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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리 프로필

김진주 |2007.04.10 10:17
조회 2,360 |추천 6


비비안리 프랑스와 영국인 피가 반반씩 섞인 비비안리는 1913년 11월 5일 인도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하느님 제가 유명한 배우가 되게 해 주소서'라고 열망어린 기도를 했을 만큼 모든 꿈이 배우 그 자체였던 그녀는 그 열망의 기도대로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을 두 번이나 수상하는 영예를 누리는 배우, 또 만인의 연인이 되는 큰 인기를 누리는 배우가 되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불행과 고통이 그 영광과 교차되는 사생활이었다. 그녀의 인생에는 두 남자가 있었다. 첫 번 남편은 지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의 변호사 허버트 리 홀만이었고 두 번째 남편은 너무나도 유명한 로렌스 올리비에였다. 그녀는 그와 만나기도 전에 로렌스 올리비에의 '햄릿'을 열번이나 볼 정도로 빠져있었기 때문에 그와 공연할 수 있는 기회가 오자 단번에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이들은 20년동안 결혼 생활을 함께 했던 세기의 '제우스와 헤라'였다. 사실 비비안 리와 로렌스는 영화 같은 사랑을 실제 생활에서 더 떠들썩하게 20년간 벌였다. 배우 존 지얼거드 경이 '극장의 왕과 여왕'으로 격찬했던 두 사람은 화려한 소 비즈니스 세계의 진정한 왕족이란 평을 받으며 결합했고 열광적인 팬들은 이들을 바라보며 환상을 맘껏 충족시켰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는 스칼렛 오하라로, '폭풍의 언덕'에서는 히스클리프로, 로맨틱한 연인의 상징이 되었던 비비안 리와 로렌스 올리비에. 두 사람의 결혼은 '할리우드 환상의 실현'에 비견될 만큼 격정적이며 로맨틱했다. 완벽이 지나쳐 허구처럼 느꼈을 만큼. 둘다 가정을 버리고 결합한 로맨스의 주인공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출연작인 영화 [무적함대]('36)와 연극 [햄릿], [로미오와 줄리엣]('37) 등등은 당연히 대히트를 기록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그 유명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40)를 통한 스칼렛 역을 그녀가 승락함에 따라 1400명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호화로운 영광의 너울을 쓴다. 그리하여 단숨에 은막의 여왕봉을 휘어잡으며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까지 따내고 만다. 그녀는 다음 해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통한 압승의 여세를 몰아 마빈 르로이의 [애수]('41)에 출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후 [시저와 클레오파트라]('46)에 출연하고 이때부터 건강이 악화된 비비안리는 폐결핵의 몸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엘리아 카잔 감독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51) 에 출연 '블랑슈'라는 캐릭터를 완벽하게 재현한다. 그것이 비평가들에게 압도적인 호평을 받아 그해 아카데미 트로피를 또한번 거머쥐게 된다 눈이 부시도록 흰 살결에 갈색이 감도는 푸른색 눈동자, 상큼한 콧날에 뚜렸한 입술을 가진 그녀는 스칼렛이 입었던 진홍빛 드레스 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각인이 되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완벽한 균형미속에 감춘 앙칼짐과 당찬 시선이다. 화려한 향기와 함께 단단한 가시를 가지고 있고 선함과 악함, 청순함과 요염함이 모두 공존했기에 그녀는 더욱더 스칼렛에 어울렸고 그녀 외에 다른 배우를 생각할 수도 없게 끔 만든 것이리라. 남편이었던 로렌스 올리비에의 바람기 때문에 말년을 신경질환과 폐결핵으로 시달리면서 그를 결코 용서 못한다고 절규했던 그녀. 결국 혼자서 쓸쓸히 세상과 종말을 고했지만 결코 그녀는 바람과 함께 사라져 간 것이 아니라 단숨에 헐리웃을 정복한 샛별 눈동자 초상으로 길이 빛날 것이다. 그녀의 전성 때에 뉴욕 타임즈에는 이런 기사가 실렸었다. 아마도 그녀를 대표하는 최고의 말일 듯 싶다. '비비안리 정도로 아름다운 미모를 가졌다면 연기력은 필요없을 것이다. 또 그만큼 연기력이 뛰어났다면 아마 외모는 다음 문제가 아니겠는가?'라고.... 그녀처럼 차갑고 서늘한, 손에 닿지 않는 아름다운 배우가 또 우리 앞에 모습을 보일 것인지... cyworld.com/crownjin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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