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이 되면 끊었던 신문을 다시 받아볼까 한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아야 하겠기 때문이다.
TV로 보는 뉴스는 아무래도 가볍다. 비행기가 떨어져서 수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TV를 통해서 그 소식을 접하면 딱 13명만 죽은 것 같아서 씁쓸해진다. 그냥 말하는대로 들으면서 보기 때문이다.
인터넷으로 뉴스를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망할 악플 때문에 클릭공포증이라는 병을 얻었다. 사실 내가 쓴 글에 대한 악플도 아니고, 날 비난하는 악플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기사의 내용을 불문하고 어김없이 달리는 악플을 보노라면 온몸에 화기가 뻗치고 심장이 콩닥콩닥 뛴다.
그래서 7월이 되면 끊었던 신문을 다시 신청할 생각이다.
사랑이 충만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수많은 싸이친구들이 말하는 한없이 샤방한, 한없이 고독한, 한없이 안습인 그런 사랑 말고 그냥 우리가 원래 알던 그런 사랑 말이다.
난 멋있는 사람이 아니어서 멋있는 말은 할 줄 모르는데, 그렇다고 사랑을 논할 자격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랑은 그렇게 멋있게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냥 평범한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1+1=1'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릴 때 누구나 한번쯤은 '아빠가 좋니, 엄마가 좋니?'라는 질문에 답하길 강요받았다. 우리 모두는 현명한 대답을 했다. '둘 다 좋아요!'라고 말이다. 하지만 잔인한 세상은 그 답을 정답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우리는 인생의 첫상처를 받으며 누구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그리고 잠재의식 속에 선택하지 못했던 나머지 한 쪽에 대한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게 되었다. 사랑은,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니다. 엄마를 사랑한다고 해서 아빠를 사랑할 수 없는 것은 결코 아닌 것이다. 엄마에게도 1의 완전한 사랑을 줄 수 있고, 아빠에게도 1의 완전한 사랑을 줄 수 있다. 사랑한다면 그건 이미 완전한 1의 사랑이다. 또한 그걸 합쳐도 1의 완전한 사랑이다. 여기서 '1-1=1'이라는 등식도 발견할 수 있다. 내가 가진 1이라는 완전한 사랑에서 누군가에 대한 1의 사랑을 빼더라도 여전히 1이라는 완전한 사랑이 남는다는 의미다. 깊이 생각한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그런 것이 아닐까?
엉뚱하게 악플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사랑에 대한 유치한 등식을 설명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우리는 사랑을 주는 것에 인색한 것 같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사랑은 나눠줘도 여전히 같은 양의 사랑이 남는다. 그런데도 늘 남보다 더 가지기를 강요받았던 우리는 사랑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신이 존재한다면 그가 한 가장 훌륭한 일 두 가지는 유형의 술을 만든 것과 무형의 사랑을 만든 것이리라.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해도 내 사랑은 그대로다. 그 모든 것을 똑같이 사랑할 수 있고, 내 사랑은 결코 마르지 않는 샘과도 같다. 방금 누군가의 글에 악플을 달고나서 이 글을 읽고 있을지도 모르는 위대한 누군가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이 글에도 틀림없이 악플이 수없이 달릴 수도 있겠지만, 당신들을 사랑한다.
참, 무플일 수도 있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