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간척지 공사를 할 때 현대건설은 A지구와 B지구로 나누어 공사를 했다. B지구 공사는 별 탈없이 마무리되었으나 A지구는 최종 물막이 공사에서 난관에 부딪혔다. A지구의 방조제 길이는 총 6천4백미터였는데, 양쪽에서 방조제를 쌓아오다 가운데 270미터를 남겨놓고 나서 공사가 중단되었다. 초속 8미터의 무서운 급류가 흐르고 있어서 승용차만한 바윗덩어리를 던져 넣어도 금세 물살에 쓸려 내려가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었던 것이다.
B지구 방조제 최종 물막이 공사 때는 4.5톤짜리 바위에 구멍을 뚫어 철사로 두 세개씩 묶은 후 바지선으로 운반하여 투하했다. 그러나 A지구에서는 워낙 유속이 빠른 관계로 그러한 방법조차 통하지 않았다. "철사로 돌망태를 엮어 15톤 트럭과 30톤으로 매일 돌을 실어다 붓고 있는데도 소용이 없습니다"현장 감독의 보고는 절망적이었다. 아무리 많은 돌망태를 쏟아부어도 코끼리에게 비스켓을 먹이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었다. 현대식 장비를 총 동원했지만 손쓸 방법이 없었다.
당시 간천 공사의 최종 물막이 공법은 흔히 케이블과 바지선 등 해상 장비를 동원해 물막이 구간의 바닥을 점차 높여가는 점고식(漸高式), 덤프트럭 등 육상 장비를 이용하여 점차 좁혀가며 축조하는 점축식(漸縮式), 그리고 이 두 공법을 적절히 혼용하는 병행식의 세 가지 방법이 있었다. 그러나 A지구 최종 물막이 공사에서는 이러한 세 가지 방법이 다 무용지물이었다.
정주영은 고심했다. 시간을 끌수록 돈과 인력만 낭비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대로 방관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그는 원래 장애물 앞에 섰을 때 번쩍하고 '이것이다' 싶은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발상의 천재였다.
"거센 물살 때문에 해상 장비로도 안 되고, 육상 장비로도 안 된다? 그러면 그 초속 8미터의 거센 물살을 죽이는 방법을 쓰면 되지 않겠어?" 이러한 정주영의 생각은 아주 단순한 논리였다. 어떤 일이든 난관에 부딪히면, 그 난관의 원인이 되는 것을 찾아 제거해 버리면 되는 것이다.
"그 물살을 어떤 방법으로 죽이느냐, 그게 문제겠죠"
공사 현장 책임자가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머리를 쓰라구. 머리는 그냥 붙어 있는 게 아니야, 이럴 때 쓰라구 붙어 있는 것이지. 거 왜 고철로 팔아먹으려고 사온 유조선 있지? 그걸 당장 서산 앞바다로 끌고와"
정주영은 큰 소리로 외쳤다.
마침 정주영은 해체해서 고철로 팔아먹으려고 30억원을 주고 스웨덴에서 사온 웨터베이호를 울산 앞바다에 정박시켜두고 있었다.
곧 길이 332미터짜리 폐유조선은 울산에서 서산으로 옮겨졌다. 이른바 '정주영 공법' 또는 '유조선 공법'이라 불리는 세계 최초의 최종 물막이 공법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디데이인 1984년 2월 25일 새벽에는 진눈깨비가 내렸지만 정주영이 새로운 공법을 개발해 물막이 공사를 시범 보인다는 소문이 나자 각종 신문과 방송에서 기자들이 나와 현장을 취재했다. 새벽 4시부터 오후 5시까지 세 차례에 걸쳐 폐유조선을 최종 물막이 현장으로 끌어오려 했으나 너무 물살이 세어서 실패하고 말았다. 오후 6시가 되었는데도 폐유조선은 저 멀리 바다 위에 떠 있을 뿐이었다.
"내가 직접 해보지"
정주영은 작은 배를 이용해 폐유조선으로 건너가 진두 지휘를 했다. 오락가락하던 빗방울이 제법 굵어져 가설 조명등 사이로 빗발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 저녁 7시경, 필사적인 노력 끝에 썰물을 이용하여 폐유조선을 접안시켰다. 그러나 배 양쪽 끝에 20미터 정도의 틈이 생겨, 그 사이로 거친 급류가 급속하게 내해 쪽으로 빨려들어갔다. 작업은 철야로 진행되었고, 밤 11시경에 겨우 폐유조선의 꽁무니 쪽 틈을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다음날 새벽, 설물 때의 노역을 비웃기라도 하듯 폐유조선은 저만큼 먼 바다로 떠밀려가 있었다. 그때까지 폐유조선 탱크에 물이 차 있지 않아 완전히 침하되지 못한 상태였던 것이다. 그동안의 노력이 헛고생으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지. 예인선을 다시 불러!"
정주영은 다시 처음부터 시작했다. 몇 번의 시행 착오 끝에 '정주영의 유조선 공법'은 성공을 거두었다. 이 공사의 성공으로 정주영은 290억 원의 공사비를 절감했다.
한편 이 유조선 공법은 미국의 와 에 소개되었으며, 그후 영국 런던 템즈강 상류 방조제 공사를 맡은 세계적인 철구조물 회사에서 이 공법에 대해 문의해 오기도 했다. '정주영 공법'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유조선 공법이 세계적인 물막이 공사의 신공법으로 기록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