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단의 페트(The forbidden pet) -
이 름 배진국
제 목 금단의페트 - promise -
거울처럼 투명한 조그만 연못에는 손가락 두 개쯤 할만한
물고기들이 유유히 몸을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시아녀석과
나는 그런 투명한 연못에 발목을 담그고, 간만에 느긋하게 휴
식을 취하고 있었다.
다크엘프녀석이 말도 없이 어딘 가 사라지는 바람에, 무엇
인가 굉장히 어색한 분위기인 것이 사실이었다. - 막상 입을
열고 싶어도 별다른 화젯거리가 생각나지 않아 참 나는 융통
성도 없는 녀석이구나, 라고 중얼거리며 쓴웃음 지을 수밖에
없었다.
"셀브렛은 잘 지내고 있는지 조금 걱정되네요."
조금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시아녀석이 중얼거리듯이 입
을 열었다. 솔직히 나도 조금은 셀브렛녀석이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었기에, 그런 시아녀석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대
꾸해 주었다.
"그래, 밥은 잘 먹고 있는 지. 말썽은 안 부리는 지. 외로
워서 울지는 않는 지…. 조금은 걱정되는군."
"똑똑한 아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죠, 그리고 아이린언
니도 있으니까."
"글세? 기르디녀석이 괜한 트집을 잡아 괴롭힐지도 몰라."
싱긋 웃으며 시아녀석이 내 얼굴을 마주 바라보았다.
"사실 기르디오빠도 알고 보면 굉장히 상냥한 편인데. 이상
하게 베리오빠에게만 그렇게 엄격한 것 같아요."
켁, 기르디녀석이 상냥하다니? 조금은 질린 얼굴을 한 체
나는 시아녀석을 노려볼 수밖에 없었다. - 그 귀신같은 녀석
에게는 '상냥'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죄악이다! 남
이 피를 철철 흘리며 괴로워해도 웃으면서 계속 공격을 하는
새디스트녀석에게. 그 무슨 얼어죽을 상냥함을 논하겠는가?
차라리 굶주린 오우거에게 자비를 부탁하는 편이 백 배는 나
을 것이다.
"저도 전에는 조금은 무서워했어요. 셀브렛을 제 마음대로
식당에 데려와서…. 기르디오빠에게 조금은 미움받는 것도 같
았거든요."
"그 때 기르디녀석 정말 많이 열받은 것처럼 보였지."
살짝 발을 움직이니 근처에 물고기들이 화들짝 놀라며, 순
식간에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것을 미소지으며 바라보는 시아
녀석.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려 내 눈을 직시하며 입을 열었
다.
"저에게 춤을 가르쳐주라고 아이린언니가 기르디오빠에게
말했을 때, 의외로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하셔서 조금
은 겁먹기도 했었어요."
기르디녀석에게 매일 얻어맞고 검술을 배우는 날 봐도, 참
겁먹을 만 할 것이라 생각했기에 살짝 고개를 끄덕거려 주는
나였다.
"하지만 그게 괜한 걱정이라는 것을 알았죠."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때리거나 욕하지 않았어?"
"전혀요. 바보같이 제가 실수해도 '괜찮아. 겁먹지 말고 천
천히 해.'라고 말씀하시던 걸요."
차라리 그것이 거짓말이길 마음 가득 바라는 나였다. 상냥
한 얼굴을 하고 그런 말을 하는 기르디녀석을 생각해 보면 몸
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빈혈이 왔기 때문이다.
내가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해도, '괜찮아. 회복마법으로
치료하면 되니까.'라고 중얼거리며 계속 칼질을 하던 기르디
녀석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떠오르는 순간, 갑작스레 등뒤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왔다."
"수고 하셨습니다."
미소지은 얼굴로 다가와 시아녀석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다
시 입을 여는 다크엘프녀석. - 내색하지는 않지만 이마와 목
언저리에 살짝 땀방울이 맺혀있었다. 아무리 그녀의 능력이
대단하다고 해도 체력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니까.
"이제 헤어질 시간이 다가온 것 같군…."
갑작스러운 그녀의 말에 조금은 당황한 나였다. 미운 정이
무서운 법이라고, 그 동안 같이 지내온 시간을 생각해보니 조
금은 섭섭한 감정이 들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에….
"숲의 엘프들의 입장에서 보면 난 저주받은 일족이니까. 이
숲에 들어온 것만 해도 목숨을 걸을 형편인데. 더 이상의 도
박은 하지 않는 것이 좋겠지."
어느새 방울진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시아녀석을, 품에
안으며 다시 입을 여는 다크엘프녀석. 다시는 보지 못할 얼굴
이라 생각하니, 그 모습에 왠지 모르게 조금은 눈시울이 붉어
지는 바보 같은 나였다.
"베르니아, 이미 예전에 버린 이름이지만…. 너희들에게는
말해주고 싶군."
그리고 시아녀석의 이마에 한번 키스하고는, 고개를 돌려
내 얼굴을 바라보는 다크엘프, 아니 베르니아.
"아가씨도 몸 건강히…. 키스는 언젠가 내가 인정할 정도로
강해질 때 해주기로 하지."
"사양하고 싶군요."
"하하, 너무 그렇게 비싸게 굴지 말라구."
이 다크엘프녀석은 끝까지 날 우습게 보는군. 뭐, 어찌됐든
상관없지만 말이다.
"악수정도는 괜찮겠지?"
가죽장갑을 입으로 벗기더니 나에게 오른 손을 내미는 베르
니아, 쓴웃음 지으며 그 손을 마주잡는 나였다. 검술에 극에
달한 것치고는 굉장히 부드러운 손에 감촉에 새삼 가슴이 두
근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 사실 베르니아는 여태껏
내가 본 여자 중에서 손꼽히는 미녀였으니 말이다. 성격이 조
금 이상한 것이 치명적인 흠이긴 하지만.
"언제 다시 또 보자고."
그 말을 끝으로 나무가 가득한 숲으로 사라지는 다크엘프,
베르니아. 훌쩍거리며 슬퍼하는 시아녀석을 살짝 품에 안고,
멍하니 그녀가 사라진 방향을 한참동안 바라보는 나였다.
베르니아가 사라지고 사태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녀가 부
른 것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명의 남자
엘프들이 우리가 있는 작은 연못으로 찾아왔다. 그리고 그들
이 안내해주는 데로 엘프들의 도시-에르쥬나를 향해 일행은
숲길을 걸었다. - 그렇게 몇 시간 정도 걸어서 일행은 목적지
인 에르쥬나까지 무사하게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엘프들의 도시라고 해서 엄청나게 큰 나무에 자연 친화적으
로 지은 아기자기한 집들을 상상했었지만, 내 기대는 거센 폭
풍에 모래성처럼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나무와 풀들이 많다
는 것만 빼고 인간의 도시와 크게 다른 점을 찾기 힘들었던
것이다. - 아름다운 조각 같은 것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는
점이 조금은 신선하긴 했지만.
꼬마엘프, 어른엘프, 노인엘프…. 정말 주위에는 엘프 투성
이다. 그 모든 엘프들이 나와 시아녀석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
보았기에, 바보같이 얼굴이 조금 붉어져 오는 것도 사실이었
다.
그리고 그 도시 - 도시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규모가 작았지
만. - 의 한 가운데에 위치한 제일 화려한 건물로 엘프들은
나와 시아를 안내했다.
"아이들을 데려왔습니다."
건물의 최상층인 3층까지 계단을 타고 올라가서, 복도 제일
구석에 있는 한 방의 문 앞에 도달한 후, 금발의 한 청년엘프
가 조그만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렇게 작게 중얼거린 것이 문안으로 들리기나 할까, 하고
새삼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큰 귀는 장식품이 아닌 모
양인지 이내 문 안쪽에서 기별이 왔다.
"들어오게."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벽을 가득
메울 정도로 많은 숫자의 책들이었다. 그리고 푹신해 보이는
쇼파에 몸을 의지한 체 안경을 쓰고 독서에 열중하는 한 늙은
엘프. 수없이 많은 숫자의 주름살이 그의 노쇠함을 증명하고
있었지만, 그 누구라도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위압감 같은 것
을 뿜어내고 있는 듯 했다.
"카르미엘, 너는 이제 물러가 있도록 해라."
카르미엘이라고 불린 금발의 청년엘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천히 걸음을 움직여 방안에서 사라졌다. 그가 사라지자 순
식간에 아무 말도 없이 썰렁해지는 방안이다. 이런 어색한 분
위기는 정말 질색이기 때문에, 한숨 한번 쉬고 입을 여는 나
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대꾸조차 하지 않는 늙은 엘프. 나와 시아녀
석을 무시하고 독서에 열중할 뿐이었다. - 그 모습에 새삼스
레 내가 열이 받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생고생하면서 여기까
지 간신히 왔는데, 반갑게 환영은 못 해줄망정 저런 반응이라
니? 막 발끈해서 뭐라고 한마디 쏘아붙이려고 할 때에 느릿느
릿한 움직임으로 책을 한 쪽에 치운 후, 주름살 가득한 입을
여는 엘프노인이었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네. 길을 잃고 숲을 방황한 까닭에
고생을 많이 했겠군. 결계 밖에 와이번녀석들과 만나지 않은
것이 정말 다행이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시아녀석을 주시하는 엘프노인.
안경 너머의 주름살 가득한 흐릿한 눈은 기르디녀석을 능가하
는 중압감 같은 것이 느껴졌기에, 쉽사리 내가 입을 열 수 없
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나저나 정말 오래간만이군…. 신성국에 수호신인 '그녀'
가 아직 살아남아 있긴 하지만."
아무 말 없이 시아녀석을 바라보는 노인, 그런 그의 눈은
왠지 모를 슬픔 같은 감정이 진하게 묻어있는 듯했다.
"600년쯤 전이었던가? 내가 아직은 새파란 애송이였을 때,
마지막에 본 '그녀'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되는 군."
"… …."
"쿡쿡, 미안하네. 이런 이상한 이야기만 해서…. 여하튼 오
늘은 여행하느라 피곤할 테니 이만 물러가서 푹 쉬도록 하게.
그러고 보니 아직 내 소개도 안 했군. 내 이름은 델리만, 이
숲의 도시에 장(長)이라고 할 수 있지."
"제 이름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네. 그럼 내일 보도록 하지."
그리고 다시 책을 읽으려는 듯 고개를 숙이는 엘프노인. 무
시당한 느낌이 들어 그리 기분은 좋지 않았지만, 피곤한 까닭
에 화낼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노인의 방을 빠져나가서 어느 이름 모를 엘프소녀의 안내를
받아 대충 가벼운 식사를 하고는, 푹신한 침대에서 기분 좋게
단잠을 맛 볼 수 있었다.
그렇게 기절한 듯이 잠든 후, 몬스터들이 우글거리는 숲과
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따스한 햇살에 다시 눈뜨는 나. 정
말 오래 잔 까닭에 머리가 울린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으니. -
아마 어제 점심에서 오늘 아침까지 근 하루동안 무식하게 잠
만 잔 것이 사실이겠지, 하고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머리가 아픈 것은 참을 수 있었지만, 배고픈 것은 정말 견
디기 어려웠다. 삐거덕거리는 온몸을 간신히 일으키고는 폐인
의 행색으로 문을 열어 방을 빠져나갔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인적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기에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식당이 어디야 밥을 먹던 지, 말
던 지 하고. 화장실이 어딘지 알아야 씻든 지, 말든 지 할 것
아닌가.
지난밤에 시아녀석과 함께 어느 엘프소녀의 안내를 받아 어
떤 곳에서 식사를 한 것도 같은데, 이 건물이 마치 미노타우
르스들이 뛰노는 미궁같이 느껴지는 이유는. 거의 모든 방의
문들과 복도들의 생김새가 언뜻 봐서는 쉽게 구별하지 못 할
정도로 비슷한 까닭일 것이다.
"크아악!"하고 굶주린 배를 부여잡으며 울부짖는 나, 좁은
복도가 울릴 정도로 꽤 큰 목소리였기에 조금은 후회되기도
했지만. 배고파 죽겠는데 그런 사소한 사실을 탓할 이성은 남
아있지 않았다.
가볍게 빵과 스프를 먹은 것을 제외하면, 최근에 제대로 한
식사는 전무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니. 내가 이렇게 미치고
팔짝 뛰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 되겠지만 말이다.
새삼 '극에 달한 사람과의 마음, 몸가짐과는 지금의 나와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날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
하지만 그런 것보다는 일단 '먹어야 산다!'라는 초 단순한 개
념이 마음에 와 닿았기 때문에. 방금 전 같은 짓을 한 것에
대해 죄의식 같은 것은 느낄 수 없었다.
'삐거덕-'
그런 괴상 망측한 행동을 한 것이 예상치 못하게 플러스 효
과가 된 것인지. 내 방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문이 살
짝 열리는 것을 보고, 눈물이 흐를 정도로 감동 받은 바보 같
은 나였다.
"… …."
"… …."
일단 내가 '방금 전의 행동은 고의가 아닙니다.'라고 말해
주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살짝 얼굴을 내밀며 나를 바라보는
4개의 눈은, 무엇인가 겁에 질려 있다는 감정을 내포하고 있
는 듯해서 뭐라 말할 타이밍을 놓친 것이 사실이었다.
"저, 저기 날씨가 참 좋죠?"
아무리 배가 고프고 컨디션이 엉망이라고 해도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내가 이런 말을 할 줄이야. 정말 스스로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후회가 밀려 들어왔지만, 이미 쏘아진 화살은 잡
을 수 없는 법. 뒤통수를 긁적이며 머쓱한 표정을 지어 보일
수밖에 도리가 없는 것이다.
살짝 조금 더 머리를 내밀어 날 바라보는 두 엘프 소녀들.
큰 눈을 멀뚱멀뚱 뜨며 날 바라보는 모습은, 마치 서커스에서
광대를 바라보는 어린 아이들의 그것과 유사했기에 가슴 한
구석이 사무치도록 뜨끔했지만. 무적의 철면피 근성을 발휘해
입을 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다시 한참의 정적 후에, 드디어 완전히 문을 열고 나와 물
끄러미 날 바라보는 소녀들이었다. 각각 귀여운 푸른색과 붉
은색 파자마를 입고, 아직 완전히 잠이 깨지 않은 것인지 몽
롱한 눈을 작은 손으로 문지르고 있는 두 엘프 소녀들의 모습
이란, 정말 한 걸음에 달려가 껴안아 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
웠지만 변태로 찍힐지도 모르니 알아서 자제하는 수밖에 없었
다. - 뭐 평균적으로 엘프가 인간보다 예쁘고 귀여운 것은 일
반화된 사실이었지만 말이다.
붉은색 파자마를 입고 짧은 숏커트를 한 엘프 소녀가 정적
을 깨고 나를 바라보며 딱딱한 표정으로 힘겹게 입을 열었다.
"아…. 아, 안녕하십니까! 인간님! 아니 인간분! 인간오
빠라고 했나? 뭐였더라?"
한심하다는 듯 눈을 찡그리며, 푸른색 파자마를 입은 엘
프소녀가 말했다.
"세레스 바보."
"바보라고 하는 엘프가 바보라고 카르미엘 오빠가 그랬다!"
"바보한테 그럼 바보라고 하지, 뭐라고 하냐?"
보고만 있어도 절로 즐거워지는 아이들이라는 생각이 들었
다. 여하튼 살짝 미소를 지어 보이며 붉은색 파자마를 한 엘
프소녀에게 입을 열었다.
"오빠라고 부르세요, 그냥."
"네, 네! 인간오빠."
"제 이름은 베리입니다."
"아니, 베리오빠."
왜 저렇게 저 아이가 당황하고 있는 건지 잘 알 수가 없었
지만, - 아마 이 숲에서 한번도 나가지 못한 까닭에 인간을
접하는 것이 처음일지도 모르고 해서 그냥 싱긋 웃어주는 것
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허둥지둥 당황하고 있는 붉은색 파자
마의 엘프소녀와는 달리 침착한 얼굴로 옆의 소녀가 말을 건
네왔다.
"제 이름은 티레스. 옆에 있는 이 바보의 이름은 들었다시
피 세레스라고 합니다. 엘프들의 숲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베리…. 오빠."
오빠라고 부르는 부분은 작아서 잘 들리지 않았지만, 대충
그런가보다 하고 생각하며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나였다.
"혹시 지금 건물 안내를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일단 화장
실이라도 가고 싶은데."
일일이 문을 열어서 확인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이 소녀들에게 부탁을 하는 것이 제일 나을 듯 하기도 해서,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 잠시만 기다리세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쪼르르- 방으로 뛰어 돌아가는 두 엘프
소녀들. 그 활기 넘치는 모습에 엘프든 인간이든 어렸을 때는
다 비슷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 * *
"좋은 아이들이더군."
살짝 미소지으며, 베르니아는 차가운 벽에 기대어 눈앞에
한 사내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마스터가 언제나 말을 최
대한 아끼는 스타일이라는 것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
실이니, 특별히 뭐라 대답을 원하지는 않았다. 그저 나는 말
해주기만 하면 되고 그는 듣기만 하면 된다. - 베르니아는 그
것도 나름대로 괜찮은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다시 입을 열었다.
"역시 생각한 것 이상으로 귀여운 아이였어, 마스터 당신의
아이는 말이야. 고집이 센 것도, 융통성이 없는 것도 다 똑같
더군. 키스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간신히 참았지. 몇 년이 지
나면 더 귀여워 질 테니 말이야."
몇 년이라고 해봤자 인간에 비하면 거의 무한한 생명을 가
지고 있는 자신에게는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 그렇게 쿡쿡-
거리며 웃고 있는 베르니아를 바라보며 사내는 입을 열었다.
"그래서 장난을 한 건가?"
조금 더 시간이 지체된 것에 의심은 할거라 생각했지만, 완
벽히 들통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에 조금은 얼굴이 굳
어지는 베르니아였다. - 그 숲은 투시마법으로도 탐색하지 못
하기에 어느 정도 안심을 한 까닭일 것이다.
마치 질 나쁜 장난을 하다 들킨 어린아이처럼 그녀는 투덜
거리기 시작했다.
"쳇, 그 정도쯤은 이해해 줘야 좋은 마스터지. 뭐 결과도
좋았으니,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넘어가 주라고. 질 좋은 와이
번의 이빨도 몇 개 얻어왔고…. 그런 경험도 나중에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거니."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는 그녀에게, 사내는 부탁을 하나 더
하기로 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조금은 지나친 것이 될지도 모
르지만 그녀의 능력을 믿고 있었으니, 큰 걱정은 하지 않았
다.
그 쪽도 음모를 꾸미고 있으니, 이 쪽도 그에 상응하는 음
모를 꾸미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라 그는 생각했다.
지난 몇 년 동안 이것보다 더 심각한 일도 헤아릴 수 없이 많
았다. 자신이 그런 것들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도, 상대방을
한 수 능가하는 계획을 세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내는 살
짝 미소지으며 그녀를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