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츠리고 있고 있던 날씨가 여기 저기, 사방에서 팍- 쭉- 피어나는 봄이었다.
개나리는 노란 병풍을 치고 벗꽃은 거리마다 분홍색 장막을 치는.
햇살이 그 사이로 따스하게 내려쬐는 바로. 그런 봄날이었다.
집을 나서자 쾌청. 한 날씨 때문인지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산들 코끝을 스치는 바람에 미소가 입가에 번진다.
초등학교에서 수업이 끝난 꼬마들이 재잘 재잘 거리를 뛰어다니며 장난을 친다.
하지만 이윽고 조그만한 골목을 벗어나, 대로로 들어서자.
붕-, 빠앙-, 끽끽 거리는 자동차 소음들.
점심시간이어서인지 학교 정문 쪽으로 뻗어있는 도로엔 자동차들이 뜨거운 김을 내뿜으며
아웅다웅 신경질을 부리고 있었다.
살짝.. 기분이 나빠질려고 했지만.
그래도 '날씨가 좋으니까-' 하고 학교로 향했다.
학교 정문앞의 4거리엔 많은 사람들이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거리는 온통 차와 사람들로 뒤덮혀 뒤죽박죽이었다.
4거리 한방향에 파란색 보행신호가 떨어질 때마다 사람들은 횡단보도를 무단점령해 버티고 있는 차들 사이를 마치 미로를 헤매듯 건넌다.
쏟아지는 인파 속에서 횡단보도 위의 차들은 얌체처럼 창문을 굳게 닫곤 앞만 응시하고 있었다.
일부러 불쾌한 얼굴로 '여기 서 있으니까 맘이 편하슈?'라며 들여다 보는 행인들도 가끔 있긴 했다.
있으나마나한게 바로 서울의 횡단보도다. 서울에서 젤 쓸모없는 게 횡단보도였다.
파란색 주행신호에서 주황색을 거쳐 빨간색 정지 신호로 바뀌면 ,
차들은 살금살금 정지선을 넘어 횡단보도 위에 의기양양하게 선다.
세계 최악의 교통 무질서 왕국인 한국에서, 그것도 서울에서 살려면,
이정도는 감수해야 한다고 스스로 질려버린 나는.
무표정으로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며 그냥..
하얀색으로 줄줄이 잘 그어진 횡단보도를 밟고 있는 차들 중 멋진 외제차를 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그 때였다. 건너편에 kalte Hand씨가 나를 향해 반가운 듯 손을 흔들었다.
늘 언제나처럼 조금은 더워 보이는 두껍고 무릎까지 내려 오는 외투를 입은 체였다.
그런데 잠시 후, 어떤 일이 일어났게?
정말 놀라운 광경!!
신호등의 불이 파란색으로 바뀌고 길을 건너려던 난 그자리에 돌처럼 굳은체로 서고 말았다.
파란색 신호와 함께 기다리던 사람들이 봇물처럼 횡단보도로 쏟아져 차 사이를 헤매며 시작했을 때,
kalte Hand씨가 바로 자기 앞 횡단보도에 서 있던 승용차의 본네트위로 우뚝 솟아 올랐기 때문이다.
왁스로 잘 닦아 번쩍 거리는 비싸보이는 승용차의 본네트 위에 올라간 그는.
당황한 운전자를 힐끗 보곤 씨익 웃더니 뚜벅 뚜벅 그 위를 걸었다.
그리고 폴짝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이런 그의 행동은 내가 서 있는 곳까지 오는 동안 계속 됐다.
자기 앞에 서 있던 모든 승용차의 본네트 위를 폴짝 뛰어올랐던 것이다.
거리의 모든 사람들은 모두 놀라 멈춰섰고, 짖밟인 차들의 운전자들이 문을 열고 나와 입을 벌리고 섰다.
그가 내 앞에 와서 '어이, 어디가는 길인가?'라는 말을 던질 때까지
모든 것은 정지동작을 누른 비디오 화면처럼 정지상태였었다.
놀란 내가 '어,, 그게,,' 라고 하자, 그 순간 정지되어 있던 화면은 다시 play 됐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시끄러운 소음과 놀라는 사람들의 목소리 속에서
차 주인들이 그에게 눈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야 이 미친 새끼야! 너 죽으려고 환장했지?', '저거 완전 또라이 아냐?',
'너 이리와 봐 새끼야! 왜 남의 차 위로 걸어가? 이 병신새끼야!' '
'너 거기 그대로 서 있어. 경찰 부를 테니까!'
등. 등. 온갖 욕설과 위협과 협박이 그의 등에 마구 꼿혔다.
그때까지 말없이 날 보고 웃고 있던 kalte Hand씨는 내게 눈을 찡긋 하더니 뒤로 돌아섰다.
다행히 그의 등에는 아무것도 꼿혀 있지 않았다.
잠시 그들을 흐리멍텅하게 쳐다보던 그는,
횡단보도위에 난잡하게 서 있는 차들과 그 사이를 위태롭게 지나는 사람들을 가리켰다.
그리곤 한마디 날렸다.
"미쳐? 정말 미친 게 누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