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이곳에다가 글을 올릴까.. 말까 많이 고민했었습니다.
아! 첫글읽고 "재미없겠구나"하지 마시고 인내심을 가지고 끝가지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읽는다는 행동, 마우스 포인터 하나를 누른다는 행동 만으로도
감사받을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하지 않으십니까??....
아니면 말구요...하하;;
그럼.. 지금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이 이야기를 쓰는 목적은 제일 밑에 있고요..
그러니까 끝까지 읽어주세요.
전. 올해로 22살, 그러니까 어제 21일날 성년의 날을 갖게된
평범하다면 지극히 평범속에 묻힌 회사원, 청년 입니다.
22년동안 정말 많은 일들을 겪었습니다.
음.... 3살때 부모님과 헤어 졌습니다.
기억이 닿지는 않지만.
당시 6살이던 형은 어느정도 기억을 하니까요..
부모님께서 이혼하시고 아버지 집에 맞겨졌었는데..
새엄마의 할머니.
그러니까 새로운 외가댁 할머니께서.
저희들을 데리고 나가서 친어머니 집근처
놀이터에 내려놓고는 찾아가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당시 길도모르고 앞뒤도 막막한 우리 둘은
손붙잡고 울고 있었고,,,
미아처리 되어 아동보호소에서 고아원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악기도 배우고,
미래를 위한 재능도 키우면서 19살때까지 자랐습니다.
그리고 첫 직장으로 창원에 LG전자에 입사를 하게되었죠..
처음으로 16년동안 날 지켜왔던
울타리 밖에서의 생활은..... 힘들었습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일어나야 했으며,
누군가 챙기지 않아도 알아서 밥을 먹어야 했습니다.
물론 그정도를 생각하고,, 행동할 나이는 되었지만
틀에 갖혀진 생활속에서 보호받다가..
"자유"라는 것을 갖게 되고부터는
많은 책임이 따르더군요..
잠을 자지 않고 놀러가면
그다음날 회사에서 일보다는 졸림과 씨름을 해야 했으며..
입맛없어 거른 한끼가 배고픔으로 돌아오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나름대로 LG 전자에서 열심히 일을 하였습니다만..
고3 실습생이 끝날 시점에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음,, 사유는 몸이 약해서라지만.
ㅋ... 실제론 실습생 -> 정사원.
어려워진 회사 사정상 정사원을 늘릴수 없다는
회사 방침때문이었습니다.
하하.. 뭐. 회사라는게 이익 창출하니 만큼
별다른 불만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좋은말도 하기 싫으니,,
실제 회사 이름을 거론하는것을 "명예의 실추"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회사 분들의 이익추구 속에 얼어죽고 굶어죽을뻔한
"젊음"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주세요.
아무튼.. 그렇게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지만.
고3 졸업후의 생활은 막막.. 그 자체 였습니다.
평범함이 가져야할
안주할집, 부모님이 차려주는 식사,
따뜻한 잠자리.. 그 무엇도 저에게는 없었으니까요..
세상물정 하나 모르고
차려주는밥, 시켜주는 공부,....
돈 계산 법조차 알지 못했던.
돈 쓰는 법을 알지 못하고..
혼자 일땐 어떻게 살아가야 할 방법조차 알지 못한체로..
그렇게 사회라는 거대한 사막에 덩그러니..
혼자 남았습니다.
어느 별을 보고 쫓아가야 하는지.
내꿈이 무었이었는지..
내 발걸음이 어디를 향하는지도 모르게.
그냥 덜덜 떨고 있었죠..
가진돈은 6만원.
회사 나올때 꾸린 짐가방과 6만원이 전부다 보니..
라면하나, 계란하나 사는데에도 돈이 아깝더군요..
"숙박"이라는 건물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하룻밤에 25000원. 가진돈의 3분의 1이나 되었지만,
졸업시즌이 끝난 혹독한 겨울은 계산의 머리조차 마비시켜 버리더군요...
주인할머니한테 졸랐습니다.
너무..비싸요 조금만 깍아 주시면 안되요??
가진게 얼마 없어서요..
추워요..하아.....
학교에서는 나름 고학년이라고 후배들도 괴롭혀보고,
떵떵 거리며 어깨도 추켜 세워보기도 했습니다만...
비참함도,, 부끄러움도 몰랐습니다.
그냥... 추웠습니다. 바람도 춥고, 갈데도 없고,
너무나 추웠습니다..
궁지에 몰린 고양이를 무는 쥐의 심정으로..
한마디 힘겹게 내뱆고는 잠시 눈치를 살피는 나에게
"돈없으면 찜질방 가서 자면 될것 아니여.."
하시는 할머니 말에..
"찜질방 가면 잘수 있나요??".......
물끄러미 쳐다보시는 할머니 눈길.. 아직까지도
잊지 못하겠더군요.
하아.. 찜질방이란데는.,,, 참 따뜻한 장소더군요.
6000원만내면 따뜻한데서 있을수도 있고..
잠시 망설이긴 했지만 1000원이나 하는 계란
3개를 먹을수도 있었습니다.
시커먼 계란이긴 하지만 전날먹은
졸업식 만찬(?)이 소화가 다 되어서..
너무 맛있더군요.
소금까지 싹싹 핧아 먹고는 누웠습니다..
얼마 지나서 인천에 있는 동기애가 다니는
자그마한 중소기업에서 연락이 오더군요.
내일 면접보고 입사여부 확인하겠습니다...
아파트 방 2칸을 빌려 기숙사로 사용하는
그런 회사였습니다..
따뜻한 찜질방에서 몸을 녹이고는
나름대로 머리를 썼죠
밤엔 춥고 잠잘데가 없으니까
느린 무궁화 호를 타고 밤새 달려서 새벽쯤에 도착하면
돈을 절약할수 있을거야. 기차 비도 싸니까.
기차에서 따뜻하게 잘수 있다는 생각 하나로도
기쁘더군요.
영등포 까지 갔다가. 5시에 지하철이 출발하니까
그거 타고인천 부평까지 가면 되겠지.
그렇게 계산을 하고 부산역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계획은 계획일뿐.
따뜻한 기차에서 잠을 잘수 있다는 생각은 잠시였고
3시쯤에 영등포 역에 떨어지더군요.
후아.. 부산보다 훨씬 추웠습니다.
짐가방에서 옷을 둘둘 꺼내서 목도리처럼 두르고
바지춤에 손을 넣어서 데워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LG 25시.. 라는 편의점을 발견했죠.
빌어먹을 LG. 참 싫었습니다..휴우..
안에 종업원으로 보이는 또래 여자애가
꾸벅. 조는걸보고.
참.. 따뜻하겠구나.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리고 진열된 물건들중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라면이 있는것도 보았고요..
배가 고팠는지 꾸루룩,, 소리가 들립니다.
학교 에서는 라면을 일주에 1번정도 줬었는데
참 맛있었거든요..하하.
음... 주머니에 동전이 800원정도 있으니 이걸로
라면을 사서 먹어보고 싶었습니다.
들어가니 온기가 확~ 느껴지더군요
일부러 늑장부리며 이것저것 찾는척 하면서 시간을 끄는데
수상하게 보였나 봅니다.
여자분께서 "어떤거 고르시는데요??"
하시니.
아뇨.. 그냥요.. 이렇게 말하곤
미리 보아둔 라면.. 컵라면은 비싸고
봉지라면 하나를 꺼내들고 갔습니다.
계산을 하고. 잠시 망설이다.
저..이것 여기서 먹어도 될까요??
물어보니.
끓일장소가 없는데 어쩌죠?? 하더라구요..
그냥 부셔 먹을게요.. 있어도 괜찮죠?
했더니..잠시 흘끗 쳐다보고는 괜찮다고 합니다..
[라면을 부수고 봉지를 뜻고 수프를 넣어서 흔들어서 먹는다.]
이런 간단한 RECIPE 조차 머리속에서 생각나지 않을만큼
급했습니다.
봉지를 뜻고 하얗게 나온 라면을 아구아구 먹고는
다 먹어갈때쯤 발견한 스프를 입안에 털어 넣었습니다.
얼얼.. 많이 맵더군요. 건더기 스프에서 고기도 골라 먹었구요.
하하.. 매워도 맛있었습니다.
딸랑~..
가게 문이 열리면서 중년분이 들어오십니다
"아빠~ 나 들어갈게,,,"
응?..아빠??,,아.. 아빠.
ㅋ... 웃겼습니다. 아니. 울고 싶었습니다.
아니지.음.... 말못할 감정이 여러 가지로 북받혀 오르더군요.
학창시절 잠시 해보았던 "사랑"이라는 감정 말고도
여러가지 감정이 복합된 감정을 느낀건 처음입니다.
"그리움..."이라는걸요.
그리웠습니다. 원망도 되었습니다.
머라카락 한올 기억나지 않은 부모님들이 그립고
보고싶고, 미웠습니다..
나도. 아빠,, 엄마가 있었으면
아까 추위에 떨면서 지나쳤던 그 집들.
그 많은 아파트 중에 한군데서 지금쯤 따뜻하게
잠을 자고 있겠지.
내일은 엄마가 깨워주는 기상소리에 놀라 일어나서
밥을 챙겨 먹을꺼야..
하하....... 라면 수프가 매워서 눈물이 나도군요.
절대로. 라면수프가 매워서 울었던 겁니다.
너무 매웠습니다.
라면수프도 맵고, 세상도 맵고......
보다못한 종업원..딸. 그분이 이프로 하나를 건네시더군요.
난 2%가 부족했었나 봅니다.
부모님,,이라는2%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감사합니다"하고는.
벌컥벌컥 들이켰습니다.
매운 스프 사이로 알싸~ 하니 퍼지는
음료수가 너무 맛있었습니다.
부끄러움을 떠올리기 싫을 정도로..
잠시 보시던 사장님께서 딱하게 보이셨는지.
이것저것 물어보시더니
지하철 시간 될때까지만 여기서 몸좀 녹이라고 하시더군요.
그래도 가게 인지라 이것저것 줄순없고
집에서 만들어온 도시락도 같이 먹었습니다.
소세지며,, 계란말이며..............
정이며.. 신경써준 흔적들이며..
걱정이 묻어나오는 그 반찬들.
왜 당연한 이사람들의 소유가
나한테는 당연함이 될수 없는지 화도나고.
그때가서야 그립다는 생각을 하는내가
참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미워하는 내자신이 나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날 중소기업에 입사를 해서
따뜻한 밥과 잠자리를 보장받을수 있었죠..
지금은 삼성전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천안에.
어쩌면 이 글을 보시는 분들중에
같은 회사 분들도 있겠군요.
제이름 검색하지 마세요!....하하.
중소기업에서는 아줌마들이랑 일해서
그런지 몰라도 바쁘게 일하고
퇴근해서 자고....
반복된 일상때문인지 몰라도 생각이 안났는데.
참. 사람이라는게 이기적인가 봅니다.
혈육들도 필요하고, 생각날때만 찾는걸 보니까...
이 회사 또래 여사원들이랑 같이 출퇴근을 합니다.
"엄마.. 나 월급 얼마야??"
"아빠. 나 힘들어. 그만두고 싶어.."
"엄마~ 오늘 회사밥...."
하루가 엄마, 로 시작해서 아빠.로 끝납니다.
출퇴근하는 버스에서
엄마, 아빠를 찾는 목소리 들이 들려옵니다.
나도. 해보고 싶습니다.
엄마. 나 월급 받아서 선물사서 올려 보낼게.
엄마. 나 오늘 밥굶었으니까 라면좀..
아빠..... 면도는 어떻게 해야 잘되요???,.....
후...
보고 싶습니다.
물론 이혼하셔서 따로 가정을 꾸린 부모님들께
지금 우리 형제가 나타난다면
참..... 곤란해 지실거라는거 잘 압니다.
그래도 이기적으로 한번쯤 보고 싶습니다.
우리.. 형제가 기억에 있을 부모님들처럼.
어쩌면 우리 형제를 생각하고 계실 부모님들처럼
우리도 기억하고, 우리도 생각하고 싶습니다.
꼭한번, 딱 한번만 보고 싶습니다.
그냥 먼발치에서라도 좋으니.
기억할수 있는 머리 한올이라도 좋으니.
꼭... 한덩이 기억만이라도 간직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부끄러움을 무릎쓰고 글을 올립니다.
형. : 김우영
동생 : 김영근.
형은 25살, 동생은 22살입니다.
1988년?.. 그 정도 나이때에 헤어졌구요.
서울근교에서 살았던것 같습니다.
후.. 얼굴 왼편에 둘다 점이 있다는 것만빼고는.
이름도, 생일도..전부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이 이름도 아닌지도........
학교에서 열심히 연습했던.
트럼펫으로 부모님 은혜도 연주해 드리고..
제가 좋아하는 라면도 ..
산해진미, 필요 없습니다. 라면 한그릇 먹어봤으면.
ㅋㅋㅋ
좋겠습니다..
TV프로중에 아침마당, TV는 사랑을 싣고..
이것저것 다 신청해 보았지만
안되더군요...
혹시라도. 부모님들께서 싸이를 하셔서
이 글을 보게 되신다면.
다음글을 보아주세요..
"부모님, 저희형제 잘 크고 잘자라고 있습니다.
형은 창원에 LG전자에서, 동생인 저는
천안에 삼성 전자에서 정사원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저희때문에 죄책감 느끼신다면
그럴필요 없습니다. 사람은 후회를 하지만
결정할 당시에는 그 결정이 최선의 선택이니까요.
부모님들은 최선의 선택을 하셨기때문에
후회나 죄책감 같은것은 느끼실 필요 없으십니다.
저희는 잘크고 잘자랐습니다.
음.. 폐가 된다는걸 잘알고 있지만서도
한번만 보고 싶네요.하하..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억엔 없지만 그래도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글을 마칠때쯤이면 머릿속에
절하는 형제모습을 상상해주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22년간 어버이날 꽃 달아 드리지 못해서,
생신 챙겨 드리지 못해서..
첫월급으로 속옷 챙겨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사랑..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