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매우 독특한 영화 한편을 소개한다.
조엘슈마허 감독의 넘버 23
필자가 조엘슈마허 감독을 처음 알게 된것은,
미치도록 좋아하는 배우 줄리아로버츠 때문이었다.
귀여운 여인이후 그녀에게 거의 광적으로 매달렸던 내가,
인천의 허름한 극장에서 유혹의 선이라는 영화를 보게 된것은,
당연한 것이었고, 필연이었다.
사후 인간이 살아돌아올수 있는 짧은 시간동안의 경험을 영화로 만든,
이 작품은 한동안 내게 큰 충격이 아닐수 없었다.
그런 소재의 영화가 존재할수 있다는 것이,
줄리아로버츠라는 존재를 잊은채 조엘슈마허라는 감독에게,
이유없는 동경을 하게 하는 이유가 되었었다.
줄리아로버츠 때문에 보게되었던 사랑을 위하여(Dying Young)가
그의 작품이었다는 사실을 알고서부터,
영화의 감독이 누군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 괴상한 감독은 세상에 못만들 장르의 영화가 없을것 같았다.
최근의 작품으로는 폰부스를 빼놓을수 없겠다.
그 능청스러움은 천재들만의 여유라고 해야 할까?
코메디든, 스릴러든, 최루성멜로든,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넉살좋게 만들어 놓고서,
따라올 사람만 따라오라는 식의 허세를 부리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그의 이번 영화 넘버23.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조엘슈마허라는 감독이 지금 내 앞에 있다면,
정말 주먹으로 한방 제대로 날려주고 싶다는...
번번히 그의 장난질에 놀아나는 내가 한심스럽고,
그 건방진 여유로움에 정내미가 떨어질 지경이다.
자. 영화를 보기전에 이 사실 하나를 분명히 알고 가자.
당신이 완벽하게 이 영화속에 몰입하면 몰입할수록,
당신은 바보가 된다.
적당히 즐겨라.
이 영화는 마지막에 몰입하는 당신을 비웃고 있을,
조엘슈마허와 만나게 된다.
명심해라.
절대로 몰입하면 안된다.
이 영화는 숫자 23에 편집증 혹은 강박관념, 혹은 과대망상을 갖고있는,
어떤 사내의 이야기이다.
그는 시골 회계사의 아들로 태어나지만,
엄마가 자살을 하고, 이어 아버지마저 권총으로 자살을 하면서,
우울한 유년시절을 보내게 된다.
그런 그가 성장하여, 훌륭한 가정을 꾸리고,
동물보호소의 직원으로 안정된 일상을 영위하게 되지만,
문제는 우연치 않은 곳에서 필연처럼 시작된다.
길잃은 개 한마리 때문에 아내와의 약속에 늦게 되고,
서접에서 그를 기다리던 그의 아내가 우연히 발견한 한권의 책이,
그의 인생을 뒤 흔들어 놓게 되는 것이다.
그 책에는 자신의 인생과 비슷한 사람의 이야기가 들어있었고,
그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숫자 23이,
흡사 어떠한 법칙처럼 존재함을 발견하게 한다.
그 책은 어느 살인자의 책이었고,
그 책으로 인해 억울한 피해자가 교도소에 있으며,
아직 세상에 진범이 잡히지 않았다는 사실까지 접근해 갔을 즈음,
그는 그 책의 저자와 만나게 된다.
물론 이 책의 저자가 누구인가가 바로 이 영화의 키포인트가 되겠다.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식스센스 이후 최고의 반전이 될수도 있으며,
그냥 교과서에 충실한 그저 그런 영화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에 집착해서는 안된다.
영화가 담고 있는 메세지는 단순하다.
이 모든 것들은 그저 조엘슈마허가 던지는 함정과 조롱에 불과하다.
자. 숫자 23의 진리를 생각해 보자.
영화를 몰입해서 보면,
관객들은 내 주위에도 23이 존재하는가 확인하려 들것이다.
그리고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23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라워 한다.
필자는 음력 4월 23일 생이며, 23시59분에 태어났다.
처음 담배를 피운날도, 처음 여권을 발급받은 날도, 주민등록증을 새로 발급받은날도 모두 23일이다. 필자가 사는 집은 101동 13층 8호, 1+1+13+8=23.
어떤가. 심지어는 지금 이글을 쓰고있는 것도 23분이다.
왜 이럴까.
답은 간단하다.
관객은 자연수 + 미지수 X = 23이라는 식을 놓고 영화를 본다.
다시말해서 답은 어떤 경우에도 23이라고 단정짓고 계산을 하면,
세상의 모든 숫자는 23의 모습으로 내 주위에 존재하게 되는것이다.
다시말해서 존재하는 숫자에 사직연산을 하고, 이것으로 안되면, 다시 무언가를 곱했다가 나누어서라도 반드시 23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집착, 과대망상의 현상일 뿐이지,
그것이 어떤 필연의 법칙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란 의미다.
하지만, 감독은 관객을 숫자 23의 세계로 계속 끌고 들어가고 싶어한다.
왜?
과연 왜 일까?
필자가 처음에 왜 감독을 때려주고 싶다고 했는지,
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감독은 숫자 23이라는 허상속에 관객의 눈을 가리고,
맘껏 진실을 이야기 하고 있다.
관객이 극중 마지막 반전에 놀라워 한다면,
감독은 분명 이렇게 말할 것이다.
반전? 당신 영화를 보긴 한거야?
난 다 말해 줬잖아. 이미 결말을 다 보여줬는데 당신은 그걸 못본거야?
그렇다.
감독은 관객에게 진실을 있는 그대로 다 보여준다.
오로지 관객 스스로 숫자 23에 매달려 있었을뿐,
그는 긴장감 없는 이야기를 조근조근 있는 그대로 보여줬던 것이다.
소설속 파브리지아를 핑거링이 처음만난 나이가 23,
현실속 월터가 아가사를 만난 나이가 32,
그래서 이 숫자 모두 23과 개연성이 있다고만 생각을 했지,
이 나이에 9살의 차이가 있다는 사실,
그래서 월터의 9년전 행적에 대해 의심을 해 봐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의문은 이미 상실한지 오래인것이다.
이 모든 이야기가 월터의 9년전 행적이라는 결말앞에,
필자가 느꼈던 참담함은 한심스러움 그 자체였다.
이 영화에 반전은 없다.
관객 스스로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았을뿐...
필자는 이 책의 저자가 누구인가가 이 영화의 키포인트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처음부터 공개되어 있었다.
이 책이 자신의 일생과 너무나 흡사하다고,
그토록 월터가 주장을 했건만,
그 말에 귀기울이지 않은 아내 아가사와 관객은,
결국 사실앞에 놀라워 할 수 밖에 없는...
다시 말해, 몰입하면 몰입할수록 관객은 바보가 되고,
몰입하지 않으면 몰입하지 않을수록, 영화는 쓰레기가 된다.
뭐 이런 얘기가 되겠다.
반전이 있는것 같기도 하고 아닌것 같기도 하고...
소설속 이야기를 영상으로 보여주는것이라고 굴뚝같이 믿고 있었으나,
그것이 현실이 되면서 결국은 월터 스패로우의 일대기를 보게 된 셈이니,
이것이 한 사내의 인생역정을 그린 휴먼드라마 같기도 하고,
스릴러 물 같기도 하고...
아... 영화속 스포일러를 다 까발렸다고 광분할 독자가 있을것도 같고,
이 지침서에 고마워할 것 같기도 하고... ㅎ
영화속 배우들은 짐캐리를 포함해 모두 네명이 1인2역을 소화한다.
다시 말해서 이 네명의 배우가 소설속 22장까지의 등장인물이다.
그리고 마지막 23장에 실제 인물인 로라가 등장한다.
22장까지는 현실인것 같기도 하고 아닌것 같기도 한,
소설에 불과하지만, 23장이 되면서 비로소 현실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숫자 23은 봉인이 풀리는 열쇠이기도 하다.
마치 열지말라는 신의 명령을 어기고 판도라가 상자를 열자,
세상의 온갖 재앙이 쏟아졌던 판도라의 상자처럼,
숫자 23 또한 그런게 아니었을까.
네 죄가 너를 찾아갈 것임을 명심하라.
영화가 담고자 하는 메세지는 바로 이거였다.
이 단순하고도 무서운 메세지 하나가,
바로 이 영화의 진정한 스포일러 되시겠다.
남녀노소 모두에게 추천하기 딱히 애매하다.
연인들끼리는 보지 말았으면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는 식의 스토리를 왜 구지 보려고 하는가.
여인들끼리 보기에도 좀 문제가 있다.
여인들은 숫자에 크게 집착하지 않는 경향이 있어서,
숫자 23의 마력에 빠지지 않을 확률이 다분히 높다.
고로, 쓰레기라 생각할 확률 또한 상당하다 하겠다.
남성들끼리 보기엔 적합하다.
역시 이런 장르는 남성들의 장르이고,
대부분 숫자에 집착해 영화의 대미에 반전을 느끼리라 확신한다.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후반부다.
결말이 너무 밋밋하다고 해야 할까.
기대만큼 좋은 영화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좋은 감독이라는 확신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그가 이런 장난끼를 버리고, 진지하게 영화를 만들었음 좋겠다는것이,
그저 작은 바람이라면 바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