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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사이

장진숙 |2007.05.17 18:51
조회 20 |추천 0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서로가 서로에게 운명처럼 이끌린 오랜 친구사이에는 말없이 통하는 것들이 있다. 이심전심 흐르는  양수 같은 전류가 있다. 
서로가 서로의 미세한 감정까지 속속들이 읽을 수 있어 때로는 마음 속 깊이 숨겨두고 싶은 비밀스런 이야기조차 자신도 모르게 술술 풀어놓게 되는 쇼파처럼 편안한 그런 사이, 어쩌다 가끔은 사소한 오해로 냉랭해졌다가도 만나기만 하면 금새 종달새처럼 즐거워지는 사랑하는 친구들이 내게도 있다.
 여학교 적 오랜 친구들인 그녀들과 지금도 매달 한번씩 정기적으로 만나 영화도 보고 연극도 보고 집집이 돌아가며 맛있는 밥상도 정성껏 차려내면서 알뜰하게 살림 사는 방법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나누기도 하고 사랑하는 자손들에게 물려줄 소중한 이 땅을 우리라도 지켜야 한다며 휴가여행 중 쓰레기 남김없이 가져오기, 안 입는 옷 서로 물려 입고 바꿔입기 등을 실천하며 온갖 어수선한 사회적 병리현상에 대해 목청 높여 비평도 하고 반성도 한다. 불우한 이웃을 위해 함께 아파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구석진 곳을 찾아 봉사도 하는 친구들은 내게 있어 언제나 샘물처럼 소중한 존재들이다. 세상이 제 아무리 험악해지고 사막화 되어간다 해도 이렇게 좋은 친구들과 함께 하는 세상이라면 씩씩하게 살아볼 만 하지 않겠는가. 
 오늘도, 이십 년 가까이 붙박이로 살고있는 나를 쫒아 하고많은 새 아파트 마다하고 낡은 아파트로 이사 온 친구가 호박죽을 맛있게 끓여 들고 다녀갔다. 사소한 별미 음식일망정 어김없이 전화로 불러대는 친구, 바쁘다는 핑계로 미적거리면 끝에서 끝동인 수월찮은 거리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종종걸음으로 손수 날라다 주곤 하는 그녀의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면 남을 위해 묵묵히 베푸는 삶이 얼마나 주위를 행복으로 전염시키며 자신조차 풍요롭게 하는지를 깊이 깨닫게 해주는 보석 같은 친구다. 
 이렇게 푸근하고 정이 넘치는 우리들 여자사이를 무심하고 단순하기 짝이 없는 남자들은 정말이지 알 수 없을 거다. 남자들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여자들은 나이 들어 갈수록 서로의 관계가 더욱 끈끈해지고 풍성해지는 데 비해서 남자들은 그렇지가 않은 것 같다. 젊은 시절 각별했던 친구사이도 나이 들어가면서 점점 소원해지고 가까웠던 직장동료들도 퇴직하고 나면 썰물처럼 멀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남자들은 우정을 쌓아가기 보다는 소비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것은 왜일까. 
우정보다 이해관계로 시작되어 결국은 녹슬어 부스러진다고 말한다면 좀 지나친 표현인가.
  우리 친구들은 매달 일만 원의 회비를 이십 년 넘게 알뜰히 모아 몫돈의 정기 예금통장을 만들었고, 서로서로 집안의 애 경사를 성심으로 돕고 챙기면서 함께 여행도 다닌다. 몇해 전 벼르고 별러 수학여행가는 기분으로 실속 있게 다녀온 중국 여행도, 올 유월에 떠날 예정인 뉴질랜드 여행도 전액 회비로 충당하며, 불평 없이 여행 보내주는 착한 남편들을 위해 해마다 한번쯤은  풍성한 음식과 즐거운 이벤트로 그들을 초대하며 재미나게 살아가는데
 내 남편만 해도 우리보다 더 오래된 친구들 모임이 있어 군대시절에는 어머님께서 대신 내 주시기도 했다는 회비가 어찌된 영문인지 한푼도 남아있지 않고 흐지부지 되어버린 것만 보아도 남자들의 생리가 허비하는데 있다는 나의 생각을 편협하다고 비난할 수  만은 없을 것이다.
 자식을 낳아 길러본 우리 여자들은 웬만한 일쯤은 넉넉한 시선으로 넘길 만큼 푸근하고 유연하다. 혹자는 그런 특성을 일컬어 아줌마 근성이라고 무시하고 폄하 하기를 서슴치 않지만 건강하고 긍정적인 마음씀씀이가 사라져버린 이 사회를 상상해 보았는가.

 친구사이도 그렇다. 어떤 친구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저질렀다 해도 친구 된 마음으로 비난하고 몰아붙일지언정 결국은 뜨거운 자매애로 감싸안을 줄 안다.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그녀의 속사정을 성심으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외부의 돌팔매질로 상처투성이인 그녀를 받아들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러므로 우리 여자들은 우리의 내부에서 스스로 정화되고 위로 받으며 거듭나곤 하는 것이다. 
 좋을 때만 친구인 것은 진정한 친구사이라고 할 수 없다. 서로의 단점들을 폭 넓게 이해하고 다양성으로 받아들이며 스스로를 조금씩 변화시킬 수 있도록 부드럽게 유도해야 한다. 
 될 수 있으면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사랑하려 애쓰며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풍진 세상 얼마나 따뜻한 위로가 되는 아름다운 인연이겠는가. 

 서로에게 소금 같은 존재가 되어 너와 나 그리고 우리 모두가 행복해질 살맛 나는 세상을 위해, 사람 꽃이 더 향기로운 것을 알게 해준 사랑하는 나의 친구들과 함께  세상 끝 날까지 우리 사이 무너지지 않을 아름다운 탑을 쌓아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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