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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자 하는 욕망: 호텔 르완다

배소영 |2007.05.01 20:08
조회 396 |추천 0


아무래도 VCR보다는 DVD가 훨씬 좋지- 라는 철저한 주의다, 나는. 고화질의 영상과 훌륭한 음향은 차치하고서라도, 편하잖아! 되감기도 빨리감기도 편하고, 트랙 찾아가는 것도 쉽고, 좋아하는 장면 수백번 다시 보는 것 번거롭지도 않고. 그러니까 대여료가 더 비싸도 연체료가 더 비싸도 웬만해선 DVD를 빌리고 나아가 DVD를 산다.

그런데도 이 영화는 보고싶었던 다른 DVD들을 당당히 제친 비디오다. 이 영화만큼은 DVD로 나와있지 않더라도 꼭 봐야겠다, 싶었으니까. 고3, 1년 내내 열과 성을 다해 우리를 가르쳐주신, 우리 학교 학생들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세계지리 선생님께서 추천해주신 영화다. 제아무리 진부한 계기라도, 진부하지 않게 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구린 화질 구린 음향을 감수하고 [호텔 르완다]를 빌렸다. (거기에 플러스, 호아킨 피닉스도 나온다니까!)  

 

1994년, 르완다에서는 100일만에 무려 100만 명이 사망했다. 끈적끈적한 피와 찢겨진 살덩어리, 칼부림과 총소리로 점철된 100일은 후치 족과 투치 족 사이 종족갈등의 소산이었다. 이 피의 역사가 벨기에 회사에서 운영하는 고급 호텔의 지배인 ‘폴 루세사바기나’라는 사람의 눈에 의해 그려진다.

실화에 바탕한 이 영화는 딱 그 실화만큼 잔혹하다. 영화 소개글을 읽으면서, 100만명이 사망했다는 글을 읽으면서 이것이야말로 홀로코스트HOLOCAUST라고 생각했다. 서구 열강에 의해 불이 댕겨진 무의미한 학살. 비정상적으로 시작된 그것은 그 끝도 찾지 못하고 광란한다.  

 

그러나 야만적인 역사를 고발하는 것 그 이상의 메시지는 주인공 폴에게 있다. 어떻게든 살아서, 도시를 빠져나가겠다는 그의 의지다. 생生, 살아야겠다는 욕망은 먹는 것, 자는 것을 뛰어넘어선 가장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욕망. 폴은 거짓말, 뇌물, 아첨, 협박까지 동원하여 살아남으려 하지만 전혀 구차해 보이지도 지저분해 보이지도 않는다. 1300여명의 난민을 구하기 위해 흙바닥을 구르고 늪을 디디는 그의 모습은 여느 영웅들만큼 위대하다. 참혹한 상황 아래 삶에 대한 절망만을 가지고 차라리 죽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가지게 하는 때, 그는 일말의 망설임도 갈등도 없이 참담한 현실을 파고든다. 어딘가 구멍이 있을거야. 어딘가 살아나갈 길이 있을 거야. 우리는, 나의 가족은, 나는, 반드시 살아남겠다.

현실을 직시하는 그 의지. 아픈 역사 아래 이를 악무는 얼굴. 그래서 호텔 르완다는 참상을 고발하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인간의 생을 그리는 이야기인 것 같다. 어두컴컴한 수렁 속 숨겨둔 희망을 보여주는. 그것이 영화를 아름답게 만드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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