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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코흘리개 시절, 동화같은 친구를 만났다.

강유나 |2007.05.18 12:10
조회 44 |추천 0

흙먼지 그득한 운동장에.. 엄마 손을 잡고 다른 한손엔 솜사탕을 쥐고서,

1반 2반 3반 4반...9반 10반..

그중에 배정받은 반 나무표지판 앞으로 길~게 줄 서 있던 기억..

큰 가방 매고 이제 학교 간다고 촐랑거리던 철없던 코흘리게 시절..

 

이제는 "국민학교"라는 단어 보다는..

"초등학교"라는 단어에 더 익숙해진 요즘 사람들..

 

누군가에게 "나 국민학교 입학했었어" 라고 얘길하면..

당연하다는 듯 '니가??' 라는 말을  듣게 된다.

 

내가 4학년이 되었을 때.. 그 학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즈음에

국민학교라는 타이틀이 초등학교로 바뀌었고..

학교 정문 앞에도 새로운 학교명들로 속속들이 바뀌던 시절이였다.

 

서울에서 살던 시절.. 나는 4학년때 다른 지역으로 전학을 가게 되었는데

그 당시 삐삐나 폰을 가지고 다니던 아이들이 거의 없을 정도의 시절이라..

전학을 가게 되면 영영 이별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지곤 했었다.

그나마 정말 친하게 지냈던 아이들 한두명과는 집전화번호로 연락을 했었고..

전학 간 학교 아이들과 지내느라 그 전 친구들의 기억은

그냥 어렴풋한 추억으로만 남아있을 정도였으니..

 

그래도 지금의 나이가 되어 어린 시절을 추억할때마다..

조금 답답한 구석이 없지않아 있었더랬다..

기억도 엉성하거니와.. 연락 할 방법이 없었으니까..

싸이를 처음 시작할 때..

누군가는 자신의 먼 기억속의 인물들을 찾는다고 바빴고..

서로 반가워하며 안부인사와 오랜만의 만남을 가지는 것도 봤었는데..

 

얼마 전, 학교클럽이라며 싸이에서 초대가 온 것을 보고 반가운 맘으로

수락을 해놓고.. 동창생들 목록을 보는데.. 낯설지 않은 친구들 이름 이 보였었다..

반심반의 한 마음으로 방명록에 글을 적어놓고 기다렸는데..

3명 중.. 2명에게 반가운 메세지를 받았다..

그 둘은 나란 아이를 아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고..

내가 생각해내지 못했던 친구의 이름까지도 물어와주었다.

 

그 시절의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일은..

친구가 전학간다고.. 아이들이 깜짝송별회를 해주겠다며

비밀리에 파티 진행을 하다가 나에게 다 걸려버렸던 재밌는 기억..

롯데리아에서 파티를 해주며..

삐뚤빼뚤한 필체로 미니카드에 써주었던 친구들의 메세지들..

 

나는 사실 그 시절을 지금까지 잊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그 카드들을 버리지 못하고 다 간직해두며

이따금씩 꺼내어 보곤 했었는데..

막상 이렇게 성인이 되어 쪽지나 방명으로 만난 것 뿐인데도..

너무너무 설레이고.. 두근두근거리는 기분까지 느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에 만난 나와 아이들은..

아무 계산없이 웃으며 친해졌고

백원짜리 동전 하나.. 오백원짜리가 주머니에 있는 날엔..

세상을 다 가진 것 마냥 부유하고 참 즐겁게 놀곤 했었다.

그땐 정말.. 아무런 걱정도 근심도 하지 않으며..

해가 지기전까지는 우리들 세상이였던..

 

지금에와서 추억해보면 참 아련하고 기분좋아지는 추억들..

 

아마도 이제는 다 커버린 상태에서 만나게 된 우리이기 때문에

 

커가면서 느꼈던 세상의 이면의 모습을 깨달아서가 아닐까 싶다.

 

 

-나는

사람들이 코흘리개 시절이라 말하는,

아련한 추억속의 그 옛날 동화같은,

이제는 다 커버린 친구들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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