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정지상 VS 김부식

김현주 |2007.06.24 13:44
조회 198 |추천 0

정지상(? ~1135)과 김부식(1075~1151) 이두사람은 모두

고려의 제17대 황제인 인종(1122~1146)연간에 활약한 사람들이다
개경출신이었던 김부식이 먼저 조정에 출사하게 됐는데

청년시절 김부식은 개경에서 문사(文士)로 이름을 날렸다고 한다

사실 부식이라는 이름도

중국의 천재시인인 소식을 따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그의 동생 역시 소철의 이름을 따서 부철이라고 했다고 한다

어쨋든 김부식이라는 이름만 놓고 보아도

시에 대한 김부식의 열정과 집착을 짐작할만하다


그렇게 개경문단에서 김부식이 명성을 떨치고 있을즈음

서경출신이던 정지상이 뒤늦게 과거에 장원급제하면서

개경에 등장하게 된다

그역시도 대단한 시재였으니

드디어 김부식이 호적수를 만난 셈이 되었다
이때에 정지상이 지은 시가 바로 그 유명한 [송우인 送友人]이다

 

비 갠 언덕에 풀빛 짙고
남포에 임 보내니 매양 슬픈 노랫소리
대동강물이야 어느때에 마르리
해마다 이별 눈물 보태는것을

 

이시는 금방 개경에 퍼져 나갔다

그리곤 이내 인구에 회자된다
당연히 김부식의 귀에도 이시가 들렸음은 물론이다

이렇게 정지상은 개경문단에 파란을 일으키며 전격 등단하게 된 것이다

두사람은 조정에서는 물론 시회(詩會)에서도 자주 어울렸다고 한다

그런데 이즈음 두사람이 갈등하게 되는 결정적 사단이 발생한다
이당시 정지상의 시중에는 이런것이 있었다

 

琳宮梵語罷(림궁범어파) 구슬 달린 궁궐에 염불소리 마칠 때에

天色淨琉璃(천색정유리) 하늘빛이 유리처럼 고와라

 

바로 이시를 접한 김부식이 정지상에게 마지막 자구를 자신이

맞추겠으니 시를 빌려달라고 간곡하게 청을 넣었다

그러나 정지상은 김부식의 이 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더이상의 기록이 없으므로 상세한 내막은 알순 없으나
[고려사절요]에 참고할만한 기록이 나온다
" 김부식은 본래 문인으로서

정지상과 같이 명성을 날렸는데 문자관계로 인해 불만이 쌓여 있었다

.... 중략 .....

이 감정은 뒤에 그를 죽이기까지 했다 "
다소 과장된 표현일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정지상과 김부식이

문장에 있어서 적잖은 갈등을 가지고 있었음을 유추해볼수 있다

 

한편 조정내에서는

인종의 외할아버지이면서 장인이기도 한 이자겸이 1126년 난을 일으켰다.

이 때 최사전(崔思全)과 척준경(拓俊京) 등이 난을 진압하고

절대 권력을 휘둘렀다.

1127년 정지상이 이를 탄핵하였고 인종은 척준경을 유배시켰다.

이 사건으로 인해 정지상은 인종의 신임을 받게되었고,

인종의 경연까지 전담하게 되었다.

정지상은 인종에게 묘청을 추천하였다.
한편 조정내에서는 당시 권세를 부리던 이자겸을 축출하는데

김부식이 결정적 공헌을 하였고

이로인해 이 두사람에 대한 인종의 신임은 대단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럴즈음에 역사상 유명한 묘청의 난이 발발한다

금나라는 고려를 위협하며 신하의 예로써 받들 것을 요구하였다.

김부식 등 개경출신들의 유학자들은

금의 요구를 받아 들이는자는 편이었고,

주로 서경출신들인 정지상과 백수한(白壽翰), 묘청 등은

금의 요구를 묵살하고

도읍을 서경으로 옮겨 북진정책을 추진하자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인종의 지지로 서경천도, 금국정벌, 칭제건원 등을 내세우며

이를 과감히 추진하였다.

원래 서경은 개경에 이은 제2의 수도이자 북방정책의 전초기지였다.

그러나 개경출신의 기존 권신들이 강경하게 반대하고,

민심도 불리해져 결국 인종이 천도를 중지시켰다.

서경천도운동은 좌절되었다.

 

오랫동안 계획했던 천도운동이 좌절되자

묘청은 서기 1135년 서북 여러 고을의 군대를 모두 서경으로 집결시킨 후,

국호를 대위국(大爲國), 연호를 천개(天開),

군대를 천견충의군(天遣忠義軍)이라 선포하고

개경으로 진격하려 하였다.

 

묘청 등의 반란에 직면한 정부에서는

김부식(金富軾)을 총대장으로 삼아 토벌군을 파견하였다.

 

김부식은 난을 진압하면서 가장 먼저 정지상을 처형하였고

그의 자녀들의 몸에 [서경역적]이라는 글자를 새겨서

자신의 종으로 삼았다

김부식의 정지상에 대한 원한이 어떠했는가를

미루어볼수 있는 대목일 것이다

1136년 2월 관군의 총공격으로 묘청의 난은 약 1년만에 진압되었다.


그후 최충헌의 집권이 이루어진 13세기초에 들어오면

이규보의 [백운소설]이 나오게 되는데 여기에도 보면

김부식이 정지상에게 문장에 있어서 혼나는 대목이 나온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역사의 엉뚱함을 발견하게 된다

그토록 문장에 집착했던 김부식 이었건만

정작 그의 문집은 전해져 오는게 단한권도 없다
(김부식에게는 문집 20 여권이 있었다고 한다)
참고로 정지상은 고려의 12시인중의 한사람으로 선정되었다

 

 


 

야사에 의하면 김부식이 정지상을 죽이고 난 뒤 어느 날

 

柳色千絲綠(유색천사록)-버들 색이 천 가닥의 실처럼 푸르고

桃花滿點紅(도화만점홍)- 복사꽃 일만 점이 붉기도 하다

        

고 시를 읊으니

문득 공중에서 정지상이 귀신으로 나타나 김부식의 뺨을 세게 때리며

 

“이 엉터리 같은 놈아!

네가 무슨 재주로  버들가지가 千絲(천사:천 가닥)인지

복숭아꽃이 滿點(만점: 만 송이)인지 세어 보았다는 거냐?

시를 쓰려면

柳色絲絲綠(유색사사록)-버들가지 가닥가닥 푸르고

桃花點點紅(도화점점홍)-복숭아꽃 송이송이 붉구나

라고 제대로 써야지. 이 멍청한 놈아!”

라고 하였다.

 

그 뒤 김부식이 절에 가서 뒷간에 앉아 볼일을 보는데,

또 정지상이 귀신으로 나타나 김부식의 불알을 힘껏 잡아당기니

불알이 터지려고 하였다.

아픔을 참느라고 용을 쓰니 얼굴이 빨개지는 것이었다.

 

“술도 먹지 않았는데 왜 얼굴이 붉어지느냐?”

 

그래도 김부식은 지기 싫어 천연덕스럽게

 

“隔岸丹楓照顔紅(격안단풍조안홍)

건너편 언덕에 단풍이 낯을 비추니 빨개진다”

라고 싯구로 응대하였다.

 

이에 정지상이 더욱 강하게 불알을 잡고

 

“이게 무슨 가죽주머니냐?” 하니

 

“네 아비 불알은 가죽이 아니고 쇳덩이냐?”

 

하며 버티다 그만 뒷간에서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렇게 세게 불알을 잡아 당겼으니 아마 불알 터져 죽었을 것이다.

 

                               - ‘백운소설’에서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