그 페이지를 책에서 아예 찢어버리기도 하는 어의 없는 선생입니다. 또 "carpe diem"이라 말하며 "오늘을 살라" 즉, 현재를 즐겨라라고 말하고 있죠. 그는 이렇게 조금씩 죽은 시인들의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그들을 인간으로서 로망을 추구하는 시인으로 만들어갑니다. "죽은 시인의 사회는 시의 정수를 빨아드렸지쏘로우 시에서 따온 건데 회합때마다 그걸 읽곤 했지우린 오래도니 인디안 동굴에 모여서 차례대로 쏘로우휘트만, 셀리같은 위대한 시인의 시를 낭송했어우리 자작시도 함께...환희로 모든 시의 마법에 걸린 기분이었지 우린 남자들만의 모임이 아니라 낭만주의자들의 모임이었어영혼이 흘러나왔고 여자들은 황홀했고 신들이 창조되었지그렇게 저녁을 보내는게 멋있지 않겠어?" 키팅 선생님의 옛 졸업앨범에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문구를 발견한 그의 제자들이 '죽은 시인의 사회'가 뭐냐고 물었을 때 그가한 대답입니다.낭만주의자들을 위한 비밀스런 모임이죠. 학교 당국은 허락을 하지 않는다고 했으니까요. 그리고 이제 로망을 추구하기 시작한 그의 시인들은 죽은 시인의 사회를 이어가기로 합니다.근데 왜 하필 죽은 시인의 사회인걸까요? 통상적인 개념을 떠나서 정신이 죽었다친다면 그들 20세기의 선생에게 붙이는 이름이 당연할 텐데요. 갖갖이 추측이 있지만 제가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추측은 역시 정신이 죽은건 로망을 추구하는 시인들이기 때문이 아닐까합니다. 왜냐고요? 20세기의 선생들에겐 그들이 죽은걸로 보인단 말입니다. 하나의 역설입니다. 다수를 벗어난 소수는 정상이 아니라는게 진리니까요. 전체적인 해석을 위해 제목으로 주제를 추측하는 어리석은 짓을 하자면 일단 영화에서는 구제도의 모순을 지적한다던가 구세대에 대한 비판을 하고자 하지도 않습니다. 단지 사회의 죽은 시인들의 머리를 마치 키팅 선생님이 학생들을 로망을 추구하게끔 머리를 두드렸듯 두드리고 있는 거지요. 다시한번 죽은 시인 본래의 뜻인 로망을 모르는 사회의 죽은 시인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영화에서는 구제도의 모순을 지적한다던가 구세대에 대한 비판을 담고있지 않아요. 키팅 선생님 역시 그 구제도 안에서 머물고 있고요. 단지 이성적인 혁명을 추구하길 바라는 겁니다. 주입교육에 길든 20세기의 산물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죠. "시가 아름다워서 읽고 쓰는 것이다.인류의 일원이기 때문에 시를 읽고 쓰는 것이다.인류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어. 의학, 법률, 경제, 기술 따위는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해하지만 시와 미, 낭만, 사랑은 삶의 목적인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