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라 불리는 존재들과의 술자리는 언제나 늦겨울동안 기다린 이른 봄바람처럼 반갑기 그지없다. 정확하게 11년째 반복되는 싱겁고 뻔하고 지겨운 레파토리들은 여전히 반갑고 즐겁고 유쾌하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 공유할 수 있었던 똑같은 학생이라는 틀에서 벗어난 후 각기 확연히 달라진 우리들의 삶의 방식은 우리끼리 공유할 수 없는 직장, 가족, 연인들의 또 다른 새로운 추억이 되고 새로운 이야기꺼리가 된다. 그 이야기들은 또 다시 싱겁고 뻔하고 지겨운 레파토리가 되어가겠지만..
내 친구들에게 나란 사람의 이미지에 대해 물어 보았다.
길고 짧은 비니, 청바지, 블랙, 카키, 목걸이, 귀걸이, 피터팬 콤플렉스, 자유분방함, 게으름, 잠귀신, 변태(?) 등 등
이것들이 내 친구들이 나에 대해 연상한 단어들이다.
맞나? 하긴 별로 오래 생각해보지 않아도 맞는 듯 하다. 나이 서른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 가장 와닿는 단어 피터팬 콤플렉스 .... ㅜㅜ (물론 서른이라는 나이가 연식이 오래되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언제나 나의 이미지는 조금쯤 가볍고 휙휙거리는..그런 이미지였나보다. 외형적인 이미지만 봐도 친분 있는 사람들의 결혼식에도 슈트는 거의 입지 않고 언제나 청바지에 쟈켓으로 일관했던 나였으니 이런 이미지가 박힌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언젠가 상가집에 갔을 때 머리부터 발끝까지 단정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내 모습을 본 친구가 마치 남 쳐다보듯 “왠일로 이리 말쑥해졌어?” 라고 물어보던 일이 기억이 난다. “나도 이런 것 쯤은 입을 줄 안다고!” 라고 외치고 싶었을 지 모른다.
항상 이렇게 살아온 터에다 직장이라는 곳도 슈트를 입는 일과는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정장을 입는 일이 남의 옷 빌려 입는 일처럼 쑥스럽고 머쓱할 때가 많다. 안 입어본 버릇이 만들어 낸 하나의 고정관념같은 것이다.
멋쟁이는 못되는 팔자인가보다 .
변화를 꿈꾸다
물론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자신만의 이미지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은 엄청난 장점이다.
하지만 그 장점이 가끔은 자신의 발목을 잡기도 한다. 가끔은 신선한 변화가 필요하다.
베르사체의 콘브라 코르셋을 입고 “란제리 룩”이라는 패션 용어를 만들어내며 섹스어필의 상징이 되었던 마돈나에게서 영화 “에비타”의 단아한 모습을 통해 “에비타 룩”이라는 용어를 찾아낸 것은 즐거운 신선함이었다.

영화 "에비타"에서의 마돈나(左)와 블론드엠비션투어에서의 마돈나(右)
독일 출신의 베스트셀러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좀머씨 이야기”에서 느꼈던 아기자기하면서도 깊이 있는 필체를 보며 감탄했던 일과 “향수”에서 어둡고 칙칙하면서도 우울한 무게감의 필체를 보며 그 변화무쌍함에 또 다시 감탄을 했었던 기억을 떠올린다.
상상할 수 없는 디테일과 패턴의 변화에 내 자신이 스스로 범재임을 한탄할 수 밖에 없었던 알렉산더 맥퀸의 쇼를 보고 난 후 그 다음해에 너무도 단정해진 그의 디자인을 보고 신선함을 느꼈던 기억을 떠올린다. 비슷한 의미로 존 갈리아노 또한 나에겐 거대한 신선함 그 자체이다.
왜 당신은 나에게 손가락질을 합니까?
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이런 신선한 변신을 허락하지 않는가?
생각을 해보면 남의 이목을 너무도 신경쓰고 살아가는 우리 민족의 버릇 때문인 듯 하다. 보수적인 측면이 아직까지 남아있다는 것은 우리의 기본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겠지만 때로는 그로 인해 더 많은 것을 버리게 된다.
런던과 도쿄가 왜 패션의 유명 도시인지 아는가?
그들은 용기가 있고 또한 어느 누구도 그들의 용기에 손가락질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홍록기나 노홍철같은 옷잘입는 유명인들의 코디가 꼭 나에게 잘 어울릴꺼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가끔은 그들의 패션에 거부감이 들 때도 있기도 하다. 하지만 진심으로 그들이 행하는 과감한 도전이 언제나 부럽기만 하다. 어쩌면 나는 입지 못하면서 남들에게 강요하는 나같은 디자이너는 자격미달일 수 도 있겠다.
짚신 장수도 비오는 날엔 우산장수를 꿈꾼다.
앙드레 김 선생님에게 검은 턱시도를 강요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변화? 이런 말도 아니다. 적어도 자기 자신에게 너무 보수적이지 말자는 뜻이다. 아주 작은 변화만으로 실없는 웃음이 절로 나오는 그런 작은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만약 글을 읽는 분들 중에서 자신의 평범함에 조금쯤 불만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조금씩의 변화를 받아들일 마음가짐을 가지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검은 옷만 입는 당신이 빨간 옷을 입었다고 하루 아침에 당신 자신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마돈나는 홀딱 벗어도 마돈나일 뿐이고 쥐스킨트가 쌩뚱맞은 탐정 소설을 쓰더라도 그것은 쥐스킨트의 소설이다. 그들의 변화가 신선한 이유는 자신밖의 다른 자신을 찾으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안의 또 다른 모습을 찾아내기 때문이다.
화창함이 조금씩 다가오는 기분을 느껴보자.
그리고 오늘은 조금쯤 자신에게 관대해져보자. (특히 남자분들)
그 변화가 당신을 조금쯤 용기있게 당차게 만들지도 모른다. 글 쓰는 본인도 그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노력이 내 자신을 조금 더 기운충만하게 만드는 즐거움을 여러분들도 느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