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는 세계적으로 대중음악이 양적, 질적으로 팽창하던 시기였다. 1991년 영국 밴드 블러는 데뷔앨범 로 브릿팝을 발견해냈고 미국에서는 시애틀을 중심으로 ‘얼터너티브 무브먼트’가 부흥했다. 블러, 스웨이드, 오아시스, 펄프, 버브 등이 이 시기의 영국 록의 계보를 잇는다면 너바나, 펄잼, 앨리스 앤 체인스 등은 미국 록 음악사를 새로 쓰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해 청년 하위문화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고, 홍대앞 클럽씬은 80년대 신촌 주변에 형성된 언더그라운드 음악씬과 병렬적으로 음악적 에너지를 내뿜었다. 1993년 등장한 밴드 유앤미블루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열어놓은 댄스 음악씬에도, 언더그라운드/클럽씬에도 포함되지 않는 스타일로 ‘새로운 한국 록음악’을 제시한 밴드였다. 1997년에 활동을 중단한 유앤미블루의 멤버 방준석과 이승열은 2000년대에 들어 영화음악과 솔로 활동으로 다시 등장했다. 얼마 전 4년 만에 2집 앨범 을 발표한 이승열을 논현동에 위치한 플럭서스 연습실에서 만났다.
: 공연이 있다고 들었다. 준비로 바쁘지 않나.
이승열: 6월 2일과 3일에 문화일보사 문화일보 홀에서 열린다. 단독 공연은 1년이 좀 넘었고 공연장에 서는 건 거의 1년 만이다. 연습은 많이 하는데 그렇다고 많이 바쁘진 않다.
: 4년 만의 새 앨범이다. 꽤 오랜만인데.
이승열: 오랜만이지만, 사실 준비는 오래 전부터 했다. 내가 체계적으로 음반을 만드는 기획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서, 지난 2년 반 동안 녹음실과 작업실, 집과 공연장을 오가는 생활을 했다. 2집 곡을 쓰겠다고 생각한 게 2004년 말이다. 집에서 데모를 만들고, 그걸 스튜디오에서 다시 확인하고, 레파토리가 모이면 녹음실에 가서 녹음부터 믹싱까지 한 번에 해보면서 지냈다. 1차 마스터링은 올 해 초에 끝났다. 점점점점 고물을 조물락거려서 떡을 만들듯, 그렇게 된 것 같다. 특별히 변화무쌍했던 건 아니다. 마침표를 딱 찍은 시점은 3월 중순이다. 2차 마스터링이 그때 끝났으니까.
: 2004년이라면, 1집이 나온 지 얼마 안되었을 때다. 사실 이번 음반은 혼 세션도 늘어나고 멜로디나 편곡도 조금 달라진 느낌이 있다. 좀 더 블루스에 가까워졌달까. 오히려 록킹한 감수성보다는 어덜트 컨템포러리라는 느낌이 강하다. 그런데 1집을 발표하고 1년 정도 되었을 때부터 준비한 앨범이라니(웃음).
이승열: 1집 타이틀곡이 ‘Secret’이었는데 그 당시에 어느 인터뷰에서 2집은 이런 사운드가 주될 거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작업하는 동안 그 말을 잊어버렸나보다. 2집에는 서정적인 음악을 해야지, 라고 생각한 건 아닌데 작업하는 동안 왠지 자꾸 카펜터스가 떠올랐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록킹한 곡도 나왔는데 2집에 수록되지는 않았다.
: 당시 유앤미블루의 음악은 하드록이 아니라 블루스나 재즈, 사이키델릭에까지 닿아있던 음악이었고 솔로 1집에는 그런 정서가 닿아있기도 했다. 하지만 2집은 그 고리들을 피해가는 느낌이 있다. 사운드는 굉장히 세련되었지만 노랫말은 관조적이고 사색적이면서 굉장히 추상적이다. 감상이나 정서가 아니라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승열: 오히려 가사에 있어서는, 1집보다는 2집이 더 내 얘기를 한 것 같은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별 건 아닌데, 사실 그 안에는 부모님 얘기도 잇고 아내에 대한 얘기도 있다. 주름이 많은 노인의 얼굴에서 영감을 받고 쓴 가사도 있고, 결혼 7년 째의 안정감에 대한 얘기도 있다. 자동 기술하듯이 쓴 가사도 있고. 유앤미블루 시절보다 가사를 쓰는 작업이 굉장히 즐거운 게 사실이다. 그때는 서툴고 촌스럽기도 했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그런 한계를 벗은 것 같기도 하고.
: 그런데 거의 모든 곡에 영어 가사가 나온다.
이승열: 유앤미블루 때에도 전곡이 영어인 곡이 있었다. 아직도 작사를 할 때 영어로 먼저 쓰는 부분이 많다. 물론 100% 한국어로 가사를 쓰려고 애쓰고 있다. 일종의 개인적인 방침인데 잘 안 되는 경우도 있고. 그런데 그건 굳이 영어로 옮기면 오히려 어색한 부분들이다. 음절도 그렇고 뉘앙스도 그렇고. 고쳐봐야 손해인 경우는 고치지 않는다. 대신 조심스럽지. 유앤미블루 시절에는 되는대로 뱉어낸 부분이 많았으니까.
: 이번 앨범에는 러브홀릭의 강현민, 클래지콰이의 김성훈(dj clazzi), 그리고 W의 베이시스트 김상훈 등이 참여했는데 각각 어떤 역할을 했는지 궁금하다.
이승열: 강현민과는 1집 때 ‘비상’으로 이미 작업을 했었다. 그가 쓴 곡을 부를 때에는 곡을 좀 더 해석하고 내면적으로 끄집어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시간의 끝’은 그런 생각으로 불렀다. 클래지는 내가 몰랐던 내 화법을 찾아내게 만든다. W의 김상훈은 사실 나와는 접점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게는 없는 딱 부러지고 깔끔한 정서가 있다. ‘우리는’은 사실 내가 작업해서 녹음한 버전이 있지만 앨범에 수록되지는 않았다. 그가 아주 효과적인 편곡으로 딱 맞는 모양을 만들어서 그렇다. 자극을 받았다. 그래서 사실, 앨범에 좀 더 닿아 있는 참여자는 김상훈이다. 편곡을 다시 하게 만든 역할도 했으니까.
: 사실 유앤미블루 이야기를 피해갈 수 없을 것 같다. 97년에 활동을 그만두고, 2004년에 솔로 1집이 나왔는데 그 동안에 방준석과는 어떤 관계로 지냈는지 궁금하다. 방준석이 복숭아 프로젝트에서 영화음악을 만들던 것도 그 즈음이었던 것 같은데.
이승열: 그는 음악적 동료이기 전에 이미 친구였고 같이 살던 사람이다. 그래서 음악적 정서보다 인간적인 정서가, 애증도 있는 그런 느낌이다. 유앤미블루도 그렇다. 사실 97년 1월에 마지막 공연을 하면서 ‘쉼표’라는 부제를 달았다. 그게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다시 이어가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활동을 접은 후에도 방준석과 OST 작업 외에도 클럽 라이브를 해보려고 연습도 해봤다. 그런데 물리적으로 쉽지가 않았다. 하자, 하자, 곡 좀 모아보자. 이런 얘기는 솔로 1집 작업하는 중에도 했던 얘기들이다.
: 90년대 초중반이라는 시간에 유앤미블루는 한국 대중음악에서 메인도, 언더그라운드도 아닌 밴드였다. 하지만 굉장히 서양적인, 이를테면 세련된 록 음악을 선보인 밴드였는데 당시 대중음악 씬의 사람들과 어울리기도 왠지 어려웠을 것 같다.
이승열: 사랑과 평화라는 밴드로 활동하시던, 송홍섭 선생이 만든 송스튜디오에서 데뷔앨범 작업을 했다. 그 당시 송 스튜디오는 한국에서 좀 다른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모이던 커뮤니티이기도 했다. 나는 그때 미국에 있었고 방준석이 먼저 들어와 있었는데 데모를 돌린 지 3개월인가 만에 연락이 왔다. 나로서는 너무 쉽게 연락이 와서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고민이 되더라. 그때 우리는 스물 둘이었다. 뭘 알겠나(웃음). 참 좋은데 대중적으로는 어렵겠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하도 들어서 우리는 애초부터 ‘아, 우리는 그냥 변방이구나’라는 생각을 항상 했다. 약간 주눅도 들어 있었는데 기를 펼 수 있었던 건 오히려 2집 홍보 기간이 끝난 뒤였다. 그때 홍대 앞 클럽에서 다섯 명, 열 명을 앞에 두고 공연을 시작했다. 활동을 접고 나는 미국으로 돌아가 있었는데 (방)준석이가 전화로 ‘유앤미블루 앨범이 중고로 10만원이 넘게 팔린다더라’라고 말해서 농담하지 말라고 했다(웃음). 그런데 찾아보니 그 때 이런저런 얘기들도 많이 들리더라. 기쁘기도 했다.
: 송홍섭씨 같은 경우, 당시 신윤철 솔로 앨범이나 삐삐밴드, 삐삐롱스타킹, 정경화, 어어부밴드의 초기 앨범들처럼 남다른 음악을 발굴하거나 발매하는 사람이었다. 유앤미블루도 그랬고, 그런데 솔로 1집이 플럭서스에서 나와서 조금 놀랐다. 그때 플럭서스는 막 새로 생긴 레이블이라서 더 그랬던 것 같고.
이승열: 사실 ‘송 대장님’이 연결해 준 거라고 봐도 된다. 삐삐밴드의 이윤정 솔로 앨범을 작업할 때 미국에 잠깐 들렸는데, 그때 솔로 앨범은 자기랑 하자고 가계약서 같은 걸 뚝딱 들고 오기도 했다. 2000년 여름에 다시 음악을 하겠다고 내가 찾아갔을 때, 플럭서스를 소개받았다. 김병찬 사장이 원래 음악가 출신이기도 하고, 송 스튜디오에서 유앤미블루 1집을 녹음할 때에는 메인 엔지니어이기도 했다. 뮤지션, 프로듀서, 싱어송라이터라는 체계로 회사를 만들 계획을 오래 해 온 사람이었다. 그리고 사실 그때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사람이었고, 다른 레이블의 프로덕션 시스템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사람이기도 해서, 한 마디로 말하자면 내가 구원받은 거다(웃음).

: 이승열 음악의 근거, 바탕은 뭔가.
이승열: 내 나름대로 정리가 되어야 하는 문제인데 어렵다. 유앤미블루 활동을 쉬면서 2000년부터 내 음악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후에는, 뭐랄까. 연극적인 요소, 내러티브가 있고 스토리가 있는 음악이 내 안에 있다고 생각되었다. 주인공이 등장하고 하나의 이야기가 시작되고 끝나는. 사실 나는 뒤죽박죽인 사람이다. 음악에 대해 정규 교육을 받은 사람도 아니라 밴드를 통해서 음악을 배운 사람이고 촌스러운 걸 좋아하면서도 싫어하고, 그런 미묘한 취향의 차이가, 취향의 문제가 있다. 돌아볼 때 창피하면 안된다는 느낌은 가지고 있다.
: 그런 느낌은 90년대를 통과한 세대의 정서이기도 한 것 같다. 아니면 나이가 들었거나(웃음). 당신은 미국과 한국을 오갔던 사람인데 그런 중간자적 정서가 작용한 건 아닌가.
이승열: 사실 그게 내 전부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은 심리적으로 안정기다. 결혼도 했고, 나이도 들었고. 처음에 10년 만에 한국에 왔을 때 김포공항에 내려서 맡던 냄새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런데 무척 다른 풍경이었다. 그 전에 살던 금천구에 10년 만에 돌아왔더니 모두 변해서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2000년에 다시 돌아왔을 때에는 오히려 짧은 시간에 또 너무 많이 변해서 놀랐다. 그때는 오히려 미국보다 더 화려했으니까. 내가 아는 한국은 두 번 변한 곳이다. 풍경 뿐 아니라 시스템도 바뀌었고. 그런데 내 음악이 그때처럼 나오지 않는 이유는 지금 내가 안정기라서 그런 것 같다. 유앤미블루 3집이 나오면 또 모르겠다(웃음).
: 계속 객원밴드, 원맨밴드로 작업하는데. 고정적으로 밴드를 구상할 생각은 안했나?
이승열: 나는 밴드 없이는 음악을 못한다. 란 영화 제목대로 목숨을 내맡길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밴드다. 내 뒤를 믿고 맡기거나, 내가 그 뒤에서 봐주기도 하고. 밴드는 내가 포기해야하는 부분과 그들이 포기하는 부분이 섞인, 인생사의 축소판이다. 포기하고 알아가고 기다려주고 싸우기도 하고 화는 좀 참아주는 관계랄까. 이게 차라면, 테스트 드라이브를 같이 만든 사람들과 마구 달렸다가 공연이 끝나면 엔진을 끄고 차고에 넣어놓고 한 동안은 쳐다보지도 않고. 그러다가 다시 지켜보는 그런 느낌이 있다. 애증이랄까. 밴드를 하고, 음악을 한다는 건 포기할 걸 포기하는 법이나, 절대로 포기하면 안 되는 것들을 배워가는 과정이다. 내가 돈을 많이 벌면 고정밴드를 할 수 있을까. 하하.
: 아니면 유앤미블루 3집을 내는 것도 방법이지 않나? (웃음)
이승열: 그런 얘기도 했다. 오리지널 멤버로, 그러니까 97년에 홍대에서 공연하던 멤버들로 다시 모여서 새 앨범을 내고 싶기도 한데,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생각은 하는데(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