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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소설>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

김종명 |2007.04.09 06:14
조회 40 |추천 0

                                        시련의 고행

 

일제하의 초등학교인 소학교 5학년 민우(民優)는 남의 집 처마아래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학교까지는 5마장이어 비를 노맞으며 학교로 갈 수는 없는 일. 그는 우산을 쓰고 지나가는 학생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비오는 아침이면 그는 일찌감치 책보자기를 챙겨 아버지 어머니에게 보이지 않게 집을 나와 버려야 했다. 비오는 날 우산이나 우의 없이 학교로 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아버지 어머니께 보이지 않기 위해서 였다. 그런 뒷모습을 보여주면 양친은 아들에게 우산을 마련해주지 못하는 자신들의 삶을 비관할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비 오는 아침이면 언제나 그의 마음은 어두웠다. 집을 일찍 빠져 나와 이렇게 비를 피하며 서 있어야 학교를 가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여야만 우산을 쓰지 않고 집을 나서는 아들의 뒷모습을 양친께 보이지 않고 남의 우산아래로 들어갈 기회를 잡아 학교로 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비 오는 아침이 싫었다.

그는 그의 책 보자기를 오른 쪽 어깨에서 등 뒤로 둘러 왼 쪽 겨드랑이 아래로 돌려 앞가슴에서 보자기의 두 끝을 질끈 매고 있었다. 그런 그는 우산을 쓰고 학교로 가는 학생들이 올 길 쪽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초조한 기다림 끝에 마을 친구인 아끼야마(秋山)가 종이 우산을 쓰고 이쪽으로 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한지에 들깨 기름을 절인 종이로 만든 우산이었다. 그는 그의 얼굴에 나타났을 우울한 표정을 지우고 여유 있는 사람의  표정을 지었다. 친구에게 우울한 표정을 보일 필요는 조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끼야마는 추병오라는 우리 이름을 가지고 있었지만 학교에서 우리 이름을 써지 못하게하여 그의 성을 아끼야마로 바꾼 이른바 창씨개명한 친구였다. 

“아끼야마”

아끼야마가 가까이 왔을 때 그는 친구를 불렀다. 아끼야마가 민우에게 눈길을 주자 민우는 여유있는, 참으로 여유있는 걸음거리로 아끼야마의 우산아래로 들어갔다.

 

 

수업이 시작되자 일본인 선생은 일본군은 일본군이 전쟁에서 승전에 승전을 거듭하는 승승장구의 전황을 한 시간이나 설명했다. 다음 시간은 조선역사 수업 시간이었다. 이제는 민우도 백번 쯤 들은 일본의 조선출병을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선생은 이씨조선의 선조왕 때 일본의 조선출병과 도요토미히데요시 군장이 만든 귀무덤과 코무덤에 엮인 설명을 신들린 사람이 신풀이 하듯 신바람 나게 쏟아 내었다. 그 설명 끝에 이씨조선은 그때 일본의 속국이 되었어야 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렇게 되지 않았으므로 중국의 청 나라가 조선을 침공하여 조선의 인조라는 임금이 청 태종 앞에 무릎을 꿇고 목숨만 살려달라고 두 손을 싹싹 빌었다고 하였다. 신바람을 탄 선생의 설명은 이어졌지만 민우는 귀를 손으로 막고 싶었다. 민우는 손으로 귀를 막지 않아도 되었다. 선생의  가르침은 어떤 소음처럼 귓가를 윙윙거릴 뿐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수업이 끝난 오후에는 비가 그쳐 민우는 우산 걱정 없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 내내 이제 그 병처럼 도지는 선조 임금님 인조 임금님과 자신과의 관계에 생각이 침잠해지기 시작했다. 두 분이 자기의 선대인 것은 분명한데 어떻게 집안의 대대손손이 내려왔는지 곰곰이 생각하였다. 인조 임금님은 선조 임금님의 손자 되시고 효종 임금님은 인조임금님의 아드님이 되시는 것까지는 알고 있었다. 그 다음은 어떻게 자기까지 대를 이어 내려 왔을까 그는 냉가슴을 앓았다.  몇 해를 두고 그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의 답을 맞히려 그는 머리를 싸매었지만 답을 얻을 수 없었다. 아버지 어머니께 물어면 다음에 알게 될 것이라 하였을 뿐이었다. 자기의 형인 민수 형이 자기들의 고조 할아버지께서 선조 임금님의 10대 손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얼핏 들려주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건 답이 아니라 그를 더 어려운 미궁의 미로를 헤매게 했을 뿐이었다. 어른들이 애들에게 무엇인가를 감추는 기미가 있으면 애들은 그것을 더 알고 싶어하고 어른들이 이러저러한 일을 해서는 안 된다 하면 한 번 해 보고픈 그런 일이었다. 아니 그런 하찮은 일이 아니었다. 그보다 수 십배 수 백배 더 깊은 것을 어른들이 감추고 있는 것 같아 그는 그것을 꼭 알아내고 싶었다.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무는 일을 민우는 머리를 흔들어 지워버렸다. 

    그렇게 집으로 가고 있는 그에게 이번에는 어제 저녁 일이 생각났다. 민우는 저녁 내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곧 압류 당할 논 문제로 걱정하는 것을 보았다.

“어거지로 공출을 매기고 공출을 바치지 않는다고 남의 논밭을 압류하겠다니 그게 이치에 맞는 일인가” 

아버지가 한숨 쉬듯 말했다.

    두 분 사이에는 암울한 침묵만 한동안 흘렀다. 말없이 듣고 있던 어머니가 작은 목소리로 가까스로 아버지에게 말했다.

 “병오 아버지를 한번 만나 의논을 해보면 어떨까요”

    어머니는 면장인 병오의 아버지를 만나 보도록 권하고 있었다. 병오네 집은 할아버지 때부터 집이웃 논이웃 밭이웃으로 지냈으니 어떤 묘수를 찾아 주지 않을까 어머니는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 판국에 면장인들 무슨 뾰쪽한 수사 있을라구. 그 사람도 제 코가 석자인데”

아버지의 대답이었다.

다시 아버지는 세상을 탓하는 말을 이었다.

“아 이놈의 세상. 논 열마지기에서 나오는 소출이 벼 서른 가마니 밖에 되지 않는데 공출을 서른 가마니나 내라니 무슨 수로 그것을 감당해. 그게 이치에 맞는 일인가 말이다. 또 우리는 무얼 먹구.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아버지는 목소리를 높였다. 억울하고 분하여 끓어오르는 분노가 아버지의 목소리를 격하게 만든 것이리라. 

“사람들이 그러던데 곧 일본은 전쟁에서 지고 망한데요”

어머니가 말했다.

“지구 말구. 제 놈들 주제에 대동아전쟁이 가당키나 하느냐 말이야. 그 통에 조선사람들만 죽어나고 있지”

아버지는 잠깐 말을 끊었다 다시 말을 이었다.

“작년 가뭄 어떠했소. 그 때도 벼 서른 가마니를 공출하라 닥달한 일본사람들 아니었소. 닥달도 유분수지”

민우의 머리에 작년 한여름 가뭄을 겪던 일들이 떠올랐다. 집이웃 논이웃 밭이웃으로 지내는 마을 사람들이었지만 작년에는 달랐다. 사람들은 가뭄에 남의 논 물 걱정할 여유가 없어 보였다. 한 방울의 물이라도 사람들은 자기 논에 물을 끌어들이려 마을은 북새통이 났었다. 아버지가 한 밤이 되기를 기다려 가느다란 물줄기를 남 몰래 자기들의 논의 물꼬로 대어 놓았건만 이른 새벽에 나가보면 물은 그새 남의 논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어느새 다른 논 주인이 물줄기를 자기 논의 물꼬로 돌려 놓은 것이었다. 아버지는 물지개로, 민우 자기는 양동이로 저수지 바닥의 물을 길러 논바닥을 적시었던 작년 가뭄이었다.

 

 

 집은 아직 조용하였다.  어머니는 샘 옆에서 병오의 누나이지만 민우도 누나라 부르는 순녀 누나랑 손으로 옷가지를 빨고 있을 뿐이었다.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병오 아버지를 만나러 갔을 것이었다. 민우는 앞가슴에 매어진 책보자기의 매듭을 풀어 책보자기를 마루 위에 내려 놓았다. 초가 처마 끝에서는 아직도 낙수가 떨어지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어머니에게 닥아갔다.

“병오 아버지가 우리를 도와 줄까요?”

민우는 어머니에게 물었다.

“그러게 말이다. 일이 쉽진 않을 것이다. 나라에서 하는 일을 무슨 수로 감당하겠느냐”

옷을 빨며 어머니가 대답하였다.

“그러면 논밭 가리지 않고 모두 빼앗기는 가요?”

민우의 그 물음에 어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형은 언제쯤 집에 올까요?”

민우의 형 민수(民秀)는 도회지에서 크고 작은 배의 부품을 만들고 고치는 작은 공장에서 일하며 그곳에서 기숙하고 있었다. 민우 보다 두 살 위인 열 여섯 나이의 형이었다. 민우는 그 형 민수라도 집으로 왔으면 하는 바람으로 형에 대해 물어 보았다.

“월급이라고 조금 받았을 것이니 며칠 새 오지 않겠느냐”                          어머니는 듬듬하게 말하였다.

    민우는 말없이 어머니 곁을 서성이다 들녘으로 걸음을 옮겼다. 집 밖은 평화롭고 한가로웠다. 거기에 비온 뒤의 풀 내음 머금은 싱그러운 공기, 샘물 같은 맑은 시냇물, 출렁이는 벼이삭, 대지를 진동시키는 구수한 알곡 익는 내음으로 추색(秋色)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참새 떼가 시끄럽게 재잘거리며 건너편 들녘으로 날아갔다. 나뭇잎 같은 작은 날개를 파닥이며 그래도 제법 멀리 날아갔다.

민우네 논은 동네어귀 당산 나무가 있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민우는 지난 여름, 비가 장대처럼 퍼붓고 천둥과 번개가 무섭게 기세를 부릴 때 벼락을 맞아 등걸이 두 쪽으로 갈라진 당산 나무를 돌아 그들의 논이 있는 곳으로 가고 있었다. 들판의 수로를 따라 올라가던 민우는 놀란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주위를 살펴 보았다. 가족이 생계를 매고 있는 논, 그 논두렁을 따라가며 말뚝이 드문드문 박혔고 말뚝들을 따라가며 새끼줄이 매어져 있었다. 말뚝들에 매어진 새끼줄들은 일본 순사(순경)들이 양팔을 벌리고 그가 가까이 오면 큰 벌을 주겠다고 겁을 주는 것처럼 보였다. 차압, 아버지 어머니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차압이 그의 눈 앞에 현실로 나타나 있는 것이었다.

민우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이제 우리 집은 어떻게 될까? 아버지는? 어머니는? 형은? 그리고 나는? 그는 그들의 콩밭으로 달려가 보았다. 거기에도 새끼줄이 두 팔을 벌리고 그를 가로막고 있었다. 이번엔 채소밭으로 달려갔다. 마찬가지였다. 그는 온 힘으로 집으로 달렸다. 돌에 걸려 넘어졌다. 검정 고무신이 벗겨져 달아났다. 일어서며 이마에 따가운 통증을 느끼고 이마를 짚어 보았다. 손에 피가 묻어 나왔다. 피는 앞가슴에도 떨어졌다. 그런 경황에도 벗겨져 나간 검정 고무신을 찾아 한 손에 쥐었다. 다른 한 손의 손바닥으로 피가 흐르는 이마를 짚고 그는 다시 집으로 달렸다. 어떤 연유에서인지 ‘집에까지만 가면 된다 집에까지만’ 그 생각만 거듭 거듭 들었다. 그런 그의 생각은 귀소의식에서 비롯되었을 뿐이었다. 그의 집은 그를 포근히 감싸줄 집이 못 되었지만 그의 머리 속에는 그런 느낌으로 가득했다.     

집은 더 무서운 곳으로 바뀌어 있었다. 칼이 든 은빛 긴 칼집을 찬 일본 순사가 마당을 천천히 거닐며 위엄을 부리고 있었다. 군청 서기로 보이는 두 청년이   장부를 들고 장독과 장롱에 빨간 차압딱지를 부치고 있었다. 소의 뿔에도 딱지를 붙이고 우간 앞에도 논밭에 쳐놓은 것처럼 새끼줄을 쳤다. 어머니는 마당 어귀에서 새파랗게 겁에 질려 있었다. 어머니 곁의 순녀 누나도 새파란 얼굴로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민우는 어머니의 허리를 두 팔로 감싸며  어머니에게 안겼다. 어머니에게 안겼는지 외래인들이 어머니에게 주는 위압을 차단하려 어머니를 감싸안았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때 아버지가 병오 아버지와 함께 마당으로 들어섰다.

“여보게, 이러지들 말어. 좀더 말미를 주게. 좀 말미를”

병오 아버지가 군청 서기의 팔을 잡고 사정하였다. 면장 일을 보며 서로 얼굴을 익힌 사이인 것 같았다.

“저리 비켜. 이것 다 면장인 너가 할 일이야. 그 걸 지금 우리가 대신 하고 있는 거야. 공문을 3번이나 내려보내도 말을 들어 먹어야 말이지”

면장인 병오 아버지는 아무 말도 못했다.

“그래. 한 달의 말미를 주지. 한 달 안으로 작년에 내지 않은 15가마니의 벼와 올해 내어야 할 30가마니, 그러니 45가마니의 벼를 내면 차압을 풀어주지”

군청 서기는 사납게 말을 내뱉았다. 그러고는 그들은 민우네 집을 나가버렸다. 그들이 나가버리자 병오 아버지가 아버지의 팔을 끌어 마루로 갔다.

“오늘은 늦었고 내일 창씨개명하는 서류를 읍 사무소에 내게. 그러면 저 사람들이 같은 일본사람으로 여겨 저렇게 날을 세우지는 않을 거야”

병오 아버지가 아버지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굳은 얼굴로 앉아 있을 뿐이었다. 민우는 아버지의 굳은 표정에서 언제나 그러하였듯 바위를 연상했다. 지금 그 바위는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 다 이해하지. 왕손의 후손으로 어떻게 일본사람의 성과 이름으로 바꿀 수 있느냐 그런 생각을 지금도 갖고 있는 것 내 다 알지”

여전히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며 병오 아버지는 아버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병오 아버지는 ‘컥’ 한 번 흐느끼는 소리를 내었다. 그것은 한 마을에서 태어나 자신들의 나라가 망하는 것을 함께 보았고 수 십 년을 일본사람들의 하층민으로 같이 살아 온 두 피해자 중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피해자에게 울분을 토하는 외마디 흐느낌이었다.

“알았네. 생각해 보겠네”

민우는 아버지의 그런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사람들이 떠나버리자 집은 적막강산으로 옮겨진 듯했다. 거기에 밤이 찾아오자 집은 더 깊은 골짜기에 놓인 것 같았다. 엎치락 뒤치락거리다 자정 가까이 되어 민우는 살풋 선잠이 들었다.

     용포에 왕관을 쓴 선조 임금님이 개성으로 피란을 가는 행렬이 보였다. 비가 뿌리고 있었다. 아버지도 행렬의 뒤를 따르고 있었고 민우 자기도 따르고 있었다. 일본 군인들은 애 어른 가리지 않고 조선 사람들에게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이제 선조 임금님은 칠흑 같은 밤중에 평양으로 피난을 가고 있었다. 아버지가 임금님은 지금 백성의 원성을 두려워 어둠 속의 길을 택했다고 말해 주었다. 도요또미 히데요시의 군사들이 궁궐을 불태우는 것도 보였다. 백성들은 불타는 궁궐을 보며 등실등실 춤을 추었다. 백성들은 궁궐의 곡창에 가득 찬 오곡을 가마니에 담아 퍼나르고 있었다. 선조 임금님은 다시 의주로 피난을 가고 있었다. 그 뒤를 아버지와 민우 자기도 또 따르고 있었다. 어디선지 역겨운 냄새가 났다. 아버지는 그 냄새가 시체 썩는 냄새라 하였다. 도요또미 히데요시가 조선 사람들의 머리를 짤라 일본에 있는 자기에게 보내는 것은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라며 짜증을 부리는 얼굴이 보였다. 머리 대신 귀를 짤라 보내라고 한껏 위엄을 부리는 것도 보였다. 도요또미 히데요시는 죽인 조선 사람들의 귀 대신 코를 짤라 보내라고 위엄서린 표정으로 말하는 것도 보였다. 이제 일본 군인들은 죽인 조선 사람들의 코를 도려내어 소금에 저리고 있었다. 

"얘가 왜 이러나 민우야. 얘 민우야 민우야"

꿈결에서도 오들오들 떠는 민우 자기를 어머니가 깨웠다.   

    

   

며칠이 지나자 마을의 다른 집들은 추수 일로 바빴다. 그들의 마당에는 탈곡기가 윙윙거렸고 짚단이 차곡차곡 높아가고 있었다. 민우네 가족들은 그것을 보며 허허벌판에서 삭풍을 맞으며 죽음만 기다리는 사람들의 마음이 되어 있었다.

“농토 없어도 살 수 있습니다”

그 무렵 집으로 돌아 온 민우 자기의 형인 민수 형이 아버지 어머니께 말했다.

“제가 배를 타면 농토 없어도 우리 살 수 있습니다”

형은 절망에 젖어 절망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아버지 어머니에게 어떤 빛을 보여 주는 것 같았다. 형은 말을 이었다.

“도회에 가면 농토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 많습니다. 나라에서 뺏으려 드는 농토 내어주는 길밖에 없지요. 지금까지는 논밭을 가꾸어야 살 수 있었지만 이제는 사람 사는 길 여러가지 많이 있습니다”

형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형은 이제 세상이 변했다고 말했다. 농토가 없어도 기술로 사는 사람들도 있고 장사로 사는 사람들도 있다고 말했다. 도회지에 가면 사람 사는 길 수백 가지가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뿌리 뽑힌 나무와 같은 아버지는 가족을 이끌고 살아갈 길은 도회로 가는 길 밖에 없다고 작심하고 있은 듯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오늘 밤 여기를 떠나자. 오늘 밤 나를 도

와다오”

아버지는 쉽게 대답했다.

한밤이 오길 기다려 아버지는 우간에 쳐진 새끼줄을 걷어버렸다. 소의 뿔에 붙여진 빨간딱지를 수세미로 지워버렸다. 장독과 장롱에 붙여진 빨간딱지도 없애버렸다. 장롱과 장독 이불 보따리 농기구 그리고 무엇보다 소중한 솥 그것이 그들 세간의 전부였으니 그것을 소 달구지에 싣는 것은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세간을 달구지에 싣자 소의 고삐는 아버지가 잡았다. 달구지 뒤를 민우는 어머니와 형과 같이 따랐다. 그렇게 그들은 대를 이어 살아 온 삶의 터전을 떠나갔다.

그들이 마을 어귀를 지날 무렵 누구인지 민수의 옷깃을 뒤에서 당기는 사람이 있었다. 병오의 누나 순녀(順女)였다. 아마 그들이 지나갈 길을 오랫동안 지키고 있었던 것 같았다. 민수는 걸음을 멈추어 달구지가 멀어지기를 기다려 가족들과 거리를 두었다.

“여기 이 밤중에 웬 일이냐? 우리가 떠나는 것은 어떻게 알았냐?”

민수가 순녀의 얼굴을 보았다.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지만 순녀는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그 걸 모를라고. 이거 가다가 배고프면 먹어. 아버지 어머니도 드리고 민우도 주고. 감자와 강냉이야”

보자기를 건넨 순녀는 돌아서서 빠른 걸음으로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가을 들녘은 고요했다. 하늘엔 초승달이 걸렸고 차가워 지기 시작한 밤바람이 이따금 뿌리 없는 그들을 스쳐지나갔다. 민우는 더 어렸을 적 밤중에 앞뜰의 감나무를 흔든 일이 있었다. 갑자기 참새들이 푸드득거렸다. 몇 마리는 떨어지다 다시 감나무 가지에 앉았지만 몇 마리는 짹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캄캄한 허공을 이쪽 저쪽으로 손살처럼 날라갔다. 그는 자기가 몹쓸 짓을 하였다고 후회하였다. 허공을 나른 새가 바위에 부딪쳐 죽었는 지 물에 빠져 죽었는 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민우는 자기들이 그 새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위 같은 사람들

 

사람은 절망에 빠져 절망 속에서 허우적거리면 바닥이 없는 절망의  늪 밑으로 빠져들어 갈 뿐인 것 같았다. 나아갈 길을 찾는 사람에게는 길이 열리게 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살려고 버둥거렸다.

“아버지, 쇠로 제품을 만드는 공장에서는 산소라는 것을 씁니다. 아버지께서 소달구지로 산소가 든 병을 공장으로, 산소를 다 쓴 공병은 수거하여 다시 산소 공장으로 가져오는 그런 일을 하실 수 있겠습니까? 우리에게는 소달구지가 있지 않습니까?”

민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 일이 있냐?"

:예 있습니다"

"그 까짓 일이야 아무것도 아니지. 나는 여기 올 때 부두에 나가 막일을 할 작정이었다"

아버지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그들은 산소를 만드는 공장 부근에 단칸방을 얻어 도회지 생활을 시작했다.  

“산소병 그것 무겁죠”

고향을 떠나올 때부터 어머니의 눈에는 언제나 물기로 젖어 있었지만 더 짙은 물기 어린 눈으로 어머니는 아버지를 보았다. 

“무겁긴, 나는 그 열 배로 무거워도 상관없소”

아버지는 그렇게 대답했다.

민수는 민우를 그가 다니던 공장에서 일을 하게 하였다. 민수 자신은 외항선을 타는 선원이 되었다. 민수가 일을 하는 곳이 배의 부품을 만들거나 고치는 공장이어서 선장 항해사들이 많이 드나들었고 그의 공장 조선인 부사장은 그들과 친분이 깊어 그의 승선을 적극 도운 덕분이었다. 16살의 어린 나이 때문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조선인 부사장은 그의 의지를 현실로 옮겨주었다. 민수의 의지와 부사장의 도움으로 민수는 한달 월급으로 자그마치 쌀 한 가마니를 살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민수가 배를 타고 나가기 하루 전 아버지는 민수 민우를 자기 앞에 앉게 하였다.

"나의 증조 할아버님은 공자 임금님(선조)의 10대 후손되시고 나의 할아버님께서는 그 어른의 둘째 아드님되신다" 

     아버지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그런 아버지가 민우에게는 어쩐지 속에 눈물의 샘이 흐르는 바위처럼 보였다.

어머니가 대광주리의 삶은 감자를 세 사람에게 건네었지만 그것을 먹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조선 사람들이 허기진 배로 살아왔고 나라까지 빼앗겼지만 그것은 내 선대 어르신분들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속에 눈물의 샘이 흐르는 사람의 말은 잠시 끊어졌다 다시 이어졌다.

"아주 오래 전 이 땅의 사람들은 중국에 큰 땅을 그만 잃어버렸다. 그것이 화근이 되어 이 땅에 살았거나 살아가는 사람들은 고통을 받으며 살아 내려오고 있다. 그 땅을 잃어버린 죄값을 치루는 것이지. 언제까지 그 죄값을 치루어야 할 지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나는 이땅의 사람들이 그만큼 고통을 받았으면 이제 그 죄값은 거의 다 치루었다는 생각이 든다"

 

 

민우는 도회에서 집이 조금씩 안정을 찾고 있다고 느꼈다. 어머니의 눈가는 물기로 헤어지고 진물이 났지만 어머니에게는 농신이 내린 것 같았다. 어머니는 아무도 거두지 않는 하천 부지며 적산 땅을 밭으로 가꾸는 데 하루 종일 매달렸다. 남의 호박밭과 척박한 논과 밭을 싼 값으로 사들였다. 허드레 논밭은 지천으로 깔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회에 온지 2년이 지나자 집은 고향에서 가졌던 논밭보다 더 많은 논밭을 가지게 되었다. 아버지는 곡식을 거둘 수 있도록 넓은 마당이 있는 집도 장만하였다. 기와를 올린 집이었다. 민우는 자기들이 도회생활에서 큰 개선을 을 거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어느 종교에서는 인간은 원죄를 안고 태어난다 하였지만 한반도에 태어나는 사람들은 민우 아버지의 말처럼 큰 땅을 잃어버린 원죄를 안고 태어난다는 것을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민우가 일을 마치고 전차를 타고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전찻길 양쪽에 일본군인들이 무장을 한 채 긴 줄을 이루어 부두 쪽으로 행진해 내려가고 있었다. 전차 안의 사람들이 말했다. “일본군인들 전쟁에 지고 저희들 나라로 돌아가는군. 몹쓸 인간들” “이제 우리 조선은 해방이 되었다”

정말 우리 조선이 해방이 되었을까. 민우가 마을 안으로 들어서자 어른들이 길고 여린 가지를 늘어뜨린 수양버드나무 아래에 앉아 무엇인가 의논을 하고 있었다. 구장(통장)이 종이에 글을 적으며 다른 어른들에게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민우가 집에 들어와 얼마 있지 않아 민우 아버지는 열명이 더 되는 일본 군인들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왔다. 그제야 민우는 어른들이 버드나무 아래서 일본 군인을 도와줄 문제를 상의한 것임을 알았다.

“이 사람들 오늘 밤 우리 집에 재워주기로 했어”

아버지는 그들에게 마루를 가르켰다. 그러자 일본 군인들은 마루에 그들의 짐을 풀었다. 민우는 온갖 상념을 떠올리며 그들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눈여겨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마당에서 그들이 가지고 온 것으로 저녁을 먹었고 밤이 되자 그들은 누런 담요를 덮고 마루에서 잠을 잤다. 다음날 아침 민우는 그들의 별나고 기이한 움직임을 보게 되었다. 그 중 한 사람이 어떤 말인지는 모르지만 큰 소리 한마디 외쳤다. 그러자 열 사람도 더 되는 그들이 막대기처럼 하나같이 발딱 일시에 일어나 앉는 것이었다. 사람이 이부자리에서 일어날 때는 한 사람 씩 시차를 두고 부시시 일어나지 어떻게 지금껏 넘어져 누워 있던 판자 울타리가 제자리를 찾아 일어서듯 꼭 같이 발딱 일시에 일어나 앉는다는 말인가. 민우의 눈에는 참으로 신기하고 묘한 움직임이었다. 몇년을 두고 그가 한가할 때면 그 움직임은 눈앞에 떠올랐다. 오랜 세월이 지난 다음에야 군대에서는 누군가 “기상”소리치면 일제히 일어나 앉는다는 것을 그는 알았고 그때 그들은 그래서 그렇게 일어났구나 답을 얻어 마음 속이 시원해졌다.

그렇게 일어난 그들은 바쁘게 짐을 꾸렸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재워주어 고맙다는 뜻인 모양으로 황색 군용 담요 두 장을 아버지에게 주었지만  아버지는 그것을 거절하였다. 짐을 꾸린 그들은 총총이 마을을 떠나갔다. 민우는 그들 가족에게 무서운 고통을 주고 떠나가는 그들의 등을 오랫동안 지켜보며 서 있었다. 이 나라 사람들은 그렇게 곱게 그들을 보내주었다. 이 나라 사람들은 그렇게 해방을 맞았다.

 

 

                  다시 눈물을 흘리는 바위

 

     38 선 38 선 지금껏 듣지 못한 말이 나돌았다. 처음에 그 말은 아무런 흥미도 주지 못했다. 슬금슬금 기어다니던 그 말은 시간이 지나자 살아 움직이는 무서운 맹수의 얼굴로 변하고 있었다.

    민우는 쪽빛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수천마리의 기러기떼가 V 형태로 북쪽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하늘도 드 높았지만 기러기떼들도 드 높이 날랐다. 삽상한 바람을 맞으며 그것을 혼자 보기에는 아까운 장관이었다. 나중에는 눈이 시려졌다. 집의 마당에서였다. 어쩌면 저처럼 한 마리도 흐트러지지 않고 무리지어 하늘을 비상할 수 있을까? 왜 거대한 V 모양새로 하늘을 나를까? 저처럼 무리지어 보기좋게 비상하는 비법은 어떻게 터득하였을까? 그는 기러기떼가 연출하는 장관에 매료되어 감탄하고 또 감탄하였다.

그런 그에게 옆집의 지붕을 허둥지둥 넘는 청년이 눈에 띄었다. 아직 애티가 도는 청년이었다. 옆집의 지붕을 미끄러지듯 내려온 청년은 민우 자기들 집 판자 울타리를 훌쩍 넘어 민우가 서 있는 마당으로 들어왔다. 청년은 허겁지겁 숨을 곳을 찾아 허둥거리다 자기들 집의 닭장 안으로 숨어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장닭 한 마리와 암탉 다섯 마리가 해거름 때면 들어가 잠을 자는 작고 좁은 닭장이었다. 얼마나 화급하였는 지 청년은 그처럼 좁은 곳에 들어가 몸을 숨기는 것 아닌가.

“저 집으로 들어갔다”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고 뒤따라 20대로 보이는 형사 세 사람이 민우 자기들의 마당으로 뛰어들었다. 허리에 권총을 찬 청년들이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형사들은 곧장 닭장에서 닭 한 마리 끄집어내듯 청년을 닭장에서 끄집어 내었다.

“빨갱이 새끼, 도망치면 못 잡을 줄 알고”

청년의 뒷덜미를 잡은 형사가 말했고 다른 형사가 청년의 손에 수갑을 채웠다.

마을에서나 길거리에서 그런 일은 사흘이 멀게 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이제는 38 선이라는 맹수가 슬금슬금 민가까지 내려 온 것 같았다.

     그런 세상이었지만 갑자기 집이 부산해졌다. 병오의 아버지 어머니도 보였고 마을 사람들도 찾아와 싱글벙글거렸다. 그들은 아름다운 미소를 한껏 머금었고 천정이 떠나갈 듯 높은 웃음 소리를 내었다. 바깥과는 다른 세상이었다. 민수 형이 순녀누나에게 장가를 든다 하였다. 형과 순녀 누나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는 순녀 누나를 ‘우리집 며느리 감’이라 했고 병오 아버지는 형을 ‘우리집 사위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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