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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먹다 우산 빼앗긴 사연-각박한 세상의 맛을 보다!

이장연 |2007.06.21 22:33
조회 10,735 |추천 60
김밥먹다 우산 빼앗긴 사연-각박한 세상의 맛을 보다!

오늘(21일)부터 장마가 시작되었습니다.
한동안 세상을 뜨겁게 달구던 무더위를 시원한 장맛비가 순식간에 날려버렸고, 더위를 피하기 위해 짧게 자른 머리 위로 내리쬐던 따가운 햇볕도 비구름에 그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이렇게 비가 내리면 사람들 손에 우산이 하나씩 들리게 되는데요. 저도 어제 새벽녘 창밖 너머로 들리는 빗소리에 잠을 깨어, 하루 종일 비가 계속 내릴 듯해서 우산을 챙겨 일터로 출근했었습니다. 오전 10시가 넘어서자 잠시 소강상태에 있던 장맛비가 본격적으로 내리더니, 저녁 퇴근시간까지 계속 내리더군요.

여하튼 정시(오후 5시)에 퇴근치 않고 이것저것 하다가, 바리바리 짐을 양 어깨에 짊어지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점심도 거른 채 일을 해 배가 고팠습니다. 퇴근길에 간혹 들리는 떡볶이와 튀김을 파는 포장마차는 비가 내려서 장사를 하지 않아, 전철역(역곡역) 근처에 있는 김밥집(김밥X국)에 들어갔습니다. 집에 가서 밥을 먹을까 말까 고민했는데 비도 계속 내리고 짐도 무거워 들어갔습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쓰고 있던 우산을 고이접어 빗물을 털어내고는 다른 손님들이 놓아둔 우산더미 옆(정수기,쓰레기통)에 놓아두었습니다. 그냥 그런 김밥과 이상한 맛을 내는 만두라면을 대충 집어먹고는 계산을 했습니다.


김밥집에서 사라진 우산

그런데 이게 왠일 입니까?
고이 접어 가지런히 다른 우산들과 섞이지 않게 한편에 놓아두었던 우산이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김밥을 먹고 있는 사이 다른 손님들이 나가면서 우산을 제 것인 줄 알고 가져갔는지? 바꿔치기 해 갔는지? 는 모르겠지만, 우산은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대신 우산을 넣으라고 놓아둔 분홍색 쓰레기통에 우산 하나가 들어있었습니다.

제 것이 아닌 우산을 쓰고 집으로 와야했다.



그래서 김밥집 사람들에게 '우산이 사라졌다'고 말했습니다. 다들 그 상황에 황당해했지만, 저는 솔직히 기분이 팍 상해 버렸습니다. 그다지 맛난 김밥과 라면을 먹지 못하고 나가는 길에 우산까지 빼앗겼다는 생각도 들었고, 쓰레기통에 주인 없는 우산을 가져가라면서 '멀쩡한데요'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속아 가게 밖에서 우산을 펼쳐보고 뼈대가 휘어져 있는 것을 다시 보여주자, '많이 망가졌나요?'라고 되물어오며 김밥집 사람들이 저를 노려보며 자기들끼리 눈짓하며 머라 수군거리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김밥 먹다 사서 몇 번 쓰지도 않은 우산을 빼앗긴 것도 억울한데, 꼭 죄까지 짓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머 우산 없어진 게 김밥집 책임이라 할 수 없지만, 그 가게에서 일어난 일을 나 몰라라 하는 것은 참 기분 나빴습니다. '다시는 이 김밥집에 오지 말아야겠지'란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실랑이 벌일 기운도 없어, 김밥집 사람들에게 '우산을 잘못 가져간 사람이 오면 말해 달라'고 전하고 제 주인이 아닌 우산을 받쳐 들고 전철을 타러 갔습니다. 전철 안에서 사람들이 손에 쥐고 있는 우산과 자신의 손에 들린 우산을 살펴보면서, 소년탐정 김전일처럼 우산이 사리진 그 당시 김밥집 상황을 머릿속에 떠올려 추리를 시작했습니다. 대체 누가 우산을 가져갔을까? 하고 말입니다.

오만가지 생각들을 정리해 보았는데, '우산을 잘못 가져간 건 아니다'란 결론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제 우산이 있던 자리와 어떤 이가 바꿔치기 해 간 우산이 있던 자리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제 우산은 쓰레기통 속에 펼쳐진 채로 넣어두지 않았었습니다. 또 하나, 쓰레기통 속 우산 손잡이에 붙어있는 큼지막한 스티커의 표시는 제 우산에는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김밥집에 있던 대여섯 명 손님 중 어떤 이가 우산을 가져간 것은 역시 '바꿔치기'로 밖에 해석되지 않더군요.

겉모습은 멀쩡해 보이지만 펼쳐보면 뼈대가 휘어있다.



각박한 세상과 사람들의 맛을 보다!

익히 도시에선 '눈 깜짝할 사이 코 베어 가고', 각박한 세상과 사람들로 가득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별별 경험을 다 하게 하네'란 씁쓸한 생각도, 도심의 음식점에 흔히 볼 수 있는 '구두를 잃어버려도 책임지지 않는다'란 표식도 떠오르게 했습니다. 세상을 모르던 철부지 대학 새내기 때 영어테이프를 강매하려 접근했던 이들도.(결국 위약금 7만원과 영어테이프와 교재를 넘겨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바보 같다), 한 경제지 자회사에서 이벤트에 당첨되었다며 상품을 팔아넘기려 했던 것도, 거리에서 대뜸 'XX에 관심있냐' 'XX를 알고 있냐'며 소매를 잡아끌던 사람들도, 농민들 팔아서 노인네들에게 보리쌀, 비누, 목초액을 껴주면서 홍삼세트 등 건강보조식품 팔아먹는 이들도(2년 전 보리쌀 준다고 어디어디 농협에서 나왔다고 방송하며 간이천막에서 이런 것 파는 사람들도 직접 봤다) 떠오르게 합니다.

아무튼 장마철 우산을 잃어버리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깜빡하고 버스나 지하철에 놓고 내리시는 분들도 계실 테고, 길에 흘리고 다니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저처럼 김밥을 먹다 우산을 빼앗긴 분들은 흔치 않으실 듯합니다. 그리 값어치 나가는 물건은 아니지만 자신의 실수로 잃어버린 것도 아니고, 새 것이나 다름없던 우산인지라 쉽게 미련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소심한 A형이라서 그런지...^-^:: 밤새 내릴 시원한 장맛비에 이런 씁쓸하고 기분 나쁜 기억 모두가 깨끗이 씻겨 나가길 바래봅니다.

p.s. 내일 아침 출근길에, 다시 가고 싶지 않은 그 김밥집에 들려 제 것이 아닌 우산을 돌려 줄 생각입니다.


-재협상 없다더니....하나마나 안하나마나한 한미FTA 협상은 원천무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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