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 남자가 있다. 40대의, 20년 경력의 중견 깡패. 확실한 일처리로 사장에게 인정받지만 사장 동생인 전무-사장 동생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 능력도 없는-에게는 미움을 받고 있다. 20년간 동고동락한 친구와 가끔 만나 함께 식사를 하며 노량진에 있는 한 아파트에 아내와 딸과 함께 살고 있다. 아들은 유학을 가 있으며 딸도 유학을 가고 싶어하고 조폭인 아버지가 밉고, 싫다. 싸움실력도 예전같지 않아 끽하면 여기저기 핏자국에 반찬고를 붙이고 들어오는 그에게 아내는 나랑 헤어지든지, 아니면 깡패짓을 그만두라고 진저리친다. 가족 모르게 부동산에 들러 빌라를 둘러보는 것이 그의 유일한 낙. 큰건 하나 터뜨려서 그림 같은 집을 사고 가족 모두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이. 현재 그의 유일한 꿈이요, 희망이다.
깡패를 회사원으로 바꾸고 핏자국,반찬고를 술냄새로 바꾸면, 과연 평범한 우리의 아버지들과 다른 점이 있을까. 한재림 감독은 '조폭' 이라는 직업을 통해 삶은 전쟁이요, 투쟁이라는 것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가족을 바라보며 매일 생사가 걸린 전장에서 피를 흘리며 싸우지만, 항상 지친 몸으로 돌아오는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가족의 차가운 시선. '다 정리하면' 좋은 때가 올 것이라고, 그 때는 다 이해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95% 정리했다 싶으면 나머지 5% 때문에 모든 것은 얽히게 마련,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과정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항상 되풀이하는 '다 정리했어. 곧 끝난다니까?'는 기약 없는 약속처럼.
감독은 자칫 상투적이기 쉬운 이야기를 자신만의 방법을 통해, 지루하지 않게 풀어내고 있다. 요 부분은 연기자들의 명연기-특히 송강호!-에 많은 점수를 주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송강호 원맨쇼. 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본 영화에서 송강호의 연기는 절정을 보여주고 있다. 가장의 모습과 조폭의 역할, 지친 가장이자 고달픈 사회인을 완벽하게 소화한 그의 연기는 '역시 송강호..'라는 탄성을 지르기에 충분하다. 중간중간 보여준 재치있는 연출도 영화의 맛을 살리는데 일조했다.
송강호가, 아니 강인구가 꿈꾸던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평생 살아가는 '우아한 세계'. 치열한 전투 끝에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지었지만, 우아한 세계는 그다지 그에게 문을 열어줄 기미를 보여주지 않는다. 그의 아내와 딸은 캐나다로 떠나고, 가족과 함께 할 날을 꿈꾸며 일궈낸 그림 같은 집에서 그는 홀로 라면을 먹으며 대형 TV 속에서 행복한 가족의 모습을 훔쳐볼 수 있을 뿐이다. 어쩌면 그의 역할은 평생 그렇게, 행복한 가족의 모습을 바라보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되풀이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비디오를 보다가 흘린 그의 눈물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었을까. 아니면 억울함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