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넌 누구니? 날 아니.”
생그럽게 웃던 아이의 표정이 순간 시무룩해 졌다. 그리고는 나에게 한마디를 건네었다.
“왜 날 기억 못해….”
아이는 내 눈앞에서 점점 없어져 갔다.
내가 잘 못 본거겠지 하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기분은 한결 나아진 듯하였다. 내 앞에서 누가 죽는 것도 보지 않고 엄마 아빠는 보고 싶지만 사실 편안했다. 앞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끼익]
문을 열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순간 나는 무서워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아무 소리도 안나 이불을 살짝 걷고 고개를 조금 내밀어 보았다. 한 20대 후반처럼 보이는 여자가 서있었다.
“신영아.”
그 여자는 내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 여자가 누군지 모르겠다. 아니 얼굴은 친근한데 기억이 나지 않는 듯하였다.
“누..누구시죠.”
“나야 신영아.”
“누구 신데 제 이름까지 아시고.”
“나야, 준희.”
“주…준희?”
준희라니 정말 이해가 되질 않는다. 왜 어린 학생이 아닌 얘도 있을 법한 나이에 여자가 나에게 자신을 준희라고 하는 것일까.
“왜, 아줌마가 준희에요?”
“아줌마라니. 신영아. 왜 그래 아직도 내가 기억이 안나?”
“누군지 모르는 사람을 제가 모른 다고 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요?”
갑자기 그 여자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내가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해.”
울고 있는 여자를 보니 괜히 내가 미안해 졌다.
“저 울지 마세요….”
“신영아 어서 가서 씻어. 오늘 나랑 갈 곳이 있어.”
“싫어요. 저 가기 싫어요.”
“왜 그래 신영아. 그러지 말고 내가 너 힘든 거 도와줄게 신영아. 들어가서 씻고 와.”
나는 간절하게 느껴지는 준희라고 우기는 여자의 말대로 씻으러 들어갔다.
샤워를 하는데 팔을 보니 많은 상처가 있었다. 왜 나에게 이런 상처가 있는 지 기억이 없다. 순간 머릿속으로 짧은 영상이 지나갔다. 칼과 피 그리고 여자의 비명소리 순간 적으로 귀를 막아 버렸다. 나는 어서 서둘러 씻고 나와 뿌옇게 변한 거울을 닦고 나의 모습을 보았다.
“꺄~~~~~~~”
나는 내 얼굴을 사정없이 만져보았다.
“안돼…..이건 아니야… 이건….내가 아니야..”
거울 속에 비친 나는 고등학생 아이가 아닌 30대를 바라보는 여자가 얼굴을 만지면서 서있었던 것이다.
나는 거울에서 눈을 떼지 못하였다. 눈물은 정말 안 날 수가 없었다. 얼굴부터 머리까지 온통 모든 것이 바뀌어 있었다.
순간 준희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안으로 뛰어 들어가 준희를 찾았다. 준희는 내 고함소리를 들었는지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그럼…정말…준희야…?”
나를 바라 보더니 나에게 달려 들어 나를 안아 주었다.
“신영아….”
우리는 둘이 안고 눈물을 흘렸다.
“준희야…내가 왜 이렇게 변했는지 말해줄 수 있어?”
“그럼 우선 우리 나가자.”
준희는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밖을 나가보니 생전 처음 보는 곳이었다. 거기에다가 푸르른 계절인 여름이었다.
“어제랑 계절이 틀린 것 같아.”
“어…어제라니.”
당황항 준희의 표정에 나는 어제 내가 병원에 들어오게 된 일들을 말해주었다.
“내가 병원으로 끌려온 거 같아 나의 눈을 가리고 끌고 가던 한 남자, 얼굴은 기억이 나질않아. 그런데 기억나는 건 어제는 정말 추운 날이었는데 아침에는 눈도 내리고.”
준희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신영아, 너 정말 기억이 안나니”
“뭐가?”
“넌 지금 내가 보기엔 나를 기억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같아.”
“무슨 소리야 난 다 기억해. 1달 전 우리 학교 얘들이 한 명씩 죽어 가고. 내가 너무 힘들었어. 나까지 죽을까 매일 저녁 잠을 자지 못하였어.”
“어제도 여름이었고, 지금도 여름이야. 1달 전도 여름이었고”
“말도 안되.”
“넌 지금 기억하기 싫어하는 것들을 기억 하지 않고 있어.”
“야 한준희. 너 왜 이래?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너 같음 이 떙볕 더위에 사람들이 다 겨울 옷을 끼어 입겠니?”
“그럼 넌 지금 너의 나이 먹은 모습을 어떻게 설명할래.”
그러고 보니 내 변한 모습이 정말 세월을 증명하는 증거였다. 다시 준희를 바라 보았다. 준희는 무언 가를 결심한 듯 하고 나의 두 눈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내가 이런 말 너 괜찮아 질 때 까지 말 안 할라고 했어, 너 만나기까지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 줄 아니? 아니 무서웠어.”
준희가 하는 말 모두 알아 듣지를 못했다. 나는 오히려 준희가 하는 말이 너무 이해 안가고 어의가 없었다.
“너…..미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