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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 미술관의 송시열 특별전에 대한 나의 생각

장성훈 |2007.05.17 18:12
조회 103 |추천 0
[연합뉴스 2007-05-10 14:08] 우암 송시열의 글씨
"간송학파 핵심은 진경보다는 우암과 노론"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은 2007년 봄 정기전으로 '우암송시열탄신400주년기념서화전'(13-27일)을 마련했다.

그런데 우암 기념전을 표방한 전시라고 하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우암 작품은 총 출품작 100점 중 단 1점에 그친다. 율곡 이이의 어머니인 사임당(師任堂) 신씨가 그린 어하도(魚鰕圖)라는 그림에 우암이 부친 글씨인 발(跋)이 그것이다.

간송미술관은 그 대신 우암을 빛내기 위해 창강(滄江) 조속(趙涑.1595-1668)을 필두로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에 이르기까지 17-18세기 조선의 그림과 글씨를 대거 '찬조출연자'로 내놓았다.

70-80년대 이후 한국지식인 사회, 특히 조선시대 사상사와 미술사 전공자들 사이에서는 일정한 학문적 견해를 공유하는 집단을 지칭하는 '간송학파'라는 이름이 공공연히 거론되기 시작했다. 간송(澗松)이란 문화재 수집가로 간송미술관 설립자인 전형필(全鎣弼. 1906-1962)의 호(號).

명칭만으로 보면 간송학파란 간송을 학문적 스승으로 사숙한 학파인 듯하나, 간송은 직업적 학문종사자는 아니었다. 따라서 간송학파란 대체로 간송미술관을 무대로 활동했거나 하고 있는 일군의 연구자 집단을 지칭한다는 정도로 통용된다.

간송학파라는 이름 자체가 엄격한 학문적 정의를 동반하지 않은 사회통념에 의한 범칭이긴 하지만, 대체로 학계에서는 이러한 이름으로 일군의 직업적 연구자 집단을 분류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흔히 일반이나 학계를 막론하고 간송학파라고 하면 트레이드마크 내지 마스코트격으로 '진경(산수화)'과 겸재를 공통분모처럼 거론하곤 한다.

실제 최완수 간송미술관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실장을 필두로 간송학파로 분류되는 연구자는 거의가 예외없이 진경산수화를 한국사의 중대한 분기점으로 거론하는 한편 겸재를 그 완성자로 추앙한다.

하지만 비교적 객관적인 자리에서 간송학파를 바라보는 다른 학계 인사들은 간송학파를 하나로 묶어내는 핵심코드는 진경산수화나 겸재라기 보다는 '우암 송시열'이라고 지목한다.

간송미술관이 마련한 이번 '우암탄신400주년서화전'은 간송학파에서 우암이 차지하는 위상이 어떠한 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전시품 100점 중 우암 작품은 단 1점에 지나지 않음에도, 이번 전시작 99점은 모두 우암 하나로 수렴되고 있기 때문이다.

간송학파에서 우암이 차지하는 위상은 "중국의 성리학을 독창적인 조선의 성리학으로 소화해 낸 율곡학파의 3대 수장인 우암의 사상은 중국 그림을 베끼지 않고 조선의 산수를 독자적으로 그린 진경산수화의 뿌리를 이뤘다"고 하는 최완수 실장의 언급이 웅변한다.

국민대 국사학과 지두환 교수는 서울대 국사학과 정옥자 교수, 한신대 국사학과 유봉학 교수 등과 함께 조선시대 사상자 전공자로서 대표적인 간송학파로 분류된다. 최 실장을 포함해 이들 모두 서울대 사학과(국사학과) 출신이라는 경력도 예사롭지 않다.

지 교수는 이번 전시도록에 기고한 '우암 송시열의 생애와 사상'이라는 글에서 우암을 지칭해 "조선후기를 망해가게 만드는 가장 보수적인 사상가에서 조선후기를 자랑스럽게 만드는 가장 개혁적인 사상가로서 재조명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 교수는 나아가 "일제시대 식민사관에 의하여, 조선후기는 공리공담인 주자학을 고수하여 민생은 돌보지 않고 당쟁이나 하다가 일제에게 망한 나라로 인식되도록 연구되었고, 이의 주역이 우암 송시열로 연구"된 것을 우암을 폄훼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으로 꼽았다.

반면 간송학파는 조선문화의 꽃으로 진경산수를 거론하면서, 이런 거대한 물결이 가능케 한 원류로 우암을 거론한다. 우암과 진경산수, 나아가 겸재가 무슨 상관관계인가에 많은 이가 의문을 표하지만, 이런 반문에 간송학파는 이렇게 답한다.

"조선 진경산수화는 사대부 화가인 창강 조숙에게서 서막이 열렸다. 우암은 창강보다 12살 어리다. 창강이 그림에서 진경산수를 개척하는 중에 우암은 사계 김장생과 청음 김상현의 뒤를 이어 율곡학파 3대 수장이 되어 보수세력과 대결하면서 명분론을 내세우며 조선성리학 이념을 이데올로기로 올려 놓는다. 우암이 사약을 받을 때 14살이었던 겸재는 우암이 반석 위에 올려놓은 조선성리학 이념을 진경산수화로 완성한다."

간송학파는 저명한 서예가 한석봉도 진경산수의 개척자로 본다. 결국 사상사의 율곡이건 미술분야의 겸재건 이들이 모두 조선적인 독특한 사상(조선성리학)과 미술(진경산수화)을 개척했다고 보며, 그 복판에 우암이 있다고 간주하는 셈이다.

물론 간송학파의 이런 도식을 거부하는 연구자도 많다. 무엇보다 최근 들어서는 진경산수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기 곤란하다는 비판론까지 대두될 정도다.

간송학파가 우암을 중시하는 다른 이유는 없을까?

익명을 요구한 한 연구자는 뜻밖에도 "남인에 대한 간송학파의 반발" 심리를 지목했다.

이 연구자에 의하면, 간송학파가 중시하는 율곡과 우암은 노론(서인) 계열이다. 노론을 앞세운 간송학파는 남인 계열을 중시하는 다른 연구자 집단, 예컨대 퇴계 이황에서 정신적 뿌리를 찾고 성호 이익, 동사 안정복을 '정통'으로 삼는 벽사 이우성 박사 계열의 소위 '실학파'를 겨냥한다는 것이다.

간송학파가 "20세기에 부활한 노론"이라는 이 연구자의 지적은 과연 얼마나 타당할까?

이런 점에서 성리학의 폐해를 공격하며 일세를 풍미한 소위 '실학파'가 득세하던 80년대에 실로 공교롭게도 그런 실학파를 공격하면서, 성리학이 조선후기에 끼진 긍정적인 영향들을 강조한 글을 쏟아낸 연구자 중 상당수가 간송학파에 속한다는 사실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끝)

 

이번 봄에는 간송에서 과연 무엇을 주제로 전시를 할것인가 무척이나 궁금하였었는데.....

지난번 김정희에 이어 이번엔 조선후기 성리학의 거두라 할 수 있는 우암 송시열이 그 대상이 되어 무척이나 놀랬다.

김정희는 모든 사람들이 알고있는데로 추사체의 창시자이자 세한도 등을 통해 이미 그 자신의 미술세계를 확립한 사람이다.

그러나 송시열은 아무리 좋게 말한들 예술적인 업적을 직접적으로는 남기지 않았다....

그런 그를 주제로 과연 어떻게 전시를 할 것인가 궁금하였는데.....

 

간송학파의 중심적인 사상이라 할 수 있는 진경산수화와 그들이 늘 주장해오던

정선의 진경산수화는 조선중화주의를 확립하고 조선의 것으로 눈을 돌리게 만든 우암 송시열의 영향으로 성립되었다는

사실을 토대로 전시가 구성되었다... 과연 이것이 사실인가? 아니 이 주장의 진위 여부를 떠나...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권위를 갖고 있는 박물관 중 하나인 간송이 단지 자신들의 주장을 근거로

이 같은 전시회를 한다는 것이 옳은 것일까 한번 생각해본다....

현재까지도 많은 학자들은 진경산수화의 성립배경을 연구하고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간송학파의 주장처럼 진경산수화가 조선중화주의의 영향을 받아서 탄생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적어도 영향은 받았다는 것은 사실일수도 있다.

그러나 단지 그들 자신의 가설일 뿐인 학설을 가지고 마치 그것이 학계의 공론인냥 특별전을 마련하는 것은

조금 억지스런 면이있는것 같다.

 

 특히 미술관이면서 가장 미술관 답지 못하며 특별전을 하면서도

전혀 특별전의 분위기를 느낄수 없는 간송미술관의 단점들이 이번 특별전의 난해하고 애매한 주제와 겹쳐져 일반인들로 하여금 좀더 어리둥절함을 느끼게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그들이 언제 특별전하면서 특별전의 취지가 담긴 설명서나 팜플렛을 만들어 본적이 있는가?

아니면 최소한 이라도 작품들 이름을 한글로 병기한 적이 있는가? 미술관이란 이름을 걸고....그것도 단순 미술관이 아닌 국내 최다 국보의 소장처중 하나인 간송미술관이 일반대중에게 좀 더 다가가려는 시도를 했던적이 있나?

 

특히 이번처럼 단순한 그림 감상만이 아니라 그 특별전의 배경과 작품들의 연관성이 중요한 전시에서는 사전 설명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간송은 어떠한 설명도 없다.

아직 가보진 않았지만 이번에도 허름한 도록을 팔기위해 애쓸뿐 일반인들의 이해여부에는 관심도 없을 것이 뻔하다. 지난번 묵죽대전때에도 사람들은 단순히 그림만 훝어보고 나와서

자신이 누구의 어떤 그림을 봤는지도 모른체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번에도 많은 사람들은 특히 한문을 잘 모르시는 분들은 작품들이 송시열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 아니면 더 심하게는 대부분의 작품을 송시열의 것으로 오해하는 일이 생겨날 것이다. 한문을 잘 아시는 어른들이라 할지라도 간송학파가 주장하는 정선의 진경산수화는 조선중화주의의 산물이다 라는 주장을 이해하시기 힘들 것이다.

 

명청교체로 부터 발생한  인조반정, 효종의 북벌론 등의 조선내의 혼란속에서 철저한 주자학에 입각한 송시열의 중화주의적 존주론과 의리론은 조선조를 장악했고 이후 남명의 완전한 멸망이후 중국본토에서 사라진 중화의 정신이 조선으로 옮겨왔다는 것을 의미하며 세운 만동묘까지....이러한 복잡하고 다소 지루한 역사적 전말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이 특별전이 갖는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기는 힘들 것이다.

좀 더 보태자면 그들의 논리는 과거 우리나라 회화에서 중국을 모방하던 분위기에서 벗어나 우리 산천을 보고 즉 실경을 보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조선내에 조선중화주의가 발생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인조반정 이후 조선의 정치 방향과 여론을 좌지우지 했던 송시열과 그의 노력의 산물인 조선중화주의는- 명의 멸망이후 중국내에는 중화가 사라졌고 그 것은 소중화라 불리던 우리 조선에게 이어졌기에 우리가 이제는 유일한 중화다 라고 주장하는 송시열의 생각- 미술계를 비롯한 사회전반에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는 것이 간송학파의 주장이다.

 

앞서 말한데로 이것의 진위여부를 떠나서 과연 이사실을 이해하고서 관람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는 것이 내의문이다. 굳이 그림을 보는데 그런것이 필요하냐고 묻는다면 그럼 왜 단순히 진경산수화 특별전이 아닌 송시열의 특별전이 돼었냐고 반문하고 싶다.  

 

 조선중기 주요화가들의 중요한 작품 대부분을 간송이 갖고 있기에 우리나라 회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조선중기...

이러한 조선중기 작품들을 보고 연구하기 위해선 그들이 만든 허울뿐인 테두리 안으로 들어가야만 한다는 것도 어이가 없는 일이다...시장경제가 지배하는 요즘 세상에도 이러한 독과점을 하고 있는 미술관이 어디 또 있을지 궁금할 정도이다.

지난번 국립중앙박물관 개관때도 그랬듯이작품한점을 대여하기 위해서, 단 일주일을 대여하기 위해서 엄청난 비용을 치뤄야하고 그것이 마치 그들의 사유물인양 생색을 내며 소유권을 행사하기 위함이 간송 전형필 선생이 사재를 털어 우리나라의 중요 미술품을 사모은 참 목적이었던가?

지금의 간송 미술관은 간송 전형필 선생의 이름은 물려받았을지 모르나 그 정신은 털끝만큼도 계승하지 못한것 같다.

 

낡고 허름한 건물이야 그 또한 문화재라 할 수 있기에 참을 수 있다고 쳐도 그들의 오만한 태도는 이제 도가 지나친 것 같다.

아집에서 벗어나서 그들만이 이해하고 누리는 문화가 아닌 정말 우리 국민들의 문화유산으로 거듭나려는 노력이 절실한 시기라 생각한다. 나또한 아는것 없는 대학생일뿐이지만 나 같은 학생이 이렇게 느낄수 있는 것을 많이 배우신 분들이 왜 모르는지...

아시면서도 변화가 두려우신 것인지... 아니면 정말 자존심 때문이신지... 궁금할 따름이다...

그것이 그들의 자존심과 전통때문이라면 그것은 자존심이 아니라 자만이요 아집일뿐이다.

시대도 변하고 세상도 그에따라 변화하고 있고 우리들의 모습, 삶또한 변하고 있다.

이를 보지않고 혼자서만 정체하고 있는 것은 간송미술관 그들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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