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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90년대를 풍미한 시노라 현상

전영식 |2007.03.04 20:51
조회 1,431 |추천 0


[1996년....B급 탤런트로 유명한 이소노 키리코도 이 당시에는 전직 아이돌의 아우라가 남아 있던 시기였다. ㅋㅋㅋ]

 

흔히 90년대 일본 사회 트렌드로 대표적인 것이 아무라 현상이다.

 

톱가수였던 아무로 나미에의 패션을 일본의 젊은 세대들이 모방하던 것을 지칭하는 것이지만, 이에 못지 않은 것이 일명 시노라 현상이었다.

152cm의 작은 키, 굵은 다리, 툭 튀어나온 오리 궁둥이

 

70년대 일본 톱스타였던 미우라 토모카즈 + 야마구치 모모에의 성명을 조합해 딸 아이의 이름을 지을 정도로 그녀의 모친은 딸이 톱스타가 되길 바랬지만, 외양은 아이돌 스타가 되기는 영 글러먹었다.

 

수많은 오디션의 낙방을 기회로 캐릭터 자체를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었던 하이텐션의 떠벌이로 전환을 하니.

 

킨키 키즈의 팬이라면 '아 러브 러브 아이시테루'에서 프리프리티라는 유행어와 함께 수다를 떨던 부사이크(못난이)! 하고 기억을 하겠지만 이는 상당히 과소평가된 생각이다.

 

실제 90년대 중후반 그녀의 인기는 일본에서 굉장했고, 물론 히로스에 료코가 밝은 양지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던 청순파였다면 그녀는 수다스럽고 부사이크한 못난이 이미지로 브레이크했다는 차이점이 있지만...

 

일본의 티비 채널을 틀면 항상 그녀가 나오곤 했던. 96 ~97년 일본 CF 최다 계약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아울러 거리에선 일본의 10대 소녀들이 그녀의 촌스런 원색 패션을 따라해. 일명 시노라 현상이라 칭해지게 된다.

 

 

일본의 90년대 중반 패션 트렌드의 키워드는 아무라와 시노라였던 것이다.

극단적으로 컬러풀한 패션, 말괄량이 부사이크 이미지, 플라스틱 등 다양한 소재의 액세서리 등 시노라라 불린 이 패션은 1996년부터 99년까지 일본의 10대 소녀들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아울러 그녀의 영향으로 깜찍함을 강조한 번개머리 같은 헤어 스타일도 대유행하게 된다.

 

이 촌티패션은 바다 건너 한국에도 영향을 끼치니...

 

90년대 후반 한국에도 당시 인기를 얻은 적도 있고, 시노하라 토모에를 벤치마킹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이와 대동소이한 캐릭터가 한국에서도 인기를 얻는다.

 

바로 90년대 후반 촌티패션과 바람머리로 큰 인기를 얻었던 한국판 시노하라 토모에 '이의정'

 

청춘시트콤이었던 남자셋 여자셋의 인기에 큰 원동력이 되었다.

 

 

이밖에 발매한 리믹스가 프랑스에서 큰 인기를 얻어 파리에서 콘서트를 열기도 하였고, 스페인에서는 유명가수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와 듀엣으로 음반을 발매, 스페인에서도 팬 사이트가 생기는 등 큰 인기를 얻기도 하였다.

 

활발하고 시끄러운 수다 이미지 때문인지 연예계에서 사람 사귀는데 정평이 나있어 전 모닝구의 아베 나츠미, 히로스에 료코, 후카다 쿄코, 킨키 키즈 등 친우가 많다.

 

 

그러한 그녀이지만 최근에는 남 모르는 아픔도 겪었다.

 

수년간 교제해오던 애인 나카무라 시도우를 다케우치 유코에게 빼았긴 것.

 

전통 가부키 집안이었던 나카무라 시도우의 모친은 경박함과 품위가 없다며 두 사람의 교제를 맹렬히 반대했고 지독한 마마보이로 유명한 시도우는 갑자기 사귄지 수개월도 안된 다케우치 유코로 급선회했다.

 

뭐 지금에 와서야 파탄이 난 두 사람의 관계를 보면 결혼이 진행되지 않은 점은 시노하라에게도 전화위복이라 생각된다.

 

 

아무튼 90년대 스피드를 통해 일본 음악에 재 입문 하던차 맹위를 떨치던 그녀의 인기가 새삼 기억에 떠올라 글을 적게 됐다.

 

뭐 한국에서는 단지 떠벌이 부사이크 캐릭터로 과소평가되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서 일지도 모른다.


 

출처 http://cafe.naver.com/momus/348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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