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공대생의 사랑 이야기 <3-23화> 왈츠

바다의기억 |2006.07.24 00:11
조회 9,078 |추천 0

주말이 지났습니다.

 

친척들이 다녀간 탓에 몸은 녹초인데

 

어떻게 또 한주를 버틸지... 허허.

 

======================== 월요병의 표본 ==========================

 

 

그런 다툼이 있고부터


나와 민아 사이는 무척이나 서먹해져 버렸다.


평소 생활에선 그 거리감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안무연습을 맞출 때나 둘만 있는 자리에선


예전과 다른 어색함이 분명하게 나타났다.



대체 왜 상황이 이렇게 된 걸까.


난 단지 안군을 조심하라는 의미에서 그런 말을 했던 건데


아무래도 감정이 격해있다 보니


의미가 잘못 전달 된 것 같기도 하고....



점심시간, 한나와의 특훈을 위해


스윙 댄스 동아리 연습실을 빌린 난


그런 생각들로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었다.



한나 - 뭘 그렇게 골똘히 생각하고 있어요?



그 때 마침 연습실 안으로 들어오는 한나.


일단 이 문제를 정리하기 위해선


나부터 당당해질 필요성이 있다고 느낀 난


한나와의 특훈을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기억

- ..... 진지하게 생각해 봤는데


이제 이런 연습 그만하는 게 나을 것 같아.


대충 어떻게 춰야한다는 건 알았으니까


이제부턴 혼자 연습할 게.



한나

- 괜찮겠어요? 이제부터 왈츠 연습해야할 텐데....


왈츠는 룸바보다 몇 배는 어렵다고요.



기억

- 어려워도 어쩔 수 없지.


민아한테 그렇게까지 이야기 해 놓고....


따로 연습을 해도 민아랑 하는 게 맞다 생각해.



한나

- 흐음.... 그래도 괜찮겠어요?


이번 일도 원인으로 치자면


오빠가 연습상대가 못 돼줘서 그런 거잖아요.



기억 - ........



확실히 그렇긴 하다.


처음부터 내가 잘 췄다면


아무리 안군이 연습을 제안한다한들


그녀가 받아들였을 리 만무하다.


결국 모든 일은 내가 자초한 거나 마찬가지인지도....



한나

- 게다가 간신히 신뢰를 회복하기 시작 시작했는데


왈츠로 건너가자마자 휘청하면


안군 오빠한테 역할 뺏기는 것도 금방이라고요.


그래버리면 더 이상 연습하는 걸로 뭐라고 하지도 못해요.



기억 - 아무리 그래도 일단 내가 떳떳한 입장이 못 되면....


한나

- 오빠가 떳떳하지 못할 게 뭐가 있어요?


오빠 저한테 무슨 흑심 있어요?



기억 - 아니, 하지만 그런 걸로 치면 민아도....


한나

- 그거랑은 또 다르죠.


민아언니는 흑심이 없어도 안군 오빠는 흑심이 철철 넘치잖아요.


제 발로 호랑이 굴에 들어간 거나 마찬가지라고요.



그녀의 말... 묘하게 설득력 있다.


요는 그런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선


내가 춤을 계속 잘 춰야한다는 것이고


한나와의 특훈에 대해선 당당해도 된다는 것.


어째 다 나 좋은 쪽으로 해석해 놓은 것 같지만......



한나 - 뭐하면 내가 언니한테 허락이라도 받고 와요?


기억 - 아니.... 안 그래도 돼. 연습 시작하자.



사실 아무리 마음 한 구석이 켕겨도


한나의 지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게 내 현실이었다.


그녀가 아니면 대체 누가 나를


이정도로 춤 출 수 있게 해준단 말인가?



결국 다시 재개된 나와 한나의 특훈.


상황이 이렇게 되니 무슨 수렁에라도 빠진 것 같다.



한나

- 자, 한손은 이렇게 마주 잡고....


다른 손은 제 허리를 감싸세요.



기억 - ..... 허...허리?


한나 - 그럼요. 왈츠 추는 것 본적 없어요?



허리라니.... 역시 민아에게 당당하기 위해서라도 그만 두는 게....



한나

- 아유 참! 당당해지라니까요!


괜히 그렇게 어색해 하는 게 더 이상하잖아요!


흑심을 버려요! 흑심을!


여자가 아니라 파트너로서 절 받아들이라고요!



기억 - 아무리 그래도.... 하아...오케이. 심호흡 좀 하고.


한나 - 자자, 시간이 없어요. 빨리~.



마지못해 한나의 허리를 받친 나였지만


역시나 시작부터 분위기는 어색 그 자체였다.



기억 - 차라리 왈츠를 건너뛰고 다른 걸 먼저 하는 게 어떨까?


한나 - 그랬다가 다른 거 하기 전에 잘리면요?


기억 - 그건... 안되지.


한나 - 그럼 좀 열심히 해 봐요. 허리도 더 꽉 감싸고.


기억 - 이렇게?


한나

- 더 꽉이요! 왈츠는 남자가 여자를 제대로 받쳐주지 않으면


허리 아프고 발목아파서 못 춘다고요.



기억 - ..... 이정도?


한나

- 흠... 아직도 부족하지만... 춰보면 감이 오겠죠.


늘 이정도로 당겨줘야 자세가 안 무너져요.



그녀는 아직도 부족하다고 말하지만


그녀와 나 사이 거리는 배가 맞닿을 정도로 가까워져 있었다.


이것 참..... 신경을 안 쓸래야 안 쓸 수가....



한나

- 부드럽게~ 슬~쩍~ 몸을 맡겨 봐요.


왈츠는 흐름이에요. 올라갔다~ 내려갔다~


일단 제일 기본이 되는 높이 조절부터 해봐요.


쿵 짝 짝~ 쿵 짝 짝~ 쿵에서 낮게, 그다음 점점 높게...



기억 - 이...이렇게?


한나

- 아뇨~ 무릎만 가지고 하는 게 아니라


뒤꿈치를 충분히 이용해 줘야 해요.


살짝 굽혔다가, 무릎을 곧게 펴고,


세 박자 째엔 뒤꿈치를 높이 들어줘요.


하! 중 상~ 하! 중 상~. 하에 포인트!



기억 - 아.... 이해 갔어.


한나

- 그 리듬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왼발 뒤로~ 오른발 대각선 뒤로~ 왼발 따라가 모으고.


쿵! 짝 짝... 쿵! 짝 짝...



확실히 룸바에 비해서 신경 쓸 부분도 많고


스텝도 어지러운 왈츠.


끊임없이 빙글빙글 위치를 바꾸다 보니


어디로 가야할 지를 찾는 게 가장 큰 관건이었다.



한나

- 운전할 때 깜빡이 켜는 것처럼 고개를 먼저 돌려줘요.


스텝은 높이 뜨지 않도록 쭉쭉 밀면서~.


하! 중 상~ 하! 중 상~.


부드럽~게, 흐름을 느껴 봐요~!



그제야 난 처음에 한나가 왜 그토록


허리를 꽉 감으라고 강조했는지 깨달았다.


파트너가 가는 방향과 속도에 정확히 맞추려면


늘 손에 힘을 넣어 몸을 밀착시켜 줘야 한다.


또 여성은 늘 뒤로 비스듬히 기댄 듯한 포즈라


허리를 받쳐주지 않으면 상당히 불편할 듯 하다.



한나

- 어머나~ 오빠는 룸바보다 왈츠타입인가 봐요.


본래 처음에 이렇게 잘하는 경우는 없는데...



기억 - 그래? 지금 잘 하고 있는 거야?


한나

- 그럼요~ 리버스턴만 잘 되면


기본 스텝은 완벽하겠는 걸요?



역시.... 춤은 한나에게 배우는 수밖에 없다.


댄서킴에게 삼일 동안 죽어라 배우고도 감을 못 잡던 왈츠를


연습 시작하고 한 시간 반 만에


이정도로 출 수 있게 되다니....


춤은 이렇게 머리가 아닌 몸으로 배워야 하는 거다.




그날 저녁 연습시간.


안무 연습을 시작하기에 앞서


댄서킴이 심각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댄서킴

- 기억씨는 제가 볼 땐 왈츠는 무리인 것 같아요.


일단 탱고를 먼저 해보고


잘 되면 남는 시간동안 다시 왈츠를 해 보는게....



기억

- 아뇨, 어제 집에서 열심히 연습했으니까


오늘은 잘 할 수 있을 겁니다.



댄서킴 - 그 이야기 오늘로 3일 째인 거 알아요?


기억 - 그래도 오늘은 진짜입니다.


댄서킴

- 흠.... 그럼 오늘까지만 해보고


영 가능성이 안 보이면 탱고로 가는 겁니다.



기억 - 옙.



역시 낮에 한나를 만나서 연습해두길 잘했다.


까딱했으면 오늘로 목이 간당간당할 뻔 했다.



댄서킴

- 먼저 오른쪽 Quarter turn~ 쿵 짝 짝.


왼발 빼면서 왼쪽 Quarter turn~ 쿵 짝 짝.



하! 중 상... 하! 중 상...


물 흐르듯 부드럽게 발을 밀면서 파도치듯 일렁이게....


왼쪽, 오른쪽, 뒤로 물러서면서 리버스턴....



댄서킴 - 오.... 이거 정말 몰라보게 좋아졌는데요?


기억 - 오늘은 진짜라니까요.


댄서킴

- 룸바 때도 그렇고 사람을 깜짝깜짝 놀라게 하네요.


내친김에 파트너랑 한 번 맞춰보죠. 민아씨!



서너 번 정도 내 스텝을 체크한 댄서킴의 평가는


이번에도 대호평이었다.



처음으로 민아와 왈츠를 맞춰보게 된 나.


아무래도 손만 잡고 추는 룸바보다


신체접촉이 많다보니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민아 - 저기... 기억아....


기억 - 응?


민아 - 허리... 조금 불편한데.


기억

- 아.... 이렇게 세게 받쳐줘야 춤출 때 편하데.


자세도 잘 나오고 호흡도 맞추기 쉽고.



민아 - 그치만..... 저기...


기억 - 아, 음악 나온다. 준비됐어? 셋 둘 하나, 간다.



모두가 연습을 멈추고 우리를 바라보는 가운데


난 과감하게 스텝을 밟아가며 민아를 이끌었다.


앞으로~ 오른쪽으로~ 뒤로~ 왼쪽으로~


난 한나가 강조했던 Z축 진동과


XY 평면상의 곡선운동을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되뇌며


실수 없이 스텝을 밟아나갔다.



하지만.... 뭔가 부족하다.


한나와 출 땐 정말 서로에게 의지해가며


휘청휘청 일렁거리는 맛이 있었는데


지금은 혼자 추는 사람 둘을 합성해 놓은 기분이다.



기억 - 공주, 조금 더 팔에 기대 봐.


민아 - 응? 왜?


기억 - 이.... 약간 더 일렁이는 느낌이 살도록....


민아 - ......



이런 내 요청에 민아는 나름대로 반응을 해왔지만


역시나 2% 부족한 건 마찬가지.


이런 건 개인차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건가?



기억 - 조금 더 역동적으로.... 크게 크게.


민아 - 잠깐, 기억아, 스텝이 너무 커...



답답한 마음에 스텝을 넓게 딛자


이내 내 옷깃을 꽉 잡으며 나를 제지하는 그녀.


한나와 출 땐 연습실 전체를 헤집고 다녀도 모자란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세평 남짓한 공간에서 맴돌고 있다.


분명 민아가 춤 자체를 못 추는 건 아니었다.


단지 너무 오밀조밀하고 단정한 스텝이 답답하게 느껴질 뿐.


어떻게 이렇게 극단적으로 다를 수 있는 걸까?



연출

- 이야...... 이제 더 이상


기억이 안무가지고 걱정할 일은 없을 것 같네.



회계 - 그러게. 룸바 때보다 훨씬 나은 것 같은데?



이런 내 답답함과는 무관하게


사람들의 반응은 지극히 좋은 편이었다.



이보다 더 잘 출 수 있는데....


이보다 더 화려하게, 더 격정적으로....



문득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가 덜컥 겁이 났다.


민아와 호흡을 맞출 때마다 한나와의 춤을 떠올리는 나.


이래선 옛 애인 운운하며


투정 부리는 남자나 다를 게 없었다.


아무리 안무 연습이 중요하다지만....


이대로... 계속해도 되는 걸까?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