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꼬맹이,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 잘들어라.
나 치약은 중간부터 눌러서 안 짜고
꼭 아래쪽부터 짜서 쓰마.
같이 외출할때 니가 화장하고 옷 입느라
두 시간이 걸려도 현관에서 짜증 부리지 않을 거고
니가 주차하는 데 십분씩 걸려도 바보라고 놀리지도 않겠다.
설거지할 때는 부엌을 물바다로 만들지 않도록 조심하마.
A 매치 경기 있을 때 니가 청소기를 돌려도
지금 뭐 하는짓이냐고 소리 안 지르고 남자답게 참아주마.
대신 간장 사 오라는 심부름 시키면
그건 경기가 끝나고 간다. 이건 어쩔 수 없다.
장마철 끈적거릴 땐 바닥이나 소파에서 혼자 얌전히 자고
일요일날, 니가 오전 내내 퍼자느라 밥 안주면
난 알아서 자장면 시켜 먹고 그릇은
냄새 안나게 잘 싸서 내놓는 착한 어린이가 되주겠다.
니가 백화점을 다섯 번 돌고서 양말 두 켤레만 사는
끔찍한 짓을 하더라도 사람 많은데서 싸우거나
나 혼자 집에 먼저 오는 일은 없을 거다, 약속한다.
어느 날 갑자기, 니가 괜히 결혼했다고 짜증 부리면
난 도대체 불만이 뭐냐고 큰소리로 묻기보다
니가 하는 이야기를 끝까지 전부 다 들어준다.
어떠냐? 괜찮은 조건이냐?
그러면 너 까불지 말고 나한테 와라.
공주처럼 살게 해주겠다고
손에 물 한방울 안 묻히겠다는 못 지키는 약속,
난 안 한다.
그냥 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 안에서
나랑 결혼한게 후회스럽지 않도록 널 행복하게 해주겠다.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