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열람실에서 Shalton과 싸워 패한 뒤 이어폰으로 김동률의 노래를 들으며 도서관을 뒤로 한 채 계단을 걸어내려오는데 한 두 방울씩 비가 내렸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하늘은 봄빛을 닮아있었고, 고개를 내려보니 계단에는 꽃핀지도 몰랐던 벚꽃잎들이 두팔 벌려 누워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물상들 사이에서 아무런 표정 없이 서 있었다.
봄빛하늘에서 눈물처럼 떨어지는 봄 빗방울을 맞으며 봄녘의 캠퍼스를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가며 머릿 속에선 하릴없는 상념들이 나들거렸다. Shalton과의 싸움에서 패인을 생각하는 동안 비에 젖은 벚꽃잎들이 발에 차였고 교육행정및교육경영 레포트 제출일을 생각하는 동안 비를 받아내던 개나리의 팔을 스쳐지나갔다. 주말에 실습실 컴퓨터 셋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 자연과학대학 앞 등나무의 나무내음 가득한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고 이번주 토요일에 3월 토익의 성적발표일이라는 생각을 할 때 약학대학 앞의 풀내음 가득한 길을 지나고 있었다.
그리고 정문에 이르러서야 나는 깨달았다. 그들이 내게 말하려던 것이 봄이었구나.
봄은 이토록 내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 했건만 나는 한참 뒤에서야 그가 말하려던 걸 깨닫고 말았다. 도서관까지 돌아가며 그들이 말하려던 걸 다시 한 번 느껴볼까 하려다가 곧 그만두었다.
왜냐하면, 다시 돌아간다 한들 한 번 내가 놓친 봄은 나를 다시 잡지 않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