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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발자유, 왜 되어야 하는가?

이노을 |2007.05.15 22:34
조회 158 |추천 5

이 글은 제가 직접 쓴글이 아니라

 

네이버 청소년 인권 관련 카페에서 글을 퍼온것입니다.

 

출처는 까먹었네요, 죄송합니다.

 

두발 자유를 찬성 하시는분들 반대하시는분들 상관없이

 

꼭 봐주시길 바랍니다.

 

내용이 반말로 되어있는데요, 양해바랍니다 ~

 

그리고, 글이 좀 길긴 합니다만 인내심을 가지시고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

 

꼭이요 !

 

 

 

 


 


두발자유는 인권이야. 국가인권위원회도 두발자유가 기본권임을 인정했지. 두

발자유는, 적극적인 의미에서 ‘신체의 자유’에 해당하고 ‘표현의 자유’나

‘개성발현권’의 측면에서 두발자유를 이야기할 수도 있어. 국가인권위원회가

두발자유를 기본권이라고 인정한 입장은 ‘개성발현권’이고 ‘사생활의 자

유’, ‘자기결정권’이라는 것이었어. 여기에서 개성의 자유로운 발현권이란

건 뭐, 쉬운 말로 고치면 “멋 낼 권리”지. 이 개성발현권을 행복추구권의 일부

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행복추구권 입장은 일본 같은 경우가 대표적으로, 일본

은 두발자유를 행복추구권으로 인정한 전례가 있다고 해.


두발자유가 인권이고 기본권이라는 사실은 실로 엄청난 의미를 지니고 있어.

왜냐하면 사람들의 인권을 제한하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기준을 만족시킨 후에야

가능하거든. 현대 사회의 목적은 바로 사회 구성원들의 인권을 잘 보장하고 행복

을 증진시키는 거야. 즉, 사회의 목적 자체가 인권보장인 건데 그런 사회가 인권

을 제한하려면 그것이 불가피하고 별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하는 거

야. 인간에게 봉사하라고 만들어진 로봇이 어쩔 수 없이 한 인간을 죽여야 한다

면, 왜 그래야 하는지, 뭐 예를 들어 그 인간을 죽이지 않으면 그 인간이 다른

수천 명을 지금 당장 죽일 거라든가 뭐 그런 사유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이

야기야.(내가 사형제에 찬성하는 건 아니지만.)


인권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거냐, 하면 「세계인권선언」 전문(前文)에 보면 사

람들이 폭동(혹은 폭력적인 혁명)을 일으키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인권

을 사회가 보장해야 한다고 써있어. 이걸 바꿔서 말하면 사회가 기본적인 인권

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면, 혹은 오히려 침해한다면, 사회를 폭력적인 방법으로 뒤

엎어도 된다는 거잖아? 이게 바로 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했을 때 사람들이 가지

게 되는 ‘저항권’이야.


그리고 두발자유가 기본권이자 인권이라는 주장은, 두발규제가 당연한 상태가

아니라 두발자유가 당연한 상태이며 두발규제는 두발자유에 대한 제한이고 예외

적인 경우임을 뜻해. 이렇게 될 경우에는 두발자유라는 인권을 제한하고자 하는

쪽에서 두발규제가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지 입증할 책임을 지게 되지. 많은 교사

들이 두발자유를 주장하는 청소년들에게 두발자유를 왜 해야 하는지, 그래도 문

제가 없는지 입증해보라고 하지만, 그럴 책임은 청소년들에게 없다는 소리야.

곧 두발규제를 하려는 쪽에서 두발규제가 왜 필요한지, 두발자유가 타인의 기본

권을 침해하거나 혹은 사회의 유지를 불가능하게 하는지, 공공복리나 공익을 현

저하게 저해하는지 뭐 그런 것을 증명해야 해.


두발자유는, 굳이 그것이 성적과 관계가 없다는 것, 아니면 두발자유를 해도

알아서 ‘교사들 만족시킬’ 머리를 하고 다닐 거라는 것 같은 걸 증명 따위 하

지 않아도 당연히 누려야 하는 권리야. 성적이 낮은 학생들을 물고문, 전기고문

해서 성적을 올리게 하는 것이 옳지 못한 일인 것과 마찬가지지. 두발규제를 해

서라도 면학분위기를 유지하겠다는 것은 인권보다 입시교육에서 좋은 결과를 내

는 게 더 훌륭한 가치라는 소리잖아. 성적이 낮은 학생들도 비인간적인 고문을

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듯이, 우리에게는 두발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어.





좀 더 세세하게 기본권을 제한할 때 필요한 요건을 열거하면, 먼저 기본권을

제한하려는 목적이 정당해야 해. 그리고 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 기본권을 제

한하는 것이 불가피해야 하고, 제한할 때도 권리의 본질적인 부분은 제한할 수

없으며 그 제한이 필요최소한의 것이어야 해. 기본권을 제한해서 얻게 되는 이익

(정의, 공공복리 등)이 기본권 제한 때문에 잃게 되는 정의와 균형이 맞을 정도

여야 하고…. 이러한 기본권의 제한은 국회에서 정한 법률로만 가능해. 신체적·

정신적·정치적 자유의 경우는 제한 조건이 좀 더 엄격해서 구체적이고 실질적이

며 현존하는 긴급한 위험이 있을 때만 제한할 수 있지.


이 조건에 두발자유 문제를 대입해보자. 두발규제를 하는 목적은, 바로 학생들

을 쉽게 통제하고 교사의 폭력에 순종하게 만들며 권위주의적인 학교 질서를 유

지하기 위해서야. 이 목적은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에 위배되며, 명시적으로는

교육기본법의 취지에도 위배돼. 또한 두발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불가피한 일도

아니며 학교 질서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서 적절하지도 않아. 지금까지 두발자유

와 청소년 범죄나 다른 학생에게 피해를 주는 정도 등의 인과관계는 제대로 증명

된 적이 없거든. 게다가 두발자유는 신체적 자유인 동시에 정신적 자유에 해당하

니까, 두발자유로 인해 실질적이고 현존하는 긴급한 위험도 없고 두발자유가 분

명하게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도 아닌 이상 제한할 수 없어.


법률로써 제한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기도 모호해.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는

학칙에 들어가야 할 항목들이 있는데, 여기에 학생의 용의복장을 규제할 수 있다

는 항목은 없어. 결국 ‘학생징계’의 한 기준으로 ‘학생생활규정’, ‘용의복

장규정’ 등을 두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지. 이는 두발자유를 비롯한 용의복장

의 자유가 기본권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절차를 밟아 제한되고 있는 것이 아

니라 학교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규제되고 있다는 거야. 설령 법률로써 두발자유

를 비롯한 기본권을 제한하더라도 그 정당성이 거의 없으며 위헌, 인권침해 소지

가 다분한 판에 이는 학칙 제정 과정에 당사자인 학생들이 참여하지 못한다는 현

실과 함께 절차적인 정당성도 없다는 걸 뜻해.



두발자유가 기본권이자 인권이라는 말은 이처럼 두발자유가 손쉽게 건드리고

규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의미해. 그럼에도 애매모호한 ‘질서’나 ‘분위

기’, ‘보기 안 좋다.’. ‘학생답지 않다.’ 등의 말로 인권을 침해하려드는

교사들이나 이에 동조하는 학생, 학부모들의 모습은, 정말이지 사람들에게 인권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게 해준다고나 할까.



“학생다움”, “위화감”, “성인과 구별”, “질서와 규칙”, “학교 평

판” 등등 두발규제를 옹호하기 위해서 동원되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두발규제를

옹호하는 데 나와. 이런 흔히 나오는 논리들에 귀찮지만 일일이 반박해줄 필요

가 있지.


학생다움?


어떤 사람들은 두발자유를 실시해서 다양한 머리 모양을 하게 되면 염색이라거

나 아니면 장발이라거나 여하간 그런 외모가 학생답지 않다고들 이야기해. “학

생답다.”는 게 정확히 어떤 건지 그 명확한 기준이 세워져 있는 것은 아니지

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막연한 ‘학생다움’의 모습이라는 게 있기는 있는 모양

이지?


단지 “~다워야 한다.”라는 이유만으로 제도적으로 기본권을 제한하거나 권력

으로 그것을 강요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야. 학생다워야 하기 때문에 두발

규제를 하고 교복을 입히겠다는 건, 사람들이 ‘여성다운 여성’이나, ‘남성다

운 남성’의 기준을 정해놓고 그 기준에 맞지 않는 외모를 가진 사람들은 강제

로 성형수술을 시키거나 강제로 옷 스타일을 규제하는 것과 비슷한 짓이잖아. 단

순한 권장사항(게다가 사회의 “~다움”이란 편견에 찌든 옳지 않은 것일 때도

있어!)과 인간으로서의 권리, 헌법과 국제조약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저울질하면

권리 쪽이 더 가치 있고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 당연해.


학교 평판에 대한 걱정도 마찬가지야. 학교의 평판이 인간의 존엄성, 인권-기

본권보다 중요해? 아니, 사실 이 문제는 모든 학교가 두발자유화를 하면 전혀 걱

정할 게 없는 문제이기도 하잖아.



위화감?

무지개색으로 염색을 하거나, 비싼 파마를 한 학생들이 어떤 ‘위화감’을 조

성할 거라는 말도 하지. 그러나 이 위화감이라는 것은 두발규제가 당연한 잘못

된 세상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두발자유가 당연한 세상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것일 뿐이야.


길거리에서 빨간 머리를 한 젊은이와 전통 한복을 입은 젊은이가 만났다고 가

정해보자. 아마 빨간 머리 젊은이는 속으로 “저 구린 한복을 입고 어떻게 길에

다녀?”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고 전통 한복을 입은 젊은이는 “저게 무슨 난리

야? 서양사람 닮으려고 애를 쓰는군.”이라고 생각할지도 몰라. 그러나 이 두 사

람이 민주적이고 상대방을 존중할 줄 아는 시민이라면 자신의 감정을 상대방 면

전에서 굳이 드러내지는 않을 거야. 그런 표현이 상대방을 불쾌하게 만들 수 있

으니까. “뭐, 그럴 수도 있지.”라거나, “내 마음에는 안 들지만 간섭할 수는

없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필연적으로 충돌해야만 하는 ‘권리’의 부분

이나 인류 보편의 가치에 관한 것이 아닌 이상 다양한 차이를 인정하는 태도는

당연한 것 아닐까?


아마, 두발자유화 이후 맨 처음 염색을 한 학생이 나타나면 “쟤, 뭐야?”라

고 생각하며 위화감을 느끼는 학생도 있을 거야. 그러나 사람들이 그것을 아무렇

지 않게 대한다면 그런 다양한 머리 모습에 익숙해질 것이고, 그런 경험은 사회

에서 만나는 다양한 취향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이해하고 관용하는 데도 도움

이 될 거야.


아주 드물지만 경제적 위화감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지. 부잣집 학생이 머리

를 거창하게 꾸미고 학교를 왔다고 하자. 그런데 그게 문제야? 공교육은, 성적이

나 옷차림이 사람의 가치를 재단하는 기준이 되지 못한단 걸 적극 가르쳐야 해.

그런데 그런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방법을 고민하기는커녕 다 똑같이 입힐 생각

이나 하고 있으니 이거 참…. 또, 학교가 현실에 존재하는 ‘다양한 머리’와

‘경제적 불평등’을 은폐하기 위해 존재하는 건 아니잖아?


두발자유는 인권보장일 뿐 아니라 다양성에 대한 ‘관용’과 현실에 대한 직

시 또한 가르쳐줄 수 있단 이야기야. ‘위화감’이라는 구실로 그것을 막으려는

게 전체주의적 논리지.




성인과 구별?

어떤 사람은 청소년과 성인의 구분을 위해 학생들의 두발을 규제해야 한다고

해. 그런데 청소년들을 굳이 성인과 구별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무엇인가? 두 가

지를 이야기할 수 있겠지. 하나는 청소년들이 청소년에게는 적당하지 않은 - 유

해한 사회의 환경을 접할까봐 차단하려는 목적이고, 다른 하나는 성인인 척하는

청소년들이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으므로 청소년들이 단정한 머리모양에 교복을

입고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게 억제하겠다는 거겠지. 이 둘은 미묘하게 다른 듯하

면서도 거의 비슷한 소리야. 범죄건 유해환경이건 ‘탈선’이란 말로 뭉뚱그려지

니까.

청소년들을 보호하기 위해 기본적 인권을 제한한다는 것은 마치 범죄자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시민 모두를 감옥 안에 가둬놓고 보호한다는 논리랑 다를

바가 없어. 사회가 잘못되어 있다면 그 사회 환경을 없애려고 해야지 사람들의

기본권을 제한하려고 해서는 안 되잖아? 이 ‘청소년 유해환경’이라는 게 일부

어른들이 자의적으로 정해놓은 거라는 느낌이 강하긴 하지만…. 만약에 이 사회

가 정말로 사람들에게 ‘유해’하고 바람직하지 못한 환경이라면, 그것은 그런

환경을 조성할 정도로 무분별한 이윤추구를 허용하는 현대 자본주의의 잘못이

지. 좀 더 자잘하게 책임 소재를 논하면, 청소년들의 유해업소 출입과 음주, 흡

연 등은 상인들이 ‘신분증’ 검사만 제대로 해도 어려울 거야. 많은 성인들은

“머리를 기르면 성인과 구분이 되지 않는다.”라고 하는데, 이것은 어른들이 얼

마나 법을 하찮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거지. 상인들이 법을 제대로 지키고자 한

다면 ‘외모’를 기준으로 삼지 않고 신분증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은 당

연해. 일부 상인들의 편의와 학생들의 인권. 무엇이 더 중요할까?


그리고 청소년들이 범죄를 저지를 위험성이 높다는 주장은 대부분의 청소년들

을 예비 범죄자로 취급한다는 점에서 우선 인권침해적인 발언이야. 이는 상당부

분 청소년들이 미성숙하고 충동적이라는 신화에 근거하고 있는데, 오히려 범죄율

을 살펴보면 청소년들의 범죄율은 40대 등에 비해서 훨씬 낮은 편이야. 만약 범

죄율을 근거로 기본권을 제한한다면 40대의 범죄율이 2003년 통계 28%로 가장 높

기 때문에 40대를 대상으로 두발규제를 해야 할걸? 연령대를 기준으로, 막연한

편견과 가능성만을 이유로 인권을 제한하겠다는 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이야기

인지 알겠어? 그리고 이건 말하자면 3급 이상의 정신지체 장애인들에게 “당신들

은 정신지체를 앓고 있어서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으니 오른쪽 볼에 별 마크

를 그리고 다녀라.”, 혹은 “유대인들은 유대인 표식을 달고 다녀라.”(-나치)

라고 말하는 거랑 다를 게 없잖아.

두발이 단정하지 않으면 그것이 심리 상태도 해이해져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

이 높아진다는, 유치한 반영론을 이야기해. 그렇지만 이 주장은 검증된 적이 없

어. 만일 어떤 청소년이 절도나 성폭력과 같은 범죄행위를 하고자 한다면 상식적

으로 눈에 띄는 염색머리를 하느니 평범한 머리를 하는 것이 더 나을 거야. 실제

로 스포츠머리나 단발머리를 한 학생도 얼마든지 도둑질이나 성폭행을 할 수 있

잖아? 그리고 두발규제가 있기 때문에 일탈을 원하는 청소년들이 ‘두발규제’라

는 금기를 깨는 경향이 나타나는 측면도 있어. 즉, 두발자유가 금지된 것이기 때

문에 소망하게 된다는 해석도 가능해. 전혀 증명된 적도 없는 주장을 갖고 기본

권-인권을 제한할 수 있다고 말하니, 통탄할 노릇이자. 또, 만약 이게 증명이 되

었다면 모든 사람들에게 관련된 이야기지 딱히 청소년들에게만 적용할 문제도 아

니거든.



성적을 위해, 그리고 너희를 위해?

학생들의 성적을 들먹이며 두발규제를 정당화하는 경우가 있다. 머리에 신경

쓰면 학교 성적이 떨어진다나 뭐라나. 그리고 “너희를 위해” 두발규제를 한다

고들 이야기하지.


그럼 성적이나 학교 분위기를 위해서 인간의 존엄성이나 인권-기본권을 포기하

겠다는 소리일까? 이 가치관을 받아들이면, 학교 분위기를 산만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떠든 학생을 고문한다거나, 성적이 낮은 학생을 고문해서라도 성적을 올

린다거나 하는 방법도 가능하다는 말이 돼.


그리고 “너희를 위해서”라는 주장을 위해 딱 맞는 고사가 있어.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한 왕이 자기 궁궐에 진귀한 새가 날아 들어오자 기뻐하며

새를 위해 음악을 울리고 진수성찬을 차렸다고 해. 그러나 새는 오히려 그런 환

경에서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버렸지. 왕은 새를 위해 한답시고 이것저것 했는데

새는 오히려 그 대접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서 죽어버린 거야. 마찬가지로, 어떤

것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면서 그것을 “다 너희를 위한 것”이라고 말해봐야 설득

력이 없어. 그건 상대방을 존중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을 자기 소유물로 여기거

나 의지나 인격이 없는 존재로 여기는 거니까.


규칙이니 지켜라?

“학교의 규칙이니까 무조건 지켜라.”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아주 많아.

“학교의 규제가 싫으면 학교를 떠나라.”라는 말은 덤으로 붙지.


우선 “학교의 규제가 싫으면 학교를 떠나라.”라는 말은 참 어처구니가 없

어. 이는 두발규제에 정당성이 없더라도 할 테니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학교를

나가라는 소리잖아? 그러한 주장은 “두발규제를 하기위해 ‘교육’을 포기하겠

다.”라는 말이야. 반교육적인 두발규제가 교육의 본질적인 목표, 혹은 공교육

그 자체보다 중요해? 학교는 학생들의 인권을 탄압하기 위해 있는 곳이 아니잖

아?


교육이 “규제를 통한 억압”, 그리고 복종에 목적을 두고 있다면 그것은 전체

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폭력일 뿐이야. 세계인권선언 제26조에는 “교육은 인

격의 완전한 발전과 인권 및 기본적 자유에 대한 존중의 강화를 목표로 해야 한

다. 교육은 모든 국가들과 인종적 또는 종교적 집단 간에 있어서 이해, 관용 및

친선을 증진시키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국제연합의 활동을 촉진시켜야 한다.”

라는 구절이 있는데, 두발규제를 비롯한 용의복장규제나 체벌 등은 학생들에게

“인권 및 기본적 자유에 대한 존중”을 강화시켜주기는커녕 인권 및 기본적 자

유가 얼마나 가볍게 침해당할 수 있는지 배우게 할 뿐이야. 이런 관점에서 보면

두발규제는 교육권까지 침해하고 있어.

간혹 보면 선지원 학교라는 이유나 기타 등등 잡다한 이유로 학생들이 자기 선

택에 의해 온 것이니 닥치고 따르라는 사람이 있어. 그러나 이것이 말도 안 되

는 이유는 조금만 생각해보면 드러나. 예를 들어 내가 (가)라는 나라로 이민을

갔는데 그 나라에서 수사기관이 내게 고문을 가했다고 하자. 그렇다면 나는 내

선택에 의해 그 나라로 이민을 갔기 때문에 그에 대해 아무런 비판도 제기할 수

없다는 걸까? 내 인권을 침해한 것이니 잘못을 시정하라고 주장할 수 없다는 걸

까? 만일 사람들이 잘못되었다고 여기는 것에 대해 눈 감고 그것을 피하는 것만

을 선택해왔다면, 사회의 개혁이나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을걸? 학교를 떠나야

할 것은 두발규제에 반대하는 학생이 아니라 두발규제를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인권침해지.



또 “규칙이니 지켜라.”라는 말은 낡은 “형식적 법치주의”의 입장을 반복하

는 것에 지나지 않아. “형식적 법치주의”란 법이라는 형식을 갖추기만 하면

그 내용에 대해서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그에 대한 윤리적 판단이 어떻건 간

에 어떤 법도 허용될 수 있다고 하는 입장이야. 이 형식적 법치주의는 교과서에

서조차 부정하고 있다구! 법은 사회의 궁극적인 목적과 이념, 정의에 합치해야

하며, 우리는 악법에 불복종하고 그것을 바꾸기 위한 운동을 벌임으로써 옳지 못

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바꾸려 할 수 있어.


아참, 많은 분들이 사립학교의 학칙은 공립학교의 학칙보다 더 자율성이 있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봐야 할지에 대해 걱정하는데, 사실 사립학교 또한 교육기본

법이나 초중등교육법, 사립학교법 등에 의해 존재하고 작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별로 걱정할 필요는 없어. 일부 유럽 지방이나 미국의 소위 ‘명문’ 사립학교

의 엄격한 용의복장규제를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나는 그것 또한 그 안의 청소년

들이 충분히 문제제기할 수 있는 인권침해라고 생각해. 그 ‘명문’이라는 곳에

서 그런 식으로 교육을 하니까 아마 미국 같은 곳의 소위 ‘지도자들’ 중에 괴

악한 인간들이 많은가보지?



의무도 하기 전에 권리부터?

“의무도 하기 전에 권리부터 주장한다.”라는 비난도 자주 나오는 이야기야.

그런데 나는 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의문을 느끼는데, 대체 무슨 의무를 말하

는 거지? 그렇게 물으면 대개 뭐 두발규제를 지켜야 한다느니 몸가짐을 바로 해

야 한다느니 성적이 높아야 한다느니 아니면 학생간 폭력 문제나, 심지어 휴지

를 길에 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말까지 나와. 경제적 능력을 이유로 드는 사람도

있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모르겠어. 인권사상은 본래 권리가 먼저

있고 사람들의 그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의무가 발생한다는 식의 사상이야. 그

리고 의무를 다하지 않았기에 권리를 제한한다는 것은 엄격한 요건 속에서 이루

어져. 법에서 “비례의 원칙” 같은 게 대표적인데, 비례의 원칙은 범죄를 저지

른 정도에 맞게 권리를 제한(=처벌)해야 한다는 원칙이야. 상식적으로 이야기하

면, 경미한 절도죄를 저지른 사람의 손을 자른다거나 사형을 할 수는 없다는 거

지. 마찬가지로 의무를 다하지 않아서 권리를 제한받게 되는 것은 그 내용과 절

차 모든 면에서 법적인 요건을 만족시킬 때, 특정한 의무에 대해 특정한 권리에

대한 제한이 이루어져. 그런데 그냥 포괄적으로 ‘의무’를 안 했으니 포괄적으

로 ‘권리’를 제한받는다는 건, 솔직히 반박할 가치도 못 느끼는 헛소리야. 두

발규제는 전혀 합당한 ‘처벌’이 될 수 없으며, 이 논리는 학교에 다니는 학생

들 ‘모두’를 대상으로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도 없다.

경제적 능력을 이유로 드는 사람도 있지만, 마찬가지로 경제적 능력이 없다고

해서 인권이 없는 것은 당연히 아냐. 경제적 능력이 없거나 부족한 실업자라고

해서 인권을 침해당해도 돼? 인격을 모독해도 돼? 고문하거나 때려도 돼? 경제

적 능력의 부족은 자연스럽게 합당한 경제적인 권리의 부족을 낳을 뿐이야. 청소

년들은 민법상 경제활동에서 상당한 제한을 받고 있어. 그러나 그것은 결코 인간

의 인권-기본권을 무효화시킬 수 없어.



두발완화?

어떤 사람들은 두발자유까진 바라지 않고 두발완화나 길이 자유 정도에 만족한

다고 이야기해. 아니면 두발규정을 “교육3주체”들이 합의해서 정하자고도 하

지. 그러나 두발규제는 인권침해이고 그 자체가 사라져야 해.


이 두발완화 논리가 왜 웃긴지 보자. 어느 날, 매일같이 주인한테 매를 맞던

노예들이 불만을 터뜨리기 시작했어. 노예들은 한 자리에 모여 함께 주인에게 항

의할 것을 다짐했지.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 주인에게 이야기 하자! 하루

에 5대 이상 맞을 수 없다고!” 기껏 주인에게 항거하기로 결심해놓고 5대 이상

맞을 수 없다고 얘기하는 저 일화를 보면서, 기껏 인권을 내세워 두발자유화를

외쳐놓고 어느 정도 길이에서 타협을 볼까하고 고민하는 두발완화(재조정)가 떠

올라. 왜 우리의 권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양도해야 할까? 정당한 이유도 없이?


그리고 “나는 이정도로만 완화되면 족하다.”라는 것은, 이정도 완화로는 족

하지 않은 다른 사람들의 경우를 무시하는 거잖아? 만약 귀밑 3cm 단발머리이던

두발규제가 완화되어서 귀밑 10cm가 되었다고 해보자. 완화되기 이전에는 “나

는 귀밑 3cm 단발머리도 좋으니까 두발완화에 반대한다.”라고 말하는 사람과,

“나는 귀밑 10cm는 되면 좋겠으니 완화에 찬성한다.”라고 말하는 사람 사이에

는 아무런 차이가 없어.

염색과 파마에 반대한다는 것도 마찬가지야. 예를 들어 특수한 파마를 해서 머

리카락이 엄청나게 부풀어 올라서 수업시간에 뒷사람이 칠판을 보는 것을 매우

어렵게 할 정도라면 그 사람은 제일 뒷자리로 간다거나 이런저런 제한을 받을 수

도 있겠지. 다른 사람의 권리(예시에서는 교육권)를 침해하니까. 그러나 그런 분

명한 기준이 아니라면 그저 자신의 취향과 기준에 맞춰서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

해하는 두발규제를 정하고자 할 뿐이잖아? 아주 가끔 염색과 파마에 대해서 생태

계 오염이나 건강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러면 그건 염색약, 파마약의

생산 자체에 대한 제한이 이루어져야 할 거야. 염색약과 파마약의 생산이나 그것

의 소비를 장려해대는 이 사회에 대한 비판 없이 청소년들에게만 그것을 제한한

다는 것은 그 저변에 청소년 규제의 의식이 깔려 있다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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