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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고의 광년이(미친X), 전여옥 어록 모음

전여옥즐 |2006.10.03 12:49
조회 797 |추천 0

브레이크 뉴스에서 퍼온건데, 이런 기사는 널리 알려져서 저 미친 입을 가진 전여옥의 입을

 

다물게 해 줘야 한다는거....

 

본문을 보시려거든 '웹페이지 같이보기' 를 클릭해야 한다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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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이 공항에서 껴안아 주니까 치매든 노인(DJ)처럼 얼어서 서 있다가 합의해준게 6·15선언 아닙니까.

 

" 전여옥 의원이 22일 대전 당원교육행사에 연사로 나서 쏟아낸 독설로서 절정을 이루었던 악문장이다.

 

기자는 전여옥의원이 전 김대중 대통령의 악랄한 폄하 발언에 대해 일소를 금치 못하겠다느니, 아연실색, 저질 정치인의 발작같은 용어로서 전의원의 오만방자한 품행을 굳이 나무랄 생각이 없다. 거두절미하여, 단 하나 기존 지우개로 지울 수 없는 전 의원의 발언록만큼은 얼추 짚고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

2004년 3월 18일, 한나라당 대변인으로 정식 임명된 전여옥 의원은 첫날 어떤 발언으로 테이프 커트 했을까. 취임 첫날이라. 이날 하루만큼은 격식 있고 품위 넘치는 자자손손 전수할 명문을 남기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짐작은 짐작일 뿐.

전 대변인은 이날 오전 CBS 라디오프로그램에 출연 "노무현 대통령은 선거의 독립성을 훼손, 경제 파탄, 측근 비리 문제를 다 인정했다"며 "여기에 추가할 죄목으로 '자살교사죄'’가 있다”고 주장.

전 대변인은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을 공개적으로 모욕해 자살 의도가 없던 피해자를 자살로 몬 것은 형법 제252조 2항 자살교사죄 요건에 충분히 해당한다”고 말했다. 이날 혹 동명이인의 전여옥 검사가 방송에 출연한 것은 아니었을까.

전국구 '배지'를 달기 전인 2004년 3월부터 2005년 11월 17일까지 한나라당의 대변인 직을 떠맡은 전 대변인! 대변인 사직 이후에도 그녀의 언변은 휘황찬란하기만 했다. 사석이 아닌 태반이 공석에서 남긴 전의원의 메시지를 설렘과 기대감 속에 녹화 방송 재생을 위해 자! 잠시 최근부터 역으로 거슬러 시간 여행을 출발한다. 

▽ “반기문 UN총장 출마는 국제사회 조롱거리”(2월 16일)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은 지난 2월 16일 모 탈북여성 문제와 관련 이를 외면하고 있는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에게 “UN사무총장 출마 선언은 ‘국제사회의 조롱거리”라며 맹비난.

본인의 둥지인 한나라당조차 반장관의 당선을 위해 협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나선 것과는 무관한 듯 싶다. 비록 개꿈이긴 하지만, 본인이 세계 최초의 여성 후보로 유엔사무총장을 꿈꾸었다면, '국제사회의 일대 경사라며' 자화자찬에 몰두하지 않았을까.

▽ "민노당 의원들의 보디가드 노릇"(2005년 7월 3일)
전여옥 대변인은 2005년 7월 3일, “10자리 가지고 위세를 떨치는 민노당 의원들의 보디가드 노릇을 해줬다”며 열린우리당을 폄하한 뒤, "민노당은 ‘뒷거래’ ‘암시장 매매’로 (열린우리당의) 이중대 노릇을 해주는 충성서약을 했을 뿐 아니라"

▽ "다음 대통령은 대학을 다닌 경험을 갖고"(2005년 6월 2일)
"우리 국민의 60%가 이미 대학을 나온 국민이에요. 우리가 다음번 대통령은 한번 국민의 지식수준이라든가 또는 국민의 학력 형태도 대학 졸업자가 60%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대학을 다닌 경험을 갖고 있는 분이 이 시대에 적절하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 2005년 6월 2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 인터뷰 -

이 발언으로 강한 사퇴압력을 받기에 이르렀지만, 박 대표가 대신 사과를 하며 가까스로 불명예 퇴진의 고비를 넘겼다.

▽ "모처럼 나라가 조용해질 기회-오래 머무시라"(2004년 11월)
2004년 11월 남미 3개국 순방 길에 오른 노 대통령을 향해 전 대변인은 “모처럼 나라가 조용해질 기회” “되도록 오래 머무시라”는 독설을 퍼붓는다.

▽ "노(勞)와 사(使)의 문제이지 노(盧)의 문제"(2004년 5월)
2004년 5월 전 대변인은 노 대통령에게 노사문제에서 빠지라며 “노사문제는 노(勞)와 사(使)의 문제이지 노(盧)의 문제는 아니”며 “노무현 대통령은 전 국민의 큰 틀에서 더 큰 나랏일에 힘을 쏟아야 할 것”이라는 ‘해괴한’ 논평을 냈다.

▽ "그들의 관계가 불륜 남녀인지"(2004년 3월 21일)
"요즘 같은 세상에 중년 남녀가 호텔에서 대낮에 한시간씩 단둘이 만났다는 게 참 왜 그랬는지 궁금합니다. 여러 가지 심정을 굳히게 합니다. 어떤 의도로 만났는지 왜 만났는지 대충 짐작이 갑니다. 이 둘의 만남은 아무리 보아도 부적절한 관계에 부적절한 만남입니다. 그들의 관계가 불륜 남녀인지, 그렇지 않다면 불순한 관계인지, 그 만남의 배경에 대해서 반드시 해명해야 될 것입니다." - 2004년 3월 21일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과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의 호텔 커피숍 만남에 대한 논평 -

‘이회창 대통령은 없다’의 저자 이태준씨는 “박근혜 대표가 “언젠가는 저녁이 비었을 때 전 대변인에게 ‘지금 약속이 없어서 라면을 끓일까 생각중’이라며 ‘저녁 함께 먹지 않겠느냐’고 전화를 거는 등 스스럼없을 정도다”라고 하던데, 그렇다면 전여옥은 박근혜와 무슨 관계인가?”라고 반문하고 있다.

YTN은 2005년 2월 17일 정 의원과 40대 유부녀의 호텔방 밀회 장면을 폭로했다. '불륜논평'으로 정부와 여당을 공격했던 전여옥 대변인은 "이게 당에서 언급할 성질의 일이냐? 당과는 관련이 없는 일"이라고 짜증 섞인 반응을 보였다.

▽ "미숙아는 인큐베이터에서 키운 뒤에"(2004년 3월 12일)
2004년 3월 12일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안이 가결되던 날, TV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한 전 대변인은 "노 대통령은 시대정신이 낳은 미숙아, 미숙아는 인큐베이터에서 키운 뒤에 나와야지 제대로 생명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라며 탄핵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아마 동명이인의 전여옥 의사가 방송에 출연한 것은 아니었을까.

현재 전의원은 정부와 여당의 특등 저격수로 상한가를 치고 있지만, 언제 넝마주 신세로 전락할지 모른다. 본인이 한나라당에 몸담기 이전, 전의원은 한나라당과는 앙숙관계인 듯한 발언을 모호하게 남기지 않았다.

전여옥 의원은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정몽준 후보의 국민통합21의 핵심 멤버였다. 거기서 정몽준 아니면 한국이 곧 침몰할 것처럼 떠들며 정몽준 후보에게 온갖 헌신을 다했다.

그럼에도 노무현 후보로 단일화가 되고 이어 대선 직전 정몽준 의원이 후보 단일화 폐기 선언까지 쓰는 극약 처방을 했건만 극적으로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전의원은 마치 열대지방에서 냉대지역으로 거주지를 옮긴 억척 투사 같았다. 지구의 지축이 뒤흔들렸을 일이다.

드디어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고 나서 작정이나 한 듯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독설을 품어 놓았다. 그 실례는 여기서 생략하기로 한다. 전의원에 대한 예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은 아시겠지.

정부의 여당의 저격수를 명성을 날리면서, 동시에 전의원은 한나라당에 대해서도 신랄한 비평에 프로의 근성을 보였다. 아마 본인의 앞날을 미연에 알아본즉, 일대 전투도 치르지 않고 비례대표제로 그것도 당선이 일 백퍼센트 보장된 비례대표의원으로 한나라당에 입성하게 될 것이라는 기정사실화를 거듭 확신하였을 때, 아마 중립적이거나 선별 찬사 또는 맹목적 찬사에 매달리지 않았을까. 더욱이 대변인으로서 박대표의 최측근으로서 보좌할 것을 예지 하였다면 어찌 했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 "‘포스트 최병렬’이 박근혜라니!"(2004년 2월 24일)
“한나라당은 더 말할 나위도 없이 완전히 부패한 당이다. 차떼기정당이며 매수정당이다. 무엇보다 정치가 사양산업이 되기 전에 그 꿀과 우유로 목욕을 했던 당이다. … 박근혜 의원은 정치적 경력이나 정치활동을 볼 때 그는 여전히 박정희의 그늘에 묻혀 있다. … 그녀는 여전히 영남권의 공주로, 특정지역의 편애 속에서 안주했다. 국회의원으로서 몸을 던져야 할 때 몸을 사렸다. 가장 실망스러운 것은 스스로 미니 정당을 창당해 나갔다가 다시 한나라당에 쪼르르 돌아온 모습이었다.” -2004년 2월 24일 조선일보 칼럼 ‘‘포스트 최병렬’이 박근혜라니!’-

▽ "후궁처럼 첩처럼 살기로 작심했던 듯하다."(2004년 2월)
“한나라당은 정치 헌금 명목으로 엄청난 돈을 받다 보니 2등의 편안함, 1당의 기득권을 누리며 후궁처럼 첩처럼 살기로 작심했던 듯하다. 두 번씩이나 차려준 밥상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바보 정당의 최병렬 대표가 최근 보여준 모습은 최딩크도 최틀러도 아닌 '오대영'에 불과하다.” - 2004년 2월 ‘조선일보’ 칼럼 -

▽ "이회창 씨가 대통령이 안됐으면 좋겠어요."(2002년 대선을 앞두고)
“개인적으로 저는 이회창 씨(당시 한나라당 총재)가 대통령이 안됐으면 좋겠어요. 이번 대선에서는 가난과 실패를 겪어본 사람이 뽑혔으면 좋겠습니다. … (중략) 그래서 이회창 씨보다는 노무현 씨가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주간조선’ 인터뷰-

전의원은 81년 KBS에 입사한 뒤 뉴스 앵커, 도쿄 특파원, 라디오 진행자 등을  지냈다. 쉽게 말해 전문방송인 출신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본인이 방송인 신분으로 사회를 보는 상태에서 게스트가 시청자에게 실례나 결례가 될 발언을 할 조짐이 목도되었다면, 아마 우선적으로 시청자 항의에 오싹한 등쌀을 의식해서라도 극력 제지했을 것이었다.

우리는 특히 방송인 출신들이 공당의 대변인 역할을 맡게 되는 것을 빈번히 목도한다. 그러나 아무리 본인의 내외적 환경이 변했다 한들, 방송인으로서의 호감과 애정이- 이들이 정치인으로서 아예 작정하고 파편 조각 언어들을 무참하게 양산하여 내뱉어 낼 때- 싸늘하게 식은 모습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 곤혹스러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차라리 극도로 오염된 공기나 수질이 이보다는 제법 양호하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이다.

여러 권의 책을 내기도 한 전의원은 '일본은 없다 2편'에서 "나는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 받았고, 여고-여대 출신이라 학연이 밀려서 차별 받았고, 아버지가 이북 출신이라 지연이 없어서 또 차별 받았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아직도 차별 받고 있다고 생각하면, 차라리 이참에 일본통이기도 한 전의원을 일본에 아예 영구 귀화하도록 하여 일본 고이즈미 내각의 대변인역을 맡게 하면 어떨까. 물론 이보다 로또 복권에 당첨될 확률이 현저히 높겠지만, 전의원의 허무맹랑한 발언에 한반도와 일본열도는 주저 없이 신속하게 전시 상태로 돌변할 것이다.

22일 전의원의 DJ 파문 발언 장소에서는 이뿐만 아니라 시정잡배로 오인받을 만한 막말을 연거푸 쏟아냈다. 당일 취재에 임했던 기자는 "전여옥 의원님 저를 고발해 주십시오" 칼럼에서 이를 부인하는 전의원의 행태에 대해 "김대중 전 대통령과 관련 '치매'라는 발언을 두 번이나 했습니다. 한나라당 관계자와 수백 명의 당원 및 시민이 있었습니다."며, 아연실색하고 있다.

혹 기자가 치매 현상 아니 중증 치매환자 아니었을까? '빅브라더'(BIG BROTHER)의 세계에서는 존재치 않았던 일이 역사적 기록으로, 실존했던 사안이 허구로 공인된다. 혹 그 세계가 너무 성큼 다가온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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