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샤킬 오닐
포지션:센터
생년월일:1972년 3월6일생
키:7피트1인치/216cm
몸무게:325파운드/147.4kg
졸업학교:루이지애나 주립대
NBA데뷔:1992년 1라운드 1순위
현재팀:마이애미히트
2003-2004시즌 성적:21.5득점,11.5리바운드,2.48블록
득점최고:99-00시즌 평균29.7득점
리바운드최고:92-93시즌 평균13.9리바운드
어시스트최고:99-00시즌 평균3.9어시스트
스틸최고:93-94시즌 평균0.94스틸
블록최고:92-93시즌 평균3.53블록(무섭습니다..)
야투성공률최고:93-94시즌 59.9%
3점슛성공률최고:95-96시즌 50.0%(2개던져서1개들어감 다른시즌에는 전부다0%)
자유투성공률최고:02-03시즌 62.2%(이때가 최고좋았네요..^^)
출장시간최고:99-00시즌 4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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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영화계 쪽에서 기대치 않았으나 의외의 흥행을 기록한 작품들을 ‘슬리퍼 히트(Sleeper Hit)’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2004년 한국에서 개봉한 영화들중 최고의 슬리퍼 히트작은 어떤 것일까? 수 많은 후보작들이 각축을 벌였지만 1위를 차지한 작품은 한국 영화의 득세속에서도 선전에 선전을 거듭한 애쉬튼 커처 주연의 SF 스릴러 '나비효과' 차지했다. 특히 이 영화가 우리 나라에서 예상외의 흥행성적(전국 100만 이상)을 올릴수 있었던 이유가 인터넷 불법다운 때문이라고 하니 더욱 아이러니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제목 '나비 효과'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필자가 네이버 지식인에 질문을 의뢰하니 "중국 상하이의 상공에서 나비가 날개짓을 하면 그것이 미국에서 태풍이나 폭풍이 되어 나타날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즉, 나비의 날개짓 같은 작은 원인이 태풍이나 폭풍과 같은 큰 변화를 만들어 낼수 있다는 이론이다. 영화 내용도 이러한 나비 효과의 뜻을 중심으로 하여 한 남자의 인생을 돌아보고 과거를 바꾸는 것이 미래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에 대해 보여주는것이 주된 내용이다.
그럼 이 즈음에서 필자는 이번 글의 뚜껑을 열기 위해 당신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하겠다. (나비 효과의 본 뜻과는 조금 거리가 있지만) " 당신은 현재 NBA Roster에 등록된 선수중 과연 어떤 선수가 가장 큰 나비 효과를 일으킬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어떤 선수의 작은 변화가 NBA 리그 내에 가장 큰 파장을 일으킬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 아마 필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누구도 아닌 'Shaquille Rashaun O'Neal'을 호명할 것이라 생각한다. 현 NBA 선수들을 통틀어서 뿐만아니라 NBA History 보더라도 가장 강력한 파워를 보여주었던 그의 이름을 말이다.
ⓟosition: C
ⓑorn: 03/06/72
ⓗeight: 7-1 / 2,16
ⓦeight: 325 lbs. / 147,4 kg.
ⓒollege: Louisiana State '93 ● 1992-93 NBA Rookie of the Year, and to the NBA All-Rookie First Team.
● Led the league in field-goal percentage five times.(93-94, 97-98, 98-99, 99-00, 00-01)
● Two-time season scoring champion, Nine-time All-Star, Four-time All-NBA First Team.
● Most Valuable Player(1999-2000), Three-time NBA Finals MVP(2000, 2001, 2002)
이 드넓은 대지에 한 세상의 남자로 태어난 다는것은 무척이나 축복받은 일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남자들에게는 남자로 태어난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 바로 한 남자로 남아야 한다는 것이다. 풀어말하면 남자로 태어난다는 것보다 남자다운 모습으로 살아간다는것이 더 어렵고 중요한 것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당신앞에 남아있는 나날들을 'The Man' 다운 모습으로 살아갈수 있는가? 아마 대부분의 남자들은 이러한 나의 질문에 섣불리 ' YES ' 라고 대답하지 못할것이다.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만약 당신들에게 이미 이상향이 정해져 있다하더라도 그것을 끝까지 밀고 나갈 의지와 직립에 대한 자신감은 확신하지 못할것이기 때문에 섣불리 대답하지 못할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현 NBA에서 가장 큰 지배력을 가지고 있는 'Diesel' 샤킬 오닐은 지금까지 'The Man'의 다운 모습을 보여주었을까? 과연 '성공한 남자' 샤킬 오닐은 어떠한 목표와 생각을 가지고 살아 왔을까? 디젤은 어린 우리들에게 더 맨에 대한 해답을 줄 수 있을까? 단언할수는 없지만 필자는 샤킬 오닐에 대한 삶의 이야기가 우리가 남자로 살아가는있어서 가져야할 내용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닐은 어린 시절 거대한 몸을 가지고 있었지만 내면은 참으로 연약한 아이였다. 11살에 180까지 자란 그의 키는 당연히 대단시 되어야할 것이였지만 그에게는 다른 아이들의 놀림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오닐은 키만 크고 내면은 작은 그런 아이였으며 샤킬과 고릴라를 합성해서 만든 '샤킬라'라는 별명이 그에게 붙여졌다. 그에게는 다른 아이들을 제압할 충분한 힘이 있었지만 그는 그런 시도조차 하지 못할정도로 자신감이 없었다. 한번은 자신의 책상에 있던 점심밥은 없어진채 바나나만 놓여있는 수모를 겪었지만 오닐은 아무런 대응도 하지못한채 눈물만 흘릴뿐이였다. 오닐은 '샤킬라' 라는 별명에서 헤어날 수 있는 해답을 찾아야 했지만 자신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할뿐 어떤 방법도 찾지 않았다. 결국 이런 오닐의 생활은 어머니의 귀까지 흘러들어가게 됐고 오닐은 그 당시 세상에서 가장 무서웠던 어머니와 대면해야 했다. 어머니: 샤킬, 무엇이 문제니? 넌 다른 아이들보다 큰 키와 멋진 몸을 가지고 있어.
오닐: 엄마, 제 몸은 멋지지 않고 제 키는 대단한것이 아니에요. 놀림감의 대상일 뿐이라구요. 전 다른 아이들과 비슷한 키와 몸무게를 가지고 싶어요. 더 이상 샤킬라라 불리기도 킹콩이라 불리기도 싫다구요. 전 제 모습이 바보같고 불쌍할 뿐이라구요.
어머니: 샤킬 오닐. (강한 어조로) 넌 이 세상의 남자중 하나야. 또한 우리 집안을 이끌어 나갈 남자이기도 하구. 샤킬, 무엇이 너를 그렇게 약하게 만들었니? 너의 그 큰 키가 너를 그렇게 만들었니? 아니면 너의 그 넓은 어깨가 너를 그렇게 만들었니? 샤킬. 겉모습이란건 그렇게 중요한게 아니란다. 중요한건 겉모습이 아니라 너의 내면에 숨겨진 마음이야. 그렇기 때문에 정말 바보같고 불쌍한건 너의 겉모습이 아니라 너의 약한 니면이라는 것이지. 샤킬 니가 마음만 굳게 먹는다면 이 세상에 니가 못할일은 없어.그래! 좋다. 내일부터 샤킬 오닐은 농구를 시작한다. 너의 그 약해빠진 정신을 고치기 위해 말이다. 이런 이유로 샤킬 오닐은 농구를 시작하게 되었고 농구를 시작하면서부터 그의 모든 것이 변했다. 그를 놀려대던 아이들은 그가 농구 하는 모습을 보며 감탄사를 연발했고 그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한 마디로 농구는 오닐에게 은인이었다. 그가 농구를 시작한 이유가 그저 농구선수가 되고 싶었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농쿠만큼 그에게 절실했던 것은 없었으니까. 아무튼 그의 농구 인생은 탄탄대로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해 여름, 막상 농구 캠프에 참석해보니 문제가 달랐다. 당시 NBA 에 진출하려면 이 캠프에 참가하는 것이 관행이었는데 캠프에 들어간 첫날부터 오닐은 기가 꺾이고 말았다. 과연 그가 농구로 성공할 수 있을지, 농구 선수로서 적합한 사람인지 하는 회의가 들 지경이었다. 캠프는 말 그대로 피나는 경쟁의 연속이었다. 전국 방방곡곡의 고등학교에서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모두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콜 고등학교에서야 두말할 것 없이 그가 최고였지만 캠프에 참가한 아이들 중에는 그보다 실력이 뛰어난 아이들이 많았다. 또한 알론조 모닝(Alonzo Mourning)이나 지미 잭슨(Jimmy Jackson) 같은 아이들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선수들처럼 보였다. 그들은 일찍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면서 수차례 개인지도를 받았으며 운동복도 최고급품을 입었다. 관계자들도 오닐보다는 그들에게 훨씬 관심이 많아 보였으니 오닐이 주눅든건 어찌보면 당연했다. '이제보니 내 실력이 별게 아니었구나.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닌가보다'란 생각까지 들정도 였다. 결국 문제가 생길 때마다 찾았던 어머니라는 선택을 오닐은 또 한번해야 했다.
어머니: 꿈은 희망이 있을 때 채워가는 거란다. 네 힘껏 아이들하고 맞서거라. 지금처럼 좋은 기회가 또 어디있니?
오닐: 하지만 엄마, 저는 저렇게 강한 선수들을 제칠 자신이 없어요. 지금 당장은 힘들어요. 나중이라면 모를까.
어머니: (호통을 치면서)나중이란 누구에게나 오는 게 아니야. 지금 최선을 다해라. 절대 나중을 기다리지 마라. 뒷자리에서 얼쩡거리지 말고 누군가로 목표로삼고 따라잡겠다는 의지를 불태워라. 열정을 바쳐 노력하라. 그러면 보답을 얻을 것이다.
결국 오닐은 어머니의 뜻에 따라 생각을 바꾸었고 그 후로 모든 일이 술술 풀려 나갔다. 그해 오닐은 여름을 농구에 바쳤다. 최선을 다한 결과 캠프가 끝나갈 즈음에 사람들에게서 이전부터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 즉 오닐이 최고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오닐은 알론조 모닝, 지미 잭슨과 더불어 1992년 NBA 드래프트에 선발되었다. 잭슨이 4위, 모닝이 2위, 그리고 대망의 1위가 바로 오닐 이였다. 결코 나중을 기다리지 않았기 때문에 얻어낸 결과였다. 오닐의 어머니 말씀처럼 말이다.
그대가 추악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 생각을 잘하는 것은 현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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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적인 자아에 대한 외적인 자아의 | 계획을 잘한다는 것은 더욱 현명한 일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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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 행동에 옮기는 것은 그 중에서도 가장 현명하다. ② Dream
결국 그 여름해의 대가로 1992년 첫번째 픽을 받아낸 오닐은 승승장구했다. 비록 팀은 우승권에 근접하지 못했지만 매직의 승률은 상승했고 오닐은 NBA를 이끌 차세대 주자로서 인정받았다. 플레이의 단순함은 다른 슈퍼 센터들에 비해 초라함의 극치였지만 파워넘치면서 스피드까지 겸비한 그의 공격력은 최고였다. 육중한 무게로 골대를 박살내는 그의 모습을 단 한번이라도 하이라이트 릴에서 본 사람이라면 그의 모습을 잊지 못할 정로도 오닐은 조던이나 올라주원과는 또 다른 슈퍼 스타로 성장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듬해 페니 하더웨이가 올랜도로 입성함에 따라 오닐-페니라는 '무한 성장가능성' 슈퍼 콤비가 탄생되었고 오닐은 전년도 보다 6득점 상승한 평균 29득점에 13리바운드를 기록하였다. 하지만 NBA 2년생치고 놀라운 활약을 보여준 그에게도 문제점은 많았다. 특히 그의 완성되지 못한 언행이 문제였는데 어린 시절 정신적 고통의 역효과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의 마이크웍은 최악이였다. 다른 선수들을 비하하기 좋아했으며 작고 큰 사고들을 여럿 일으켰다. 결국 94-95 시즌 조던이 첫 번째 컴백을 감행한 그 시즌에 시카고 불스를 꺽고 NBA 파이널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룩했지만 한 마디로 '크레이지 모드'였던 올라주원의 휴스턴에게 4-0으로 셧아웃 되면서 그는 마음이 흔드렸다. 파이널에 올라가면서 너무 빨리 샴페인을 터트린것도 문제긴 문제였지만 페니 하더웨이와 팀 인기 순위와 리더 자리를 놓고 경쟁을 해야했으며 자신의 어릴적 꿈이였던 가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결국 오닐과 올랜도는 95-96도 선전하면서 동부지구 결승까지 함께 했지만 드림매치였던 시카고와의 승부에서 4-0으로 패배하면서 오닐은 헐리웃 진출을 위해 올랜도를 떠나 LA 입성했다. 오닐은 분명 농구가 본업이였지만 마이클 잭슨처럼 되고 싶다는 자신의 어릴적 꿈을 버릴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많은 올랜도 팬들은 그런 오닐을 이해하지 못했다. 돈과 명예를 위해 그가 고향과 같은 올랜도를 버렸다고 말했으며 페니와의 관계를 추궁했다. 오닐은 자신의 입장을 확실히 밝혔지만 팬들은 야유를 퍼부었으며 한 성격하는 오닐은 좋지않은 마이크웍으로 그들의 물음에 응대했다. 이렇게 오닐은 LA로 떠나면서 그의 안티 팬들을 양성했고 그를 좋아하지 않는 팬들과 갈등을 벌여야 했다.실제로 당신은 TV에서 R.Kelly의 I Believe I can fly나 Queen의 We are the champions따위의 음악에 맞춰 조던의 활약상을 보여주는걸 보았을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오닐을 가지고 그러는걸 보았는가? 확실히 조던은 언론에서 밀어주고 있는것이다. 뚱뚱한 힙합류의 차림을 입는다고 오닐이 카리스마 없다고 하는건 말이 안된다. 그러니까 결론은 카리스마,농구실력 어디를 봐도 뒤지는게 없는 오닐인데 왜 조던하고 비교하면 말이 안된다고 하는지 이해가 안간다. " - 오닐에 대한 논평 (제리 웨스트) 또한 오닐은 하킴 올라주원과 마이클 조던에게 4-0으로 참패하고 LA로 떠나서 우승과는 거리가 먼 조직력이라고는 하나없는 나 홀로 플레이의 전형인 레이커스에서 플레이하면서 많은 자격 논쟁에서 휩싸여야 했다. 득점을 그 누구보다 많이 할지는 모르지만 마이클 조던이나 데이비드 로빈슨만큼 팀을 유기적으로 이끌지는 못한다는 것이 농구 관계자들의 공통적인 지론이였다. 그리고 빅3(유잉,올라주원,로빈슨)만큼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했다며 "정신적 미숙아"라 부르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득점력에 대한 그의 위용은 그 누구보다 높았으나 리더로서는 빅3보다 못하다는것이였다. 그에 붙여오는 50%대의 자유투 성공률은 덤이였고 말이다. 슈퍼맨 '디젤'은 그렇게 그렇게 많은 농구 관계와 안티 디젤들과 싸워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1999년 오닐은 필 잭슨을 만나면서 달라졌다. 필 잭슨의 가르침속에 넘버원 스코어러보다 우승 트로피의 중요성을 알았고 팀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줄 아는 미덕을 배웠다. 그리고 코비 브라이언트가 초특급 스코어러로 성장함으로써 그는 득점 부담을 줄일수 있었다. 결국 1999년 오닐은 그 해에 최고로 강력한 팀 'LA 레이커스의 중심에 서 있었고 리그 챔피언 팀의 리더이자 MVP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2001-02까지 3년 연속 챔피언 팀의 리더로서 활약했다. 리그의 풋내기이자 정신적 미숙아로 조롱받던 그가 단지 스코어러가 아닌 리그 전체를 지배하는 리더로서 성장한 것이었다. 그의 거만한 행동들과 정돈되지 못한 언행을 위시하여 반문을 제시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거라 생각하나 필 잭슨의 지시에 전적으로 따르고 그를 숭배하는 오닐을 보며 또한 3번의 타이틀과 파이널 MVP를 거머쥔 그를 보며 풋내기라 조롱할 이는 없을거라 생각한다.
그의 프리드로 률이 50%로도 안 된다고 선수로서 노력을 안 한다고 쓴 적이 있는데 그것도 저의 편견이었습니다. 샤킬 오닐은 슛을 쏠 때에 농구선수로서는 치명적인 손가락 이상으로 인해서 볼에 스냅을 주지를 못한다는군요. 어릴 적에 나무타기 하다가 떨어져서 손가락에 이상이 생겨서 농구공은 잡을 수 있는데 볼에 스냅을 주지를 못한다는군요. 참 그의 드러난 부분만 보고 그를 싫어한 안티 샤크중의 하나인 제가 얼마나 부끄럽던지. - 안티 샤크
위대한 순간이 너무 일찍 찾아온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한것 같습니다. 한 마디로 겸손하지 못했어요. 제 자신이 너무 과대 포장되어있다는 생각을 깊게 하지 못했던거죠. 올라주원과 상대할 때 경험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나는 최고니까 내가 승리하는건 당연해."라고 생각한거죠. - 샤킬 오닐.
저또한 우승 팀의 일원이 되기 전까지 많은 고민과 저에 대한 자격 논쟁을 끊임없이 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꿈이라는것이 있기에 멈추어 본 적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꿈을 향해 전진할 때 비로소 당신은 엄청난 스릴을 느낄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의지가 얼마나 되는지를 시험받게 될 것입니다. 또한 당신에게 이러한 스릴 넘치는 게임이 계속 될수록 당신은 자신이 더욱 강해진다는 것을 느낄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 그리고 절대 놓지않을 꿈만 있다면 절대로 실패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제가 어릴적 저의 어머니가 저에게 했던 말입니다. - 샤킬 오닐 에베레스트 산 정복에 실패한 힐러리에게 어떠 한 청중이 말했다. "내가 당신이라면 두 번 다시 등반하고 싶지 않을 겁니다." 그러자 힐러리가 대답했다. " 아닙니다. 나는 또다시 에베레스트에 오를 겁니다. 첫번째는 실패했지만 다음번엔 반드시 성공할 것을 믿으니까요." " 다음번에 성공할 것을 믿는다구요? 도대체 무엇을 믿는다는 겁니까?" " 에베레스트 산은 이미 자랄대로 다 자랐지만 내 꿈은 아직도 계속 자라고 있으니까요." 결국 1953년 5월 29일 에드몬드 힐러리는 에베레스트 산 정상에 그의 이름이 새겨진 깃발을 꽂을 수 있었다. 사실상 10년이 지난 지금도 오닐을 Nba에서 맨투맨으로 수비할 수 있는 선수는 없다고 봐야한다. 그래서 거의 대부분의 감독들은 오닐을 수비할때 더블팁을 쓴다. 물론 더블팁도 벅찰때가 많다. 워낙 싸이즈와 몸무게 파워가 인간의 그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닐의 주 득점 방법은 포스트 업해서 상대를 등지고 패스를 받아 약간의 드리블링과 피벗등으로 상대를 제압하고 이것이 여의치 않을때는 그의 강력한 파워로 바로 덩크. 덩크할만큼의 거리까지 접근이 용이하지 않다면 훅슛이다. 이것이 그의 공격 패턴 전부다. 하나의 예로 로드맨은 그의 공격을 이렇게 평했다. "그의 공격패턴은 2가지인데 하나는 덩크고 다른하나는 또 덩크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닐의 공격루트가 매운 단순하다고해도 워낙 막기가 힘들기때문에 오닐에게는 매우 효율적인 공격패턴이 된다. 그러면 Nba에 오닐만한 사이즈를 가진 선수가 하나도 없나? 물론 그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공격력이나 수비력이 오닐보다 더 위력적이지 못한건 그들의 순발력이 오닐의 순발력과 스피드를 따르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닐는 다른곳에서는 몰라도 골밑에서는 신장과 몸무게에 비해 매우 순발력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서전트점프가 85cm나 된다. 그의 평균 점프력은 매우 놀라운 기록이다. NBA 평균 서전트 점프보다 높다는 걸 보면 더욱 더 말이다. 그리고 근래에는 이기심을 버리고 팀의 승리만을 위해 플에이하기 때문에 더블팁이 붙을때는 재빨리 외곽으로 공을 패스한다. 농구 센스는 계속 무르익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슈퍼 디젤' 샤킬 오닐도 저무는 날이 있을 것이다. 아무리 그가 슈퍼맨이라지만 계속 먹고 있는 나이에는 결국 패배하고 말것이다. 그의 선배 하킴 올라주원, 패트릭 유잉처럼 말이다. 그렇다 모른다. 미래라는 것은 정말 모르는 것이다. 샤킬 오닐. 그가 데이비드 로빈슨처럼 영광스럽고 행복한 엔딩을 보여줄지 아니면 올라주원이나 유잉처럼 조금은 초라하고 씁슬한 엔딩을 보여줄지 말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것은 확실히 말할수 있다. 샤킬 오닐. 그는 풋내기에서 리그의 지배자로 변화했던 것처럼 그의 선수 생활이 마감하는 날 까지 디젤의 운행을 멈추지 않을것이고 자신의 이상향인 "The Man'의 모습을 지킬것이라고.... 마지막까지 남자로 남을 것이란것을 말이다.
1996년, 불스가 플레이오프에서 매직을 꺽은 후, 마이클이 내게 말했다 "거기서 끝까지 버티고 절대로 아래로 내려오지 말게, 자네 시대가 오고있어" 나는 그 말을 잊을 수가 없었다 - 샤킬오닐(1996년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 경기후)
올랜도 시절 나는 리더가 아니었다, 그 당시에는 호레이스 그랜트와 데니스 스캇가 있었고 나는 게임에만 열중하면 됐었지만, 여기선 (LA레이커스) 아니다. 우리팀은 베테랑선수가 부족하며 팀을 이끌만한 선수가 없다. 그래서 내가 자청하기로 했다. 평소같으면 그냥 넘어갈수도 있었겠지만, 우리선수들이 다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내가 물러선다면 기가 죽을꺼 같아서 그랬다. 우리팀에 뭔가를 보여주고만 싶었다, 결코 그에게 원한이나개인적인 감정이 있는것은 아니다. - 샤킬 오닐(바클리와의 싸움후)
오래전에 내가 즐겨들었던 구절의 내용이다. 상상치 못할 고통의 형틀을 화해의 통로로 만들었으며 분노보다는 용서를 갈등보다는 이해를 증오보다는 사랑을... 리그에 있으며 여러가지 일들을 겪었고 실패와 성공, 갈등과 화해,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였다. 단지 농구 선수로서가 아닌 삶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과 경험을 할수 있었다. 나의 끝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지금까지의 이 곳에서의 생활이 매우 값지고 잊지 못할순간임에는 틀림이 없다. 아마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농구와 league...
인생의 목적은 끊임없는 전진이다. 앞에는 언덕이 있고, 냇물이 있고, 진흙도 있다. 걷기 좋은 평탄한 길만이 아니다. 먼 곳으로 항해하는 배가 풍파를 만나지 않고 조용히만 갈 수는 없다. 풍파는 언제나 전진하는 자의 벗이다. 차라리 고난 속 에 인생의 기쁨이 있다. 풍파없는 항해, 얼마나 단조로운 것인가! 고난이 심할수록 내 가슴은 뛴다. - F. 니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