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I just .. needed her.. "
책을 영화화 하는 경우 그 영화는 독자들에게 실망을 주는 경우가 많다.
책 속의 무한한 묘사력을 바탕으로 머릿속에 그려놓은 고차원 이미지가 '영상' 이라는
시각과 청각에 구속될 뿐만 아니라, 영화 감독의 주관적인 표현이 독자 내면의 독창적인
해석을 와해시키기 때문이랄까..
'후각은 이성을 지배할 수 있다' 는 놀라운 전제를 생각할 수 있으며..매스컴 및 세간의
관심을 일체 거부하고 운둔생활 중인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
다행히 좋은 감독을 만났는지..
일정부분에 있어서는 소설보다 더 큰 감흥을 주기도 한 듯...

소년이 원하던 것은 향기였다.
향기가 영원할 수 없음에 그리고 자신에게 채취가 없음에 충격을 받고, 미인들의 향기를
수집하는 '그루누이'에게 향기는 일종의 정체성이 아닐까..

최고의 향수를 만들어 열광하는 군중앞에선 그루누이는..
원하면 세상을 좌지우지 할 수도 있지만 결국 그것은(향기는) 자신이 아님에 다시금
정체성을 잃어버리며.. 자신이 원하던 것은 (주근깨가 귀여운...)자두처녀의 관심..
즉 여느 사춘기 소년처럼 자신이 갈망하는 어떤 존재로 부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은.. 그..그.. 너무 작은 것이었음에 외로움의 눈물을 흘린다. 그루누이의 이 눈물은 불과 몇초전에 집단전라를 보고 난감해 하거나 킥킥 댔던 우리에게 영화 전반을 되새기게 하며, 측은함을
불러온다.


천재적인 후각을 지녔지만 결국 처음부터 아무것도 아니였던(무향) 그루누이는 고향인
파리로 돌아가 다시 무로 돌아가는데, 사형식을 비롯한 영화후반부에서 그루누이의 외로움은
최고조에 달하였으며, 이는 곧 나 자신을 투영하고 있음에 매우 깊은 슬픔을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를 사랑할 수도 사랑받을 수도 없는 외로운 존재의 이야기
향수
우짜당간 영화속 그루누이가 소설 대비 초완소남인점을 고려할때 그는
소설속 그루누이에 비해 조금은..매우 조금은 나은 삶을 살았다고도 할 수 있...으려나 ?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