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 왜냐하면 그는 ‘남자’이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자신이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있다는 사실을 여자들처럼(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여주고, 같이 흉을 봐주는) 표현하지 않는다. 남자들의 대화방법은 여자들과 판이하게 다른 것이다. 여자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대화 패턴 기준’에 못 미치는 것은 당연한 일. 그들의 생물학적인 측면을 탓하든지, 교육 배경을 탓하든지, 아니면 매스미디어 또는 역사적 배경을 탓해도 좋다. 다만 남자친구에게 모든 화살을 돌리지는 말 것. “남자들은 단순히 여자와 다르게 ‘디자인’된 겁니다.” 미국 에모리 대학의 명예 교수이자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Sherron Bienvenu 박사는 설명한다. “그들은 논리적이고 실질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데 강한 반면, 여자들은 감수성과 감정을 앞세우게 되죠. 이 과정에서 다양한 오해들이 생기게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대화의 장애물을 걷어내야 만족스럽고, 스트레스 없는 투-웨이 커뮤니케이션에 도달할 수 있을까? 우선, 그의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을 분석해 보도록 하자. 그가 어떤 뜻으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하게 되면 그와의 대화는 훨씬 쉬워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답답한 대화 때문에 생기는 ‘스트레스성 편두통’도 아마 치료될 것이다.
여자들에게 ‘무슨 일 있어?’라고 물어봤을 때 몇 초의 침묵이 흐른 뒤 ‘없어’라는 조용한 대답이 돌아왔을 때, 눈치 없이 정말 아무 일도 없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 심플한 속뜻은 다음과 같이 번역된다. “이 바보 멍청아, 너 때문에 화난걸 꼭 말로 해야 하니? 어쩜 그렇게 눈치가 없니!” 여자들의 대답은 여러 겹의 심오한 뜻이 숨겨져 있고 애매모호하고 은근한 표현으로 전달되지만, 남자들은 단순하다. 따라서 “자기야, 무슨 일 있어?”라고 물어봤을 때 그가 바로 “없어”라고 대답한다면, 그에겐 정말로 아무 일도 없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그의 심플한 뇌 속엔 게임 오버된 상황과 정리된 결과가 존재할 뿐. 혹시 서로 다투고 나서 ‘정말로’ 괜찮은지 물어봤을 때 그가 “어, 난 괜찮아”라고 대답했다면 되물어 보는 건 시간 낭비인 것이다(오히려 ‘정말 괜찮아? 진짜야? 아닌 것 같은데? 사실대로 말해봐’ 같은 반응이 견디기 힘들다고 한다). 그의 말 속엔 우리가 해독해야 하는 복잡하고 비밀스러운 코드가 숨어 있지 않다.
남자들은 여자들보다 훨씬 더 직설적이고 글자 그대로 표현한다고 정신과 전문의 김병태 박사는 이야기한다. 실제로 평범한 남자들끼리 전화하는 내용을 들어보면 여자들의 대화와는 꽤 차이가 난다. 물론 모든 남자들이 심플하고 솔직하며,?모든 여자들이 모호하고 깐깐하다는 말은 아니다. 그저 남자들은 할 말이 있으면 터놓고 자신의 의견을 말한 후, 곧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는 뜻.
남자친구와 좀 진지한 대화를 할라치면 마치 손자에게 꼬치꼬치 캐묻는 노인네가 된 기분이 들어서 기분 나빠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역시 당신만큼 대화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아는가. 이 또한 남자와 여자 사이에 존재하는 본질적인 커뮤니케이션 차이일 뿐이다. 미국의 이라는 책에 실린 연구 결과에 의하면, 대화 도중 여성이 남성보다 약 세 배 정도 질문을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병태 박사 역시 여성들은 질문을 통해 상대방이 대화에 참여할 수 있게 유도하는 반면 남성들은 뭔가가 궁금할 때만 질문을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두 사람이 친밀한 관계인데도 남자친구가 당신만큼 관심 있게 여러 가지를 묻지 않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당신에게 ‘휴가 때 어디로 가고 싶은가’를 묻는다거나 ‘지난번에 선물한 와인이 괜찮았는지’에 대해 질문하는 걸 싫어하는 게 아니다. 다만 남자들이 의미심장한 대화로 이어질 개인적인 질문들과 마주친다면 아마 된장찌개만 3끼 먹는 사람에게 치즈케이크를 테이블에 가득 늘어놓은 것만큼이나 신경 쓰이는 일이 될 게 분명하다. 게다가 한가지 또 중요한 사실은, 남자들은 앉아서 대화하는 것으로 시간 낭비를 하기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더 남성답다고 어릴 적부터 배워왔다는 사실이다. 만약 대화를 시작했을 때 논리에 밀려 말 한마디 못 꺼내고 계속 상대방의 입만 바라봐야 하는 두려움도 마음속 깊이 내재되어 있다.
박수혁(28세, 가명) 씨의 경우도 옛 여자친구의 모놀로그에 질린 케이스. 그녀의 끝나지 않는 대화 때문에 영화를 보고 나서도 영화가 재미있었는지 물을 수 없었다고 한다. “전 원래 말도 많고 발랄한 여자를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뭐 하나 물어보면 지겨울 때까지 이야기하고 또 내가 말할 기회도 안 주면서 나한테 왜 이렇게 말이 없냐고 하는 건 뭡니까? ‘영화 어땠어?’ 하고 물어보면 장면 하나하나에 대해 분석하고 당신이 그 주인공이면 어떻게 했겠느냐고 심문하고, 사실, 그럴 땐 정말 같이 말하기 싫었어요.”
문제가 생기면 남자들은 가끔 신동엽이나 정준하로 변신하려고 한다. 남자들이 가진 원칙 중 하나가 바로 항상 상황을 컨트롤해야 한다는 것과 감정으로 인해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줘서는 안된다는 것. 따라서 자신의 여자친구가 기분 상해 있다는 사실은 남자들에게 일종의 불안감을 안겨준다. 그 상황을 풀어보려고 많은 남자들이 유머로 분위기를 바꾸려하는 것이다. 안종우(28세) 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여자친구와 1주년 기념 파티를 하기로 한 안종우 씨는 30분이나 늦게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그녀의 화를 풀어줄 방법은 단 두 가지. Plan A: 그냥 꼬리 내리고 미안하다며 애교스럽게 사과하기, Plan B: 풍부한 유머 감각을 이용해 은근슬쩍 상황 넘어가기. 종우 씨는 후자를 택했다. “여자친구에게 이렇게 말했죠. 서울에 있는 모든 차가 을지로로 다 모여서 교통정리해 주고 쓸데없는 차들은 다 면허 정지시키고 오는 길이라구요.” 당연히 분위기는 썰렁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농담을 던지면 보통 여자들은 상대방이 자신의 걱정과 생각을 무시한다고 느끼게 되고 더욱 불쾌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남자들이 불쌍하게도 많다는 것이다.
서지훈(31세) 씨는 TV와 연결해 두었던 오디오 앰프가 먹통이 된 지 2년이나 되었다. 여자들 같으면 얼른 기술자를 불러 수리하고 깨끗이 정리해 버렸지만 남자들은 대부분 스스로 분해부터 해보려 한다. 할 줄 알거나 말거나, 남자들은 어릴 적부터 ‘해도 되는 일, 하면 안되는 일’이 머릿속에 정확하게 구분 지어져 있다. 남자들은 터프하고 추진력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무의식중에 심고 있기 때문에 나약한 겁쟁이 같은 모습을 못 참아하고 무능력하게 보이는 걸 끔찍하게 여기는 것이다. 그들 자신이 한참 잘 보이고 싶은 여자에게 자진해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난 도움이 정말 필요하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된다. 이것은 오늘 먹은 음식의 칼로리를 계산해 본 다음 돼지갈비 대신 콩비지를 시키는 것만큼이나 남자답지 못한 행동이라는 게 남자들의 생각이다.
친구들과 욕설을 주고받고 축구 시합을 보면서 소리를 질러대는 남자들이 ‘대면’을 두려워한다는 말인가? 이게 바로 남녀의 차이점이다. 남자들은 남자들끼리의 대면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 하지만 여자와 일대일 ‘대면’은 숙련된 바람둥이를 제외하고는 그들에게 꽤 부담스러운 게임인 것이다. 특히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릴레이션십 안에서 벌어지는 대면. 자신의 파워가 소멸되는 느낌을 갖는다고 한다. 당신이 따지는 모드로 들어갈 땐 남자들은 당신이 스테로이드를 복용한 마라톤 선수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남자들은 말 다툼을 최대한 빨리 끝내려고 노력하지만 여자들은 최소 몇 시간은 계속 따질 수 있다는 걸 우리도 알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남자들은 이런 말을 종종 한다. “그래, 내가 잘못했어.” “알았어, 자기 말이 다 맞아. 이제 그만 하자,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