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실함은 두 가지 감정을 동반한다.
최선을 다하는 굳은 의지와
요행수를 바라게되는 의지박약.
특별하다고 자부해왔고
항상 할 말은 해왔다고 생각한다.
나름대로 세상을 보는 뚜렷한 잣대를 가지고 있으며
정의를 실현해보겠다는 마음도 있었다.
썩을놈들의 돈가방이 오가고 땅값이 올라갈 때,
분노하며 모두를 잡아 넣는 검사가 되겠다고,
세상에 그들의 만행을 알리는 기자가 되겠다고,
인류를 살리는 , 정말 아픈 사람들을 살리는 의사가 되겠다고,
지랄같은 교육 제대로 해보겠다고 교육부장관이 되겠다고 했었따.
정말 나에게 정의감이, 사명감이 있어서 그랬던 걸까?
아니다.
그건 지극히 감상적인 생각에 지나지 않았다.
공공의 적을 보면서 흘리는 눈물,
실미도를 보면서 흘리는 눈물,
러브레터를 보면서 흘리는 눈물,
오만과 편견을 보면서 흘렸던 눈물이 서로 다르지 않듯이
또한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내 감정과
그동안 내가 정의감이라고 느껴왔던 감정은 같은 것이다.
한마디로 동정, 감상주의에 지나지 않았다.
힙합 랩펴, 방송작가, 성우, 연기자, 대학생, 선생님, 의사, 군인, 슈퍼바이저, 공무원...
무슨 소설 속, 드라마 속 직업같지만
모두 85년생 내 친구들의 직업이다.
나는 참 순진했다.
초등학교 - 중학교- 고등학교 까지만, 아니 중학교까지만이
의무교육이라는 사실을 잊고 살았다.
그래, 내가 사는 인생이 아니라고
다르게 사는 인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대학생이라고 22살 모두가 대학생일 수는, 아니 필요는 없다.
그들은 모두 중 , 고등학교때 나보다 뒷 등수였던 아이들이다.
인생은 성적순이 아니라며, 왜 인생을 숫자로 계산하냐며
누구보다 강하게 비난했었고 욕했었던 내가
사실은 사람들 모두를 숫자로 판단하고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친구들을 숫자로 계산했던 시절이 있었던 점..
솔직히 고백한다.
정말 지금생각해보면 어리석고 오만 방자하기 짝이 없다...
그렇게 잘하지도 않았으면서
욕심은 천배만배, 오만방자는 하늘을 찔렀었더구나..
그래서 22살 지금 이시점 생각해본다.
정말 내가 받은 재능, 해야할 일,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다른 사람 신경안쓰면서
멋진 커리어를 가지고 청담동 오피스텔에, 미니쿠퍼,
루이비통으로 온 몸을 도배할 수 있다면
솔직히 어떤 직업이어도 지금 난 OK! 일것이다.
그런데
정말 내가 그 직업을 가지면서
이건 나없인 안돼. 이건 내가 해야만 해! 하는 확신이 들까?
그럴 수 있을까?
그래도 한 번 뿐인데
다시 돌아올수 없는 속절없는 인생인데
가슴 깊숙히 뭔가를 끓게하고 온몸을 전율을 일케하는
그런 일을 해야하지 않을까?
다른 사람보기에 좋은 직업은 오래가지 못한다.
나는 진작이것을 알았어야 한다.
그래, 오늘부로 길은 한가지로 정해본다.
솔직히 아직도 곁다리가 남아있기는 하지만서도.
이미 고시도, 의대도 아니라면(난 공부체질은 아니다.)
어떤 외압에도 굴하지 않는 기자가 되보겠다.
성공한 기자가 아니다.
어떠한 외압과 유혹에도 굴하지 않는 강직한 기자가 되보겠다.
이상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상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졌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이상은 존재한다.
내가 정한 꿈은 한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마 사후에 판단 받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려면
지금 이러고 있으면 안되겠지?
내년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을 터닝포인트로 삼자.
혼자하는 것 모든게 힘들지만 혼자가 되어야하는 시간.
힘들어도 혼자 아프자...
책과 함께....................................라면. 언제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