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
1910년 8월 국권피탈로 대한제국이 멸망한 이후부터 8·15광복에 이르기까지 일제강점(强占)하의 식민통치 시기.
그 생생한 현장으로..
부모와 형제들 모두 처형당하고 그모습을 지켜보던 아이가
발버둥치며 울부짖지만 결국 죽어서 엄마품에 돌아가게 된다.
체포된 포로 결국 처형되었다.
어린아이들까지 죽여 불태워 졌다.
반공호에 숨어 있던 민간이들을 무차별 처형했다.
투쟁을 벌이다가 집단학살된 유해들.
일제에 대항해 싸우던 항일군의 목을 베고 있다.
투쟁을 벌이다 체포되어 비참한 생을 마친항일군에게
목을 짤라 철망위에 올려놓고 입에담배까지 물게한다.
항일병을 수색하여 작두로 목을 짤라 공중 높이 매달아 놓았다.
죽은 시신을 구분하지 못하도록 화장을 시켰다.
장난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일본군은 떨어진 목의 귀를 잡고 미소까지 보이고 있다.
생매장된 양민들. 가족들에 의해 파헤쳐 지고 있는 장면이다.
일본군 위사 간부가 세균생체 실험을 하고 있는 장면이다. 마취도 없이 손을 묶고 해부하고 있다. 복부와 창자의 내용물이 나오고 일본인들은 마스크하여 지켜보고 있다.
여서의 옷을 벗기고 마구 살육당했던 참혹한 현장.
처형을 기다리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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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말아야 할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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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지금
일본의 모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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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의 망언))
1.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도지사 :
“조선인의 총의(總意)로 일본을 선택했으며, 우리는 결코 무력으로 침범하지 않았다."
"같은 얼굴색을 한 일본인의 도움을 얻으려고 세계 여러 나라가 합의한 가운데 합병이 이뤄졌다."
" 청나라의 실질적인 속령(屬領)으로부터 해방시켜준 일본에 운명을 일임했다고 보는 게 정확한 역사이며, 일본의 한국지배는 식민지주의라고 해도 좀 더 선진화된 것이었기 때문에 인간적이었다.”
2. 2003.11월 일본의 역사교과서 조작 파문을 주도했던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니시오 간지(西尾幹二) 前 대표 :
“20세기 초엽까지 한반도는 법의 공정성도 없고 부(富)의 합리적 배분도 없는 지금의 김정일 체제와 같은 극빈 열악한 비인간적인 상태였다. 한국인은 이대로 일본의 보호를 받으며 사는 것 보다 합병을 해서 세계1등 국민으로서 일본인과 동등한 대우를 받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100만명이 넘는 일진회가 합방을 요청해 정치적 운동을 전개했고, 그것은 거대한 운동이었다. 얼마나 한국인이 합방을 환영했는지는, 일본제국군인이 되겠다는 한국인 지원병의 경쟁률이 1938년에 7.3 대 1, 전쟁이 한창이던 1943년에는 30여 만명이 응모해 47.6대 1이었던 데서 드러난다. 물론 1910년 한일합방 시점에서 한국 내에는 합방에 반대하는 저항자들도 있었기 때문에 합방이 조선인들의 총의(總意)라고는 말할 수 없을 지는 모르지만, 그 점을 빼고는 이시하라가 주장하는 모든 것이 맞는 말이다. 한국의 역사에 취약함이 있었던 것은 현재의 한국인의 죄도 아니고 악(惡)도 아니다. 한국인들이 자기의 취약점을 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죄이자 악”
3.1953년 10월 한일수교 제3차 회담 때 일본측 대표인 구보타:
“일본에 의한 36년 간의 한국통치는 한국에 유익한 것이었다”
4. 중의원 10선의 자민당 원로의원 격인 에토 다카미(江藤隆美) 前 총무청장관 :
"과거의 역대 일본총리는 침략전쟁이었다고 머리를 숙이는 등 자기나라가 나쁜 것처럼 말해 왔다. 일본인은 지금까지 스스로를 모욕하는 것 같은 짓을 해 왔다.
식민지였던 나라는 과거 종주국에 사죄를 요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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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일본의 민족성.
일본에 있어 역사란, 그들만이 주장하는 우월주의에 푹 빠져
끊임없이 조작하여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미래와 대화를 나누어야 할 역사인 거울에 침을 뱉고 있는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의 모습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