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산의 주봉-고당봉
백두대간이 동해를 따라
흘러나와 이곳에 우뚝
세워 놓은 것이다.
이 암봉에 서면 부산시가와
부산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와
그 아름다움을
가리켜 소금강이라
한 이유를 알 수 있다.
고당봉은 우리나라
10대 사찰 중 하나인
범어사에서 산길을 따라 2.5km를 걸어 올라가면
1시간이 걸리며 금정산성 북문에서 0.9km의 거리에
있어 바로 올려다 보인다.
금정산의 최고봉이면서 금샘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1902년 발간된 "궤범어사서기궤유전"
산령축에 의하면 지금부터 40년 전에 밀양인 박씨가
결혼에 실패하고 불가에 귀의하면서 범어사에서
화주보살이 되어 여생을 보내면서 불사로
사부대중들의 칭송이 대단했다. 어느 날 보살께서는
'내가 죽으면 화장을 하고 저 높은 고당봉에 산신각을
지어 고당제를 지내주면 높은 곳에서 수호신으로
범어사를 지켜주겠다.'고 유언을 남기고 돌아가셨다.
이어 큰스님은 유언에 따라 고당봉에 산신각을 지어
1년에 두 번의 제사를 지내니 아주 번창한 사찰이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영험을 알고 찾아오는 사람들에 의해서 고당이
고당봉으로 와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억새밭 천국-장군봉
금정산에서
가장 북쪽에
우뚝 솟은
봉우리이다.
해발 727m인
장군봉은 양산군
외송마을에서 은동굴을 거쳐
고당봉이나 범어사로 산행을
할 때 반드시 거쳐오는 봉우리이기도 하다.
장군봉은 고당봉 북쪽에 떨어져 있기 때문에
부산시내에서 금정산을 찾는 사람들은 별로 찾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이 장군봉은 주변 일대가
억새밭 천국으로 독특한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한 여름철의 파란 억새 물결, 그리고 가을의
억새꽃 군무가 기막히게 아름다운 정경을 연출한다.
천여 년 유구한 세월 동안 그 푸르름을 자랑해 오고
있는 키가 작은 소나무를 '김유신 솔바위'로 불러 왔다.
김유신은 통일을 기원하는 내용인 '적국이 자주
침범하여 죄 없는 백성은 피를 흘리게 되오니 저는
소동이 오나 적을 소탕할 뜻을 품었사오니
천지신명이시어 굽어살피시어 저에게 힘을 주소서'
라고 솔바위에서 기도를 올렸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김유신 장군은 화랑단의 남도들을 이끌고 낙동강을
굽어보면서 청소년들의 호연지기와 무예를 연마하고
통일을 기원하는 등 삼국통일의 초석을 쌓았다.
이곳엔 장군의 얼이 서려있어 '장군봉'이라 이름을
붙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大虎 표효의 형상-의상봉
제3망루에서
100m쯤 남쪽으로
가는 원효봉과의
중간에 있는
봉우리(620m)로서
동해의 망망대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망대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상징적인
의미인 봉우리이다. 마치 大虎가 포효하는
형상을 하고 있어 의상대사의 결기가 서린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원효와 의상은 AD650년 입당 구도 하여 요동 땅에 이르러
한밤중 산속에서 노숙을 하다가 원효가 문득 심한 갈증에
시달리다 옆에 있던 바가지의 물을 시원하게 마셨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 보니 간밤에 먹었던 물은 해골에 고인
송장 썩은 물임을 알고 그때 모든 것은 마음에 있다는 일체유심조
(一切唯心造)를 깨달은 원효는 입당을 포기하고 의상은 구도를
위해 입당하게 된다.
계명추월-계명봉
금정산의
동남쪽 방향에 위치하고
있으며, 범어사의 맞은편
동쪽으로 뾰족하게 돌출해
있는 봉우리의 높이는 601.5m로
불교적인 이름을 가지고 있다.
지난날에는 이 봉우리가
독립된 산으로서 계명산이라고
불리기도 했으며,
이 봉우리는 금정산의 지맥이 장군봉에서 동남쪽으로 급격히 쏟아지다가
범어사 부근에서 다시 불끈 치솟는 다소 독특한 형세를 하고 있어 범어사의 앞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다. 계명봉에는 신비한 전설을 가진
계명암이 있고 이 암자에는 범어 3기의 하나인 자웅석계가
자리하고 있으며 그 형상이 수탉의 형상만 남아 있을 뿐
암탉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다. 또한 계명봉에는 금정 8경의
하나인 계명추월로도 유명하다. 계명봉의 가장 낮은 동쪽
봉우리에는 역사가 오래된 계명봉수대가 있던 곳으로
지금은 약간의 석축과 불을 피울 수 있었던 터만이 남아 있다.
이곳은 약간 낮은 지대지만 사방으로 전망이 틔어 먼 곳까지
전망할 수 있다. 왜 이곳에 봉수대를 설치하였는지를 일반인도
금세 이해 할 수 있게 된다.
계명이라는 명칭은 불교적인 이름으로 알려져 있듯이
즉 새벽이 가장 먼저 찾아오는 곳으로 이것은 밤 기도를
위해 밤을 세워가며 기도에 정진을 하던 이들이 새벽
2시쯤이면 일어나 예불을 드리던 그때 맑은 날씨에는 총총한
별을 보고 가늠하나 흐린 날은 닭 울음소리로 예불시간을
알려주었던 것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신선한 아침풍경의 산-원효봉
제3망루 금정산 동쪽의
가장 높은 봉우리로 가장
먼저 어둠을 해치고 동해에
떠오르는 햇빛을 받아 갓 피어난
매화처럼 화려한 자태의 빛깔로
수놓는다. 예로부터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동녘, 서녘, 밝음,
광명 즉 신선한 아침 풍경의
산봉우리의 명칭을 '으뜸의 새벽'
원효봉이라 불렀다. 원효는 불교 대중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면서 금정산에서 높은 교화력과 깊은 감화력인 신술로 5만의
왜구를 호리병으로 물리친 호국의 주인공이 되었다고한다.
닭의 형상을 한 봉우리-상계봉
고당봉에서
남쪽으로 뻗은
주능선은
제2망루에서
서쪽방향으로
한참을 올라가면
제1망루 남쪽에 있는
봉우리이다.
이 봉우리는 638m의
금정산 남부를 대표하는 봉우리로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자
부산의 산악운동이 태동한 곳이기도 하다. 깎아지른 듯한 수십
길의 직벽과 기기묘묘한 거대한 암석들로 이루어진 상계봉
은 산악 미의 극치를 이루며 부산 산악인들이 최초의 기술적인
암반 등반을 시도하는 곳으로 전체가 바위산처럼 보이며
이곳에는 병풍바위, 콩동바위, 영감바위, 할멈바위 등으로
불리는 기암들이 서로 자태를 다투기라도 하듯이 서 있다.
이들 바위가 빚어놓고 있는 그 형상이 자연의 신비로움이자
금정산의 또 다른 매력으로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발길을
불러 모으고 있다.
상계봉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에도 그 만한 이유가 있다.
이 산정 형상이 마치 닭의 모습을 닮았다고 하여 부르게
된 것이라고 한다. 또 다른 일설로는 이 부근의 봉우리 중 가장
높이 있다고 하여 새벽이 다른 곳보다 빨리 온다는 데서
'닭 계(鷄)'자를 붙였다고 한다. (上鷄峰)
유리와 같은 기암괴석-파리봉
1망루에서 북쪽에
위치한 파리봉은 그
위치가 절묘한 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금정산성의 통과
지점이면서 금정산성마을을
내려다보고 서 있는 것과도
같아 봉우리 자체가 망루처럼
생각되는 것이다. 금정산성은
고당봉에서 남북으로 긴 타원형을 이루고 있다.
금정산의 여러 봉우리들은 금정산성의 동쪽 편에 집중되어 있다.
그런데 이 파리봉은 유독 서쪽에 오직 하나의 봉우리로 우뚝
서 있어 색다른 느낌이 앞서는 것이다. 금정산을 찾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파리봉이라 부르고 있으며, 이 산에 세워
놓은 이정표에도 파리봉으로 기록하고 있다.
우리말 사전에는 파리가 유리·수정이라는 뜻도 있으며,
불교에서 이르는 七寶의 하나라고 되어 있다. 파리봉은
불교의 칠보중의 하나인 수정이다. 산정의 바위는
기암괴석이 수정같이 생겨 아침 햇살을 받으며 영롱한
유리알처럼 빛나는 기적을 이룬다. 수정처럼 빛나는
바위 생김새가 코끼리가 낙동강 물을 마시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어 산봉우리를 불명으로 파리봉이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이 산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사는 금정산성마을 사람들도
그 이름을 거의 모두 '파리봉'이라고 부르고 있다.
금정산의 주봉 직벽의 단애-대륙봉
남문을 거쳐
제2망루를 지나
동문방향으로 산을
따라오다 보면 직벽의
단애가 아찔한 곳을 보게되는데.
이곳에서 부산의 전통 있는
산악단체 대륙산악회원들이
암벽훈련을 한 것을 기려
대륙봉이란 이름이 붙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