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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궁전과 히포드롬

조춘화 |2007.05.08 13:22
조회 82 |추천 0




한국전쟁 때 참전하여 수많은 젊은이를 이국 땅에서 잃은 터키를 우리는 ‘형제의 나라’라 부르지만 터키에 대하여 아는 게 별로 없다. 그러나 대부분 유럽여행상품에 터키를 포함하는 이유를 터키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
유럽인들은 동양의 흔적을 찾아오고, 동양인은 유럽의 흔적은 찾아온다는 터키 이스탄불은 역사학자 토인비가 “인류 문명의 살아있는 옥외 박물관”이라는 말이 전혀 과장이 아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지하궁전 에레바탄 사라이(Yerebatan Saray 지하 물 저장고)



지하궁전이라 안내하기도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지하 물 저장소이다. 허물어진 고대 그리스-로마시대 건물들의 기둥들을 모아서 만들었기 때문에 지하에 만들어진 궁전 같은 위용을 자랑한다.

지하 궁전의 입구는 대로변에 일반 건물 입구와 다를 바가 없어 그냥 지나칠 정도로 단층의 조그마한 건물이다. 하지만 지하로 내려가면 특이한 음향효과와 조명으로 음침한 느낌을 준다. 바닥에는 아직도 무릎높이 정도 물이 괴어 있고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소리도 분위기에 한몫 한다고 할 수 있다.

이스탄불 Aya Sofya 입구에는 히포드롬이 있고 전차길 건너에 (Yerebatan Cadeesi) 돌기둥이 하나 서 있고 그 돌기둥 뒤 에 Yerebatan Sarnici 또는 지하궁전이라고 불리는 비잔틴 시대의 지하 저수조 입구 건물이 보일듯 말듯 조그맣게 서 있다.

유스티아누스황제 (Justinian) 때인 532년에 건설된 이 지하수조를 서양에선 Basilica Cistern (교회 저수조) 라고 부르는데 교회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비잔티움시대에 Stoa Basilica 아래에 위치해 있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가로 70m, 세로 140m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로 저수용량은 80,000 m3 에 달하고 336개의 기둥이 28개씩 12줄로 배열되어 천장을 받치고 있다. (기둥은 4m 간격으로 8m높이로 서 있다) 저장용량은 적군의 포위가 장기화 되었을 때 도시 상당부분의 수요를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양이라고 한다.

비잔틴 시대엔 톱카피궁전 등에 물을 공급하는 용도로 사용 되었고, 오스만터키제국에 의해 정복 된 뒤에는 궁전 정원용수로 사용 되기도 했지만 1세기정도 지나 지하수조의 존재 자체가 잊혀졌다고 한다. 비잔틴 제국이 적에게 포위당하는 비상시 사용 목적으로 건설되었다는 설이 설득력이 있다.

물은 이스탄불에서 20Km 떨어진 흑해지역에서 수도를 따라 끌어 왔다. 1545년에 주민들에 의해 발견 되었지만 이후 오랜 세월을 각종 쓰레기장화 되어 거의 폐허가 되었다가 이스탄불시가 1985년~1988년까지 새롭게 정비하여 관광 명소로 탈바꿈했다. 지하 저수조의 은은한 조명과 낮게 깔리는 모짜르트나 비발디의 음악소리, 천장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소리등은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자세히 보면 지하수 속에 고기들이 헤엄쳐 다니는 것을 볼 수도 있다. 나오는 입구에 카페도 있어 묘한 분위기의 어두운 지하 저수조를 바라보며 차를 마실 수도 있다.



저수조의 끝에는 메두사의 두상 (Medusa head)이 거꾸로, 옆으로 세워진 돌기둥이 2개 있어서 관광객들의 사진 촬영장소가 되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메두사는 원래 검은 눈, 긴머리, 아름다운 몸을 가진 소녀였는데 여신 아테네의 신전에서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정을 통해 아테네 여신의 저주를 받는 바람에 그녀의 눈을 보는 사람마다 돌로 변해 버리는 무서운 괴물로 변하였다고 한다. 이 메두사 두상은 원래 이곳에 있었던 것이 아니고 다른 곳의 고대 건물에 사용 되었던 것을 지하수조 건설시에 옮겨와 사용 한 것이라고 한다.

히포드롬(원형경기장)

터키 이스탄불을 관광하다보면 역사학자 토인비가 “인류 문명의 살아 있는 옥외 박물관”이라 했다는데 무조건 동의하게 된다. 지금까지 소개한 톱카피궁전, 블루모스크, 아야소피아, 돌마바흐체궁전을 위시하여 이스탄불 구시가를 감싸고 있는 3중의 성체, 지하물저장고를 비롯하여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공인하면서 세워진 동로마제국과 회교문명의 흔적들로 동서양 역사를 안고 있다.

아야소피아와 연결되어 있는 블루모스크(Blue Mosque) 우측면의 광장에는 오빌리스크와 뱀기둥, 석탑이 서 있는 광장이 있는데 이곳은 비잔틴제국 당시 마차경주와 검투경기 등이 펼쳐지던 히포드롬(원형경기장)이었다. 길이 400m에 너비120m로 약 4만명(10만명이라는 설도 있음)의 관객이 앉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두 번의 참수가 있었다. 비잔틴 제국시 4만 명의 반란군이 참수되었고, 오스만 제국시에는 3만 명의 근위대가 참수된 비운의 장소이기도 하다.

히포드롬은 1204년 십자군에 의해 파괴, 약탈당했다. 훗날 투르크인들은 히포드롬의 돌들을 블루모스크를 짓는데 이용했다. 또 고대 히포드롬은 말을 조련하는 장소로 이용해서 AT MEYDAN ( HORSE SQURE)이라 불렀다.

오리지널 건물에서 단지 세 개의 기념물만 남아 있는데, 그것은 오벨리스크, 뱀기둥과 콘스탄티누스 기념탑이다.


히포드롬의 오벨리스크는 BC15세기 이집트 고대도시 룩소에 있는 카르낙의 AMON-RA신전 앞에 세워졌던 두 개의 오벨리스크 중에 하나이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졌고, 상형 문자가 새겨져 있는데 투트마시스 3세를 칭송하는 내용이다. 원래는 지금의 오벨리스크보다 더 큰데 그 이유는 수송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일부러 자를 수밖에 없었다. 현재 오벨리스크의 크기는 19.60m이다.

오벨리스크란 고대 이집트인들이 숭배해온 태양신 라(Ra)의 상징이다. 그런데 문제는 피라미드와 더불어 이집트를 대표하는 이 보물이 16세기 중엽부터 식민지 건설을 위해 아프리카 대륙에 침입한 유럽인들에 의해 대부분 해외로 유출되어 현재는 미국ㆍ영국ㆍ프랑스ㆍ이탈리아ㆍ터키ㆍ러시아 등지에 두루 퍼져 있는데다가 마치 자기 나라의 문화 유산인 양 당당하게 세워져 있다.

알렉산드리아의 로마통치자는 AD 390년 테오도시우스 황제에게 보냈다. 오벨리스크는 비잔틴 대리석위에 세워져 있는데, 그 네 변에는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오벨리스크가 세워지는 것을 지켜보는 장면, 전차경주, 노예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장면, 마지막으로 승자에게 월계관이 선사되는 장면이 새겨져있다.

청동뱀기둥(THE SERPENTINE COLUME)은 살라미스(BC 480년)와 플라테(BC 479년)에서의 전쟁에서 페르시아를 패배 시키고 나서 31개의 그리스 도시연맹은 페르시아인들의 청동무기를 녹여서 세 마리의 뱀이 꽈배기처럼 얽혀있는 뱀 동상을 델피의 아폴론 신전에 세워 놨다. 원래의 높이는 8m, 현재는 5.30m이다. 4세기에 콘스탄틴 황제가 이곳으로 가져왔는데 뱀의 머리부분은 하나는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에, 하나는 영국에, 남은 하나는 사라져 콰베기 같은 몸통만 남아있다.



콘스탄티투스 기둥은 오벨리스크처럼 하나의 돌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누가 이것을 세웠는지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10세기에 콘스탄틴 7세와 그 아들 로마누스 2세에 의해 재건축, 재복원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래의 탑은 4-5세기 경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높이는 오벨리스크 보다 높은 32m. 원래는 청동으로 도금이 되어 있었는데 1204년 제4차 십자군 전쟁 때 십자군에 의해서 약탈됐다. 이 탑의 청동 조각을 현재 베네치아의 성마르코 광장에서 볼 수 있다.



히포드롬의 오벨리스크 반대쪽에는 이상하게 생긴 정자모양이 있는데 ‘독일의 샘’이라는 분수대란다. 8각 지붕의 독일 분수라고도 한다. 이 유적은 1898년 독일의 빌헬름카이저2세가 오스만터키제국과 동맹을 맺은 후 환대를 받고 축하하는 의미로 헌정한 분수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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