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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미혼모들에게 돌을 던지나?

윤경섭 |2007.05.12 03:42
조회 477 |추천 6
본래 미니홈피에만 올리려고 적었던 글이라 개인적인 내용, 또는 종교적인 내용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저의 종교는 가톨릭이며, 타 종교 역시 존경하고 존중합니다. 하지만 저의 개인적인 사정이나 종교와 무관하게 제가 말씀드리고 싶어 하는 내용은 하나라는 것을 읽어보시면 알게 되실 것입니다. 앞부분은 알아두시면 유익할 낙태에 관한 법적인 지식, 뒷부분은 미혼모에 관한 저의 생각입니다. 많은 분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여기로 보내지만 토론은 광장에서만 해주세요. 미니홈피는 제 개인적인 공간으로 두고 싶습니다. 제가 원래 그렇진 않은데.. 부분에 따라 말투가 가끔 강경할지도 몰라요. 이해해주세요.^^; 감사합니다.☆   형    법

제269조 (낙태)

① 부녀(婦女)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어 낙태하게 한 자도 제1항의 형과 같다.

제270조 (의사 등의 낙태, 부동의낙태)

① 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어 낙태하게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②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없이 낙태하게 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④ 7년 이하의 자격정지를 병과한다.

 

모자보건법

제14조 (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

① 의사는 다음 각호의 1에 해당되는 경우에 한하여 본인과 배우자(사실상의 혼인관계에 있는 자를 포함한다. 이하 같다)의 동의를 얻어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다.

1. 본인 또는 배우자가 대통령령이 정하는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2. 본인 또는 배우자가 대통령령이 정하는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3.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하여 임신된 경우

4.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간에 임신된 경우

5. 임신의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히 해하고 있거나 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

 

 

 

법조문을 제시한다. 낙태는 범죄다. 하도 많이들 하니까 기소를 하고 있지 않을 따름이다.

 

모자보건법이 5가지 위법성조각사유(違法性阻却事由)를 규정하고 있기는 하다. 크게 3가지로 대별되는데, 우생학적 적응(부모의 우생학적·유전학적정신장애나 전염병), 윤리적 적응(성폭행 및 근친상간으로 인한 임신), 의학적 적응(모체건강의 위험)이 그것이다.

 

그러나 혼인관계 없는 남녀 사이의 임신이나 경제적 사정은 정당화 사유가 아니며, 이 경우 낙태를 하면 낙태한 여성은 물론 낙태해준 의사도 징역형에 처해 질 수 있는 형사상 범죄이다.

 

대법원의 입장은 확고하다.

모자보건법 제14조 1항 5호의 사유, 즉 “모체의 건강을 심히 해하거나 해할 우려”란 아무 때나 인정되는 것이 아니다. 모체의 생명만이라도 구하기 위해 부득이한 경우여야 한다.

 

 

 

대법원 2005. 4. 15. 선고 2003도2780 판결 중

“인공임신중절수술이 허용되는 경우의 하나인 모자보건법 제14조 제1항 제5호 소정의 '임신의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히 해하고 있거나 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라 함은 임신의 지속이 모체의 생명과 건강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하게 되어 모체의 생명과 건강만이라도 구하기 위하여 인공임신중절수술이 부득이하다고 인정되는 경우를 말한다.”

 

 

 

또한 낙태죄가 잘 처벌되지 않는다고 하여 결코 사문화 된 조항이라고도 할 수 없고, 형법 제270조의 의사의 동의낙태죄 처벌규정과 관련, 의사가 산모의 부탁이 있을 때 중절수술을 거절하는 것이 기대불가능하다고 할 수도 없다(형법상 기대불가능성이 인정되면 책임이 조각되어 범죄는 성립하나 처벌되지 않는다).

 

 

 

대법원 1985. 6. 11. 선고 84도1958 판결 중

“인간의 생명은 잉태된 때부터 시작되는 것이고 회임된 태아는 새로운 존재와 인격의 근원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지니므로 그 자신이 이를 인식하고 있는지 또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지에 관계없이 침해되지 않도록 보호되어야 한다 …

비록 모자보건법이 특별한 의학적, 우생학적 또는 윤리적 적응이 인정되는 경우에 임산부와 배우자의 동의 아래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허용하고 있다 하더라도 이로써 의사가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으면 일체의 낙태행위가 정상적인 행위이고 형법 제270조 제1항 소정의 업무상촉탁낙태죄에 의한 처벌을 무가치하게 되었다고 할 수는 없으며 임산부의 촉탁이 있으면 의사로서 낙태를 거절하는 것이 보통의 경우 도저히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할 수도 없다.”

 

 

 

또한 낙태는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상속법상 ‘살인’으로 간주되며 이는 상속자격 박탈 사유이다. 낙태를 시도하기만 한 경우에도 같다.

 

 

 

민    법

제1004조 (상속인의 결격사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한 자는 상속인이 되지 못한다.

1. 고의로 직계존속, 피상속인, 그 배우자 또는 상속의 선순위나 동순위에 있는 자를 살해하거나 살해하려한 자

 

 

 

보통 임신부가 태아를 낙태하게 되면 대개 자기에 대해 태아는 상속의 선순위자나 동순위자가 된다. 이 태아를 낙태하면 상속의 선순위자나 동순위자를 살해한 것이 된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이다. 절차도 필요없이 자동결격이 되므로 상대방이 소송에서 주장하기만 하면 된다.

 

 

 

대법원 1992. 5. 22. 선고 92다2127 판결 중

“태아가 상속의 선순위나 동순위에 있는 경우에 그를 낙태하면 민법 제1004조 제1호 소정의 상속결격사유에 해당한다. … 같은 법 제1004조 제1호의 요건으로서 ‘살해의 고의’ 이외에 ‘상속에 유리하다는 인식’은 필요로 하지 아니한다.”

 

 

 

낙태가 합법인 줄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좀 보라고 적는 것이다.

낙태는 모자보건법에 제시한 3종류의 정당화사유에 해당되는 경우 외에는 엄연히 형사상 범죄일 뿐만 아니라 상속법상 상속권 박탈 사유이다.

 

물론 교회에서는 낙태를 금지한다. 낙태하는 자 뿐 아니라 낙태를 주선한 자도, 물론 사면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있기는 하지만, 자동파문된다.

 

 

 

교회법

제1398조 낙태를 주선하여 그 효과를 얻는 자는 자동 처벌의 파문 제재를 받는다.

CODEX IURIS CANONICI

Can. 1398. Qui abortum procurat, effectu secuto, in excommunicationem latae sententiae incurrit.

 

 

 

교회에서 낙태가 예외적으로 정당화 되는 경우는 ‘태아와 모체의 생명이 모두 위험하여 모체를 치료하는 과정에 부수적으로 수반하여 태아가 간접적으로 낙태되는 경우’ 뿐이다.

 

따라서 교회는 모자보건법에 예외적 임신중절허용규정을 두는 것도 부당하다고 보아, 모자보건법의 폐지 내지 전면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물론, 법조계에서도 임신중절의 예외적 허용사유를 더 넓게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결코 적지 않다. 나는 사시1차시험을 준비할 때 신림동의 최고인기 형법강사인 신 모 선생의 형법교과서를 보다가, 낙태죄 부분에서 모자보건법의 3가지 적응(정당화사유)인 우생학적·윤리적·의학적 적응 외에 경제적 적응(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낙태허용)을 두는 게 바람직하다며 이 법을 비판한 페이지를 보면서, 너무 화가 나서 그 부분을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던 적이 있다.

 

법학계의 입장도 이 정도일진대, 모자보건법에서 그 3가지만의 정당화사유를 두고 나머지를 방어해 주는 것을 이제 감지덕지해야 할 판이다. 따라서 나는 국가법적인 입장에서는 형법과 모자보건법, 그리고 상속법에 관한 대법원의 입장을 존중한다. 교회의 입장을 일반인들 사이에 바로 관철시킬 수는 없으므로 일반인들의 인식을 고려하여 모자보건법에서 그 정도의 예외규정을 두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법적이지 않은 다른 영역에서는 낙태에 대하여 교회와 입장이 같다.

 

생각해보라.

우리는 모두 엄마 뱃속의 아기였다.

뱃속에 있는 아기와 뱃속에서 나온 아이에 본질적인 가치의 차이가 있는가?

 

낙태를 두고 아이를 ‘지운다’고 한다.

지운다... 이처럼 기가 막힌 말이 없다.

아이를 얼룩 정도로 생각하나보다.

아니지 어쩌면 얼룩 정도의 느낌을 주는 저 말로, 애써 부인하고 싶은, 애써 외면하고 싶은, 애써 감추고 싶은 고뇌와 번민이 담겨있는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말의 껍데기를 벗겨보자.

그 아이는 빨면 지워지는 얼룩이 아니라 생명이며,

낙태는 살인이다.

임신기간, 나아가 세포분열과 기관발달의 정도를 놓고 가치를 논하는 입장도 이해할 수 없을진대, 모체와 분리되어 생존할 가능성을 가지고 생명의 가치를 구분하는 입장은 더더욱 그렇다.

 

어린이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존재라 한다. 꿈나무라 한다.

하지만 인격과 신체의 발달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사회가, 어른들이 어린이들을 모든 폭력과 위협과 비도덕한 것들로부터 보호해주어야 한다고 한다.

 

그럼, 갓난아기는? 당연한 것이다.

 

그럼, 태아는? 배아는? 당연한 것이다.

 태아야 말로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생명이다. 어린이처럼, 시간이 흐르면 성인으로 자랄 것이다. 어린이만큼의 인생행로도 걷지 않았기 때문에 그 가능성은 더 크다. 하지만 어린이만큼의 자기결정권도 없다. 한마디 말도 해본 적이 없다. 죽이면 죽어야 한다. 스스로를 보호할 능력이 없다(태아는 죽이려고 하면 뱃속에서 소스라치게 꿈틀거리며 낙태기구 반대편으로 피한다고 한다. 그러나 배아는 꿈틀거리지조차 못한다). 그러므로 보호해주어야 한다.

 

어떤 자는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사람이 아니지!”

 

자기결정권이 없다고, 말을 못한다고, 자기 보호능력이 없다고 죽어야 한다면,

이 말은 곧 정신장애인, 언어장애인, 지체장애인은 모두 죽어야한다는 말과 같다.

이들이 인격이 없는가?

하물며 태아나 배아는, 보호해주면 완전한 성인으로 성장할 것이다.

그대로 두면 성장하여 자기결정권을 가지고, 말을 하며, 스스로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이 된다. 인류평화를 위해 헌신할 위인이 될 수도 있고, 뛰어난 과학자가 되어 인간사회를 풍요롭게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생명을 죽이려 한다.

 

인간의 존엄은 헌법이 선언하는 최고의 가치로, 그 중에서도 생명권은 절대적인 기본권이다. 기본권의 본질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다른 이유로 침해할 수 없다.

생명을 다른 가치와 교량해야 한다면, 그 다른 가치는 생명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모체의 생명이라도 구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간접낙태는 용인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다른 이유로 한다.

 

또 딸이야?

부터 시작해서

 

어차피 커도 불행할 거야.

낳는 게 애한테 더 못할 짓이야.

 

괴로울 것이다. 하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라.

과연 그 아기를 위하여 죽이는 것인가?

아기가 죽고 싶다고 했는가?

자기결정권을 아직 가지지 못했고,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방어조차 할 수 없는 아기이다.

생명은 소중하기 때문에 자살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한다.

그가 잘못 판단하고 있는 것이므로 자살하는 사람도 살려야 할 판국이다.

그런데,

그 말 한 마디 할 수 없는 아기를 두고 어른들은 자기들끼리만 그 생명을 재단한다.

목숨이 왔다갔다한다. 자기들끼리, 진술 한 번 들어보지 않고 재판하여, 사형을 선고한다.

 

이젠 솔직히 말하라.

아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위해서이다.

어떤 이유를 가져다 붙인다 하여도, 자기 욕심을 위해서이다.

아기가 아니라 내가 힘들기 싫어서이다.

내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고, 경제적으로 혹은 육체적으로 힘들기 싫어서이고, 내가 직업을 포기하기 싫어서이다.

 

낙태가 아니라 살인을 저지르는 이유도 사실은 그런 식이다.

명예를 위해서, 돈을 위해서... 그렇게 사람을 죽인다.

살인도 정당화되는 단 한 가지의 예외는 자기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살인이다.

다른 사유는 참작의 대상이 될지언정, 그래도 살인은 처벌해야할 대죄이다.

낙태도 생명을 지키기 위한 낙태 외에는 정당화 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그래도 성폭행으로 임신한 경우까지 낙태를 막아야겠느냐고.

범죄의 소생인 그 아기를 키우며 평생 상처를 안고 살 여성의 입장을 생각해 봤냐고.

국법은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오랜 고민 끝에, 피해여성의 입장에서도 생각하려 애써보고 오래 생각한 끝에, 그 역시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무리 그것이 괴로울 지라도, 아기는 죄가 없다.

그 역시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한 우주이며 생명이다.

생명의 교량 대상은 생명이 되어야 하지 명예나 다른 가치가 될 수 없다.

의붓딸이 십 년 넘게 자신을 상습성폭행해온 의붓아버지를 견디다 못해 살해한 경우라도, 참작과 연민은 할 수 있을지언정 살인은 살인이다(실제 대법원 판례사안).

하물며 그 칼끝을 가해자도 아닌 죄 없는 아기에게로 돌린 경우 이것이 어찌 정당화되겠는가.

 

 

 

오늘 공부를 제대로 못했다.

어이없게도 네이버 뉴스 댓글란에서 낙태가 합법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법조문을 들어 조목조목 반박해주느라 기운을 뺐다(그래도 끝까지 우기더라).

(기사보기: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S2D&office_id=023&article_id=0000251078&section_id=102&section_id2=257&menu_id=102)

네이버 뉴스 댓글란은 정말 없애달라고 하고 싶다. 그곳에서는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배설’을 해대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남의 상처는 아랑곳 하지 않고 내키는 대로 쭉쭉 쏟아내는 그것, 최근에는 사람도 몇 죽게 했다는 그 ‘악플’들은 언어작용이라고 할 수 없고 생리적인 배설이다.

평소 같으면 코를 막고 지나칠 그 ‘배설물’들 사이를 오늘은 내가 한심하게도 헤집고 다녔다.

 

왜냐면, 왜냐면 그 속에 내가 도저히 그냥은 지나칠 수 없는 단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미혼모.’

 

나는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이 단어가 가슴 아픈지 모르겠다.

그 조선일보 기사는 철 모르던 시절 차마 낙태하지 못하고 아기를 낳아 미혼모가 된 다음 눈물을 머금고 아기를 위탁가정에 맡겼는데 어렵게 상대 남자와 결혼하고 가정을 일으켜 꿈에 그리던 자기 아기를 되찾아온 한 스무 살 엄마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 밑에 네티즌들은 배설을 해댄다.

 

-아기를 위해서라도 지워야지.

-아기 생각은 안 하냐. 뭐 하러 낳았냐.

-국가에서 낙태보조금을 주어야 한다.

 

예전에 기르고 싶지만 여건이 안 되어서 눈물을 머금고 아이를 버리는 미혼모들에 관한 기사를 봤을 때는 더했다.

(기사보기: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OD&office_id=055&article_id=0000087255)

 

-즐길 때는 좋았지?

-키우지도 못할 걸 왜 낳냐.

 

나는 이런 말을 듣고 도저히 눈물이 나서 참을 수가 없다.

요즘 기술에 낙태를 못해서 그 엄마들이 아이를 낳았을까?

 

그 엄마들은 아기를 꿈 속에서도 수십 번은 더 죽이면서 울었을 것이다.

숱한 유혹과 정신적 고통과 사회적 냉대 속에서 아이를 낳을 결심까지 하기까지, 그 어린 엄마들은 얼마나 많은 날들을 뜬 눈으로 눈물 속에서 고민했을 것인가?

 

설사 아기를 낳아서 키우지 못해 입양시설 앞에 버리고 왔다고 해도,

그 미혼모들이 진짜 ‘버렸다고’ 생각하나?

순간의 실수를 했어도 생명을 살리겠다는 생각에,

애 아빠도 외면한 자식 혼자 낳아서,

자기보다 나은 부모 만나라고 친아들 친딸과 생이별을 하고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는 미혼모 생각을 한 번이라도 그 입장에서 해본 적 있는가?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면 가슴이 저릿저릿하다.

그 엄마들은 가슴이 실제로 찢어질 것이다.

 

물론 한 때의 불장난 유혹을 이기지 못해 실수를 한 것은 잘못이지만,

이런 말로 그 엄마들의 영혼을 다시 한 번 후벼 파는 말을 하는 자들은 과연 그들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한가?

 

사람은 누구나 범죄자가 될 수 있다.

누구나 되기 쉬운 과실범도 사실은 예방에 힘쓰지 않아서 일어나고, 사실 고의범인 절도, 강도, 강간, 살인도 누구나 충동을 조절하지 못하여 저지를 가능성이 있는 범죄이다.

하물며 아이를 만드는 일은 윤리적으로는 비난받지만 범죄도 아니다.

죽일 수도 있었는데,

결국 그 엄마들은 자기를 희생해서 생명을 지키는 쪽을 택했다.

그런데 그들은 그런 일이 생기면 아무렇지도 않게, 얼룩 지우듯 아이를 ‘지워버릴’ 것이다.

‘아기를 위해서’라고 하면서.

‘아기를 위한다면서’ 아기를 죽일 것이다.

 

솔직히 말해보라.

언젠가 자기에게 날아올 화살을 피하기 위해,

그럴 듯한 변명으로 그 뒤에 숨기 위해,

그 애처로운 어린 엄마들에게 돌을 던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주 오래 전, 1년도 전에 싸이월드 ‘투멤’에 특이한 사람이 선정된 적 있다.

“열여덟 살 왕초보 애엄마”

나는 그 타이틀이 너무도 끌려서 그 홈피에 들어갔다.

그 역시 한 때의 실수로 일찍 임신하고 학교까지 그만두고 중절도 여러번 계획했지만, 아이를 죽일 수가 없어 남자친구와 어른들을 설득하고 이제 결혼하여 꿋꿋하게 아기를 키우면서 사는 분이었다. 역시나 네티즌들은 그곳에도 ‘투멤’ 선정기간인 단 하루만에 그녀의 상처를 후벼파는 배설물들을 토해놓고 있었다.

 

그때 그 ‘왕초보 애엄마’께서 네티즌들을 향해 자기 미니홈피에 썼던 글이 1년도 지난 지금 생생하다.

오늘 아까 그 기사를 보고 그때 그 사람 생각이 너무 나서 그 홈피에 가봤더니 그 부분은 닫히고 없는 것 같았지만 내 기억으로 대충 이랬다. 거의 같을 것이다.

 

“네. 저는 발랑 까져서 열일곱에 애도 낳았습니다.

걸레입니다.

욕도 무지 잘합니다. 욕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제 아이 앞에선 욕하지 마세요.

제 아이가 무슨 죄인가요?

저도 제 애 앞에서는 욕 안합니다.”

 

그 왕초보 애엄마는 이 몇 줄을 쓰면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쏟았을까. 

 

나는 너무나 슬퍼서 그 ‘배설물’들을 볼 때마다

그렇게 상처받은 미혼모들이 혹시나 이 악플을 보고 그 상처가 덧나서 며칠 잠을 설칠까봐,

인터넷상에 떠있는 그 글을 내 몸으로 가서 가려주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서 위로하는 글이라도 써서 그 악플을 한 칸이라도 밑으로 내려주고 싶다.

옹호하는 글이라도 써서 조금이라도 그 악플을 희석시켜주고 싶다.

조금이라도 덜 아프라고

미안하다고.

내가 잘못했다고.

 

난치병으로 고통받는 사람의 생명을 장기기증하여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면,

전쟁을 멈추어 무고한 생명의 희생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면,

생명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더 이상의 자살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면,

무장 세력에게 납치된 한 명의 민간인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면,

어머니의 뱃속에서 자라는 하나의 희망, 그 하나의 생명을 살려내는 것이야 말로 정말 소중하고 중요하다.

 

너희는 이것을 스스로를 희생해가면서 지켜냈는데,

그런 너희야말로 이 사회의 성직자인데,

너희들은 이 때문에 다시 얻어 맞고, 아프고... 신음하고, 울고....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너희를 위해 제대로 해준 것도 없으면서,

아이를 기를 수 있는 터전 하나 복지정책하나 갖추어주지 않았으면서

힘들게 생명을 살리는 결정을 했으면 감사하지는 못할 망정 손가락질 하는

이 사회의 일원이어서 미안하다고.

너희에게 돌을 던질 자격이 있기는 커녕 고맙다고 해도 모자란 우리인데,

그 날아오는 돌을 막아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말해야 하는데 그 말도 차마 못하게 미안하다고.

그리고 아기와 생이별을 해야했던 미혼모들에게는,

너희 아기를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얼마나 아기가 보고 싶을까... 얼마나 아기 얼굴이 눈에 아른거리고 괴롭고 미안했을까.

 

 

 

생명을 살리고서 돌팔매를 당하고, 손가락질 당하고, 냉대 당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나는

작은 예수님을 본다.

예수님도 모든 이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얻어 맞고, 모욕을 당하고, 발길로 채였다.

 

그만큼 했으면 되었다. 그만하라. 제발... 제발 이제는 그만하라.

그렇게 소리치고 싶다.

예수님의 뚫린 상처를 더 후벼 팔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저 존경스런 미혼모들을 변호하지 않을 수 없다.

미혼모라는 눈물나도록 슬프고 거룩한 이름을 변호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을 돌아보라. 우리가 미혼모들 앞에서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나설 수 있는가.

우리 모두가 부끄럽지 않은가.

결코 깨끗하지 않으면서, 내 욕심만 챙길 것이면서, 더럽고 방탕하면서,

깨끗한 척, 도덕적인 척,

돌을 던질 수 있는가?

자기를 희생해 한 생명을 지켜낸 미혼모들에게...

 

 

 

나 역시 자격이 없는 죄인이기에,

나는 내가 아닌 예수님의 말씀을 빌어 엄숙히 선언한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요한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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