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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순교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윤석훈 |2007.05.02 11:26
조회 101 |추천 0


전세계 그리스도의 지체들에 보내는 서머나교회의 편지         

너무도 큰 슬픔에 잠겼던 한 주간이었습니다. 이미 많이 들어 아시다시피, 믿는 자들이 최초로 크리스찬이라 불렸던 안디옥(행 11:26)에서 북동쪽으로 300마일 가량 떨어진 터키의 말라티아 지역에서 형제 세 명이 당한 끔찍한 순교는 서머나 교회에 엄청난 손실입니다.

 

 

 

 

2007년 4월 18일 수요일 아침, 세 아이의 아버지이자 선교사였던 46세의 독일 형제 틸만이 출근하면서 아내와 아이들에게 ‘사랑하는 아들아 안녕’ 인사가 마지막이 되었습니다.

 

틸만은 새로운 터키어 성경공부 책자를 준비하기 위해 질베 출판사로부터 사무실을 임대했습니다. 질베 사무실 역시 말라티야 복음주의 교회 사무실 내에 있었습니다. 이 교회의 사역은 기독교 책자를 발간하여 말라티야와 터키 동부지역 도시에 배포하는 일이었습니다. 같은 도시의 또 다른 곳에서 두 아이의 아빠인 네카티 아이딘이라는 35세 사역자 역시 아침 출근길에 아내와 아이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습니다. 이들은 그날 아침 그 지역의 몇몇 형제자매들과 함께 성경공부와 기도회를 가질 예정이었습니다. 우구르 유크셀 역시 이 성경공부 모임에 가는 길이었습니다.

 

이들 중 그 누구도 성경공부모임 시간에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그들의 신앙을 증명하여 어떻게 그들로 영광의 자리에 서게 할지, 또 이를 통해 주님께서 주시는 의의 면류관을 받게 할지, 주님 존전에서 그들을 맞이할 믿음의 선배들로부터 칭찬을 받게 할지…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도시의 다른 곳에서는, 20세 이하의 젊은 청년 10명이 자기 신앙 행위의 극치를 보여주기 위해 마지막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삶은 알라에 대한 사랑과 이슬람을 모욕한다고 여기는 이교도들에 대한 증오로 점철되었습니다.

 

부활절 주일, 이들 중 다섯 명은 초대받은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복음전도 집회에 참석하였습니다. 네카티 목사님과 형제들이 시내 호텔에서 준비한 예배였습니다. 이들은 성도들에게 ‘구도자’로 소개되었습니다. 이 청년들이 복음을 들으면서 마음에 어떤 생각을 품었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성령께서 그들의 마음을 만지셨을까요? 이들이 죄를 회개했을까요? 이들이 중심으로 복음을 들었을까요? 오늘 나눌 부분은 전체 이야기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이 젊은이들은 타리캇 또는 ‘신실한 신자’라고 불리는 이슬람 그룹의 일원이었으며, 여기에는 말라티야 시장의 아들도 포함되었습니다. 타리캇 회원은 이곳에서 매우 존경받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클럽의 회원과 같은 것입니다. 심지어 타리캇 회원이 아니고서는 관공서에 취직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들은 같은 기숙사에 살면서 대학 입학 시험을 준비중에 있었습니다.

 

총과 칼, 밧줄과 수건을 준비한 젊은이들은 알라에 바치는 마지막 예배를 실행하였습니다. 많은 피를 흘리게 될 것을 이미 알았습니다. 이들은 10시경 성경공부 모임에 도착하였습니다.

 

이들이 도착했을 때 성경공부 수업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보도에 의하면, 네카티 목사님이 성경 한 장을 읽고 났을 때 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들은 우구르와 네카티, 틸만의 손과 발을 의자에 묶었고, 거의 세 시간 동안 이 형제들을 고문하면서 이를 핸드폰 카메라로 녹화하였습니다.

 

고문의 상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틸만은 156번, 네카디는 99번이나 칼에 찔렸으며, 우구르를 찌른 회수는 셀 수조차 없었습니다. 배를 가르고 창자를 꺼내 그들이 보는 앞에서 조각내었습니다. 또한 자기 몸을 파괴하고 거세하는 것까지 눈으로 직접 보았습니다. 손가락을 잘라내고, 코와 입과 항문까지도 칼집을 내서 벌렸습니다. 그들을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자기 형제들이 고통당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던 것입니다. 끝으로 목까지도 조각조각 짤려 결국에는 참수를 당했습니다.

 

이 출판사 근처에 있던 이웃들은 고함치는 소리를 듣기는 했으나 집안 사람들끼리 싸우는 소리라고 생각하고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시간, 또 다른 신자인 곡한과 그의 부인은 즐거운 아침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10시쯤 일어나서 천천히 식사를 하고 12시 30분경 부인과 함께 사무실에 도착하였습니다. 사무실 출입문은 안쪽에서 잠겨있었고, 열쇠로 문을 열 수 없었습니다.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으나 사무실 안쪽에서는 전화벨 소리가 울리지 않았습니다. 다른 형제들에게도 전화를 걸다가 마지막으로 우구르 형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우리는 사무실에 있지 않습니다. 호텔 미팅으로 가십시오. 우리는 거기 있습니다. 우리도 곧 호텔로 가겠습니다’ 라며 알 수 없는 대답을 했습니다. 우구르가 그렇게 말할 때, 곡한은 수화기 너머로 우는 소리와 이상한 고함 소리를 들었습니다.

 

곡한은 경찰에 전화를 걸었고, 5분쯤 후 근처 경찰이 도착했습니다. 문을 세차게 두드리면서 ‘경찰이다. 문 열어라’라고 외쳤습니다. 경찰은 처음에 가정불화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 때 또 다른 고함소리와 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경찰은 사람이 신음하는 것임을 알아채고 총알을 장전해서 문을 통해 총을 쏘려고 계속 시도했습니다. 이때 겁먹은 청년 하나가 문을 열었고, 방에 들어간 경찰은 끔찍한 광경을 보게 됐습니다.

 

틸만과 네카티는 완전히 살해된 상태였습니다. 목이 귀에서 귀까지 거의 다 잘린 상태였습니다. 우구르 역시 거의 목이 잘렸지만 간신히 목숨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이 살해자들은 경찰 앞에 무기를 내려놨습니다.

 

이 때 곡한은 길가에 나는 비명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4층 사무실에서 누군가 떨어진 것이었습니다. 밖으로 뛰어 내려가 바닥에 떨어진 청년을 보았습니다. 나중에 그 청년의 이름이 엠레 규나이든인 것을 기억하게 됐습니다. 머리에 충격으로 괴상한 비명을 지르고 있었습니다. 배관시설을 따라 도망치려고 내려오다가 균형을 잃고 바닥에 추락한 것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그 살해자들의 리더로 보였습니다. 나머지 한명은 아래층 발코니에 숨어있다가 발견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합니다. 2001년 4월 터키의 국가 안보위원회에서는 기독교 복음전도자들이 알카에다나 PKK테러집단과 마찬가지로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는 존재라고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정치지도자들과 신문 사설가, 평론가들이 언론에 발표한 성명서는 선교사들이 젊은이들에게 뇌물을 줘서 종교를 바꾸도록 한다고 주장하며 기독교인들에 대한 반감에 불을 붙였습니다.

 

2001년 결정으로 교회와 목사님, 크리스천에 대한 공격과 위협이 시작됐습니다. 폭탄이나 물리적인 공격, 언어나 글에 의한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미디어를 활용한 여론몰이였습니다.

 

2005년 12월부터 진행된 기독교의 위협에 대한 긴 시간의 회의 끝에, 전 수상 에체빗의 부인, 역사가 일베르 오타일리, 하산 운살 교수, 정치가 아흐멧 탄, 작가이자 오피니언 리더인 아이툰크 알틴달과 같은 이들은 각자 자기 전문 분야에서 기독교를 음해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교인들이 아이들의 영혼을 사려고 한다고 음해하였으며, 교회 예배를 몰래 촬영해 여론에 공개하면서 기독교인을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시키며 두려움과 적대성향을 부추겼습니다.

 

터키 내무부 장관이 앙카라 공식방송에서 우리 형제들에 대한 테러에 대해 말할 때 짐짓 점잖은 체 말했습니다. 공공연하게 이루어진 이 무자비한 학살에 대한 반대운동과 종교와 사상의 자유를 요구하는 움직임 가운데, 여론과 정부는 한 목소리로 ‘이번 사건에서 교훈을 얻어라. 우리는 크리스천을 원하지 않는다’라고 암묵적으로 말하고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배후에 있는 타리캇 리더가 계획하고 지시한 것이 분명합니다. 2007년 1월 흐란트 살해사건, 2006년 2월 천주교 신부 안드레아 산토로 살인사건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약자를 이용해 종교살인을 저질렀습니다. 왜냐하면 일반여론은 아직 어린 젊은이들에 대해 동정심을 보여서 성인 범죄자에 비해 적은 형벌을 받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이 아이들의 부모는 아이들의 범죄행위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천주교 신부인 안드레아를 살해하고 감옥에 가는 16세 아들을 보면서 그 엄마는 ‘우리 아이는 알라를 섬기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살해에 가담한 젊은 사람들은 현재 구금된 상태입니다. 그들은 재판에서 테러리스트로 조사받을 것이며, 그래서 나이가 어리다는 사유가 그들의 엄한 처벌을 감해주지 못할 것이라고 오늘 뉴스는 보도했습니다. 가해자 엠레 규나이든은 아직 집중치료를 받는 중입니다. 조사는 그를 중심으로, 또 그와 연결된 사람들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만약 그가 회복하지 못한다면 조사는 실패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터키 교회의 수백 명의 신자들과 수십 명의 목사들은 말라티야의 이 작은 교회와 함께 하고 또 성도들을 격려하며, 법적인 문제 해결을 돕고, 미디어를 통해 그리스도인들을 대변하기 위해 터키 각처에서 신속하게 달려와서 이들을 도우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수산나 틸만이 남편을 말라티야에 묻어달라고 요청했을 때 주지사는 그것을 막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자, “그리스도인을 위해 무덤을 파는 것은 죄다”라는 소문을 퍼트렸습니다. 결국 기독교 역사에 영원히 기억되어야 할 이 장례는 아다나(Adana, 다소 근처)의 교회 형제들이 아르메니안 공동묘지에서 거행하였습니다. 100년 가량된 이 공동묘지는 오랫동안 방치된 채 남아있던 곳입니다.

 

우구르는 그의 가족의 뜻에 따라 그의 고향 엘라지그 알레비 무슬림 묘지에 묻혔습니다. 우구르의 가족들은 죽음을 불사했던 그의 신앙 고백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역시 크리스찬인 우구르의 약혼녀는 슬픔 가운데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네카티의 장례는 그가 예수님을 믿게 된 그의 고향 이즈밀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어둠은 빛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교회들은 이 사건에 대해 비록 용서한다고 말했지만, 그렇다고 그리스도인들이 전적으로 신뢰받는 것은 아직 아닙니다. 말라티야에서는 비행기에 관을 싣기 전 폭발물이 들어있지 않은지 확인하며 엑스레이 통과 절차를 2번이나 따로 거쳐야했습니다. 무슬림들의 관을 실을 때는 이렇게 까지 하지 않습니다.

 

네카티의 장례식은 은혜스럽게 치루어졌습니다. 마치 천국의 한 면을 보듯이, 수천 명의 터키 그리스도인들과 선교사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표현하고 또 그리스도를 위해 죽도록 택함 받은 이 형제의 영광스러운 순교를 기리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네카티의 아내 쉠사는 세상을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그리스도를 위해 살았고, 그리스도를 위해 죽었기 때문에 그의 죽음은 정말 의미 있는 죽음이었습니다. 네카티는 하나님께로부터의 선물이었습니다. 나는 그와 인생을 같이했다는 것 자체를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나는 영광의 관을 쓰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이 영광에 합당하게 살기 원합니다.”

 

신자들은 공적으로 그들이 노출되고 표적이 될 수 있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담대하게 네카티의 장례식에서 자리를 지켰습니다. 미리 예상한대로 반-테러 경찰들은 참석하여서 앞으로 필요할 때 사용하기 위해 모든 장례식 참석자들을 비디오에 찍어갔습니다. 장례예배는 부카침례교회 밖에서 이루어졌으며, 그는 이즈밀 외곽에 있는 작은 기독교 묘지에 묻혔습니다.

 

이즈밀의 두 부지사들은 앞줄에서 근엄하게 장례식을 지켜보았고 많은 뉴스에서는 이 사건을 생방송으로 보도하였습니다. 뉴스를 보는 사람들에게 이 장례식이 미칠 영향력에 대해 누가 알겠습니까? 이 신문과 뉴스를 보는 이들의 인생의 새로운 시작이 되도록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터키의 가장 큰 신문사 첫 페이지를 장식했던 이번 사건에서 수산나 힐만은 텔레비전 인터뷰를 통해 그녀의 용서를 표현했습니다. 그녀는 복수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고, 갈보리에서 예수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처럼 진심으로 “하나님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라고 말했습니다.

 

피에는 피로(blood for blood) 복수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이 나라에서 수산나 틸만의 이 용서가 어떻게 많은 사람들을 변화시켰는지에 관하여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한 칼럼니스트는 그녀의 용서에 대해서, “그녀는 1000명의 선교사들이 1000년 동안 하지 못한 것을 한 문장으로 표현했다”라고 말했습니다.

 

말라티야의 선교사들은 그들의 가족들과 아이들이 이 적의에 찬 도시에서 표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에 대부분 떠날 것입니다. 또 남아있는 10명의 신자들은 숨어있는 상태입니다. 어둠가운데 빛인 이 교회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아마 십중팔구 지하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다른 도시의 터키 형제들이 지도자가 없는 이 교회를 인도하도록 지혜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우리가 이 큰 도시 말라티야, 스스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이 도시를 관심 갖고 돌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요나 4:11)

 

우리 목사 피크렛 보켁이 월요일 날 한 형제와 함께 보안국장에게 진술을 하기위해 갔을 때,  그들은 반 테러부서로 안내받았습니다. 그 부서의 벽에는 이즈밀에 있는 모든 테러리스트 조직을 망라하는 리스트가 걸려있었습니다. 또 이즈밀의 모든 복음주의 교회들의 리스트가 걸려있었습니다. 어둠은 빛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들이 여기도 이르매”(행17:6)

 

터키 교회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박해를 멈춰달라고 기도하지 마시고, 인내를 위해 기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라고 피크렛 보켁 목사는 부탁했습니다.

 

교회는 우리 형제들을 잃었지만 -우리 삶의 열매, 새로워진 믿음, 말라티야의 어둠을 더 정복하기 위해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타는 열정...이 모든 것들은 잃어버려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외부의 핍박을 잘 견딜 뿐만 아니라, 우리 안의 죄와 연약함을 이기고 견고하게 설 수 있도록 기도해주십시오.

 

우리 형제들이 주님께 그 삶을 드리는 순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계신 것을 우리는 압니다. 다소의 사울이 보는 앞에서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을 때 함께 하셨듯이 그분은 거기 계셨습니다.

 

언젠가 우리 형제들의 순교의 모습이 아마 비디오를 통해 드러나게 될 때 그들의 마지막 십자가를 질 수 있도록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주신 힘에 대해, 그리고 사랑하는 주님을 위해 고난 받을 때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들에게 주신 평안에 대해 우리는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그들의 곁을 떠나지 않았음을 압니다. 또 정복할 수 없는 복음의 빛을 어둠이  정복하려고 했을 때, 그들의 마음이 말씀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 말씀이 형제들로 견딜 수 있도록 붙잡아 주었음을 우리는 압니다. 표정이나 말 등 그들이 할 수 있었던 모든 방법으로 그들은 견딜 수 있도록 서로를 격려했습니다. 또한 곧 주님과 함께 하게 될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합니다. 또한 이 땅에서 정의가 어떻게 구현될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도하며, 또 기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사랑하는 터키영혼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드린 틸만의 순교와 또 터키교회 최초의 순교자들인 네카티 아이딘과 우구르 유크셀의 순교를 목도한 이들 중 최소한 한명이라도 언젠가 그리스도께 돌아오도록 말입니다.

 

Reported by Darlene N. Bocek  (24 April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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