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가에서 큰 흥행성적을 기록한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2차 대전 대 4명의 아들이 참전하여 3명의 아들이 전사한 어머니에게 혼자 살아남은 아들 하나를 어머니에게 돌려보내라는 육군본부의 명령에 의해 대위가 지휘하는 1개 분대가량의 특공대가 라이언 일병을 찾아 나서 그를 구하기는 했지만 지휘관인 대위를 포함하여 3명이 전사하는 불운을 맞았다...
1995년 여름 보스니아전쟁 때 미공군 조종사 오글래디 대위가 대공포에 맞아 적진에 떨어졌는데 6일 동안 그는 이슬과 벌레를 잡아먹으면서 "나는 단 한번도 우리나라가 결코 나를 버려둘 것이라고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 확신이 나를 견디게 만든 힘이 되었다". 국가에 헌신하다 불운을 당한 이 한사람의 장교를 구출하기 위해 십 수명의 특공대가 조직되어 목숨을 건 작전을 수행했는데, 특공대장인 해병대 장교는 "우리 임무는 그를 구하는 일이기 때문에 죽든 살든 우리는 부름에 응한 것뿐이다."고 말했다...
2001년 4월 1일 미해군 EP정찰기가 중국 해남도에 불시착했을때 이들의 송환교섭을 맡았던 주중 미국무관 닐 실록 준장일행의 행동은 세계적 관심사가 되었는데 실록 준장은 잡혀있는 승무원들에게 미국민이 보내는 성원, 조석한 석방을 다짐하여 승무원들의 사기를 올렸으며, 2차 접견 때에 승무원들이 요구한 화장지, 면도기, 셔츠, 심지어 콘택트랜즈 세척용 용액까지 전달했고, 가족과 E메일 통신을 할 수 있도록 조치함으로써 억류되어 있는 자국 군인들을 최대한 보호하는 가장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
몇년 전 미국의 한 언론이 "건국 200여년 밖에 안 된 미국이 오늘날 세계 최강국이 되는데 가장 기여한 기관이나 단체가 어디라고 생각하는가?"의 여론조사에 대한 응답은 하버드, 예일대학, NASA, 마이크로소프트들이 아니고 "웨스트 포인트"라는 답변이 나왔다고 했다.. 그 이유는 "자신을 희생해서 나라의 이익을 지키겠다는 군인정신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웨스트 포인트는 나라를 세우고 부강하게 만드는데 없어서는 안 될 울타리 역할을 한 군의 상징이다."라고 했다...
한국전쟁 휴전 50주년 기념일 하루 전날인 7월 26일 조지부시 대통령은 한국전 참전 미군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워싱턴의 한국전 기념공원을 둘러보았다...
이 한국전쟁 기념공원의 조그마한 동판에는 다음과 같은 짤막한 글이 새기어져 있다..."알지도 못하고(never knew), 한번도 만난적 없는(never met) 사람들의 나라를 지키는 부름에 응한(answered call) 우리 아들, 달들에게 우리나라는 경의를 표한다...
미국의 국가적 행사에 맨 앞에 서는 사람들은 제대군인들이다.. 비록 노인들이지만, 당시의 군복을 단정히 입고 자랑스레 행진하며 연도의 시민들은 아낌없는 갈채를 보낸다...모든 도시의 구석구석, 중요기관 지역에는 참전용사, 점몰용사들을 기리는 현충비가 반드시 서 있다.
하버드대학 안의 고풍스런 교회벽에 한국전에서 전사한 20여명의 교수, 학생들의 이름들이 동판에 새겨져 있는데, 미국은 한 도시에서 한 사람이 나올까 말까 한 "미국의 희망들"을 자유를 지키기 위해 한국전쟁에 내 보냈다고 평가한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한 대작인 10부작 영화 "Band of Brothers"는 2차대전시 노르만디 상륙작전에 참가한 미 공수 101공수사단 506연대 E중대 원들의 활약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한 영화인데 중대장이었던 윈터스 소령에게 그의 손자가 "할아버지 전쟁 영웅이예요?" 물었을 때 그의 답변은 '아니다' 나는 그 영웅들과 그곳에서 함께 있었을 뿐이란다... 또 다른 용사는 진짜 영웅들은 다 죽었다."
겸손한 영웅들에 의해 오늘의 강대국 미국이 건설된 것이다...
한국전쟁 당시 1953년 제8사단 수색중대원으로 배치된지 3일만에 강원도 금성지구 전투에서 중공군에게 포로가 되었다가 45년만에 만주를 거쳐 고향으로 돌아 온 일병 양순용 할아버지는 아직도 북한에 많은 국군포로가 생존해 있음을 증언하면서 "전투원으로서 포로가 되었다가 귀환한 사람을 귀순자 취급하지 말라."면서 정부가 주는 귀순자 정착금을 반납했다.. 고귀한 명예를 지킨 군인과 함께 있기에 우리는 아직 건재한 것이다...
한국전쟁 때 미8군사령관이었던 밴프리트 장군의 아들이 공군 전투기 조종사로 북한지역에 출격했다가 실종되어 수색작전을 지속했으나 찾지 못하고 시일이 많이 경과하자 밴프리트 장군은 다음과 같은 수색 중지 명령을 하달했다...
"이 시간 이후로 내 아들 수색을 위한 특수작전을 중지 할 것을 명령한다... 그 동안 작전에 참여해 준 장병들에게 밴프리트 중위의 아버지로서 심심한 감사를 표한다"...
6.25전쟁 중 미국은 지도층 자제 140여명이 참전하여 30여명이 죽거나 부상당했고, 중공군의 모택동의 아들도 참전하여 사망 시신도 찾지 못했다...
포크랜드 전쟁때 영국여왕의 둘째 왕자인 앤드류는 전투헬기 조종사로 참전했으며, 영국의 명망 있는 지도층 자제들이 입학하는 이튼 칼리지 졸업생 중 2천여명이 1, 2차세계대전에서 전사했다...
2000년 초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존메케인은 1967년 베트남전쟁에 참가 하노이 상공에서 격추되어 5년 반동안 포로생활을 했는데, 당시 그의 아버지인 해군 총사령관이 베트남측으로부터 아들의 조기석방 제의를 받았지만, "규칙상 포로는 잡힌 순서대로 풀려나야 한다."면서 사령관 아버지는 적국인 베트남이 아들에게 주겠다는 특혜를 단호히 거젛했다...
걸프전 당시 미국 합참의장을 지냈던 윌리엄 크로우 해군대장은 미국 의회 청문회에 출석해 이라크에 대한 군사적 응징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는데, 당시 이미 사우디아라비아에 배치되어 있는 장교인 자기 아들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아버지의 정치적 입장은 이라크에 대한 군사적 응징에 반대하는 것이며, 그 소신을 의회에서 증언했다. 그러나 너는 미국의 군인이지 정치인이 아니다. 너의 최고지휘관은 미 합중국 대통령이며 그의 결정은 곧 국민의 결정이나 다름없다.
군인은 지휘관의 명령에 따르는 것이 생명이며, 따라서 너는 대통령의 명령이 떨어지면 지체 없이 진격하면 된다. 네 뒤엔 국민이 함께하고 있다."라고 섰다...
1997년 우리나라 언론기관들의 조사 자료에 의하면 병역면제자가 국회의원 25.3%, 의원 아들 15.5%, 재벌 2세 52.4%, 일반인 8.2%였다. 전체적으로 지도층 아들의 보충역 비율은 43%인데 일반적인 면제 이유는 의가사, 질병, 유학 등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현재 누구보다 건강하게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은 한국전쟁 당시 짐승뼈, 흙과 뒤섞인 전사한 군인들의 유골을 비싼 값을 북한에게 지불하면서까지 유골을 찾아 미국의 국립묘지에 안장 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