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이외수 >
'만다라'를 쓴 김성동 작가가 소설가 이외수 씨를 처음 만났을 때의 느낌을 말해 주는 글 중 일부를 인용해 본다.
* * * *
잘 아는 선배 시인 분이 웬 양아치처럼 생긴 사내를 내게 인사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독주에 절여 비틀어 짠 오이장아찌의 몰골에다 촌스럽게도 잠바 위에 후줄근한 바바리를 걸치고 있어서 실제 나이에 비해 늙어 보였습니다. 그는 내가 어떤 소설에서 만들었던 사내처럼 철저하게 말라서 오히려 황홀한 육체의 소유자로 보였습니다.
문득 나는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얼마나 투철하게 자기 자신의 삶을 사랑했기에 저토록 마를 수 있는 것일까. 그가 바로 이외수였습니다.
그날 밤 우리는 술에 취한 채 여관방으로 떠내려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들어 간 여관마다 주인에게 퇴짜를 맞고 가까스로 세 번째 여관에서야 방을 잡을 수 있었는데, 그것은 전적으로 이외수의 발 때문이었습니다. 방으로 들어가서 우선 나는 양말을 벗었는데 웬일인지 이외수는 구두를 신은 채였습니다. 잘 닦아 윤이 반짝반짝 나는 구두를 방안에서도 신고 있는 그가 이상해 보여 내가 말했습니다.
"아니, 왜 신발은 안 벗고....?"
그는 털푸덕 주저앉으며 이빨로 소주병을 땄습니다.
"벗었어."
"어.....??"
가만히 그의 발을 보니 그것은 때였습니다. 거짓말 안보태고 1센티 두께의 때가 양말에 쓸려 잘 닦은 구두처럼 빛나고 있던 것이었고, 그래서 나는 그가 구두를 신고 있는 것으로 착각했던 것입니다. 숙박계를 들고 온 여관 아주머니는 그의 발을 보고 그만 "아이구머니나!"하고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방을 뛰쳐나갔고, 우리는 그곳을 쫓겨났던 것이며, 세 번째 집에서는 마침내 쥔 아주머니가 떠다준 물에 그가 눈물을 철철 흘리며 발을 씻음으로써 겨우 쫓겨남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발뿐이 아니라 그는 세수도 양치도 하지 않는데, 이상한 것은 조금도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분명 그가 획득한 경지일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가 일부러 그런 기행을 꾸미는 것이 아니라 세수를 하고 양치를 하고 발을 씻는 따위의 일상적인 행위는 잊어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는 밥도 잘 안 먹습니다. 최소한의 생존을 유지시킬 수 있는 극소량의 밥을 어쩌다 겨우 먹을 뿐, 늘 술로 때웁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일상의 행위를 잊은 지가 6년쯤 되는데,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습니다.
"병신 같은 새끼들. 자유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살겠다고..."
* * * *
소설가 이외수 씨하면 떠오르는 영상이, 소낙비를 맞는 날이 아니면 월드컵이 열리는 해에 한번 감는다는 긴 머리칼과 바짝 마른 몸매의 괴이하게 생긴 사내를 떠올리게 된다. 그는 훈장. 들개. 사부님 싸부님. 벽오금학도. 황금비늘. 외뿔. 괴물 등등 여러 작품의 소설과 산문집을 펴냈다.
내가 그를 알게 된 것은 꽤 오래 전 직장 생활할 때, 그와 같은 동네에 살았다는 직원의 말을 듣고 호기심으로 그의 집을 방문한 것이 계기였다. 춘천으로 그를 찾아갔을 때는 낚시를 가고 없었고 부인과 그를 닮은 아들만이 집을 지키고 있었다. 다른 방문객과 함께 안으로 들어서니 바깥주인이 없는 방이었지만 내 집 안방보다 편안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아랫목에 벌렁 눕는다해도 전혀 어색할 것 같지 않은 묘한 안락함.
집주인과 일면식이 없는 불청객인데도 마치 오랫동안 늘 보아오고 내 손때가 묻은 방이라는 느낌 때문에 전혀 낯설지 않았었다. 그것은 어느 장소에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안온함이었다. 낯가림을 하는 편인 내 성격으로 봐서는 참 이상한 일이었다.
그로부터 세월이 흘러 어느 유명 연예인(개그맨 전유성과 가수 진미령)의 결혼식장에서 그 부부를 보았다. 축하 손님으로 참석한 그는 사진에서 보아 온 것처럼 예의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와 말라빠진 무 꼬랑지 같이 길죽한 얼굴모습은 여전했다. 170cm정도의 키에 40 몇 킬로그람되는 몸무게, 바람에 이리저리 어지럽게 흩어저 들풀같은 머리는 기괴하게 보였는데 그의 옆에서 단정한 차림으로 서있는 부인의 모습이며 정장 일색의 축하객들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어 희극적으로 비춰졌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자신에게 쏟아지는 눈길엔 이골이 났는지 전혀 개의치 않고 누런 이를 들어내며 웃는 그의 모습이 신기하기까지 했었다.
결혼식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이외수씨와 부인 전영자씨의 만남 또한 두 사람의 대조되는 이미지만큼이나 극적이었던 것 같다. 이외수씨는 예전에, 자타가 인정하는 춘천거지라는 별명답게 생긴 것이나 결혼 전부터 해왔던 행태가 유난스러웠다. 그에 비해 부인은 공인된 미인이다. 미스 강원 출신이기 때문이다. 춘천의 거지 이외수와 강원도 미인 선발대회에서 대표로 뽑힌 여자가 결혼해 한 지붕 밑에서 동고동락하고 있다? 이 희대의 이야기를 주제로 삼아서 이외수씨를 엿보는 것도 우리들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매우 뜻깊은 교훈을 주리라고 생각한다. 한 인물에 대해서 알려면 당사자의 지나온 과거를 되짚어 봐야한다. 그것은, 현재의 그와 비교할 수 있는 잣대이기 때문이다.
이외수의 생일은 음력 8월 15일 양력으로는 추석날이다. 이름은 외가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바깥 외(外)자로 지었고 거기에 항렬을 따져서 빼어날 수(秀)자를 붙였다. 그의 어머니는 이외수가 세 살 때 타계해서 어린 이외수는 할머니 손에 의해 길러졌다. 거기에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가 6.25전쟁에 참전하는 바람에 할머니가 집안의 생계를 도맡아야 했다. 당시는 전쟁통이라 너나없이 어려웠겠지만 집안의 기둥인 아버지마저 없었던 이외수네는 더욱 어려웠던 모양이다.
어쨌든 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어릴 때부터 싹이 보이고 영리했던지 글짓기나 그림 그리기 등등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고 그의 부친은 회상한다. 아버지가 군 제대 후에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던 관계로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강원도로 흘러들어 온 이외수는 교육대학을 다니다 말고 전교생이라곤 17명뿐인 '객골 분교'의 소사 노릇을 했다. 여기서 그가 살아온 삶의 독백을 들어본다.
* * * *
1. 도를 닦듯 굶으며
'이 선생님'의 꿈을 안고 교육대학에 입학했던 놈이 결국은 소사 '이씨'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그 겨울은 얼마나 외로웠던가.
방학이 되자 텅 빈 학교를 지키며 소설가가 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고 쌀이 생기면 밥을 한 솥 가득해 놓고 조금씩 먹었다.
눈이 내리는 첩첩 산중. 가끔, 쌓였던 눈이 골짜기로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천둥처럼 들리곤 했다.
글을 쓴다고는 했지만 수많은 파지만 뜯겨져 나갔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그곳을 내려와야 했다.
비공식적으로 취직한 곳이었기에 소사의 자격마저 박탈당한 것이었다.
수입이 없었던 나는 다시 도를 닦듯 굶기 시작했다.
지금도 나는 곧잘 굶는데 아마도 그때의 경험 탓이리라.
춘천으로 돌아온 나는 좀더 구체적인 거지가 되었다.
춘천의 명동거리 한복판에 서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돈을 꾸어서 입에 풀칠을 했다.
도무지 살아 있는 게 혐오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던 때도 있었다.
어쩌다가 운 좋게도 술이 생기면 밤 안개가 흐르듯이 시내를 떠돌아 다녔다.
잠은 주로 다리 밑이나 벽돌 공장 신세를 지곤 했다.
그 즈음, 머리에 이가 생겼는데 산으로 올라가 양지바른 비탈에 주저앉아서 이를 잡는 것으로 낙을 대신하기도 했다.
2. 미스 강원과의 극적인 인연.
춘천의 한복판엔 전원 다실이라는 다방이 있었다.
그 다방 주인은 고맙게도 내 전용의자 하나를 구석진 자리에 만들어 주었다.
나는 그 의자에서 잠을 잤으며 편지를 쓰기도 하고 담배를 구걸하기도 했다.
그 의자는 바로 내 침실이자 서재이며 사무실이었던 셈이다.
그날도 나는 내 전용의자에 앉아서 개떡같은 내 청춘, 개떡같은 나의 장래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곤 부시시 일어났다.
어디 가서 곧 갚겠다고 거짓말을 해서라도 술값을 꿔 한잔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때였다. 갑자기 다방 안이 환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 막 문을 열고 들어서는 한 여자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첫눈에도 황홀함을 느낄 정도로 기막힌 미인이었다.
다방안의 모든 시선들이 그녀에게로 쏠렸다.
그녀는 내 전용의자 가까이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애인이 있을까. 춘천 사는 여자일까. 몇 살이나 되었을까.
호기심의 도를 넘어 궁금증이 꼬리를 물었다.
그리고 나는 순간적으로 어떤 운명을 예감했다.
따라서 가슴은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크라테슨가 말크라테슨가가 한 말이 생각났다.
'너 자신을 알라.'
나는 내 꼬라지를 돌아보았다.
더 이상 설명을 덧붙일 필요도 없는 거지 꼴 그 자체였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나도 엄연한 사내라는 사실이다.
나는 일어서서 천천히 그녀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의 의자 팔걸이에 걸터앉은 다음 이렇게 말했다.
"아가씨, 참 예쁜데요. 아니, 아름다운데요. 앞으로 이 다방에 자주 좀 나와주쇼. 내가 한번 아가씨를 꼬셔 볼 생각이니까."
그러나 그녀는 나를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도도한 표정으로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그녀의 어깨까지 두어 번 가볍게 두드려 주고는 다방을 나와 버렸다.
바깥으로 나오니 무슨 일인가 일어나 주고야 말 것 같은 기분이 왠지 들었다.
그렇게 봄날은 가고 있었다.
며칠이 지났건만 기다리던 그녀는 좀체 나타나 주질 않았다.
그런 어느 날, 외출했다 돌아와 보니 거짓말처럼 그녀가 아름다운 자세로 혼자 앉아 있었다.
너무나 감격해서 숨이 턱 멎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그녀에게 곧장 다가갔다.
그리고 침착하고 느린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아가씨, 예언컨데 분명히 아가씨는 나를 좋아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겁니다. 이왕 좋아할 거면 미리미리 좀 좋아해 주쇼."
그러나 그녀는 뉘 집 개가 짖느냐는 식이었다.
며칠이 지났다.
나는 강원일보에서 중편소설 하나를 연재해 달라는 청탁을 받고 예의 그 서재에서 되지도 않는 글을 비벼 쓰느라 땀 깨나 흘리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말을 던졌다.
"이것 보세요!!"
소리나는 곳에는 놀랍게도 그녀가 여자친구와 함께 내 가까이에 앉아 있었다.
"괜히 예술가인척 하지 말아요. 혐오감을 주니까. 그만 이 다방을 나가 주실 수 없으세요?"
깔보는 듯한 말투였다.
하지만 나는 허리를 구부리고 묵묵히 원고지 칸을 매꾸어 나갔다.
괘씸했지만 글을 다 쓸 동안은 대답을 해 주지 않기로 한 것이다.
글을 다 쓰고 나자 같이 왔던 친구는 보이지 않고 그녀 혼자 앉아 있었다.
"이봐요. 엉터리 소설가님. 배고픈데 저녁 좀 사 주실 수 없으세요?"
그녀의 놀리는 듯한 어투에는, 거지꼴을 한 네까짓 게 저녁을 살 수 있겠느냐는 조롱이 섞여 있는 것 같았다.
"정말 제가 사드리면 먹을 자신 있어요?"
짐짓 내가 난처한 표정으로 말하자 그녀는 빈 털털이 거지같이 생긴 사람이 결코 살수 없으리라는 확신을 하듯 예의 그 놀리는 투로 말했다.
"사달라니까요."
그러면서 그녀는 남자가 뭐 그리 시시하냐는 둥 하며 재차 채근해 왔다.
나는 그녀를 단골 분식집으로 데려갔다. 그리고는 가락국수를 시켰다.
그녀는 정말 배가 고팠던 것일까. 아니면 나의 가난에 어떤 감동을 받은 것일까.
얌전만 뺄 줄 알았던 그녀가 묵묵히 가락국수 한 그릇을 모두 건져 먹었던 것이다.
나는 식당 문을 나서며 기분 좋게 소리쳤다.
"아줌마 외상!"
내가 외상의 천재라는 것을 그녀는 몰랐을 거다.
그리하여 우리는 통성명을 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나를 대하는 그녀는 '이 녀석은 재미있는 놈이다.'라는 정도로만 평가하고 있는 눈치였다.
그 즈음 그녀는 다소 권태롭고 짜증스런 생활을 하고 있는 듯이 보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간호원이었고 병원 근무를 집어치운 채 일본을 갈까 독일을 갈까 망설이고 있는 중이었다.
그 후에도 가끔 그녀는 전원 다방에 나타나서 영화구경 좀 시켜 주실래요? 짜장면 좀 사 주실래요? 하며 불쑥불쑥 내 텅 빈 호주머니를 넘보곤 했다.
그때까지도 나는 한낱 그녀의 심심풀이 땅콩에 불과했던 것 같았다.
3. 그녀의 집에 초대되다.
그런 어느 날, 강원일보에서 삽화를 그리고 있었는데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집에서 모내기를 하는데 밥을 먹으러 오라는 것이었다.
너무나 기분 좋은 그녀의 제의에 즉시 가겠노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일이 꼬이느라고 그랬는지 그녀의 전화가 끝나자마자 급한 일거리들이 밀어닥치기 시작했다.
부랴부랴 그 일들을 해치웠지만 이미 약속 시간은 한시간이나 지나 있었다.
그녀에게 미리 연락을 취해야 했었지만 전화번호도 모르는 상태였다.
결국 나는 그녀의 집에 초대되어 식사대접을 받는 영광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홧김에 외상 술을 퍼 마셨다.
약간 취한 김에 생각하니 밑지는 셈치고 한번 가보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버스를 탔다. 그 때는 이미 약속시간에서 두 시간 반이나 지났기에 그녀가 아직까지 만나기로 한 장소에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치 않았다.
그러나, 감격스러워라.
내가 버스에 내렸을 때 그녀는 어느 건물 담벼락에 웅크리고 앉아 풀죽은 모습으로 그때까지 뙤약볕 아래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은 지금까지 내가 보아 온 그녀의 모습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그녀에게 말을 더듬거리며 늦어버린 이유를 장황하게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녀는 한참동안 더위에 지친 모습으로 내 변명을 묵묵히 듣고 있었다.
그러다가 불시에 반짝 웃으며 "괜찮아요."라고 간단하게 말해 버렸다.
그녀의 집은 시골집이었다.
집안 사람들 모두는 모내기를 나갔는지 텅 비어 있었다.
그녀는 나를 사랑방에 앉혀 놓고 새로 밥을 짓기 시작했다.
한참 후, 그녀가 내게 와서 불쑥 말했다.
"옷을 벗으세요."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옷을 벗으라니... 옷을 벗으라니.... 도대체 이 여자의 정체는 무엇이냐. 당황한 나는 순간적으로 해괴한 상상들을 떠 올렸다.
"지금부터 내가 시키는 대로 하셔야 돼요. 이거 내 동생 옷인데 즉시 갈아입으세요."
그녀는 남자 옷 한 뭉치를 꺼내 내게 건넨 뒤 방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나는 도대체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다.
"다 갈아 입으셨죠?"
그녀가 다시 방문을 열었다.
"이리 나오세요. 여기 비누하고 수건이 있어요. 저기 보이는 길로 곧장 가면 강이 있어요. 시원하게 목욕하고 오세요."
그녀는 억지로 내 등을 떠밀었다.
나는 죽어도 목욕하기가 싫었지만 그녀에게 점수를 따기 위해서 어슬렁거리며 강을 향했다.
알 수 없는 행복감이 강물 위를 지나는 바람처럼 가슴 밑바닥을 훑고 지나갔다.
나는 강물 속에 몸을 담그고 그 동안 쌓였던 개떡같은 내 청춘의 때를 벗겼다.
내 절망의 때를 벗기고, 내 외로움의 때를 벗기고, 내 빈곤의 때를 벗겼다.
나는 내 영혼의 찌든 때까지 모두 벗기고 오는 길에 비로소 고향으로 다시 돌아와 눈시울을 적시는 탕자의 새로됨을 절감하고 있었다.
나는 그날 3년만에 목욕이란 걸 해 본 것이었다.
돌아오는 길은 세상의 모든 것들이 새롭고 신선해 보였다.
맑은 햇빛, 상큼한 바람, 둥실 떠가는 뭉게구름, 멀리서 들리는 농부들의 구성진 노랫소리....
그러나 문득, 한 가닥의 불안이 스쳐지나갔다.
어쩌면 나는 지금 그녀에게 동정받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돈도 없고 빽도 없고, 인물마저 만고강산인 나를 그녀가 과연 애인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저런 상념에 잡혀서 막 그녀의 집 대문으로 들어섰을 때였다.
나는 순간적으로 숨이 콱 막혀오는 감동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바로 내 눈 높이의 허공에 가로놓여 있는 빨래 줄에는 그토록 거지발싸개같이 때묻고 남루하던 내 티셔츠며 바지들이 깨끗하게 세탁되어진 채 봄볕 속에서 눈부시게 널려 있었던 것이다.
만약 당신이라면 이런 여자와 결혼하지 않고 도대체 어떤 여자와 결혼을 할 것인가.
나는 그 순간 영원히 빨래가 되어 평생을 그 여자에게 세탁되어 지기를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