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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희와 패밀리 맨

조광민 |2007.03.10 05:12
조회 32 |추천 0


이상한 꿈의 난립.

 

요즘들어 이상한 꿈을 자주꾸는 편이다.

 

십수년동안 연락은 커녕 안부조차 모르는 게다가 이름조차 희미한 초등학교 친구가 꿈에 나오질 않나, 지인중 한명은 비록 꿈에서지만 대낮 명동거리에서 무참히 살해당하기도 하고, 한번은 코끼리를 타고 학교에 등교하는 꿈을 꾼 적도 있다.

 

프로이트마냥 '꿈의 해석'을 잘해낼 자신은 없기에 그것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마음은 없지만, 확실히 신기한 일임에는 분명하다. 최근을 제외하면 나는 꿈을 자주 꾸는편이 아니며, 꾸더라도 그것엔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소재들이 출몰하는 편인데, 요즘들어 꾸는 꿈들은 하나같이 비범하고 괴상하기만 하다.

 

특히나 저녁대신 계란과 버섯이 들어간 신라면 한개와 공기밥 반공기 정도를 먹고, 'Desperate Housewives'을 두편쯤 보다가 충동적으로 잠이 든 오늘 저녁과 밤 사이에 꾸었던 꿈은 '괴상한 꿈'의 백미(白眉)였다.

 

 

그녀가 내 꿈에 들어왔다.

 

나는 김태희를 특별히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물론, 세간의 평가가 대게 그러하듯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을 다니고 있을만큼 똑똑하고, 일반인의 반절쯤 되는 머리크기를 가졌고, 대체 왜 만들었는지 모를 영화 '중천'의 홍보차 무한도전에 나왔던 것을 제외하면 티비에서 '나대지 않는' 그녀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나, 그 호감이란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의 것에 머무른다.

 

최소한 히로스에 료코를 보면서 느껴지는 '멍한 아련함'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그녀의 필모그래피를 모두 뒤져보고 그것을 설렵하는 수고나, 하다못해 고교시절 배두나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기위해 따로 초소형 라디오를 구매했을 정도의 정성쯤은 되어야 연예인을 특별히 좋아한다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이처럼 김태희라는 연예인에 대한 감정이 특별히 크지않은 내게, 황송하게도 꿈에서 그녀는 내 여자친구로 출연했다. '중천'에서 김태희가 맡았던 '소화' 역 보다는 훨씬 설득력 있고 또한 비중있는 배역이라 생각하지만 이 역시도 '그녀의 반복된 뻘짓' 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하루에만 김태희라는 소재로 꿈을 꾸고싶어 안달이 난 남정네가 전국에 수백에서 수천은 될터인데, 그녀가 그다지 절실하지도 않은 내 꿈에 나타나 여자친구 역을 수락했다는 것은, 앞마당의 잔디를 깎고있을 시간에 농구공을 튕기러 간다는 마이클 조던의 선택적 경제 관념을 적용시키더라도 확실히 '실패한 선택'이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꿈에서의 그녀가 맡은 배역이란, 내가 없으면 죽고 못사는 쌍팔년도 피카디리 극장에나 나올법한 순애보의 여자였으니 어찌 이런 엉망인 스토리의 영화에 출연을 결심했는지 '중천'의 전례를 상기하더라도 그녀의 의중을 이해하기 어렵다. 강동원의 선물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그녀가 아니었던가.

 

어쨋든, 꿈에서의 김태희가 맡은 역은 나를 무척이나 좋아해주는 여자였다. 친구들을 만나 대화의 8할을 남자친구 자랑에 배분할 정도의 싫지않은 '철면피'를 가진 여자였고, 당신 좋다고 목을 매는 남자들의 행렬을 '전혀, 관심없어요.' 라는 말로 무참히 절단내는 의리를 가진 여자였다.

 

그에비해 나는, 그런 여자친구를 두고도 이리저리 한눈을 파는 남자역이었다. '왜 그런 대단한 여자를 두고도 한눈을 파느냐?' 라는 친구1의 질문에 '그냥 뭐, 좀 질렸어' 라고 말하는 재수없는 당돌함을 가진 녀석.

 

나는 꿈속의 나를 볼 수 없었기에 나의 얼굴이라든가, 기타 스펙에 대해선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이쯤되면 꿈속의 내가 실제의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가정하에, 중천에 버금가는 꽤나 황당한 시나리오다. '치과에서마저 볼 가치가 없다' 라고 롤링스톤지가 비평하더라도 반론의 염치가 없을 듯 하다. 

 

김태희는 매달렸으며, 나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대체 나의 어떤 점이 마음에 안드냐는 김태희의 물음에, 나 아니면 죽고 못살것 처럼 행동하는 너의 그런점이 나를 질리게 한다고 했다. 김태희는 울었고, 나는 귀찮아했다.

 

꿈속의 나는 정말 당당했다. 비록 그녀만큼 많은 이성을 단칼에 차 버리는 씬도 없었고, 꿈에서도 현실에서 누리는 것과 비슷한 위치의 여자로 출연한 김태희에 비해, 보잘 것 없는 남자였던 것 같지만, '그래봤자, 넌 내게 매달리고 있잖아.' 라는 마음이 날 그렇게 당당하게 만든 듯 하다.

 

 

그녀는 떠났고 나는 허탈해했다.

 

3월 10일 토요일 오전 01시 58분, 그 괴상한 극은 스탭롤은 커녕 결말조차 상영하지 못한 채 막을 내린다.

 

꿈에서 깨자, 라면덕에 얼굴이 팅팅 부어오른 느낌의 나는 하루키가 '밤의 원숭이'에서 말하던 한밤중 심장이 조여오는 적막함속에 차 오르는 허탈감을 맛보기 시작했다.

 

현실의 김태희에 비해 내가 하찮은 존재라고 생각해서 느낀 허탈감이 아니다. 그녀보다는 학교도 후지고, 머리크기도 크고, 조금 더 나대는 것 같지만 모 광고의 카피만큼이나 나는 내가 자랑스럽다. '현실속의 김태희가 너랑 사귀고 싶다면 사귈꺼야?' 라는 누군가의 초딩적 질문에 '아니, 별로.' 라고 말할 정도의 오만함마저 가진 존재다.

 

결코 그 허탈감의 근원이 꿈속에는 존재했지만,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김태희의 부재때문은 아니었다. '이상은 높지만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대사가 쓰여진 디씨에 떠도는 짤방 한컷으로 모든것이 설명될만큼 단순한 수준의 이유는 아니란 말이다.

 

그 허탈감이란, 말하자면 하나의 이미지다. 내가 심리학자나 정신과 전문의가 아닌 이상, 왜 코끼리를 타고 학교를 가는 꿈을 꾸고나서 슬픈 생각이 들었냐고 묻는다면 마땅히 설명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추상적 이미지를 구체화 된 이야기로 구성한다는 것은 내겐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단지 '괴상한 꿈'이었다, 라고 치부하고 넘어가기엔 그 허탈감이란 꽤나 짜증나는 것이었다. 고요한 방에 시계 초침만 째깍째깍하고, 아직도 동이 트려면 족히 4~5시간은 남아 있었으며, 다시 자보려고 노력했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허탈감을 없애기 위해 그녀에게 전화를 걸기에도 너무 늦은 시간이다.

 

 

나를 살려낸 기적소리는 패밀리 맨.

 

이것을 깨기 위해선 어떤 다른 이미지가 필요했다. 메소포타미아의 함무라비 법전에 명시된 이이제이(以夷制夷)의 원칙을 역으로 돌려, 차가운 허탈의 이미지를 부수기 위해선 그것을 대체할만큼 따뜻한 이미지가 필요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가장 따뜻하고 가득 찬 느낌의 어떤 이미지가.

 

그때 떠오른 이미지가 바로 이것이다.

 

영화 패밀리 맨에서, '환상의 꿈'에서 깨어난 니콜라스 케이지가 은색 페라리 550 마르넬로를 타고 파리로 떠나는 티아 레오니를 공항까지 쫓아가 '이대로 후회하지 않게, 커피 한잔만 할 시간을 달라'며 애원해서 얻어 낸 커피 한잔의 이미지.

 

그 커피를 마시며 그의 꿈 속에서 봤던 그들의 모습, 혹은 앞으로의 그들의 모습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케이지와 레오니. 둘은 웃고, 음악이 흐르고, 스탭롤과 함께 넘어가는 장면에서 내리는 눈.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최고로 따뜻하고 가득찬 느낌의 이미지인 것이다.

 

아, 그것을 생각하자 그제서야 마술처럼 내 한밤중의 치명적 허탈함은 가시기 시작했다. 하루키의 심장을 살린 것이 한밤중의 기적소리 였다면, 나의 심장을 살린 것은 한밤중의 패밀리 맨, 그 이미지였다.

 

 

김태희와 케이지가 내가 말하려고 했던 것.

 

앞서 이미지의 구체화란 불가능한 것이라 말했지만, 결국 김태희와 패밀리 맨 그 이미지의 나열을 이리저리 조합해보니 '허탈을 날린 가슴 따뜻함'의 정체에 대한 하나의 결론에 봉착했다. 그것은 바로, 이것이다.

 

'나의 떡이 가장 크다.'

 

억지 같지만, 김태희가 그 괴상한 스토리의 웃기는 배역에 출연할 것을 오케이한 이유나, 니콜라스 케이지가 눈 내리는 커피숍에서 마시던 커피 한잔이 가지는 이미지는, 결국에 모두 이것을 위한 것이었다.

 

나는 두번다시 후회하지 않겠다.

 

그 '위대한 결론의 발견'을 위해 한밤중 이불을 걷어차고 졸린 눈을 비비며 이글을 남긴다. 언젠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다면, 나는 꿈속의 김태희도, 영화속의 티아 레오니도 결코 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내게 똑똑히 선서하는 바이다. 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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