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도서관에서 기숙사로 가는데
그쪽 길이 좀 어둡다.
거기다 몇신가 2신가? 그때만 되면 교내 가로등이 일제 소등된다.
완전 깜깜해지는거다.
게다가 산골짝에 들어앉은 우리 꿀꿀한 대학교....
건물도 후져서 고개 돌려 건물 보면 귀신이 복도에 지나갈듯도 하다.
본인도 꽤 담력좋은 남자에 속한다고,
한때는 산넘고 논건너 홀로 학교다니던 신체건장한 20대 청년으로 자부하는 바지만
그때는 쪼깨 싸늘한 분위기가 돌긴 했다.
날도 좀 쌀쌀하고 본인이 검은 옷을 좋아하는지라
검은 모자에 검은 긴팔 그리고 검은 면바지로 무장하고 아 신발도 검은 색이었나.
기숙사로 겁나게 걸어가는데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는 색시가 하나 있더라.
아 시험기간이라 공부도 좀 식음을 전폐하며 하고 외양에 별로 신경도 안쓰는 무감각한 나니까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지는 그닥 신경 안쓰고 사는 편이다.
솔직히 나도 사람이고 일반적인 미적 정상 비정상 기준은 있는터라
머리도 어깨 덮을 정도로 장발에 뒤로 뭔 천때기 하나 둘둘 감아서 묶고 다니면
뭔 도사도 아니고 산골짝에 태껸수련하러 온 무도가도 아니고 뭐 여튼
.....무서워 보일 수도 있겠지.
뭐 옷차림이야 늦가을 삭풍에 시리게 헐벗긴 했더라만 본인이 그런 것에 연연할 성격은 아니고
쬐끔, 아주 쬐끔 평균 이상의 얼굴이라 싶은,
뭐 그것도 20미터 후방에서 판단한 외견이긴 하지만 중요한건 그게 아니다.
색시가 뒤를 돌아보네 요거...
나를 한번 쓱 보고 핸드백 같이 어깨에 걸머멘 가방을 한번 추스리더니 걸음이 빨라진다.
어허 이거 참 변태로 오해받았나 싶기도 하고 그냥 가야겠나 싶기도 하고,
구두에 징 한번 잘못 박았다가 피본 계용묵 선생의 경험이 머릿속을 삭 스치는가 싶더니
어이쿠 이거 안되겠다 싶어서 그냥 빠른걸음으로 앞질러가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더만.
본인이 키가 180이 조금 넘는데다 보폭도 좀 크고 겅중겅중 걷는 편이라
요거요거 160대 색시 종종걸음 하나 못따라잡겠나 싶은 마음에 성큼성큼 걸어갔더니
어이쿠 색시가 뛰네.
겁나 뛰네.
어이가 없어서 거참 아예 안 쫓아가는 편이 낫겠다 싶어서 제자리에 서서 담배를 척 꺼내서리
탁 라이터를 켜서 한모금 깊이 빨아보니
온 세상 만사 사는 이유가 뭔지 그저 외견이 겁나게 생겨서 그런가
선하게 하고 살아야 하나 아니 집에 검은거밖에 없는걸 어떡해 이런 생각이 파노라마를 이루고
허한 마음을 달래며 생각하길
그래 머리도 깎고 알록달록 때때옷 하나 입어보자 싶더이다.
너무 공부만 하고(?) 일만 하는(?) 이 시골출신 고학생으로서는 엄청난 결심이다 이거.
이제 그 색시 갔겠지 하고 담배 탁 떨어 끄고 가던길 가자 하고 재촉하니
아니 그 여자분 사라진 방향에서 떡대건장하고 용감무쌍하게 생긴 청년이 등장하네.
그 뒤에는 색시가 얼굴을 빠꼼 내밀고 나를 언제 봤다고 초면에 삿대질을 들이대고
총각 눈매가 도끼하나 품었나 하는 순간 마린사이로 들이대는 울트라마냥 걸어오는게 아닌가.
........어따 이거 겁나불구만.
한대 맞을 분위긴데 맞으면 적어도 삐요삐요 병원행이여.
맞고 돈좀 뽑아볼까 하다가 그건 사람 할 도리가 아닌거 같아서
솥뚜껑만한 오른 주먹이 아싸리 달려드는데 어익후 하면서 좌로 위빙 한번 쌔워주고
나도 모르게 총각 하악골 아래 3센티에다가 카운터를 꽂아버렸다....
미안해서 변명하며 요리조리 피하는데 어떻게 펀치가 잘못 들어갔는지 코피 흘리면서도
사람 소리인지 황소 소리인지 알 수 없는 언어를 구사하는데
옆에 계신 색시가 그제서야 생사람 잡는 상황인지 알고는 제지해 주시더라 하는 이야기.
알고 보니 뭐 서로 동기 사이였던가, 뭐 애인 있는 여인은 아니었고.
난 또 여자분 당황해서 지나가는 떡대 하나 잡아두고 눈물 한번 흘려주고 데리고 온 줄 알았다.
요새는 그래서 때때옷 입고 다니려고 노력한다.
한데 외견으로 사태를 지레짐작 하려는 여인들....
뭐 그만큼 사회가 야박해진 탓이겠거니 하면서,
또 어찌 보면 그렇게 조심하고 하는 걸 보면 내가 그 순간은 기분 나빠질 수도 있지만
그저 스리슬쩍 넘기고 생각하면 나중에 포돌이 아저씨 달려들지만 않으면
허허 웃으면서 한번쯤 넘길 수 있는 이야기 아닌가.
양산되는 변태를 때려잡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고, 나처럼 피해자가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만,
가끔은 웃으면서 넘겨주고 그 여자분 편에서 생각해주는 포용을 가져보자.
당신이 진정한 남자라면 그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