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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사랑합니다.

황교진 |2007.04.24 00:41
조회 38 |추천 0

4월 10일 화요일 오후, 아주 우연히 그러나 하나님의 필연적 섭리로
CGNTV의 프로그램 를 녹화했습니다.

 

2004년 11월에 차화연의 를 찍을 때 저를 섭외한
조은아 작가님(그 방송 후로 누나라고 부를 만큼 편한 사이로 지내고 있습니다.)이
우리 회사에서 출간한 를 쓰신
주광조 장로님 연락처를 문의하는 전화를 주셨습니다.
하필 그 전화를 제가 받게 되었지 뭐에요.^^
둘이 서로 깜짝 놀라며 반가워하다가 누나가 현재 원고를 쓰고 있는
오미희의 에 캐스팅되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어머니 얘기만 주로 해 와서 아버지 얘기를 어떻게 정리하여
방송에 노출해야 할지 고민이 많이 되었습니다.
항상 “니 엄마만 저리 되지 않았어도..”를 입에 달고 사시며 절망 가운데 술로만 위로를 찾는 아버지..
“이제 어머니 무료 병원이 있는지 찾아서 맡겨두고 신경 끊어라.”는 말씀을 누차 하시며
나와 부딪히고 대화가 안 통하는 아버지..
오래 전에 아무런 대안 없이 어머니를 포기하라고 말씀하시는 아버지 때문에
무척 속상한 마음을 덜어내고 쓴 글이 있습니다.

 


***********

 

2001/11/08
 
아버지와 나


아주 오래 전 나의 그도 가장 멋있고 강한 사람으로 느껴졌었다.
그는 밖에서는 유한 사람이었지만 집에서는 엄한 군주였다.
내가 반 등수의 성적표가 나오기 시작하는 학교에 다닐 때부터
그는 세상엔 경쟁에서 승자만이 살아남는다고
무조건 최고가 되길 바라고 주문했다.
자신이 배우지 못한 한을 내가 채워주길 바라며
그는 나의 성적표 숫자를 귀금속과 같은 자랑으로 여겼다.


난 인격이 좋은 사람으로 자라나고 싶었다.
좋은 친구들 속에서 우정을 키워나가고
마음 속 근원적 쓴 뿌리인 고독을 이겨내고 싶었다.
그는 내가 야망을 가지길 원했지만
난 일류인이 되기보다 삶과 사람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싶었다.


그가 하는 일이 계속 안 되어 갔고
난 가난한 집안을 일으켜야 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며
통과하여야 할 문을 제 때에 통과하지 못했다.
그 후로 그는 나를 자신의 아들로 간주하지 않는 모습을 자주 보이며
빙산처럼 차갑고 거대한 아픔을 주어왔다.


그 가운데 나는 또 다른 아버지를 만나게 되었다.
내 육신의 아버지가 아닌 나를 창조하시고 불러주신 그분
내가 받아보지 못한 죽기까지 사랑하신 사랑과
버림받은 마음을 구원하신 따뜻한 그분 품에서
내 무너지고 병든 마음은 쉴 곳을 찾게 되었다.
그러나 현실 속의 그는 항상 우는 사자의 이빨처럼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하지 않고 계속
깊은 상처를 주고 있었다.


갈수록 커져가고 예상하지 못했던 그로 인한 내 깊은 고통들을
그 누구에게도 다 말할 순 없지만
나를 붙잡아 주시는 다른 아버지는 모두 다 들어주시고 위로해주신다.
나는 한 아버지로부터 받아온 상처를
다른 크신 아버지의 사랑으로 치료할 수 있음이 감사하다.


그분의 사랑으로 그의 구원을 바라고 기도한다.
검사가 아닌 변호사가 되어 나는 그의 옆에 서고 싶다.


먼 훗날 한 가정의 좋은 아버지이자 좋은 남편이 되어
나의 아이들이 나를 보고 主 아버지의 사랑을 배우게 되는 것이
나의 가장 큰 소망이다.
다음 세대에 신실함을 유산으로 물려주는 가장이 되는 것이
나의 가장 큰 소망이다.
 


*********

 


지금 이 글을 꺼내읽고 돌아보면 아버지와 나는 서로가 참 고독한 존재였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의 고통을 함께 지는 것을 마땅한 것으로 여기고
하나님을 붙잡고 이겨내려고 애쓰는 고독이 나의 것이라면
아버지는 아무런 소망도 희망도 없는 상태에서 부대끼는 고독을 견디고 있습니다.
그에게 소망이 있다면 내가 크게 성공하여 경제적으로 풍성해져서
노후의 안정을 누리는 것일 겁니다.

 

울트라교진은 부자가 되려는 꿈이 없습니다.
천국의 부자를 늘 소망하는 가난한 삶을 선택한지 오래입니다.
좋은 남편은 하나님의 참 백성으로서 본이 되는 모습이지
부유한 자산을 얻고 여유를 누리는 자본가의 삶과는 별개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방송을 위해 서빙고역으로 가면서 많은 생각이 오갔습니다.
그리고 부끄러웠습니다.
아버지는 제 책과 방송에서 자신의 얘기를 어머니와 동일한 비중으로 하지 않는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호통을 치곤 하셨습니다.
사실 상처받은 기억이 너무 많아서 할 얘기가 마땅치 않았고
책과 방송의 컨셉은 출판사와 방송국에서 정해가는 것이기 때문에
지면과 방송의 성격상 아버지 얘기가 똑같이 들어갈 수는 없다고 말씀 드려도
이해를 못 하시고 화 나실 때마다 욕을 하곤 하셨습니다.

 

오랜만의 방송을 앞두고 내가 어머니 간호에 집중하느라 너무 고단해서
아버지께 잘 해드리려고 노력하지 못 했음이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의 80% 이상의 출연자들이 저처럼 상처와 고통을 그대로 안고
아버지를 얘기한다고 하지만 제 마음은 여전히 아프고 어색한 부분이 너무 많았습니다.

 

“하나님, 제가 어찌 해야 합니까?”
녹화장인 경천홀에 올라가면서 섭외에 응한 것이 잘한 일일까, 되물으며 긴장했습니다.
하루에 3~4편을 찍는 의 녹화장에 들어가자마자
오미희씨와 인사를 나누고 제가 기도한 후 바로 촬영을 시작했습니다.

다른 출연자들과 달리 삶의 성격상 어머니 얘기를 많이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중간 이후부터 아버지 얘기를 하는데 떨림과 긴장 속에 어려웠던 관계와
하나님 안에서 정리한 모습을 얘기하고 오미희씨는 상담자처럼 멘트를 해주셨습니다.

 

부자간의 접촉점이 없기 때문에...
서로 표현을 잘 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 좋은 아버지 모델이 없기 때문에...
(오미희씨가 아버지상의 모델을 물었을 때, 오래 된 외화 의 아버지를 얘기했거든요.)

 

많은 출연자들이 생각을 다 정리하지 못 하고 처음 말문을 열다가
눈물을 쏟는 일이 허다한 프로였지만, 저는 끝까지 울지 않고 담담하게 얘기했습니다.
하지만 방송을 마치고 속으로 많이 울었습니다.
말로는 같이 여행도 가고 잘 해드리고 싶고 사랑한다고 했지만,
한때 제 꿈은 멀리 이민 가서 아버지 안 보고 사는 것이었습니다.

 

녹화를 마친 날 제 마음은 아버지의 고독감과 안타까움으로 꽉 차서 우울하고 힘들었습니다.
나를 통로로 하여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기는커녕 내가 아버지 믿음의 첫 단추를
방해하고 있는 건 아닌지..
다른 성공한 아들과 비교하는 아버지가 미운 것처럼
다른 신실한 아버지와 비교하는 나는 얼마나 모순인지...
자비와 사랑이 넘치시는 하나님이 나를 위해 특별히 주신 아버지인데
나는 그동안 왜 그리도 부딪히고 상처만 주고 받았는지.. 흐흑~TT;;

 

지금 무엇부터 해야 할지 얼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우선 기도부터 시작합니다.
"하나님, 나는 아버지의 영적인 변호사요 축복의 통로요 작은 예수가 되고 싶습니다.
믿음 안에서 선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볼 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늘 호통치고 독단적이고 상처 주는 아버지 모습만 보는 눈을 버리고 싶습니다."

 

우리 영승이의 아빠로서도 좀 더 준비해야겠습니다.
"영승아, 아빠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주었던 사랑과 격려로 너와 함께 하고 싶구나.
지금은 많이 부족하지만 네가 태어나기 전에 부지런히 말씀을 공부하고 엄마와 함께 기도할게."


그리고 한번도 제대로 해보지 못한 말을 꼭 할 것입니다.
“아버지, 아버지,,, 사.랑.합.니.다.”

 


 

방송보기 링크 클릭~!
http://www.cgntv.net/culture/program.asp?pid=1963&pintro=&intro=5&vno=67

 

 

CGNTV Player 바로뜨기~!
http://www.cgntv.net/cgn_player/player.htm?pid=1963&bit=medium&vno=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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