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바야흐로...
57주년이 된 6.25입니다.
6.25 전쟁을 아시나요?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북한 인민군이 북위 38˚선 이남으로 무력침공함으로써
남한과 북한 간에 발생한 전쟁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6·25사변이라고도 하며, 국제적으로는 한국전쟁 이라고 용어가 통용되고 있습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될 때까지 전투행위가 계속되었습니다.
6.25전쟁의 3년간에 걸친 동족상잔의 전화는 남북한을 막론하고 전국토를 폐허로 만들었으며,
막대한 인명피해를 내었습니다. 전투병력의 손실만 해도 유엔군이 한국군을 포함하여 18만 명이
생명을 잃었고, 공산군측에서는 북한군 52만 명, 중공군 90만 명의 병력을 잃었습니다.
또한 전쟁기간 중 대한민국의 경우 99만 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입었습니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남한지역을 북한군이 점령하고 있는 동안 인민재판 등의 무자비한 방법에
의하여 '반동계급'으로 몰려 처형당한 억울한 희생이었습니다.
휴전협정 제60항에 의거하여 한국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위한 정치회담이 대한민국과 유엔군측의
16개 참전국, 그리고 공산군측의 북한·중공 및 소련 등 3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1954년 4월
제네바에서 개최되었습니다. 대한민국과 유엔군측 참전 16개국은 한국문제의 정치적 해결방안으로
'유엔감시하에 남북한 토착인구 비례에 의하여 국민의 대표를 선출하는 자유총선거를 한반도
전역에서 실시하고, 그 결과에 의하여 통일독립된 민주적 한국정부를 수립하자'는 안을 제시하고,
주한 유엔군은 이러한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한반도에서 평화와 안전을 지키게 하자고 제의하였습니다.
그러나 공산측은 오로지 주한 유엔군의 철수를 강요하는 데만 초점을 맞춘 위장평화통일 제안을
내놓고 정치적 선전에만 급급함으로써 회담을 교착시켰으며, 회담은 같은 해 6월 성과 없이
결렬되었습니다. 이로써 한반도는 휴전선으로 분단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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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5일! 그날의 악몽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6월 25일 하루만을 생각하지 말고 일년내내 우리들의 위해 싸운 조상들을
마음속 깊이 생각하며 애도해야 할 것입니다.
6.25 전쟁에서 이유없이 수없이 죽은 조상들의 목숨을 다시 한번 돌이켜 생각해보고
지금 내가 살아있는 이유도 목숨 바쳐 싸운 조상들이 있었기에 살아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조상들의 죽음을 애도하고 우리 모두 오늘 하루 만큼은... 아니, 살아있는 동안 계속~
조상들을 위해 묵념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