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블라드미르
朝來共喫粥 粥了洗鉢盂
且問諸禪客 還曾會也無
寅漿粥一杓 午飯飽一盂
渴來茶三椀 不管會有無
아침에는 죽을 먹고 죽 먹고는 바루 씻네
묻노니 선객들이여 아는가 모르는가
寅時에는 미음을 午時에는 한 바루 밥
목말라 차를 마시니 알고 모름 상관 않네
---원감국사 충지(圓鑑國師 沖止)
7월은 치자꽃 향기 속에 --- 이해인
7월은 나에게
치자꽃 향기를 들고 옵니다
하얗게 피었다가
질 때는 고요히
노란빛으로 떨어지는 꽃
꽃은 지면서도
울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무도 모르게
눈물 흘리는 것일테지요?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꽃을 만나듯이 대할 수 있다면
그가 지닌 향기를
처음 발견한 날의 기쁨을 되새기며
설레일 수 있다면
어쩌면 마지막으로 그 향기를
맡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조금 더 사랑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의 꽃밭이 될테지요?
7월의 편지 대신
하얀 치자꽃 한 송이
당신께 보내는 오늘
내 마음의 향기도 받으시고
조그만 사랑을 많이 만들어
향기로운 나날 이루십시오
7월 1일 [오늘]
"여름날 오후, 새빨간 소반에다 커다란 수박을 올려놓고 잘 드는 칼로 자른다.
아, 이 또한 행복한 일이 아닌가..... 17세기 중국의 문예비평가 김성탄이
의 주석에서 열거한 '서른 세 가지 행복한 한 때' 중 한 대목이다. ....
수박은 원산지가 아프리카인데 3백여년전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그러니까 김성탄이 그것을 자르며 행복을 만끽하던 그 무렵에 우리 조상들은
처음으로 수박을 맛본 셈이다. 그때나 이때나 행복을 상징하는 수박의 달 7월을
맞이하였으니 아, 이 또한 행복한 일이 아닌가." --- 이형기의 수필 에서
7월은 율리우스 카이사르(시저 ; Julius Caesar)가 태어난 달이라 하여 July라는 말이 생겼다.
: 2003년 7월 1일 오전 경찰청에서 열린 제57주년 [여경의 날]기념식을 거행
0678년 (신라 문무왕 13) 태대각간 김유신(595-678) 세상 떠남
1646년 독일 물리학자 라이프니츠(1646-1716) 태어남[Gottfried Wilhelm von Leibniz ]
라이프니츠는 계산기도 발명하고 미적분을 뉴턴과 별도로 정립하였다.
"휼륭한 의사는 훌륭한 장군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인다."
1804년 프랑스 여류 소설가 조르주 상드[George Sand 1804.7.1-1876.6.8] 출생,
본명 오로르 뒤팽(Aurore Dupin).
1858년 찰스 다윈, 발표
1860년 미국 발명가 굿이어 (고무 실용화) 사망
1867년 캐나다연방 성립
1883년 (조선 고종 20) 인천항 개항
1890년 빈센트 반 고흐 세상 떠남
1893년 (조선 고종 30) 북한행궁의 성첩 수리
1901년 노벨상 창설 12월 10일 첫시상...
1912년 순수 서정시인 백석白石(1912.7.1∼1995) 출생, 본명 기행(夔行).
1914년 개화운동가 유길준(1856-1914) 세상 떠남. 자 성무(聖武). 호 구당(矩堂).
1955년 대천 해수욕장 첫 개장
1960년 가나, 영국연방내 공화국으로 독립. , 소말리아, 영국-이탈리아로부터 독립
1961년 서울 국제방송국(HLCA) 개국, 한국전력 발족
1962년 르완다-브룬디, 벨기에로부터 독립
1964년 경주 석굴암 복원 공사 준공식
1970년 300년전 진주성도(촉석진도) 발견
1973년 제주도 한들굴서 신석기시대 동불 뼈와 무문토기 발견
1977년 북한, 2백 해리 경제 수역 선포, 5백인 사업체 의료보험 실시, 부가가치세제 실시
1979년 소니 워크맨 등장
1981년 대구와 인천, 직할시로 승격
1987년 전국 전화 완전자동화
1995년 부동산실명제 시행. ,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와 관련 이준 회장 구속.
1996년 실업급여제도 실시. , 무궁화 위성 통해 위성방송 시험.
1997년 홍콩 주권, 중국에 귀속
1998년 문화부, 7월의 인물로 보각국존 一然(일연) 선정
2000년 전국 시외전화번호 변경
2003년 서울 청계 고가 철거 시작,
2004년 영화 ‘대부’ 명연기 말론 브랜도 타계
2004년 카시니-호이겐스호, 발사 7년 만에 토성 궤도 진입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밖에 나가지도 않고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새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 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은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 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 - 백 석
단양 쑥부쟁이-태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