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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은 필수지만 사서는 사치다?

최용일 |2007.03.21 15:43
조회 188 |추천 4

혹시 자녀가 다니는 학교 도서관에 사서가 있던가요?

그 사서가 사서교사인지 그냥 사서인지는 아시나요?

도서담당교사가 있다구요? 그럼 아르바이트나 학부모 도우미라도 있던가요?

사서는 그만두고 아예 도서관이 있는지 관심이 없다구요?


초.중학교 시절부터 '독서를 생활화하고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한다'는 구호를 수없이 들어왔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우리 학교 중앙도서관은 몇 천평인데 장서수가 몇 십만권이고 좌석수가 얼마라는 얘기를 귀따갑게 들은 기억도 난다. 최근에는 교육부가 독서와 논술교육을 중시하는 정책을 채택하겠다고 난리를 치니 정치인들은 자기 지역구나 지자체에 도서관 몇 개 유치한 것을 자랑으로 삼고 모 방송사에서는 기적의 도서관 짓기에 열을 올리기도 한 적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 많은 도서관 어디에서도 사회적으로 골빈당들이 내놓고 하기 좋아하는 우리 도서관에는 서울대 출신 사서가 있느니 하버드 유학 사서가 있느니 하는 그런 자랑은 고사하고 사서가 몇 명이고 어떤 분야를 전공으로 하는 사람이고 하는 최소한의 기록조차 보여주질 못한다. 이상하지 않은가? 혹시 도서관에 책이나 CD가 쌓여 있기만 하면 그냥 그 지식이 머리로 전사되는 최첨단 시스템을 갖추기라도 한 것일까? 아니면 도서관은 그냥 자기 책 들고 가서 공부하는 공부방이던가, 아니면 알바생이 책만 빌려주는 곳이던가...

 

 

사서 확보율은 전체의 10%도 안 되는 상황이지만 도서관도 큰 게 좋아서 그랬는지 아니면 건설비 빼먹느라고 그랬는지 마냥 크게 몇 층으로 지어놓고 거기 딸랑 계약직 사서 하나 놔두는 학교도 있기는 하다. 자기들은 자랑스럽게 그 규모를 말하지만 사실은 그런 곳이 더 문제라는 것이다. 수업시간 중에는 혼자 있으니 난방을 끄라고 해 넓은 도서관에서 추워서 떤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라는 어느 사서의 말이 실소는 커녕 분노를 자아낸다. 학교 측의 부당한 대우에 섭섭함을 넘어 결국 눈물을 흘리는 사서가 한 둘이 아님을 사서관련 사이트나 카페 게시판에 가보면 쉽게 알 것이다.


사회가 다 그 모양이고 보니 학부모들이 대학 입시에서의 논술에 대비해 독서와 논술지도를 위해 다양한 과외를 시키느라 애를 먹고 있지만 정작 학교에서는 독서지도나 논술지도는 사서 몫이 아니라 국어교사의 몫이 되어 있다. 따라서 몇 안 되는 사서교사들은 수업도 않는 게 월급이나 축낸다고 이 눈치 저 눈치 보게 되는 게 당연지사다.


그러니 사서교사가 아닌 그냥 사서만 배치해도 되고 그것도 보조자든 계약직이든 싼 값에 채용할 수 있는 인력을 가장 선호하게 되고 거의 배치하지 않는 게 관행화되었다. 일부 사서교사를 확보하지 못한 학교에서는 학부모들이 시간제 도우미로 도서관에서 근무를 하고 있지만 이 역시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학교에 어렵게 배치된 사서교사들 가운데는 1∼2년차 여교사가 적지 않아 교장의 개인 심부름을 강요받기도 하고 입시철에는 정규수업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잡무를 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경남도내 932개 초중고교에 배치된 사서교사는 82명으로 전체 학교의 8.8%만이 사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중에서 학교와 교육청이 인건비의 절반씩을 부담하는 계약직 사서 50명을 제외하면 학교가 자체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서수는 32명으로 전체의 3.4%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별로 초등학교는 491개교에 37명(7.5%), 중학교 262개교 14명(5.3%), 고교 180개교 31명(17.2%) 등이었다. 여기다 도내 초등학교 91개교, 중학교 10개교, 고교 11개교 등 학생숫자가 적은 농어촌에 위치한 벽지학교에는 아예 도서관이 없다. 편의상 경남지역 자료를 이용했지만 다른 지역도 결코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지나오다 보니 도서관 학과 출신의 취업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수준높은 내용을 가르칠 필요도 없어지고 지원자도 줄어드는 악순환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하긴 뭐 학교 도서관만 그런 것이 아니라 많은 공공도서관 조차 제대로 된 사서가 없이 값싼 계약직이나 사서보조를 쓰는 실정이니 뭐라 하겠는가?


그러다보니 정작 도서관은 많지만 실제 학교에서 논술은 아예 관두고 독서지도를 하는 것도 일단 접어두고 심지어는 책을 빌려주거나 그것도 아니면 도서관을 지킬 인력조차 없어서 도서관을 닫아 놓는 곳도 많다고 한다. 이러한 웃을 수조차 없는 문제의 발단은 교육부의 잘못된 정책에 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학교 도서관의 사서 교사 확보율이 극히 낮은 것은 사서교사가 교과목을 담당하지 않으면서도 학교당 교사 정원에 포함돼 인건비 부담이 되는 것은 물론 국어 등 다른 교사들의 수업부담이 과중된다는 이유로 눈총을 받기도 한다는 것이다. 경남도 교육청 관계자도 사서교사 확보는 교사 정원문제와도 관련이 있다고 이러한 주장을 인정하고 있지만 사실 그러한 주장이 전문가의 입으로 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경남도의 경우 2003년에 시작된 도서관 활성화 계획 덕분에 매년 102개교가 국비에서 5천만원을 지원받고 자체 자금과 지방자치단체 예산을 보태 도서관 리모델링과 기자재.도서 구입 등을 해왔다. 지난 5년간 500여개 이상 학교가 참여했는데, 정작 사서와 도서관 활성화를 위한 프로그램 없이 리모델링에만 투입하는 등 학생들의 독서지도에는 역부족이란 지적도 나왔다.


“내년부터 도서관 활성화 2차 계획에 들어가면 인력확보과 자료개발에 중요도를 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하는 경남 교육청 관계자의 말에서 우리는 분명 잘못된 도서관 정책의 단초를 보게 된다. 도서관 시설에 대해서는 필수요건으로 정해진 것 같은데 장서수, 좌석수 같은 시설규정은 정해놓고 사서는 알아서 하라는 게 교육부 정책인 듯하다. 사실 도서관 크기나 장서수, 좌석수 같은 것은 규제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는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서는 절대 안 그렇다.


현재 경남지역 도서관의 책 보유량은 학생 1인당 9.8권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0권 이상에는 근접하고 있다. 그나마 시설기준이라도 있어서 그만큼이라도 됐을 것이며 미국 25.9권, 영국 11.7권, 일본 20권 등에 비하면 크게 부족하니 시설기준을 자율화시키라고 할 일도 물론 아니다. 그러나 하드웨어는 있으되 소프트웨어가 없어도 된다는 격이니 이제는 도서관이 정보화의 산실이 되고 있는 시대에 전혀 맞지 않는 정책인 것이다.


도서관 시설 기준만이 아니라 최소 사서수는 필수로 해야 한다. 학교 도서관 뿐 아니라 공공도서관의 경우도 그 규모나 등급을 장서수나 좌석수로만 보지 말고 사서수, 나아가서는 전공별 사서 보유 정도에 따라 가감할 수 있어야 한다. 양호교사는 이전부터 필수 교사로 채용하고 있었고, 최근에 교육부 지시가 있었는지 갑자기 영양사가 영양교사로 바뀌었고 상담교사도 필수로 채용하게 만든다고 하면서도 사서교사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몸도 중요하고 행동거지도 중요한데 마음의 양식은 안 중요하다는 발상부터 고쳐야 할 것이다.


학생시절, 특히 초등학교 시절 도서관 이용 경험이 없으면 대학과 공공도서관 이용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점에서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책을 파악하여 제공하고 관련 자료 정리와 대출업무를 넘어 학생들에게 독서지도와 논술지도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전문성을 갖춘 사서교사 확보는 필수적이다. 교육부가 권장하고 있는 도서관 활용 수업도 사서교사가 다양한 학습 자료를 준비해주면서 교과 담당 교사와 보조를 맞춰야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학교 도서관이 책을 쌓아두는 창고 이미지를 벗어 던지고 정보실로 거듭나기 위해서 정책당국은 1차적으로 사서를 교사 정원 외에서 확보하는 등 세심한 정책 배려가 필요하며, 학교당국은 경쟁력있는 사서교사 확보에서 학교 경쟁력을 찾아야 할 것이다. 미국에서는 가장 각광받는 미래 직종으로 부상하고 있는 사서가 가장 천대받는 한국이야말로 정보화 시대의 낙오자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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