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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nder 기타의 역사

곽중현 |2007.04.17 10:33
조회 156 |추천 4

Leo Fender

 

레오 펜더는 1909년 8월 10일 한 농가의 헛간에서 태어났다.
레오 펜더가 태어나기 전 그의 부친은 새 목장을 구입 했는데 기이하게도 그는 바로 이 목장의 헛간에서 태어난 것이다.
1910년에 레오의 부모는 헛간 옆에 집을 지었다.
펜더가의 토지는 현재의 라 팔로마 애버뉴에 해당되는 곳에 있었다.

 

레오는 국민학교와 중학교를 서플라튼의 오렌지 소프 학교에서 다녔고 이 즈음 친척의 영향으로 전기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당시 전기 지붕 사업을 하던 숙부가 그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밧데리나 그외 전기 동력으로 가는 장난감을 보냈는데 레오는 이것에 대해 크나 큰 흥미를 느끼게 되엇던 것이다.
8살 경에 레오는 음악에도 관심을 보여 피아노 레슨 등을 받았고 이어서 색스폰도 배웠다.
고등학교에 들어가 레오는 라디오 제작에 열을 올렸는데 이때부터 그의 전기에 대한 지식은 늘어만 갔다.

 

1928년 봄에 레오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가을 플라튼 주니어 단과 대학에 입학했다.
여기서 그는 상경 계열을 전공해 경리 실무를 익혔으나 학과 공부 보다는 자신의 집에서 라디오 수리를 하는 것에 더 큰 재미를 가지고 있었다.

 

32년 경에 그는 허리우드에서 댄스 파티를 주최하는 오케스트라의 리더와 알게 되었는데, 그것을 계기로 1930년 대에 여러 대의 PA 시스템을 만들게 되었다.
1934년에 레오는 결혼을 함과 동시에 회계사로 취업이 되어 캘리포니아주에서 일했지만 경리 업무에 염증을 느껴 다시 플라튼으로 와 평소 자신이 좋아하던 라디오 수리점을 열었다.
'펜더 라디오 서비스'라는 이름의 이 상점은 레오의 뛰어난 라디오 수리 실력 덕분에 개업한지 불과 얼마만에 인근에선 가장 알아주는 라디오 수리점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처럼 사업이 순조롭게 확장되자 레오 펜더는1940년 경에 건물을 맞은 편의 큰 빌딩으로 옮기고 종업원도 8명이나 두는 등 사업 규모를 확장했다.
사업이 확장되면서 레오는 이 상점에서 단지 라디오 수리뿐만 아니라 소리에 관련된 모든 전기 제품을 취급하기 시작했다.
펜더 라디오 서비스의 소문은 음악인들에게도 퍼져 몇몇 연주자들은 자신이 사용하던 기타를 개량해 달라고 그에게 가져오기도 했다.

 

어느 날 샌디에고에서 온 고객의 부탁으로 펜더는 어쿠스틱 기타를 일렉트릭 기타로 개조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는 T형 포드의 고물에서 떼어낸 마그네틱을 사용해 픽업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그가 만든 최초의 픽업은 각각의 현에 개별적인 마쓰네틱을 배치한 것으로 이후 텔레캐스터에 사용된 것과 같은 형태이다.
이후 레오 펜더는 1942∼43년 즈음에 생애 최초의 일렉트릭 기타를 독자적으로 만들어 냈는데 사람들은 후일 이것을 '라디오 샵 기타(Radio Shop Guitar)'라고 불렀다.

 

45년이 되자 레오는 기타와 앰프를 함께 만들기 시작했다.
레오는 도크와 함 께 'K&F Manufacturing'이라는 회사를 설립해 스틸 기타줄을 제조하기 시작하고 49년에는 '에스콰이어' 라고 불리는 모델을 완성하였다.
이것은 1 픽업의 것 이었고 50년 초에는 2 픽업의 '브로드 캐스터'라는 기타도 제작되었다.
이 기타 이후 레오는 텔레캐스터를 발표했다.
이 기타는 당시로서 본다면 성능이나 디자인 등 모든 점에서 가히 경이적인 것이라할 수 있다.

 

Fender Telecaster

 

그러나 레오는 이 악기의 몇가지 문제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옥타브 튜닝의 조정 기구나 픽업의 울림 등이 그것이다.
레오는 이에 대해 텔레캐스터를 개량한다기 보다는 완전히 새로운 악기를 만들려고 했다.
따라서 스트라토캐스터는 텔레캐스터를 완전히 변형 개발시킨 것이라고 봄이 옳을 것 같다.
레오는 스트라토캐스터의 개발을 51년 봄부터 착수하기 시작했다.

 

펜더의 특징
네크와 지판이 하나로 붙어있는 원피스 형태를 취하다가 62년 빈티지 시리즈부터는 투피스 형태를 취하기 시작했다.
팬더 중에서도 최고의 명기로 자타가 공인하는 빈티지 시리즈는 크게 화이트, 블랙, 투썬버스터 등 3종류 타입으로 나누어지면서 57년과 62년형 스트라토캐스터가 특히 유명하다.

 

Fender Stratocaster

 

펜더는 대개 648mm 스케일이며, 음쇠는 2.0mm로 니켈로 만들어져 있다.
음쇠가 가늘수록 음은 정확해지는 법이다.
그런 면에서 타 기타 제품의 음쇠가 거의 모두 2.6mm 이상인 점을 감안해 본다면 펜더의 정확도를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62년 빈티지 시리즈의 경우에는 피크 가드의 나사 못이 8개이나 요즘 모델은 11개이다.
또한 니켈을 재질로 쓰고있는 헤드 머쉰은 타 제품에 비해 작으며 래디우스도 타 기타에 비해 둥글게 깍여져 있어 손에 네크를 쥘 때 안정감 내지는 안착감이 들게 한다.

 

펜더의 또 하나의 특징이라면 음쇠를 약간 넓고 납작한 듯이 깍음으로서 줄이 프렛에 닿을 때 마찰면을 크게 해 음의 안정감을 살리고 있다는 점이다.
비교적 둥그런 듯한 음쇠가 타 기타에 비해 펜더의 위와 같은 특징은 '오리지날 펜더 소리'를 만들어내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다.
그 외 디자인은 산뜻하면서도 샤프하고 날렵한 이미지를 주어 록적인 내음을 강하겨 풍기게 한다.
전반적으로 오리지널 올드 펜더는 어떠한 연주라도 별 무리없이 해 낼수 있는 전천후성 기타이지만. 굳이 단점을 지적한다면 하이 포지션에서의 연주가 불편하다는 점이다.
즉 하이 포지션 근처의 네크와 둥그렇게 파여진 바디 아랫 부분이 약간의 불일치를 이루고 있어 하이 포지션에서의 핑거링 시 손가락이 꼬이게 된다는 것이다.
요즈음에 등장하는 신형 기타들은 이런 단점을 해결 하고자 바디 아래 부분을 더 깊게 깍아 하이 포지션을 잡는데 무리가 없도록 하고있다.

 

사실 일렉트릭 솔리드 바디 기타와 일렉트릭 픽업의 "원조"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레오 펜더가 결코 이 모든 것을 독자적으로 발명해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리켄배커에서도 레오 펜더 이전에 이미 일렉트릭 픽업이 장착된 기타를 만들어냈다.
따라서, "일렉트릭 기타는 레오 펜더가 발명했다."라는 말은 명백히 틀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오 펜더가 일렉트릭 기타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이유는 바로 "대량 생산"이라는 키워드 때문이다.
거기에는 그에 따르는 마케팅과 생산 능력, 품질 관리, 유통망의 확보 등등의 골치 아픈 작업들이 모두 포함된다.
그리고 나서야 우리는 대량 생산이라는 이름 아래 이러한 "세기의 걸작"을 그나마 싼 가격에 구입해서 쓸 수가 있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레오 펜더의 위대함이 있고, 그래서 그가 일렉트릭 기타의 헨리 포드로 불리는 것이다.
대량 생산을 통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싼 가격에 제품을 만들어 내는 것 - 이것은 앞을 내다보는 지혜와 자신의 작품에 대한 자신감, 그리고 한 번 저질러보겠다는 용기가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니까...
이후에도 레오 펜더는 많은 일을 하게 된다.
54년 저 유명한 Stratocaster를 만들어 내고, 55년에는 앰프의 원조격인 Bassman을, 58년에는 Jazzmaster를 발표한다.
이 재즈마스터는 오프셋 바디, 그러니까 바디의 홀쭉한 부분이 비대칭형으로 위치한 모양으로 특허를 받는다.

 

Fender Jaguar


60년에는 Jazz Bass가 만들어진다.
펜더 베이스의 대표적인 두 모델이 거의 10년차를 두고 만들어졌다.
이 두 모델이 비슷하겠거니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둘은 꽤나 다른 특성을 갖고 있다.
재즈베이스는 그 이름과는 달리 강하고 헤비한 사운드를 내서 헤비메탈에 많이 쓰인다.
63년에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Twin Reverb 앰프가 생산된다.
레오 펜더는 학생이나 가난한 사람들도 싼 가격에 일렉트릭 기타를 가질 수 있게 하는데도 꽤 신경을 썼던 것 같다.
56년에 아예 student model guitar라고 불리는 Musicmaster와 Duo-Sonic을, 62년에는 Jaguar를, 64년에는 초보자와 프로페셔널의 중간 단계를 위한 Mustang을 만들었다.
재규어와 머스탱은 90년대 락에 커다란 획을 그은 커트코베인(Kurt Cobain)에 의해 합쳐져서 재그-스탱(Jag-Stang)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1965년에 건강이 악화된 레오 펜더는 그동안 자신이 만들고 키워온 회사를 CBS에 넘긴다.
그 후 20년 동안 펜더는 엄청난 성장을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CBS의 음악과 뮤지션에 대한 진정한 이해는 그 한계를 드러냈다고 펜더사 스스로 평가하고 있다.
결국 회사는 1985년에 당시 사장이었던 William Schultz와 그를 비롯한 투자가들에게 인수됩니다.
이로써 펜더는 다시 진짜로 음악을 아는 소수의 사람들이 이끌게 된다.
이 시기가 묘하게도 깁슨이 매각된 1986년과 거의 일치하는걸 보면, 80년대의 헤비메탈 및 LA메탈의 열풍은 고전적인 사운드를 추구하던 두 회사에게는 그다지 재미있지 않은 시대였던 것 같다.
이후에 펜더는 앰프메이커인 Sunn과 기타메이커인 Guild 등을 인수한다.
1987년에 펜더는 American Standard Stratocaster를 발표한다.
동시에 캘리포니아의 코로나에 Fender Custom Shop을 설립하고, 멕시코의 공장에서는 싼 가격의 펜더를 생산하기 시작한다.
이는 펜더라는 브랜드 아래 스탠다드를 주력으로 두고 그 아래로는 멕시코에서 싼 가격의 기타를 생산하고 그 위로는 커스텀 샵에서 고가의 고품질 제품을 생산함으로써 제품 선택의 폭을 넓히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발췌: http://www.swing-guitars.co.kr

 

 

Artists

Telecaster

  Roy Buchanan

  Mike Bloomfield (Paul Butterfield Blues Band)

  Albert Collins

  Keith Richard (Rolling Stones)

Stratocaster

  Jimi Hendrix

  Jeff Beck (Trident, The Yardbird, Jeff Beck Group)
  Eric Clapton (The Yardbird, John Mayall & The Blues Breakers, Cream, Derek & The Dominos)
  Buddy Guy

  Andy Summers (The Police)

  Ritch Blackmore (Deep Purple, Rainbow)
  Yngwie Malmsteen
  Robert Cray
  Stevie Ray Vaughan (Double Trouble)

  Kenny Wayne Shepherd

  Jake E. Lee (Ozzy Osbourne, Birdland)

  Tommy Bolin (James Gang, Deep Purple)

  Rory Gallagher

  Robin Trower (Procol Ha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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