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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지 않은, 그러나 손에 잡히지 않을 과거 사진

김태완 |2007.06.24 16:02
조회 27 |추천 0

# 멀지 않은, 그러나 손에 잡히지 않을 과거

 

사진 한장, 두장에 잠시 넋을 잃었다. 그리곤 이내 패닉상태다.

 

짧다면 짧았던 지난 20년, 그리고 내가 기억가능한 세월 15여년.

 

곱씹어본다. 이젠 더 이상 단물조차 나오지 않아도 좋을만큼.

 

 

 


"아이들은 다 어디갔을까? 아이들이 없으면 이렇게 된다..."

 

요즘 애들도 놀이터 가나? 아니, 놀이터가 있긴 한가?

 

그, 아파트에 둘러싸인 교도소 운동장 같은 놀이터 말고...!

 

탁 트인 공터에 모래깔린 놀이터. '구슬'한다고 군데 군데 파 놓은 '홀'도 있는 그런 놀이터.

 

저 사진 보면서 왠지 울적해졌다. 여자애 몇은 삐걱거리는 그네를 타고 있어야 하고, 흐르는 코를 빨아당기며 손에는 구슬은 시선은 바닥에 파인 구멍에 가 있는 남자애 몇몇도 있어야 하는데... 그저 녹슨 그네만 댕그러니 있을뿐이다.

 

초등학교 다닐때 였다. 5,6학년때 쯤, 한적한 시골마을처럼 생긴 산동네로 이사간적이 있었다. 그곳에 놀이터가 있었다. 시소가 있었고, 그네가 있었다. 세방향으로 길게 뻗은 미끄럼틀이 있었고, 귀퉁이에는 구슬치기를 위한 '홀'이 파져있었다. 언제나 아이들 몇 몇이 있었고, 땅거미 질 무렵이면 밥먹으라며 닦달하러 오는 '어머니'들이 있었다. 그럼 온갖 짜증을 내며 아쉬운 마음으로 내일을 기약하는 '꼬마'들이 있었다. 누군가 데리러 오지 않는 '꼬마'들은 말 못하는 서운함을 가진채 그저 그렇게 지는 노을만 바라보는 풍경이 있었다.

 

언제 였을까? 그 때보다 키도 커졌고, 털도 나고, 몸도 불었다. 그리고 다시 찾아갔다. 수풀이 무성한 그곳에는 더이상 꼬마들도 놀이기구들도 없었다. 그저, 놀이'터'였음을 증명하는 외곽 펜스만 남아있을뿐, 수풀만 무성했다.

 

그네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부모들의 '열'에 못이겨 도시로 갔을까? 컴퓨터앞에 앉아있을까?

 

그저 울적해진다...

 

가만 생각하다보니, 지금의 아이들보다 그런 추억을 가지고 있는 내가 더 가련해지기 까지한다.

 


"그들만의 리그..."

 

나에게는 세발 자전거가 없었다. 그 흔한 '씽씽'도 없었다. 내 생떼에 그저 '위험하니까...'라는 말 한마디로 모든걸 무마시켜버렸던 부모님 때문이었다.

 

씽씽 따위가 있는 친구들 옆에서 기회만 엿보다 틈이 생기면 빌려탔었지. 특히, 내리막에서 씽씽을 앉아서 타고 내려오는 재미란... 또 색달랐다. 시원했고, 가슴이 뻥 뚫렸다. 그럴때면,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때가 있었다. 그러다, 내 어릴적 한 없이 크게만 보이던 '두발 자전거'를 타다보니, 세발자전거는 잊고 살았다. 씽씽도.

 

지금 타기엔 너무도 작아져버렸다. 두발자전거로는 그 때의 그 가슴벅찬 느낌을 다시 가질순 없겠지.

 

아쉽다. 그저, 그 때의 그 느낌이 일말이라도 남아있는것에 감사할뿐이다.

 


 

"지금 말뚝박기를 하기엔, 허리가 아프다."

 

우리들끼리 부르던 '뒷골목'이란곳이 있었다. 차가 다니지 않는 시원하게 뚫린 '도로'가 있었다. 고무공으로 피구를 했고, 신발을 벗고 양말만 신은채 '달리기'도 했었다.

 

노는데 뭔들 필요했을까?

 

깡통하나만 있어도 반나절을 놀았다. 깡통하나, 술래 하나. 깡통하나 세워두고 술래는 고걸 지키느라 깡통 주위만 맴맴. 그러다 저도 울화통 터지는지 친구들 찾는다고 잠시 멀리 가면 어디선가 숨었던 놈 하나가 튀어나와 깡통하나를 "뻥~"하고 차버린다. 술래는 온갖 인상을 쓰며 저놈 잡아라며 뛰어온다. 그리고 다시. 술래는 깡통 주위를 맴돌다 전봇대 옆으로 바지가랑이가 튀어나온 모습을 보고선 손가락을 번쩍 치켜든다.

 

"김태완~!! 찾았다!!"

 

"호박깽~~, 김태완 아닌데~ 김태완 아닌데~"

 

헛다리 짚으면 처음 부터 다시. 술래는 곤욕이지만, 숨어있는 친구들은 깔깔대며 다시 깡통 찰 준비를 한다.

 

사진처럼 말뚝박기도 빠지지 않았다. 적당한 그늘을 찾아 편을 먹는다. 여자애들도 남자애들도 섞여서. 그때는 부끄럼이 없었다. 여자애들이 말뚝박고 있는데 그걸 사정없이 내리탔다. 그러다 울기도 했었다. 남자애가 미안해 어쩔줄 몰라하면, 여자애는 소매자락으로 눈물을 훔치며 괜찮으니 계속하란다. 마치 내 차례가 오면 두고보자는 식으로.

 

 


"침침한 조명아래 부글대는 오뎅 다라이."

 

요즘도 그런곳이 있는지 모르겠다.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범위에선, 오뎅을 저런 양철 다라이에다 끓여 팔았다. 실과 바늘처럼, 이빨깨진 사기 그릇에 간장 한 종지는 언제나 그 옆을 지키고 있었다. 오뎅 하나에 백원이던 시절이었다. 오뎅을 집어들기전에 '오뎅 국물' 떠 놓는건 기본. 너무 뜨거워 국물이 식질 않으면 컵 두개로 옮겨 담기를 수십번. 과학적으로 타당한지는 알수 없지만, 신기하게도 금새 식었다.

 

오뎅 먹고 싶다. 천막을 걷은채로 비집고 들어가면 주름살 가득한 할머니가 무뚝뚝하게 반겨주던 그런 곳에서. 깨끗한 꼬챙이에 꽂힌 오뎅보담도, 색 바래고 굵기도 일정하지 않은 꼬챙이에 꽂힌 오뎅이 먹고싶다.

 

//멀지 않은, 그러나 금방 손에 잡히지 않을 미래.

 


"침묵이 어색하지 않은 사이, 바라만 봐도 웃음이 나오는 사이"

 

길지 않은 세월을 살아오면서 한가지 배운게 있다. 나름대로의 철학같은건데, 침묵하고 있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때 나는 진정 그 사람과 친하다고 할수 있다는 것이다.

 

침묵이 견딜수 없을때, 침묵을 깨뜨리기위해 무언가 화제거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났을때 나는 '진짜 이야기'를 할 수 있을것만 같다. 그래서, 의지할수 있고 때로는 기대어 쉬게 해줄수 있는 그런 관계가 되지 않을까? 

 

적어도 나는 그렇다.

 

 


"급한 아들..그리고.. 호기심 많은 딸.. 그 모습을 보며 웃고 있는 엄마, 그 광경을 사진으로 담는 아빠"

훗... 이 사진 보면서 꽤나 웃었다. 하지만, 이내 곧 진지해졌다.

 

이상적이다. 언제나 이런 풍경을 상상하곤 했었다. 나중에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는식의 막연한 상상말고, 나는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사는 상상을 자주 하곤 했다.

 

가족들과 공원에 간다. 앞서 티격태격 장난치며 뛰어가는 아들놈과 딸을 바라본다. 아내의 손을 가볍게 마주 잡고선 느릿하게 걷고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서로 마주 본다. 눈이 마주친다. 싱긋 웃는다. 그리곤, 계속 걷는다. 옆집사는 누구네 엄마가 오늘 뭘 했는데, 그게 잘못됐다는 둥, 장 보러 갔다가 옆 동네 사는 누구네를 얼마만에 만났다는둥...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난 언제쯤 저런 사진을 찍을수 있을까? 급한 아들과... 호기심 많은 딸... 그걸 보며 웃는 아내의 모습을 언제쯤 내 사진기에 담을수 있을까?


 


 

"겨울이 기다려진다."

 

이 사진에 왜 끌렸던 것일까? 만약 저기에 저 소녀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아니, 눈이 없었다면 또 어땠을까?

 

겨울에 관한 추억도 제 각각, 겨울을 기다리는 이유도 제 각각, 겨울에 하는 일도 제각각.

 

이유없다. 난 올 겨울이 기대된다. 그게 저 사진 한 장 때문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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