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臨終
죽음의 의례는 죽음을 인지하는 때부터 시작한다.
환자의 병이 점점 깊어지고 증세가 악화되어 도저히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임종할 차비를 하고 안방 아랫목에 모신다. 이를 '천거정침遷居正寢'이라 한다.
안방 아랫목으로 환자를 옮겨서 준비된 이부자리에 눕힌 다음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힌다.
이미 천거정침 단계에 이르면 객지에 나가 있는 자식들과 가까운 가족들에게 사정을 알려서 급히 모이게 한다.
자식들은 환자의 손발을 잡고 숨이 넘어가는 것을 지켜보는데 이를 ‘임종臨終’ 또는 ‘종신終身’이라 한다.
임종 때에는 가족들이 방을 비우지 않고 환자가 유언을 하게 되면 주의 깊게 듣고 받아 적었다가 그 뜻을 받들도록 한다.
이때 환자가 죽어 저승길을 갈 때 노자로 쓰라는 뜻에서 돈을 머리맡에 놓아두는 관행도 있다.
임종 때는 손만 잡고 있어서는 안 된다. 정확하게 임종 여부를 확인 할 필요가 있다.
임종이 임박한 듯이 보이면 환자의 머리를 동쪽으로 하여 북쪽 문 옆에 눕히고 말을 삼가고 조용히 한다.
그리고 환자의 코와 입 사이 인중人中에 솜을 놓아서 그 움직임 여부를 통해 죽음을 확인한다.
솜으로 죽음을 확인하는 일을 ‘속굉屬紘’이라 한다.
속굉으로 죽음이 확인되면 가족들은 흰 옷으로 갈아입고 몸에 지녔던 비녀와 반지 등을 빼 놓은 뒤에 머리를 풀고 가슴을 치며 통곡을 한다.
임종의 자리에 들어 갈 때 이미 소복을 하고 금붙이를 빼 둔 경우는 임종이 확인되면 즉시 통곡을 하기도 한다.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일을 ‘애곡벽용哀哭○踊’이라 하는데, 애통하게 곡을 하고 가슴을 치며 발을 구른다는 뜻이다.
고복皐復
임종이 확인되고 곡소리가 나면 주검을 대면하지 않은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죽은 이가 평소에 입던 두루마기나 적삼을 들고 마당에 나가서 마루를 향해 옷을 흔들며 생전의 관직명이나 이름을 부르며 '복復'을 세 번 외친다. 이를 ‘고복皐復’이라 한다.
그런 뒤에는 옷을 망자의 주검 위에 덮는 것이 일반적이나 영좌靈座에 두거나 지붕 위에 던져두기도 한다.
그러다가 나중에 입관 할 때 관 속에 넣기도 한다.
지역에 따라서는 속옷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고복’이란 주검을 떠나는 영혼을 불러다가 망자가 다시 살아나도록 하기 위한 의례이므로, 혼을 부른다는 뜻에서 ‘초혼招魂’이라고도 한다.
‘속굉’으로 죽음을 확인했지만 죽음을 돌이켜보려는 노력이 ‘고복’이므로 죽음을 돌이키지 못하는 한 ‘고복’은 죽음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게 하는 절차인 셈이다.
곡소리는 청각적으로, 지붕 위에 던져 둔 적삼은 시각적으로 이웃 사람들에게 초상이 났다는 것을 알리는 구실을 한다.
자연히 고복 뒤부터는 환자의 죽음을 전제로 한 의례가 진행된다.
고복 의례 이후 사자상을 차릴 때부터 죽은 이의 몸을 주검으로서 다루게 된다.
사자상
‘고복’이 망자를 되살리지 못한다는 것은 곧 저승사자가 망자의 영혼을 데려간다는 것을 뜻한다.
이 때 저승사자들을 잘 대접하면 죽은 이의 저승길이 편할 수도 있고, 뜻밖에 영혼을 데려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저승사자를 위한 상을 차린다.
이때 차리는 상을 ‘사자상’이라 하고, 사자상에 차린 밥을 ‘사잣밥’이라 한다.
저승 사자는 흔히 셋이라 하여 사자상을 차릴 때에도 밥과 술, 짚신, 돈 등을 모두 셋씩 차린다. 반찬으로는 간장이나 된장만 차린다.
밥과 반찬은 요기로, 짚신은 먼 길에 갈아 신으라고 준비한 것이다.
돈은 망자의 영혼을 부탁하는 일종의 뇌물이다.
간장을 차리는 까닭은 사자들이 간장을 먹으면 물을 켜게 되어 자주 쉬거나 물을 마시러 되돌아 올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수시收屍
짚 뭉치나 굄목을 백지에 싸서 양쪽에 괴고 그 위에 칠성판七星板을 올려놓고 주검을 그 위에 눕히는데 머리는 윗목이나 남쪽을 향하게 한다.
주검의 머리는 옷을 접어서 괴고 어깨와 손, 정강이, 무릎을 차례로 묶는다.
망자의 주검이 차가워지기 전에 팔다리를 주물러서 경직을 막고 두 팔을 배 위에 올려놓는다.
망자가 남자일 경우에는 왼손이 위로, 여자일 경우에는 오른손이 위로 가도록 한다.
한지나 베헝겊으로 양손을 묶은 다음 이를 허리에 동여매고 두 엄지발가락 역시 묶어둔다.
발바닥을 벽에 붙이거나 목침을 대어 반듯하게 하여 홑이불을 얼굴까지 덮고서 그 앞에 병풍을 치고 향상을 차려둔다.
향상에는 촛불과 포脯, 술잔, 향로 등을 놓고 분향하여 조객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
조객들은 상주가 ‘성복成服’하지 않은 상태이므로 절을 하지 않고 분향하고 곡만 한다.
이렇게 주검을 다루는 일을 ‘수시收屍’ 또는 ‘천시遷屍’라 한다.
‘수시’는 죽은 이의 생환을 포기한 상태에서 죽은 이의 몸을 주검으로서 다루는 첫 절차이다.
발상發喪
이 때부터 상주는 부모를 죽게 한 죄인이 된다.
자연히 차림과 행위를 죄인처럼 해야 한다.
머리를 풀어헤치고 맨발에 흰 옷을 입는다.
남자 상주는 두루마기를 입되 아버지상을 당했을 때는 왼쪽 소매를, 어머니상을 당했을 때는 오른쪽 소매를 꿰지 않고 입는다. 이를 ‘좌단우단左袒右袒’이라 한다.
이런 차림은 죄인이란 의미말고도 부모가 돌아가신 급한 상황이 상주로 하여금 옷을 제대로 갖춰 입을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을 잃게 했다는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차림새뿐만 아니라 음식도 금하도록 되어 있다.
망자의 아들은 사흘을 굶도록 되어있다.
‘수시’ 이후부터 상주가 머리를 풀고 곡을 하는 일을 ‘발상發喪’이라 하는데 ‘발상’은 곡을하여 초상을 이웃에 알리는 의례이다.
‘속굉’시의 곡은 환자가 숨을 거두는 순간이므로 자연스런 울음의 폭발이지만 ‘발상’시의 곡은 ‘애고애고’ ‘아이고 아이고’하며 의도적으로 곡을 그치지 않는 것도 ‘발상’의 구실 때문이다.
호상護喪
상주가 초상을 당하면 자연히 바빠진다.
맏아들이 주상主喪이 되어서 관棺과 수의壽衣, 상복 등을 준비하는 한편 묘터를 잡고 산역山役준비도 해야한다.
그리고 장례일을 정하고 부고訃告도 내야한다.
주검을 지키며 곡을 계속 해야만하는 상주가 이 일들을 모두 처리하기란 어렵기 때문에 주상 이외의 호상護喪을 세운다.
호상은 상주와 가까운 일가 어른 가운데 상례에 밝고 덕망 있는 사람을 뽑는다.
호상은 상주를 도와 상례 일체를 관장하는데 일의 효율적인 진행을 위해 상례相禮, 찬축贊築, 사빈司賓, 사서司書, 사화司貨를 별도로 뽑아 역할을 분담하도록한다.
각기 의례의 진행, 찬 및 축문 담당, 손님접대, 기록담당, 경비출납 등을 맡겨서 일을 돕도록한다.
습襲
주검을 목욕시키고 수의를 입히는 것을 ‘습襲’이라한다.
‘습’을 담당하는 사람을 시자侍者라고 하는데 남자의 습은 남자가, 여자의 습은 여자가 하는 것이 관례이다.
시자는 먼저 자기 손을 깨끗이 씻고 주검을 씻길 목욕물을 준비하여 주검을 모셔 둔 병풍 뒤로 간다. 이 때 상주들은 밖에서 선채로 북향하여 기다린다.
‘습’에 쓰는 목욕물은 향나무를 잘게 쪼개어 삶은 향탕수香湯水나 쑥 삶은 물을 쓴다.
쌀뜨물을 쓰기도 한다.
향탕수가 준비되면 주검의 아래 위 양쪽에 각각 네 그릇을 준비해 두고, 주검을 씻어 내기 위한 새 솜과 물기를 닦아내기 위한 수건 서너 벌을 마련하며 주검의 머리카락, 손발톱을 깎아 담기 위한 주머니인 조발낭爪髮囊 4개 그리고 칼과 빗 등을 준비한다.
먼저 수시할 때 묶었던 손발의 끈을 풀고 옷을 벗긴다.
향탕수로 머리를 감긴 뒤에 남자는 상투를 틀어 동곳을 꽂고, 여자는 쪽을 지어 버드나무 비녀를 꽂는다.
이어 향탕수를 솜으로 찍어 시신의 얼굴과 윗몸, 아랫몸을 차례로 씻고 준비해 둔 수건으로 물기를 말끔히 닦아 낸다.
빠진 머리카락과 깎아 낸 손발톱을 조발낭에 각기 담아 두었다가 ‘대렴’ 때 이불 속에 넣거나 관 속에 넣는다.
또 수의의 소매나 버선에 넣어 두기도 한다.
습에 쓴 물과 수건, 빗 등은 미리 파 놓은 구덩이에 넣어 묻는다.
주검의 목욕이 끝나면 준비해 둔 수의를 입히는데 이를 ‘습의襲衣’라고 한다.
먼저 버선을 신기고 아래옷을 입힌 뒤에 상체를 일으켜 웃옷을 입히고 베로 만든 갓 모양의 복건을 머리에 씌운다.
수의를 입히는 요령을 미리 터득하지 못하면 ‘습의’가 어렵다. 따라서 시자는 습의의 경험이 많은 사람이 적절하다.
습의가 끝날 무렵 ‘반함飯含’ 의례를 하게 된다.
반함은 물에 불린 쌀을 버드나무 숟가락으로 세 번 떠서 주검의 입에 넣는 절차이다.
망자가 저승까지 갈 동안에 먹을 식량인 셈이다.
반함을 할 때 첫 술은 '백석이요' 하면서 입안 오른쪽에, 둘째 술은 '천석이요'하면서 입 안 왼쪽에, 마지막 셋째 술은 '만석이요' 하면서 가운데에 떠 넣는다.
이어서 구멍이 나지 않은 구슬이나 동전 3개를 주검의 앞가슴에 넣어 주기도한다.
반함을 마치면 '멱모'로 얼굴을 덮어 싸고 ‘대대’, ‘조대’라고 하는 허리띠를 맨다.
다음에 ‘악수握手’로 손을 싸고 신을 신긴 뒤에 홑이불로 덮어두면 습의와 반함이 모두 끝난다.
이를 통틀어 ‘습’이라고한다.
염殮
‘습’이 끝나면 ‘염’을 한다. ‘염’에는 ‘소렴小殮’과 ‘대렴大殮’이 있다.
소렴
소렴은 습의에 이어 다른 의복들(正衣, 倒衣, 散衣 등)을 입히고 소렴포로 주검을 매는 것이나 의복들을 새로 입히지 않고 소렴포로 싸기도 한다.
소렴포를 이용하여 주검을 가로 세로로 감싸서 묶는데, 가로로 묶을 때는 먼저 발끝에서 위로 세 매듭을 차례로 묶고, 다시 머리쪽부터 차례로 내려오며 세 매듭을 묶은 다음, 가운데는 제일 나중에 묶어서 일곱 매듭을 짓는다.
이렇게 소렴이 끝나면 한지로 고깔을 만들어 묶은 매듭마다 끼워두기도 한다.
고깔은 망자가 저승의 열두 대문을 지날 때 문지기에게 씌워 주게 하기 위한 것이다.
대렴
대렴은 입관을 위해 주검을 베로 감아서 매듭을 짓는 것으로 소렴을 행한 이튿날 곧 죽은지 사흘째 되는 날에 한다.
먼저 주검을 칠성판에 올려놓고 일곱자 일곱치로 된 칠성칠포七星七布를 두가닥으로 나누어 끝에 한 자 정도는 붙여두고 발부터 싸매되 두 가닥을 서로 어긋나게 싸 올라간다.
끝은 묶지 않고 실로 꿰맨다.
입관 入棺
입관 방식은 매장양식에 따라 다르다.
입관 상태로 묻지 않고 주검을 관에서 꺼내어 매장하는 경우에는 관에서 주검을 들어낼 수 있는 넉넉한 길이의 베를 관의 아래위에 각각 가로질러 깔고 입관을 한다.
그래야 매장 할 때 베의 자락을 잡고 시신을 들어내어 광중壙中에 쉽게 안치 할 수 있다.
입관을 할 때에는 관위에 팽팽하게 걸쳐놓은 홑이불 위에 주검을 놓고서 서서히 이를 늦추어, 주검이 관 바닥에 안치되도록 한다.
그리고는 주검과 관 벽 사이의 빈 곳을 망자가 입던 옷이나 짚, 종이 등으로 채운다.
주검을 묘지로 옮겨 갈 때 움직이거나 한켠으로 쏠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어서 홑이불을 다시 위에 덮고 관뚜껑을 덮은 다음 나무못을 친다.
입관이 끝나면 관위에 머리쪽과 발쪽을 표시해두고 명정銘旌을 덮어 둔다.
그리고 종이와 짚을 섞어 왼쪽으로 꼰 줄로 관을 묶어서 운구할 때 쉽게 손잡이로 쓸 수 있도록한다.
상주는 입관 전까지 무시로 곡을 하며 주검을 지켰으나, 입관 뒤부터는 아침저녁으로만 곡을 하게 된다.
그리고 영혼을 모시는 혼백魂帛 상자도 이때에 비로소 마련된다.
영좌靈座
입관을 마치면 영혼을 별도로 모셔야한다.
교의交椅에 영혼을 상징하는 혼백이나 사진을 모시고 그 앞에 제상을 차려두고 영좌靈座를 설치한다. 이것을 ‘혼백’ 또는 ‘영좌’라고 한다.
먼저 교의를 차려놓고 거기에 ‘고복’때 사용한 망자의 웃옷을 한지에 싸 놓은 뒤에 혼백상자를 그 위에 올려놓는다.
근래에는 사진만 세워 두기도 한다. 혼백은 영혼이 주검에서 떠나 머무는 곳을 상징한 물체로서 한지를 전후좌우로 몇 차례 접어서 만들거나 삼색 실을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엮어 만든다.
혼백을 흰 상자에 넣어 모시는데, 이를 혼백상자라 한다.
영좌는 교의 앞에 차려 둔 제상을 일컫는데, 제상 양쪽에는 촛대를 하나씩 세우고 서쪽에는 향로 동쪽에는 향합을 놓는다.
영좌 위에 망자가 평소 사용하던 물건을 얹어 두기도 한다.
영좌의 오른쪽에는 붉은 비단에 세로로 길게 고인의 관직과 성명을 쓴 명정을 세운다.
영혼을 모시는 절차까지 끝난 셈이다.
성복成服
상주는 이제 부모의 죽음을 기정사실화 한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상주 구실을 해야 하므로 좌단우단의 소복도 벗고 정식으로 상복을 갖추어 입는다. 상주를 포함한 산 자들이 망자와의 가족관계에 따라 상복을 입게 되는데 이를 ‘성복’이라 한다.
성복을 하고나서 처음 올리는 제사를 ‘성복제’라 하는데, 성복제가 끝나면 정식으로 문상을 받기 시작한다.
상복에는 참최, 재최, 대공, 소공, 시마 다섯 가지 종류가 있다.
같은 복이라도 부모, 부부, 장자 등의 가족 관계에 따라 정복, 가복, 의복 등으로 구분된다. 예를들면 참최 3년을 입는 복이라도 아들이나 미혼의 딸이 아버지의 상을 당했을 때는 ‘정복’을 입지만, 며느리가 시아버지의 상을 당했거나 양자가 아버지 상을 당했을 때 또는 아내가 남편 상을 당했을 경우 등에는 ‘의복’을 입는다.
오복 가운데에서도 참최가 가장 중요한 복으로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장 거친 삼베로 남루하게 지어 입는다.
참최 남자 상복의 경우 이른바 굴건제복을 하는데 머리에 거친 삼베로 주름을 지어 만든 건巾을 쓰고 삼끈을 달아 묶으며, 깃이 없고 소매가 넓은 웃옷을 입고 삼으로 만든 허리띠를 두르며 짚신을 신고 지팡이를 짚는다.
옷을 지을 때에도 바느질을 성글고 거칠게하여 실밥이 드러나게 할 뿐만 아니라 , 삼베 조각들을 앞뒤에 달아서 걸인들의 옷처럼 의도적으로 남루하게 한다.
부모를 죽게 한 죄인이 좋은 옷을 입을 수 없다는 죄의식이 상복을 통해서 상징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상주가 짚는 지팡이 역시 별도의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아버지를 잃은 경우에는 대나무 지팡이를, 어머니를 잃은 경우에는 오동나무 지팡이를 짚는데, 이는 상주와 죽은 이의 관계를 쉽게 알리는 구실을 한다.
조문객들도 누구의 상인가를 분명하게 알아야 의례에 맞는 조문을 할 수 있다.
지팡이의 재료는 이러한 사정을 알려주는 중요한 상징물이다.
대나무는 마디가 있고 색깔이 짙으나 오동나무나 버드나무는 흰색이고 마디가 없기 때문에 얼른 보기에도 부친상인지 모친상인지 구별하기 쉽다.
아버지는 자식을 기르느라 속이 비어 버렸기 때문에 대나무를, 어머니는 자식들이 애를 태워 속이 찼기 때문에 오동나무를 지팡이로 쓴다고 한다.
대나무는 뿌리 부분인 죽본竹本이 밑으로 가도록 짚으며 오동나무나 버드나무는 위를 둥글게, 아래를 네모나게 깍아서 상원하방上圓下方의 모양을 이루도록 한다.
죽본은 땅을, 죽순은 하늘을 상징하듯이 오동나무 역시 상원은 하늘을, 하방은 땅을 상징한다.
이러한 상징에 맞도록 지팡이를 짚어야 망자의 영혼이 이승인 땅의 세계에서 저승인 하늘의 세계로 온전하게 여행을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상복을 갖추어 입게 되면 성복제를 올린다. 영좌 앞의 제상에는 포와 과일을 차려두고 맏상주가 분향하고 술잔을 올린 다음 두 번 절한다.
조상과 조문
성복제가 끝나면 비로소 문상객을 받는다.
성복제를 지내기 전에는 친척은 물론 모든 조객들이 상주와 조문을 하지 못하고 집밖에 서서 곡만 하였다. 조상은 슬퍼하는 마음을 나타내는 인사이며 조문은 상제들의 슬픔을 위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상과 조문은 죽은 사람에 대한 애도의 뜻과 상제들에 대한 위로 및 방조의 뜻을 담고 있다.
조상과 조문은 조객이 영구 앞에 이르러 애도의 뜻을 표하는 곡과 절, 상제들에게 하는 위로의 말, 상제들과 같이 밤을 새거나, 부조 보내기 등 여러 가지 형태로 표현되었다.
상제들은 조객이 조상을 하러 오면 곡을 하였다.
곡은 슬픔을 당했을 때 친척이나 친우, 이웃 사람들을 만나면 설움이 저절로 복받치는데서 생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곡에는 끼니까지 거르고 가슴을 치며 우는 통곡, 설움이 북받쳐 우는 애곡, 그밖에도 조객을 맞을 때 우는 예곡이 있다. 이 때에는 슬픔을 나타내기 위해 남자들은 보통 '어이, 어이'하였으며 여자들은 '애고, 애고' 하였다.
조상하러 온 친척, 손님은 먼저 영구 앞에 나가 술을 붓고 곡을 하면서 절을 하였다.
이 때 상주도 엎드려서 곡을 하였는데 조객이 먼저 그치면 일어나서 맞절을 하였다.
영구 앞에서의 조객은 절은 대체로 남자는 두 번, 여자는 네 번이다.
죽은 사람이 조객보다 아랫사람인 경우 일반적으로 곡만 하고 절을 하지 않는다.
절이 끝나면 조객은 상주를 비롯한 상제들과 맞절을 한 다음 위로의 말을 하였는데 조객이 조문을 하면 상주가 대답한다.
조객과 상주가 주고받는 말은 상주의 부모상인가, 남편상 또는 아내상인가, 아랫사람 또는 친척의 상인가 등에 따라 일정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조객은 보통 '얼마나 망극하겠습니까?', '이렇게 갑자기 상사를 당할 줄 몰랐습니다.' 등 슬픔을 같이하는 뜻의 인사말을 하였다.
이 때 상주는 '망극할 뿐입니다.', '오직 슬플 따름입니다.' 등의 간단한 말로 답례를 한다.
발인發靷
‘발인’은 '영결식永訣式'이라고도 하며 주검이 집에서 나갈 때 지내는 마지막 제사를 일컫는다.
지역과 가문에 따라서 발인제와 영결제를 별도로 지내는 경우도 있다. 먼저 방에 있는 관을 들어내는 일을하는데, 이때 망자의 부인이 있는 경우 칼을 들고 일을 지시하기도 한다.
상주들은 관을 들고 방의 네 구석을 향해 관을 세 번씩 올렸다 내렸다하며 인사를 한 뒤에 문을 나선다.
도끼나 톱으로 문지방을 살짝 찍거나 자른 뒤에 관을 들고 문지방을 넘으며 문밖의 댓돌 앞에 바가지를 엎어두면 관의 앞부분으로 이것을 눌러서 깨뜨린다.
문지방을 자르거나 바가지를 깨는 것은 죽은 이가 다시는 문지방을 넘어 집안으로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일종의 ‘양밥’이다.
양밥은 민속 신앙이나 속신에 근거를 두고 하는 주술적, 종교적 처방을 일컫는 말이다.
관을 내어 오면 상여 위에 안치를 한다.
상여 앞에 제상을 차려 두고 마지막 제사를 올린다.
상주들이 단잔을 올리고 한번만 절을 한다.
죽은 이가 집을 떠나는 마지막 제사라는 뜻에서 ‘발인제’라 한다.
영결식을 별도로 올리는 경우는 상두꾼이 상두를 메고 집을 나가기 직전에 상주를 비롯한 문상객 모두가 곡을 하며 상여에 실린 주검을 향해 절하는 의식을 행한다.
운구運柩
영결식마저 끝이 나면 상여가 집을 나선다.
상두꾼이 상여 앞쪽을 집으로 향하게 한 뒤 상여를 세차례 올렸다 내렸다하여 가족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상여 머리를 돌려 대문을 나선다.
맨 앞쪽에 죽은 이의 이름을 쓴 명정을 든 이가 서고, 다음에 죽은 이의 영혼을 태운 영여靈輿를 멘 이가 따른다.
영여 다음에는 죽은 이의 업적을 기리는 공포功布와 만장輓章을 든 이가 서고 그 뒤에 운(雲)자와 아(亞)자를 쓴 정방형의 종이패를 각각 장대에 꽂아든 이가 따르며 이어서 상여가 선다.
상여 뒤로 상주와 복을 입은 사람들 그리고 일반문상객들이 따른다.
여자 상주들은 동구까지만 따라나왔다가 집으로 들어가고 남자 상주들은 묘지까지 계속 동행한다.
더러는 상여 행렬 맨 앞에 방상씨方相氏 탈이 서기도 한다.
방상씨는 황금색의 눈을 네 개나 가진 귀신 쫓는 탈로서, 두 사람이 이 탈을 쓰고 긴 칼이나 창과 방패를 들고 앞장을 서서 칼을 휘둘러 잡귀를 몰아내는 구실을 한다.
일반적으로 장례행렬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영여와 상여이다.
영여는 죽은 이의 영혼을, 상여는 주검을 운반하는 가마이므로 장례 행렬에서는 필수적이다.
영여는 2인교 가마를 메듯이 끈을 가위표로 엇걸어 어깨에 걸고 두 손으로 가마채를 잡을 수 있도록 된 작은 가마인데 여기에는 혼백상자와 향로, 영정 등을 실어 영혼이 타고가는 것을 상징한다.
영여의 지붕에는 녹색바탕에 붉은색의 연꽃 봉오리가 달려있고 옆면에도 연꽃망울이 피지 않은 상태로 그려져 있다.
정면에는 여닫이문이 쌍으로 달려있으며 문 앞에 흰 고무신 한 켤레를 얹어 두기도 한다.
뒷면에는 태극을 그려두었는데 음과 양을 상징한다.
상여는 장지까지 주검을 운반한 다음에는 곧 해체되거나 불태워버린다.
상여는 주검을 음택인 묘지까지 운반하는데 그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여는 그대로 온전하게 두어야한다.
주검은 묘지에 묻었지만 영혼은 집으로 다시 모셔가야 하기 때문이다.
하관
묘터가 잡히면 출상 당일 산역꾼들은 상여에 앞서 묘지에 이른다.
상여가 도착하면 손쉽게 무덤을 쓸 수 있도록 기초 작업을 하기 위해서이다.
산역꾼들은 산역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산신제'부터 올린다.
산신에게 미리 제사를 올리지 않고 산역을 하게 되면 산신의 노여움을 사서 부정을 탄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묘를 쓸 주산봉우리를 향해 제물을 차려두고 간단히 절하고 축문을 읽는다.
별도로 '개토제開土祭'를 지내는 경우에는 연장으로 땅을 파기 전에 묘를 쓸 곳에다 제사를 올린다.
관을 넣을 네모난 구덩이를 광중壙中이라 하는데 먼저 광중에 해당되는 네 귀퉁이의 흙을 한 삽씩 떠낸 뒤에 그 앞에 간단한 제물을 차려놓고 절을 올린다.
이들 제의는 모두 산을 신성시 여긴 나머지 함부로 산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믿음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제의가 끝나면 묘지주변의 나무들을 밑동까지 깨끗하게 베어내고 광중부근의 나무는 그 뿌리까지 캐낸다.
그리고는 관을 안치할 광중을 넓게 파내려 가다가 관을 들여놓을 안쪽에는 관이 들어가기에 알맞을 정도로 좁게 판다.
이런 작업을 하고 술을 한 순배 돌리고 쉬노라면 상여가 묘지에 도착한다.
상여는 관을 광중에 넣기로 정해진 시간에 늦지 않게 도착해야한다.
이 시간을 하관시下棺時라 하는데 하관시 역시 풍수가 죽은 이의 생기복덕에 따라 정확한 시간을 잡아준다.
풍수가 산역꾼들과 함께 묘지에 도착한 경우는 산역을 일일이 지휘하여 광중의 정확한 좌향과 깊이, 폭, 길이 등을 잡아주지만 상여와 함께 도착한 경우는 산역꾼들이 파놓은 광중을 조정해서 정확성을 지니도록 다시 손질을 시킨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좌향 곧 관이 놓이는 방향인데 정확한 좌향을 잡기 위해 패철(나침반)을 사용한다.
풍수들이 사용하는 패철은 예사 것과 달라서 방위만 표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주역(周易)에 기초한 오행과 십이 간지 및 육십 갑자까지 표시되어 있다.
방위도 사방위나 팔방위 정도가 아니라 십육방위에서 삼십육 방위까지 세분되어 있다.
묘지의 좌향은 그만큼 정확성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광중의 좌향이 잡혀지고 하관시에 맞추어 관을 광중에 안치하게 되면, 다시 관의 좌향을 정확하게 조정한다.
하관을 할 때에는 이를 아무나 봐서는 안 된다.
생기에 따라 특정 간지에 해당되는 사람은 보지 못하도록 하며, 미혼 여성들도 가까이 하지 않도록 한다.
살이 끼면 급살을 당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관을 할 때에는 집안에 따라 관째로 광중에 안치하는 경우도 있고, 관에서 주검을 꺼내어 안치하는 경우도 있다.
하관이 시작되면 상주들은 곡을 그치고 하관을 지켜보도록 되어 있으나 이때 죽은이와의 사별을 새삼스레 실감하는 탓으로 곡소리가 더욱 높아지기도 한다.
주검의 머리가 북쪽(산봉우리 쪽)으로, 발이 남쪽(산기슭 쪽)으로 가도록 하고 좌향에 맞도록 상하좌우가 반듯하게 안치되면, 관 또는 주검과 광중 사이를 흙으로 메운다.
이어서 명정을 관위에 덮고 운雲자와 아亞자를 쓴 패도 관 양쪽에 끼워둔다.
관을 해체하고 주검을 하관하는 경우에는 동천개라고하는 나무를 광중에 가로로 걸쳐 덮는다.
동천개는 참나무나 버드나무, 대나무를 일정하게 자르고 편편하게 깍아서 홀수가 되게 준비해 두었다가 아래서부터 위로 덮어나간다.
평토제平土祭
하관이 모두 끝나면 관위에 흙을 덮는 ‘실토實土’를 한다.
상주가 직접 삽으로 흙을 떠서 관위에 뿌리기도 하지만, 대체로 산역꾼들이 떠 주는 흙을 상복 자락에 받아 담아서 관의 윗부분과 가운데 그리고 아랫부분에 해당되는 세 곳에 나누어 뿌린다.
상주들이 차례로 흙을 뿌리고 나면 산역꾼들이 본격적으로 흙을 퍼부어 관을 묻는다.
흙으로 메우기 시작하여 평지와 같은 높이가 되면 ‘평토제平土祭’를 올린다.
평토제는 산에서 올리는 마지막 제사라하여 제물을 특히 많이 차리는데 맏사위가 담당하도록 관례화되어 있다.
이때 쓴 제물은 산역꾼과 상두꾼 및 조문객들이 현장에서 고루 나누어 음복한다.
평토제가 끝나면 상주는 영좌의 신주와 혼백 상자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온다.
혼이 집으로 되돌아온다고 하여 이를 ‘반혼反魂’이라한다.
반혼을 할 때에는 영여에 다시 혼백을 모시고 영여가 앞장을 서며 상주가 그 뒤를 곡하며 따르되 반드시 왔던 길로 되돌아가야한다.
다른 길로 가면 혼이 길을 잃게 되어 온전하게 반혼하기 어렵다는 생각에서라기보다 잡귀가 범접할 우려가 있다고 믿는 까닭이다.
반혼시에는 뒤돌아보는 것도 금지되어 있다.
주검에 미련을 두면 온전한 반혼이 어렵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반혼은 영육의 분리를 전제로 한 관념인데 사람이 죽었다 하여 곧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저승에서 다시 태어나려면 일정한 전이 기간이 필요하다는 인식에 근거하고 있는 셈이다.
성분成墳
평토제 뒤에 반혼이 이루어지면 묘터의 산역꾼과 상두꾼들은 흙을 다져가며 봉분 만드는 일을 본격적으로 한다.
특히 무덤 다지는 일은 산역 가운데 가장 큰 일이다.
상두꾼들 가운데 여섯 또는 여덟 사람이 앞소리꾼을 둘러싸고 써서 ‘덜구 소리’에 맞추어 흙을 다진다.
산역꾼이든 상두꾼이든 무덤 터 다지는 일을 하게 되면 ‘덜구 찧는다’고도 하며 ‘회다진다’고도 한다.
뒤의 경우는 석회로 광중을 다질 때 특히 그렇게 특히 그렇게 일컫는다.
덜구꾼들이 흙을 다지는 동작은 마치 춤을 추는 듯하다.
흙을 다지는 동작을 할 때에는 일제히 오른발이 앞으로 나오며 두 손도 역시 앞으로 뻗어 손뼉을 치게 된다.
특정 지역에는 마치 덜구꾼들이 짝을 맞추어 대무(對舞) 하듯이 정교한 춤동작을 취한다.
땅을 다지기 위해 발이 앞으로 나갈 때는 혼자이지만, 다진 발을 거두어들였을 때는 옆사람과 등을 대고 두 손을 높이 쳐들어 짝이 맞아야한다.
이때 대무의 짝도 좌우의 사람과 번갈아 이루어진다.
무덤 다지기를 적게는 세 차례, 많게는 일곱 차례까지 한다.
상주의 요구에 따라 그 횟수가 정해지나 일반적으로는 다섯 차례 정도 다진다.
흙을 무덤 위에 쌓고서 흙이 단단하게 다져지기까지 덜구 찧는 것을 한 차례로 인식한다.
이처럼 한차례 덜구를 찧고나서 덜구꾼들이 막걸리를 마시며 쉬는 동안 다른 산역꾼들이 새 흙을 무덤위에 다시 쌓고는 덜구 찧을 준비를 한다.
이렇게 몇 차례 덜구를 찧는 가운데 봉분의 모양이 형성되면 마지막으로 잔디를 입히고 봉분 앞에 상석과 비석, 망두석 등을 설치한다. 묘지 주위에 석축을 쌓고 지면을 고른 뒤에 잔디를 입히고 나무를 심어 경관을 조성해 두면 묘지 만들기 작업은 끝난다.
반곡反哭
묘지에서 반혼한 혼백이 영여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 집을 지키던 여성들이 나와 맞이하면 곡을한다.
이를 특히 '반곡反哭'이라 한다.
반곡하는 가운데 혼백을 빈소殯所의 영좌에 모신다.
빈소는 지역에 따라 빈실殯室 또는 상청喪廳, 제청祭廳, 영실靈室이라고도 한다.
대청이나 죽은 이가 거처하던 사랑에 제상을 차리고 신주와 혼백 상자를 모셔 둔 채, 죽은 지 3년이 되는 해 대상大祥을 마치고 탈상할 때까지 아침 저녁으로 음식상을 차려 올리는 한편 조문객의 문상을 받는다.
음식 올리는 일을 상식上食이라 한다.
주검과 달리 영혼은 마치 살아 있는 양 모셔 두고 일정 기간 상식을 하고 예를 바치는 셈이다.
우제虞祭
장례 뒤에 이루어지는 죽은 이에 대한 의례는 날日과 달月, 해年를 기준으로 제각기 이루어지되 3의 주기를 지킨다는 점에서 통일성을 지닌다.
출상 당일부터 3일째 되는 날까지 세 차례 제사를 지내는데 이를 ‘우제虞祭’라 한다.
‘우제’는 주검을 묘지에 묻어두었기 때문에 주검을 떠난 영혼이 방황할 것을 우려하여 편안하게 빈소에 안착하도록 하는 제사이다.
초우제
'초우제'는 반혼하는 즉시 올리는데, 반혼이 늦었을 경우에는 저녁식사를 올릴 때 겸하여 지내기도 한다.
따라서 초우제를 반혼제라하는 지역도 있다.
우제는 제물을 제대로 갖추어 차리고 술잔도 세차례 올리며 본격적인 제사 차례를 두루 거친다.
일반적인 기제사와 그 차례가 같다.
재우제, 삼우제
'재우제'나 '삼우제'는 초우제와 그 방식이 같으나 당일 아침에 올린다.
재우제는 장례일 다음날, 삼우제는 3일째 되는 날에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나 날을 가려서 재우제는 일진日辰이 을乙, 정丁, 사巳, 신辛, 계癸에 해당되는 날에 지내고, 삼우제는 재우제 뒤의 갑甲, 병丙, 무戊, 경庚, 임壬에 해당되는 날에 지내기도 한다.
삼우제를 지내고서는 반드시 성묘를 간다.
이때부터 매일 올리던 상식을 줄여서 음력 초하루와 보름, 곧 삭망朔望때만 올리기도 한다.
졸곡제卒哭祭/소상과 대상
초상 뒤 삼우제를 마친 뒤에 3개월 안에 날을 잡아서 다시 ‘졸곡제卒哭祭’를 지낸다.
날을 잡는 기준은 삼우제 때와 같다.
곧 갑, 병, 무, 경, 임에 해당되는 날을 택한다. 지역에 따라서는 삼우제 이틀 뒤에 지내기도 한다.
제사의 절차는 축문의 내용만 다를 뿐 우제와 같다.
졸곡제는 말 그대로 곡을 그치는 제사로 졸곡제 뒤에는 수시로 하던 곡을 그치고 아침 저녁으로 상식 할 때만 곡을 한다.
흔하지 않지만 사당이 있는 집에서는 졸곡제 다음날 신주를 사당에 모시는 ‘부제○祭를 지내기도 한다.
소상小祥과 대상大祥
초상 뒤 3개월만에 졸곡제가 있고 다시 일년 주기의 제사가 크게 두 차례 있으니 이른바 ‘소상小祥’과 ‘대상大祥’이다.
초상에서부터 소, 대상의 의례를 흔히 삼년상이라고 한다.
적어도 3년째 되는 해까지 세 차례 의례를 행한다는 점에서 삼우제, 졸곡제와 같이 날과 달을 근거로 한 의례 주기와 더불어 해를 근거로 한 의례 주기도 3을 기준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초상 이듬해의 기일에 소상을 치르고 그 다음의 기일에 대상을 치르는데 제사의 절차는 기일의 전날 저녁에 상식을 하고 곡을 한 다음 손님들의 조문을 받고 이튿날 새벽에 본격적인 소, 대상 제사를 올린다.
절차는 우제나 졸곡제와 같다.
최근에는 백일 탈상이 늘었지만 전통적으로는 대상을 마치는 해에 탈상을 한다.
3년째 되는 해에 탈상을 하는 것이나 관행상 3년 만에 탈상을 한다고 한다.
탈상을 하게 되면 상복을 벗고 빛깔있는 옷을 입을 수 있으며 음식도 금하는 것 없이 마음대로 먹을 수 있다.
탈상을 계기로 죽은 이의 영혼에 대한 의례가 일단 끝나고 살아남은 후손들은 상주의 제약에서 벗어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