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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아시겠습니까?

임홍순 |2007.05.06 23:19
조회 73 |추천 0

이제 아시겠습니까?

중국문제연구소  소장 김정태

 

  이제 아시겠습니까 2007/04/20 06:54 추천 0 스크랩 0 
   

속담에 'ㅆ주고 뺨맞는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마치, 이번에 '쌀 퍼주러' 평양 가서 망신당한 우리 정부 대표단을 두고 한 말 같다. 말이 좋아 경제협력이지, 협력은 무슨 협력? 정확히 말하면 일방적 원조가 아닌가. 일방적 원조를 협력이라 표현해야 하는 왜곡도 문제지만, 얻어먹는 주제에 툭하면 생트집 잡고, 그런다고 굽실거리며 받치는 어이없는 ㄲ호락서니를 언제까지 참고 있어야 하는 지...
  
  속담에 '물에 빠진 놈 건져 주었더니, 보따리 달란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돈, 쌀, 비료 보내고, 의약품, 생필품 등, 온 갖 것 다 바쳐 되살려놓았더니, 미사일 발사, 핵폭탄으로 위협하며, 한술 더떠 이제는 거덜난 북한 살림을 떠맡으라는 식으로 나오는 김정일 일당의 파렴치한 행패를 두고 한 말 같다.
  
  해도해도 너무 한다. 지난 번, 한미 FTA협상에서 그 토록 당당하던, 하여, '크게만 보이던' 우리 정부가, 김정일 앞에만 서면 이토록 '작아지는' 까닭이 무엇인가. 우리는 정치적, 경제적으로 압도적 우위에 있고, 핵무기만 제외하면, 군사비 지출면에서도 북한을 크게 앞지르고 있다. 그런데, 대북원조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매번 북한은 위세등등, 우리는 끌려다는 다니는 꼬락서니니, 도대체, 이번 기회에 차분히 따져 볼 필요가 있다.
  
  맨 처음, 우리가 북녘을 향해 구원의 손길을 뻗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그것은, 북한의 생지옥같은 실상이 우리사회에 공개되면서 부터다. 북한이 어렵다는 것은 짐작했지만, 그토록 비참할 줄은 몰랐다. 어느 놈 탓인지를 따지기에는 너무나 상황이 절박했다. 하여, 우리는, 당장 굶어죽어 가는 동포'를 살리고 보자는 심정, '체제는 밉지만, 그 밑의 백성이야 무슨 죄가 있느냐'는 심정으로 발벗고 나섰던 것이다
  
  왜 그 지경이 되었는지, 그 까닭을, '6 25'(한국전쟁)를 겪은 나이 많은 사람들은, 이미 겪어봐서 알고 있다. 그리고, 쏟아져 들어오는 탈북자들의 증언을 통해, 이제는 대부분의 국민들도 알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젊은이들 가운데는, 북한의 비극적 현실을 부정하거나, 남의 탓으로 돌리는 자들도 적지 않다. 전교조를 비롯한 친북좌빨 세력의 세뇌교육과 반복되는 왜곡선전 탓이다.
  
  북한주민의 굶어 떼죽음 당하는 참상을, 김정일 일당은,가뭄 탓, 물난리 탓, 미국놈 탓... 온통 '남의 탓'으로 돌렸다. 인민의 의식주를 전지전능한 수령님과 영광스런 당이 책임진다면서 이런 변명이 통하다니... 우리의 상식으로는 통하지 않는, 가증스런 일이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이 뻔뻔한 거짓말이 통한다. 상식의 숨통이 막힌, 고립무원의 암흑세계에 갖혀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남의 탓으로 돌리면, 위대하다는 수령과, 영광스럽다는 당은 무슨 책임을 지겠다는 건지... 김정일 일당은 이런 질문에 답하기는 커녕, 입을 틀어막는다. 하지만, 우리사회에는, 이런 '새빨간 거짓말'에 맞장구를 치는 자들도 있다. 친북좌빨들과 그들에 의해 세뇌당한 일부 젊은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애당초, 대북원조는, 인도적 차원에서, 민간의 손에 의해 시작되었다. 정부가 나서면, 크게 도울 수 있었다. 하지만, 체제붕괴를 겁내는 북한정권의 방해로 이뤄지지 못했다. 우리 NGO(민간단체)들이, 민간활동이 존재하지 않는 북한을 상대로, 구원의 손길을 뻗는 일은 너무나도 어려웠다. 온갖 난관을 뚫고, 우리 NGO들은 구원의 손길을 뻗어나갔다.
  
  
  
  이 무렵, 2개의 '붉은 손'이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김정일의 '민족공조론'과, 김대중의 '기회주의적' 햇볕정책이 그것이다. 체제붕괴를 겁내, 우리 NGO의 앞을 가로막던 김정일은 남한의 대북원조를 전략적으로 활용하기로 방향을 선회했고, 김대중은, 순수한 동포애를 자신의 집권야욕을 이루는 정치적 기반으로 악용했다.
  
  우리는, 흔히 '민족공조론'을, '잘 사는 형이 못 사는 동생'을 돕는', 미풍양속쯤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김정일 일당의 '민족공조론'은 전혀 그런 것이 아니다. 저들이 말하는 '민족공조론'은 소수의 공산주의자들이 다수의 대중을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한 통일전선' 전술의 개정판(revised version), 쉽게 말하면, 김정일이 놓은 덫이다. '민족공조론'은 쉬운 말로 '우리민족 서로돕기'라고도 하는데, 서로 돕기는 무슨 얼어죽을 서로 돕기? 남한주민들이 피땀 흘려 축적한 부(wealth)를 일방적으로 빨아 먹으면서, 남한주민들을 정신적으로 무장해제시키는, 변종 '악성 코드'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평양발 '민족공조론'은, 큰 저항 없이 서울에 입성하는데 성공했다. 남한국민들이 김정일의 덫에 걸려든 것이다.북한이 서울에 입성한 것은 이번이두번 째다. 첫번 째는, 1950년 6월 27일, 김일성이 소련제 탱크를 앞세운 유혈입성이다. 두 입성의 차이는 유혈입성과 무혈입성, 그리고 '애비 먼저, 자식 나중' 뿐이다. 그렇다면, 김정일의 무혈입성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남한국민의 커다란 정서변화와, 김정일을 정점으로 하는 친북좌빨 세력이 이를 악용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이래, 수 십년 동안, 남한사회는 남북의 첨예한 군사적 대치 속에 지속되어 온 전시체제의 중압감에 시달려왔다. 뿐만 아니라, 친미반공을 표방하는 군사정권의 등장과 압제로, 국민 사이에 반정부-반미 정서가 급속히 확산되고, 민주화투쟁이 고조되었고, 기나 긴 민주화 투쟁의 절정에서, 한국사회는 마침내 '정치적' 민주화가 이룩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군사정권의 산업화 고도성장전략의 성공으로, '경제적' 풍요도 누리게 되었다.
  
  1990년대 초, 우리는 공산권이 붕괴되고, 어느날 갑자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이 통일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흡수통일 후, 통일비용 탓에 서독국민들이 얼마나 힘겨워하는가도 지켜 보았다. 우리사회에서는, 천문학적 통일비용 논의가 공론화되었고, 그 결과, 통일비용의 부담을 꺼려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통일도, 전쟁도 싫다는 정서와, 경제적 '풍요의 일부조차 잃기 싫다'는 안정심리가 자리잡게 되었다. 여론조사 결과, 젋은 층의 통일에 대한 무관심도 드러났다. 이 모두가 독일통일에서 얻은 학습효과 탓이다.
  
  국민정서의 이같은 변화를 김정일이 악용하게 된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노회한, 기회주의 정치인(opportunistic politician) DJ였다. 그는, 동독 흡수통일의 주역인 서독 브란트 수상의 '동방정책'을 복제(copy)하여, '햇볕정책'이라는 버전(veresion)을 출시했다. 그리고, 실향민 출신의 늙은 재벌의 망향심리를 교묘히 이용하여, 거액의 뒷돈 거래로, 2000년 6월 15일, 평양에 올라가 '평양회담'을 성사시키고, '6 15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그리고, 그 덕에, 노벨 평화상을 탔다.
  
  한편, 김정일은, 북한 1년 예산의 1/4에 해당하는 거액의 달러를 챙기는 동시에, 제 아비 김일성의 '6 25남침전쟁'을 지우고, 그 자리에 평화 냄새를 풍기는 '6 15공동선언' 을 써넣었다. 그리고 제 아비의 숙원사업인'연방제 통일'이라는 전략적 목표도 달성했다. 비록 '낮은 단계의'란 모자를 씌우기는 했지만... 김정일은, 가만히 앉아서 꿩 먹고 알 먹는 횡재를 한 셈이다.
  
  
  
  민주화 운동의 흐름 속에서 성장한 친북좌빨 세력은, DJ정권 속에서 숙성시킨 내공력으로, 2002년, 친북좌빨 노무현 정권을 탄생시키는데 성공했다. 노골적인 반미감정을 앞세운 노무현은, 청와대에 입성하자마자, 김대중의 '햇볕정책'을 업그레드시킨 포용정책(tolerance policy)을 출시했다. 포용의 상식적 의미는, '너그럽게 끌어 안는다'는 것, 노무현의 첫 마디는, '북한을 흡수할 의사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 두마디를 합성하면, 북한을 끌어 안고, 동반자로서 지내자는 것이다. 취임 이래 노무현의 발자취를 돌아보면, 노무현은 일관되게 김정일 일당을 두둔하고 옹호하는 언행을 볼 수 있는데, 이는 김정일의 동반자임을 각인시키는 증거다. 노무현은, DJ의 뒤를 이어, 대북 '퍼주기'를 시작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법적근거는, 이미 1990년 8월에 남북교류협력법으로 마련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를 모법으로, 남북협력기금법도 마련되었다.
  
  이 법률들은 2가지 특징을 갖는데, 하나는, 대북지원을 포함한 남북간의 경제거래를 '민족내부거래'로 규정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정부돈(국민세금)으로 대북 자금지원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에, 김정일도 맞장구를 쳤다. 2005년 7월,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정령 제1182호로, 전문 27조로 된 '북남경제협력법'을 제정, 공포했다. 이 법은, '민족공조론'을 경제적 측면에서 규범화한 것이다.
  
  그렇다면, 남북이 동시에 대북원조를 뒷받침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그것은, 한반도 전체에 '민족공조론'이라는 쌍방향 운영체제(operating system)깔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앞으로, 남은 작업은, 이에 맞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계속해서 업그레이드 시키는 것이다. 북한의 무력남침을 위한 '하드웨 땅굴'이 실패한 이래, '소프트웨어 땅굴'이 마련된 것이다.
  
  한편, DJ의 '전쟁은 없다'와 노무현의 '북한을 흡수할 의사가 없다'라는 말은, 그 동안, 김정일로 하여금 맘 놓고 남한정부를 농락할 수 있는 흥분제의 구실을 해왔다. 뿐만 아니라, 남한국민의 통일의지와 대북 경각심를 잠재우는 수면제 노릇을 하고 있다. 이 2가지 약효는 생각보다 크며, 그 결과, 남북관게에 '질적 변화'가 왔다. '굶어죽는 북한동포를 돕자!'가, 어느 새, '붕괴에 직면한 김정일을 살리자!'로 바뀐 것이다.
  
  
  
  민간과 정부의 대북지원을, 경제학적 용어로 정리하면, 각기 예산 내 수입(on-budget income)과 예산 외 수입(off-budget income)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리고, 후자의 경우, 북한재정 수입의 일부를, 정기적, 안정적으로, 남한의 재정에서 조달할 수 있고, 이를 뒷받침하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우리정부 예산구조에 내장(built-in)되어 있다는 것은 획기적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낮은 단계의 연방제라는 초기단계의 정치적 통합과 초보적인 재정통합이 쌍벽을 이루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합법적 통로(legal conduit)를 통하여, 북한이 남한의 국부(national wealth)를 큰 소리치며 공짜로 가져 갈 수 있다는 것은, 북한이 선군정치(military policy)의 핵 보유를 포기하지 않는 한, 남한이 북한의 병참기지(supply base)화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북한이라는 모기가 남한이라는 몸에서 제멋대로 피를 빨아먹을 수 있는 형국, 이것이, 김정일이 핵 개발의 마지막 작업을 은밀히 진행 해온, 지난 7년동안에 벌어진 일임을, 이제 아시겠습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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