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눈물 흘리는 축복

박민진 |2007.05.16 17:47
조회 28 |추천 0

대형 서점에 가면 요즘 트렌드를 읽을 수 있다. 그러고 보면 몇 년 전부터 긍정이나 칭찬의 효과에 대한 책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나 역시 이런 부류의 책들을 몇 권 읽어 보았는데 이마도 사회를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두 축인 인간관계와 개인의 영성(꼭 그리스도인이 아니더라도 사람은 누구나 영성을 추구한다. 심지어 게이들도 영성을 추구한다. 다만 차이는 그 뿌리가 어디에 박혀있는가이다)에 많은 유익을 준다는 것이 이런 부류의 책들이 인기를 끄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자기개발은 이 두 축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사회 전체적인 분위기가 많이 밝아지려 노력하는 듯 보이고 긍정적인 생각과 말의 힘이 사회를 바꾸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어쩐지 그 형체 뒤에는 더 깊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자살률과 우울증 환자들의 지속적인 증가가 바로 그 그림자다. 2006년 통계는 가히 충격적이라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하루에 자살하는 사람의 수가 40명이란다. 하루에 마흔 명이 우리 주변에서 자발적으로 죽음을 택하는 것이다.


사회는 더욱 밝아지려 노력하는데 왜 사람들의 마음에는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것일까? 단순히 지식과 현실 사이에서 벌어지는 시간차 문제일까? 나는 그 원인이 슬픔과 고통을 무시하려는 경향이라고 본다. 세상은 성공과 영웅 만들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 같다. 사람이 일정 기준을 정해놓고 그것에 도달하지 못하면 실패자 혹은 패배자라 불리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눈물 흘리고 낙망하는 것은 지나치게 감상적인 태도이며 스스로 실패한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꼴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져 ‘긍정’이란 트렌드는 사람이 절망이란 감정을 갖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나 좋은 인상을 줘야만 하고 불가능한 과업 앞에 “할 수 있다.”는 신념 가득한 반응을 보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디 사람 사는 곳이 그런 곳인가?


나는 과거에 2년을 교제한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 신기한 것은 헤어진 당시에 왠지 모를 해방감에 젖어 기쁨과 만족의 3개월가량을 보냈다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했다. 어떻게 2년을 사귄 사람과 헤어졌는데 만족스럽고 행복할 수 있냐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 기간이 지나자 다시 3개월간은 엄청난 고통이 찾아왔다. 슬퍼했고 좌절했으며 비통함에 빠져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돌아보면 내게 그런 아픔의 시간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다. 왜냐하면 나는 그 아픔의 시간을 통해 슬픔이라는 경주를 완주했기 때문이다.


유진 피터슨은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경험한 다윗이 비가를 지어 부른 것을 통해 슬픔을 대하는 온전한 태도를 우리에게 시사하고 있다.


“최악은 현실과 대면하지 못하고 겉도는 것이다... 고통을 가능한 한 빨리 잊거나 할 수 있는 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방법이 못 된다. ‘잊는다’든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것은 비성경적이고 비인간적인 방식이다. 부인과 회피는 우리 문화가 상실을 다루는 가장 전형적인 처방이다. 그 두 가지 방식은 함께 결합하여 우리의 영적인 건강을 사실상 완전히 파괴시켜 버렸다”


물론 나는 모든 이들이 우울모드에 돌입하자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긍정이 나쁘다는 것이 더더욱 아니다. 그러나 진정한 영적 건강은 슬픔 앞에 슬퍼할 줄 아는 것이다. 나는 슬픔은 지도가 아니라 과정이라고 말한 C.S.루이스의 말을 좋아한다. 현실에 무감각하고 둔감해진 것은 결코 건강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를 느끼는 것. 그것이 건강한 영성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슬픔은 안개처럼 사라지는 것이다. 실제로 예수님도 죽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눈물 흘리심으로 슬픔을 표현하셨다. 우리는 실상 세상이 말하는 긍정덩어리가 아니다. 때론 좌절하고 짜증을 부리며 낙담도 하는 인생들이다.


유진 피터슨의 “비탄에 젖을 줄 모르는 것은 삶을 하나로 이을 줄 모르는 것이다.”라는 말을 기억하자.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기쁨만으로 채우지 않으셨다. 슬픔도 우리 인생 가운데 두신 것이다. 주님께서 두신 슬픔을 만났을 때 우리가 슬퍼할 수 있다는 것은 주님이 허락하신 축복이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이 예비하신 놀라운 영적인 비밀들을 발견해가는 것이 성화라는 구원을 이뤄가는 통로인 것이다.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