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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금단의페트 - Chapter 4. 카이리온 기사 양성 학교

홍한석 |2007.04.11 02:06
조회 22 |추천 0

금단의 페트(The forbidden pet) -

[애니, 소설 보러 오세요^ - ^]

이 름 배진국

제 목 금단의페트 - promise -
 
 
 
 
 
 눈을 뜨자 느끼는 것은 간만에 따스함, 즉 시아의 온기였다.
 내가 다치고 한동안은 자제하더니만, 오늘부터 또 시작인가?
 참,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더니만, 그 말이 딱 맞는 말이라
 니까.
 하여튼 이제는 익숙해진 모양인지, 그렇게 당혹스럽지는 않
 았다. 그냥 '아, 그런가보구나.'하는 생각이 들 뿐이다. - 역시
 인간은 적응하는 생물이다. - 대충 침대에 똑바로 눕혀주고,
 이불을 덮여준 후에 천천히 학교에 갈 준비를 했다.
 오늘이 첫날이니까, 첫인상이 중요하다. 평민이지만, 자기들
 보다 뒤지지 않는다는 이미지를 녀석들에게 주어야 하니까.
 우선은 용모를 단정히 하는 게 중요하겠지. 몸을 씻으러 욕
 탕으로 몸을 움직인다. 지저분하다는 이미지는 최악이니까, 몸
 을 깨끗하고, 청결하게 관리하는 것도 나름대로 중요한 일이라
 고 생각한다.
 욕탕 앞에 옷을 벗어 놓은 후, 몸에다 물을 몇 번 뿌리고 차
 가운 탕 안으로 들어갔다.
 "……."
 날이 더우니까, 이렇게 차가운 물에 목욕한다고 감기 걸릴
 일은 없겠지.
 내 몸이 그렇게까지 약골은 아닐 테니 말이다.
 한참을 그렇게 있을 때, 갑자기 문밖에서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져 왔다.
 "누구시죠?"
 조금 뜸을 들인 후, 문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익숙한 시
 아의 목소리다.
 "등 밀어 드리겠습니다."
 푸훗- 갑자기, 욕탕 안에서 미끄러져서 머리가 물 안으로 들
 어갔기 때문에, 입에 머금어져있던 물을 뿜어낼 수밖에 없었
 다.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저 아이 갑자기 자
 다 일어나서 한다는 소리가, 저런 엄한 소리라니.
 내가 당혹스러워 하고 있을 때, 다시 문 저편에서 소리가 들
 려왔다.
 "그럼 안으로 들어가겠습니다."
 크악! 무슨 소리하는 거야! 순진한 여자 아이가 못하는 소리
 가 없네!
 "돼, 됐어. 다 했어. 이제 곧 나갈 꺼야!"
 "……."
 잠시 후, "그럼."이란 소리와 함께 시아의 발소리가 들렸다.
 방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겠지.
 휴, 요새 나의 페이스가 저 녀석 덕분에 자주 무너지는 느낌
 이 든다.
 이러다가, 나중에 크게 당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미리
 미리 조심해야겠어.
 
 
 Chapter 4. 카이리온 기사 양성 학교
 
 
 카이리온 기사 양성 학교의 교복, 하얀색을 베이스로 푸른색
 과 검은색으로 화려하게 수놓아져 있는 세련된 디자인. 그것은
 이 나라 모든 소년과 소녀들의 동경의 대상이며, 꿈이다.
 조금은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막상 이 교복을 바라보니, 실
 감이 났기 때문이다. 기대와 불안, 그리고 두려움…. 마음속은
 알 수 없는 감정들로, 그렇게 휘몰아치고 있었다.
 셔츠를 입고 바지를 입은 후, 재킷을 입는다.
 거울을 바라보니, 꽤 멋들어진 단정한 소년의 얼굴이 보인다
 - 자화자찬이 아니다! - 아직은 좀 어려 보여서 불만이긴 하
 지만, 이 정도면 단정한 얼굴인 것이겠지? 어렸을 때부터 잘생
 겼다는 말은 여러 번 들었으니까, 귀족 아이들에게 뒤지는 용
 모는 아닐 꺼라 생각한다.
 옷 매음새를 단정히 하고 심호흡을 한 다음, 가방을 든 후에
 천천히 발걸음을 움직인다.
 그렇게 방문을 열고, 계단으로 내려간 다음 막 식당 문을 열
 려고 할 때에….
 "잘해봐."
 기르디 녀석이 조금은 떨어진 곳에 벽에 기대서, 나를 바라
 보며 그렇게 말했다.
 당연히 잘해야지. 살짝 웃음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기르디 녀석은 그런 나를 바라보며 피식하고 한 번 웃어준 후
 에, 주방 쪽으로 걸음을 움직였다. 나는 잠시 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다 다시 빠른 몸놀림으로 식당의 문을 연 후에, 학교를
 향해서 몸을 움직였다.
 
 아침 공기가 상쾌하다. 어젯밤에 잠을 든든하게 잔 덕분인
 지, 몸도 상쾌하고 컨디션도 나쁘지 않았다.
 아침에 거리는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간혹 어딘가를 향해서
 부지런히 걸음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이긴 했지만 말이다.
 학교에서 식당까지의 거리는 그렇게 멀지는 않았다. 도보로
 약 2,30분 정도 부지런히 걸으면 도착할 정도. 그 정도면 운동
 삼아 걷는다고 편하게 생각해도 큰 무리는 없을 듯하다.
 학교가 점점 가까운 지기 시작하자, 드문드문하게 같은 교복
 을 입고 있는 녀석들의 모습이 보인다. 의식하고 싶지 않았지
 만, 저절로 시선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역시 모습도 단정하고, 실력도 쓸 만할 것 같은 모습들이었
 다.
 아무리 귀족들이 썩었다고 해도, 실력도 재능도 없는 녀석들
 을 이 학교에 집어넣지는 않았을 것이다. 실력도 없는 녀석이,
 카이리온 기사 학교를 졸업한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기
 르디가 설명해 주었으니까 말이다.
 이렇게 된 이상, 더욱더 열심히 노력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
 다. 내가 그렇게 재능이 뛰어난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새 학교의 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전에 다니던 학교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웅장
 한 모습. 저절로 입이 벌어지며 당혹성이 새어 나왔다. 눈에
 보이는 건물만도 세 개. 그것도 하나하나가 전에 다니던 학교
 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웅장했다. 검술이나, 체
 력 단련을 위해 마련된 장치 같은 것도, 운동장에 드문드문 보
 인다.
 "신입생인가?"
 한 여자가 내게 다가와 물었다. 붉고 긴 머리가 인상적인,
 단정하게 생긴 사람이었다. 교복에 붙은 두 자루의 검 모양의
 장식을 보면, 아마 상급생인 듯하다.
 내가 고개를 끄덕여 주자, 그녀는 다시 말했다.
 "그럼 저 붉은색 건물로 가라."
 나는 다시 고개를 끄덕이고, 그 붉은색 건물로 걸음을 움직
 였다. 아마 저곳이 신입생들을 모아 놓는 장소인 모양이다.
 
 백여 명은 넘어 보일 듯한 아이들이 모여 있었지만, 그래도
 건물 안이 워낙 넓었기 때문에 크게 움직임에 제약이 오지는
 않았다.
 내가 소속할 D클래스 쪽으로 걸음을 움직였다.
 조그만 깃발 같은 것에 'D'라고 쓰여진 곳에는, 아이들이 한
 줄로 나란히 줄을 서 있었다. 나는 그 줄에 끝으로 간 후, 가
 만히 그렇게 입학식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한참을 그렇게 기다리고 있자, 선생으로 여겨지는 사람들이
 하나 둘 씩 강당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는 교장으로 여겨지는 사람이 들어왔다.
 선생들이 저렇게 꾸벅하고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생각한 것처럼 그렇게 늙지는 않았다. 키도 크고, 몸도 튼튼
 해 보이는 것이 젊었을 때는 대단한 기사였다는 느낌이 들었
 다.
 대충, 열심히 수행해서 훌륭한 기사가 되어라. 같은 말로 시
 작해서 이 학교의 역사와, 역대 유명했던 이곳 출신들의 기사
 들의 이름. 그런 말들을 나열하고는 그렇게 입학식은 끝이 났
 다.
 특이하다고 말할 것이 있다면 어떤 마법을 사용한 모양인지,
 교장의 목소리가 강당 안을 울릴 정도로 컸다는 것. 그리고 굉
 장히 유명한 기사라는 사람이 참석했다는 것 - 이름은 잘 생
 각나지 않지만 - 정도였다.
 하여튼 나는 앞서가는 D클래스 아이들의 뒤를 따라서 교실
 을 향해서 걸음을 움직이고 있었다.
 
 교실 안은 생각했던 것보다 크거나, 화려하지는 않았다.
 그냥 세련된 무늬로 된 벽과, 편해 보일 것 같은 의자 같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을 뿐이다. 나는 대충 교실 안을 훑어본 후
 전처럼 창가 쪽 맨 앞자리로 걸음을 움직였다.
 아이들은 역시 앞쪽보다는 뒤쪽에 앉는 것을 선호하는 듯
 하다. 앞자리의 대부분이 초라하고 썰렁하게 비어져 있었기 때
 문이다. 그래서 나는 서두를 것 없이 여유롭게 자리를 맡고,
 앉을 수 있었다.
 대충 어느 정도 아이들이 다 자리에 앉을 무렵, 앞쪽의 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교실 안으로 들어왔다.
 "하하, 여러분 안녕하세요."
 문을 열자마자, 그렇게 말하고는 그 사람은 교탁 앞으로 빠
 르게 걸음을 움직였다.
 짙은 푸른색의 단순하게 생긴 디자인의 옷을 입은 그는, 교
 탁 위에서 모두를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여러분의 담당 선생이 될 사람입니다. 잘 부탁드립니
 다."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하고 모두에게 그렇게 인사를 하
 는 그는, 선생치고는 대단히 젊고 단정하게 생긴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조금은 놀랍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런 얼굴이면,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제법 있을 것 같은데.
 그리고 성격도 나빠 보이지는 않고 말이야. 나는 속으로 그렇
 게 생각하며, 다시 그 선생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하하, 그럼 먼저 출석을 부르도록 하지요."
 선생은 빠른 속도로 대충 학생들의 이름을 호명하며, 출석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조금 경박스럽다고 느끼는 것은,
 비단 나 혼자 뿐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말하
 기 전에 '하하'라고 웃는 버릇이라니. 참 저 선생의 부모는 매
 를 지나치게 아낀 것도 같다. - 조금은 이상한 생각이지만 말
 이다. -
 출석이 끝나자, 선생은 칠판 위에 무엇인가 글씨를 쓰기 시
 작했다.
 "이게 제 이름입니다. '에이딘' 선생님이라고 불러주세요.
 취미는 독서, 특기는 정령술. 가르치는 분야도 역시 정령술입
 니다. 좋아하는 요리는 샐러드 같은 것들이고요."
 에이딘이라…. 간단한 이름이군. 외우기 편해서 마음에 든다.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저 에이딘 선생을, 좋은 사람이
 라고 마음속에 각인시켜 두기로 했다. - 단지 이름이 외우기
 쉽다는 이유로 사람을 평가해서는 안되겠지만. - 하여튼 선생
 은 자신의 소개를 마치고, 학생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럼 여러분들도 자기소개를 해야겠죠? 번호순대로 나오
 시기 바랍니다."
 윽, 자기소개 따위는 질색이란 말이다. 어차피 친하게 지낼
 녀석들은 친하게 지낼 테고, 말도 안하고 지낼 인간들끼리는
 그렇게 지낼텐데.
 왜 그렇게 애를 써서, 자신의 소개를 해야한단 말인가? 내가
 속으로 궁시렁거리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선생을 별로 달가워
 하지 않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자, 이왕 할거면 기분 좋게 하는 게 좋은 거죠. 빨리 순
 서대로 교탁 위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선생이 그렇게 재촉하자,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은 하나 둘씩
 교탁 위로 나와 자신의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어색해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소개를 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역시 어느 정도 실력과, 집안
 배경이 되니까 하는 행동도 저렇게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것이
 겠지. 휴, 다 잘난 놈들만 있으니까 어련하시겠어. - 좀 치졸한
 생각 같기도 하다. -
 그렇게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호기심 같은 것들도 없어
 져 왔기 때문에, 나는 얼굴을 책상에 묻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
 다. 역시 식당일 하고, 검술 연습과 체력 단련 하느라 몸이 많
 이 피곤해져 있었다. 이렇게 조금이라도 편안한 자세로 휴식을
 취하고 있으면 어느새 졸음이 쏟아져 오며, 저절로 눈이 감겨
 지는 것이다.
 막 잠이 들 무렵, 그런 나에게 조금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럼 저의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무거운 고개를 들어 올리고, 소개를 끝마친 그녀를 쳐다보았
 을 때….
 "헉!"
 이렇게 꼴상스러운 당혹성을 지르며 놀라움의 감정을 드러
 낼 수밖에 없었다. 소개를 마치고 교탁 아래로 총총히 내려오
 는 소녀의 모습은…. 얼마 전에 음식값을 떼어먹은 그 거만한
 귀족 소녀의 얼굴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그녀는 아직 날 발견하지 못한 모양인지, 웃는 얼
 굴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서, 옆자리의 소녀와 무어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 * *
 
 "취미는 독서이고, 특기는…. 뭐, 그다지 잘하는 것은 없습
 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무뚝뚝하게 교탁을 내려왔다. 아이들,
 그리고 에이딘 선생마저도 나의 짧고 간단한 소개에 조금은
 당혹스러워 하는 것 같았지만, 그런 그들의 시선을 가뿐히 무
 시하며 그렇게 나는 자리로 돌아와 털썩-하고 앉으며 아무렇
 지도 않다는 뉘앙스를 비추었다.
 자기소개를 하라고 해서. 취미, 특기, 이름을 알려주었으면
 된 거지, 더 이상 뭘 바라는 것인가? 내 족보에 우월성? 아니
 면 위대한 기사가 될 것이라는 자신감의 표출? 그런 것은 지
 나가는 꼬마 애들한테나 물어보라고. 나는 그런 한심한 말은
 그다지 하고 싶지도 않고, 관심도 없으니까 말이야.
 하여튼 이미 전에 트러블이 있었던 그 거만한 소녀는, 적개
 심에 가득한 눈을 하며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잘못
 한 것도 없는데, 왜 나를 저런 눈으로 바라보는 것인가? 아니,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잘못은 자기가 해놓고, 나를 죽일 듯이
 바라보다니. 정말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새삼스레, 첫날부터 일이 꼬이는 것 같아서 기분이 더러워지
 기 시작했다. 재수가 없어도, 이렇게 재수가 없을 수가 있다니!
 하늘도 무심하지, 젠장!
 
 그렇게 대충 학교에서 첫날의 일정이 끝나고, 하교 시간이
 되었다.
 막 교실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 이 학교는 청소 당번 같은
 것들이 없었다. 그런 잡일들은, 일하는 하녀들이 하는 것이라
 고 당연하다는 듯이 뒷자리의 어떤 녀석들이 말하는 것을 듣
 는 순간, 화가 나서 미치는 줄 알았다. - 등 뒤에서 누군가가
 내 어깨를 붙잡으며 말을 건네왔다.
 "잠시, 이야기 좀 할까?"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그 귀족 소녀였다. 표정이 상당히 굳
 어 있는 것이 기분 나쁜 기색이 역력한 모습이었다.
 거절하고 싶지만, 뒤끝이 지저분한 것은 질색이다. 나는 대
 충 고개를 끄덕여 주고, 먼저 앞서가기 시작하는 그녀의 뒤를
 따라서 걸음을 움직였다.
 
 학교 뒤에 마련된, 나무와 벤치들이 마련된 일종의 휴식 장
 소 같은 곳에 도달해서, 그녀는 주위를 살피며 사람이 없는 것
 을 확인하고는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 니 녀석이 어떻게 이곳에 있는 거지?"
 정말 기분 더러워지는군. 여기는 사람이 오면 안되는 곳인
 가? 부드럽게 이야기하고 싶어도,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은 내가 정신 수양이 부족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저런
 말을 들으면, 누구라도 기분이 더워지는 것이 인지상정이었기
 때문이다.
 "왜 대답하지 못하는 거지?"
 대답할 가치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대답하지 않는 거다.
 나는 그런 뉘앙스를 담은 눈빛으로 보내며, 그녀를 한심스럽게
 쳐다보았다. 그녀는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며, 비웃는 듯한 어
 조로 다시 말했다.
 "평민 주제에."
 근거없는 우월 의식. 단지 그렇게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가지
 게 되는, 자만과 오만, 그리고 빌어먹을 자존심. 저주스럽다.
 경멸 같은 감정을 가지는 것조차 사치스럽다.
 내가 그렇게 무표정으로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 그녀는 갑작
 스레 팔을 올렸다.
 '짝-'
 피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똑바로 그
 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내가 따귀를 맞고도, 아무렇지 않다
 는 표정을 짓자 조금은 당혹스러워하는 눈치였다. 나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제 만족하나?"
 너의 그 오만함과, 우월 의식에 스스로 만족하고 있는가? 나
 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 하지만 그녀가 나에게 적개심을
 가지는 것은, 평화스러운 학교 생활에 큰 타격을 줄지도 모르
 는 일이다. 그렇게 때문에 나는 대충이나마 그녀에게 그렇게
 질문했다.
 그녀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분노, 수치,
 당혹의 감정이 그런 그녀의 인상 쓴 얼굴에 피어 오르기 시작
 했다. 뭐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녀는 잠시 동안 나를 그렇
 게 바라보고는, 빠른 발걸음으로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기 때문
 에 나는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조금은 이른 시각에 다시 식당으로 돌아왔다. 아직 정오가
 되기에도 이른 시간이었기 때문에 식당 안은 예상대로 몇몇
 손님이 느긋하게 담소를 즐기며 차와 음료를 마시는, 그런 여
 유있는 풍경이었다. 나는 나지막이 한숨을 쉬며, 옷을 갈아입
 기 위해 내 방으로 올라갔다. 이 학교의 교복은, 이런 식당에
 입고 돌아다니기에는 너무 부적합한 복장이었기 때문이었다. -
 일단은 뭐 씹은 얼굴로 바라보는 손님들이 많겠지. -
 간단한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침대 한편에 앉아서 빈둥거리
 고 있을 때, 갑작스레 방문이 열리며 아이린씨가 들어왔다. 이
 제는 많이 친숙해진 상태였기 때문에 노크도 하지 않고 방문
 을 열고 들어왔다는 것은, 그냥 '그런가보다'하고 생각하며 넘
 어가기로 했다. 그런 나를 바라보며 아이린씨는 미소 지은 얼
 굴을 하고는 대뜸 질문해 왔다.
 "학교는 어땠어?"
 "최악이었어요."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그녀의 반짝이는 눈
 은, 그런 독설스러운 말을 하기 어렵기 만드는 재주가 있는 듯
 했다. 그래서 나는 조금은 순화된 대답을 하기고 마음먹고 입
 을 열었다.
 "안 좋았습니다."
 그러자, 그녀도 미소 지은 얼굴을 거두고 조금은 심각한 표
 정을 지어 보이며 재차 질문해 왔다.
 "왜?"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솔직하게 대답해
 주기로 마음먹고, 전에 있었던 일을 빠짐없이 그녀에게 이야기
 해주었다. 아이린씨는 처음에는 미소 지으며 듣다가 나중에, '
 그래서 뺨까지 맞았지요.'라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조금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내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 왠지 이야기 해주
 는 보람이 있는 사람, 아니 엘프인거 같았다. 그래서 쓸데없는
 말도 조금 해버린 듯했다. - 대충 말을 끝마치자, 그녀는 어울
 리지 않게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음, 전에 와서 뭐라고 화내면서 돈을 집어던지고 간 여자
 아이가, 그 아이였구나. 내가 물어보니까 오빠는, '알 것 없어.'
 하고 냉정하게 말해서 궁금해하고 있었는데…. 그나저나 이제
 어떻게 할거야?"
 물론 내가 그런 생각을 해놓았을 리가 없다. 검술 연습만으
 로도 머리가 부숴질 것같이 신경 쓰여 죽겠는데, - 기르디 녀
 석이 최근에 들어와서, 워낙 살벌하게 연습을 하기 시작한 덕
 분이겠지 - 그런 사소한 문제가지고 고민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조금은 무성의하게 대충 그녀에게 대답
 해주었다.
 "뭐 어떻게든 되겠죠."
 아이린은 조금은 한심스럽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한숨을 쉬며 허탈해하고는 다시 말했다.
 "그래, 설마 무슨 일이야 있겠어?"
 나는 그런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주며 동의를 표했다.
 하지만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 무겁게, 그 귀족 소녀의 수치스
 러운 표정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은 후한이 두렵다
 는 생각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역시 오늘은 재수없는 날이다.
 젠장.
 
 괴로웠던 식당 일도 끝나고, 지금은 기르디와 함께 하는 즐
 거운 검술 수련 시간이다. - 너무 괴로우면, 반대로 생각하고
 싶은 것이 사람 심리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반어법이란 것이
 존재하는 것일지도 - 하지만, 이것은 '연습'의 탈을 쓴 일방적
 인 '폭력'이라고 나는 굳게 주장하고 싶다.
 "…젠장."
 이런 죽는 소리는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래도, 날 여유있게
 한 손으로만 장난치듯이 상대하는 - 하지만 어린아이가 장난
 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서 죽는 법이다 - 저 괘씸하고,
 사악한 녀석을 보면 저절로 이가 갈리고, 억센 소리가 세어 나
 온다.
 찌르기든, 베기든 가진 기술이라고는 전부 사용해서, 그리고
 시간차를 줘보기도 하고, 속임수를 써보기도 하지만 저 녀석은
 내 어수룩한 수법은 대번에 쉽게 간파하고 반격해 온다.
 위협으로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정말 피가 튀기고 살점이
 찢어지게 하는 것이다. 그래도 아침에 일어나 보면, 이상하게
 몸이 회복되 있었긴 하지만, 그래도 아픈 건 아픈 거고, 기분
 더러운 것은 더러운 것이다.
 게다가 내가 트롤같이 상처를 입으면 곧장 치유되는 괴물
 녀석도 아닌 이상, 한 번 피가 흐르고 상처가 나기 시작하면
 그 고통이나 통증 덕택에, 전투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
 이 당연한 것이다. - 그래도 최근에는 웬만한 상처에는 끄덕하
 지 않을 정도로, 무신경해졌다 - 지금도 팔과, 다리에 상처를
 입어서 움직임은 자연스럽게 평소보다 훨씬 둔해졌다.
 검을 몇 차례 섞어보다가, 발이 풀려 버려서 그대로 땅바닥
 에 엉덩이를 찧는 추태를 보이고, 다시 일어나기 위해 몸에 힘
 을 주었지만, 이미 내 몸의 한계 이상으로 대련을 했기 때문인
 지 그것은 불가능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기르디는 그런 나를 한 번 쳐다보더니, 곧 냉정하게 식당 안
 으로 사라져 버렸다.
 독한 녀석 같으니라고. 그래도 제자가 쓰러졌는데, 스승이라
 는 인간이 저렇게 냉정하게 말하고 사라진다는 게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이가 갈리고 욕이 나온다.
 "휴."
 그래도 처음보다는 나아진 거겠지. 전에는 내 실력이 너무
 형편 없어서 대련이라는 것이 아예 불가능했었으니 말이다. 한
 방에 나가떨어질 정도였으니 말 다한 거였지, 뭐.
 나는 둥글게 떠 있는 달을 보며, 조금은 궁상맞게 웃기 시작
 했다. 이렇게 땅바닥에 엎어져서 바라보니, 달이라는 것도 참
 예쁘구나. 별도 참 빌어먹게 반짝이고 말이야.
 휴, 한심하군. 그렇게 조금 휴식을 취한 다음, 나는 다시 아
 픈 몸을 억지로 이끌고 식당 안을 향해서 천천히 걸음을 움직
 였다.
 
 아침이다. 나는 일어나자마자, 학교 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
 다. 오늘은 기르디가 피곤하다는 이유만으로, 검술 훈련이 없
 었기 때문에 다른 때보다 조금 늦잠을 잔 상태였다. 잠이라는
 것이 많이 자면 잘수록, 피곤함은 증가되는 괴상한 성질을 가
 지고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어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
 런지, 하여튼 피곤하고 날카로운 상태였기 때문에 컨디션은 굉
 장히 엉망인 것 같았다.
 몸은 피가 굳어서 얼룩처럼 지저분했다. 목욕을 하기 위해,
 그렇게 터벅터벅 걸음을 움직였다. 아직 잠이 덜 깬 상태여서
 그런지 만사가 귀찮다고 느껴져 왔기 때문에, 조금은 천천히
 옷을 벗고 차가운 물속으로 몸을 집어넣는다.
 그렇게 대충 몸을 씻고, 옷을 챙겨 입은 후, 조금은 빠르게
 걸음을 움직인다. 늦장을 부린 덕분에 시간이 꽤 흐른 상태였
 다. 이대로 게으름 부리다가는 지각할지도 모른다.
 학기초부터 재수없게 지각을 하다가는, 선생한테도 학생들한
 테도 안 좋은 이미지로 낙인 찍혀 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첫
 인상이라는 것이 한번 정해지면, 끝까지 그 사람의 이미지를
 좌우할 만큼 중요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난 알고 있었기 때문
 이다. - '만년 지각생' 같은 별명이 붙는다면, 학교 생활이 좀
 고달파질 것이 분명한 일이기에. -
 하여튼 오늘부터 본격적인 학교 생활이 시작될 것이다. 혼자
 있는 편이 편하긴 하지만, 그래도 누군가 말 걸어온다면 상냥
 하게 대답해 줘야겠다. '괜히 구석에서 분위기 잡는 재수없는
 녀석', 반 아이들에게 이렇게 불려지는 것은 절대 사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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