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건데...걱정마
마약매매를 한 젊은 소련 중공 북한 일본 등지에서 떠돌던
조폭 야쿠자코드는 우리 부부의 소식을 전해듣고 무슨생가을 떠올렸을까요
새로운 여자를 소개해서 군대에서 살게하고 싶었고 그 코드는 어떻게 해서
김장수장관을 앉혀놓았을까요?
야쿠자코드가 군대를 쥐려면 기존의 상식을 모두 뒤엎어버려야 했던 거죠,
야쿠자코드,의 세력수입....
1990년 11월 25일 사건
미발추사건의 불씨는?
답) 오빠에 대한 간질발언과 남편 진급에 대한 반대의사에 의한
남편의 주위에서의 이미경교수의 부추김으로 쑥밭을 만들껬다는 선언이 내릴정도로
이미경교수를 앞세운 국방부를 뒤집은 사건이 일어났었다
그것은 부인의 자녀와 부인을 미쳤다고 하여 아이를 데려가서 새 여자(추상미- 본명 김정옥 - 마약매매자의 )가 사는 미국공군 공관에 옮겼었고
그 후에 미국공군은 없어졌다.
"여보세요, 정진수씨좀 바꺼주세요." "누구세요? 미공군에도 사모님이 계시는데요."
아뿔사 그랬구나 부인을 군대에서 허락해줘버린게구나
이 사건의 배후에는 이미경교수와 불지른 사람의 짓을 부인에게 뒤집어씌우자고 한
공병대의 중사였음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1993년 경이었죠.
'아니 저 분은 그 포천의 중사님이신데."
"..."
아무 말없이 그 분을 스쳤습니다. 왜 저분이 내 마을에 오신 거야?
나를 응시하면서 어쩐지 뭔가 들킨 거 같은 표정의 중사가 나 쪽에서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는데, 화학중대장을 만나러 왔던 거라 생각하네요.
"가문을 쑥밭을 만들어."
물론 오해도 많이 더해졌으리라고 믿네요.
강원도 전부의 세력은 물론 조폭도 쥐고 있는 중사일 수 밖에요.
남편을 모시고 가려던 생각이었는지도 몰라요.
그런데,
그러려면 철저하게 나의 이력과 가문의 약점을 캐야 했고 계속 가문을 쑥밭으로 만들어줄
배후조종자가 오.고.....발등에 떨어진 불인데 꺼야죠
27세...1985년 12월 21일에
날 보고.있는 예비시어머니...
괜찮아요
다 내 생각이 있어요
무슨 생각?
1985년 12월 10일에 예비남편이 토요일에 와서 호적에 부부로서의 내 이름을 올린 뒤로
춘천에 데리고간 뒤 월요일에 광주에 날 보냈어요
춘천이 소문의 근거지가 될수도....
예비남편 왈, " 오빠들에겐 말하지 마요."
난 곧이곧대로 그대로 했다. 바보였다.
이미 결혼하라는 부모님 오빠 환경이 시부모의 적극적인 호응 등이
나를 그렇게 빠져들게 했다.
아버지 정귀태씨는 통장을 2년을 했었다고....
아마 예비남편은 호적은 얼마든지 고칠 수 있음을 아는 사회적인 관행을 알고 있는 듯 했다.
북부청 북부서 북부에 일본인의 돈을 가져와서 북구청에 사업자금으로 내놓으면서
조폭야쿠자의 세력의 입김도 거세져 옆집 418호의 야쿠자 문신조직원들과
함께 마을을 돌아다니며 거짓말을 하는데 반대세력에게는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던 것은 일본의 돈을 받던 2003년부터었는지도 모른다.
앗 ! 실수
난 말을 뭐를 하고 안하는지를 모르고 큰 잘못을 했었다.
1985년 12월 11일에
'오빠가 간질이다.' 라고 했었다.
맞아 그렇게 예비남편에게 나를 스스로 남편에게 인수할 때에 모든 것을 다 밝히고저....
내가 나의 환경에 대해 다 말한 거 같았는데...
남편이 그 말을 듣고와서
카페에서는 아무 말도 없이 다른 곳에 한 참을 있다 와서 혼자 앉아있었는데....
춘천의 창문밖에는 호수같은데 물이 보이고 아름다운 강물이 보이는 카페였던 걸로 기억이 든다.
지금 제가 간질을 겪어보니까 그러더라구요
호흡기 신경계통 면역체계가 깨진 상태라서 머리 몸 기운이
동시에 빠져버린 상태라서 걸어다니는 식물인간과 같은 거죠
.
그것은 진급에 반대되므로 결혼자금을 받은 후에는
너가 사랑하는 철학과생의 여자와 살아라라는 말을
시어머니로부터 들었다고 해요
남편이 그렇게 결정하기로 한 것은
제 오빠가 간질이라는 것을
가족 중에 간질환자가 있으면 진급이 안된다면서 매우 슬퍼한 거죠
그래서 어절 수 없이 이미 군대에는 소문이 다 난 거고 결혼신고도 성급하게 했였는데....
내가 말을 한 것이 그에게 겁을 먹게 한 거죠
어차피 친정에서 떠나와도 오빠는 큰 일은 없이 돌아가시긴 했지만....
오빠는 진급에는 큰 영향은 없었던 거라고 봐요.
오빠에게 편지를 그 후로 쓸 때에 출가외인인까 이제 오빠에게도
편지를 쓰지마
편지도 검열받는 지 조사받는지 아마 연결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는지도 몰라요
간질환자가 있었다는 말을 들은 남편이 남들이 있던 카페에서는 반응이 없었는데...
다만 자리만 박차고 2~3시간 이상을 어디를 갔다 온것만 기억이 나네요.
그 시간에 나는 카페에 혼자 썰렁하게 빈 자리만 지키고 앉아있었구요.
어디가 어딘줄알아야지 갈 곳도 없고 끌려간 그 카페에 앉아서 그냥 멍하니
앉아만 있었어요
나 때문에 내 말때문에 괴로워서 자리를 피해 다른 여자를 사랑해서 나가서
울고 있었던 것인지를 몰랐지요.
우리가 머물러야 했던 옥희씨의 집에 11일 밤에 함께 들어와서는
나를 보라는 것인지....내게 분통이 터졌는지...
옥희씨 집의 벽을 두들겼어요.
주먹으로 쾅 쾅 두번 두드러더라구요
그 것은 아마 불만의 표시였을 거예요
예비남편은 나에게 '속았다.' 라는 마음을 느꼈던 것일까요?
사회관습이 연좌제같은 것도 있고
또는 결함이 하나라도 없는 사람이 진급됨을 알고
함게 결혼해서 사는것에 대해 포기를 했는지도 모르겠어요
결혼신고를 다시 취하해버리면 그만 인데.
그 다음 날에 도착한 뒤 화요일 아침이었어요
전화가 따르릉 '1000만원의 돈을 지금 보내라.'라고 했어요
다음날에도 전화가 왔어요
그 다음날에도 전화가 왔어요
그리고는 급하게 2주만에 결혼패물을 보내달라고 하더군요.
그게 맞을 거예요.
아마 제게 축농증으로 그 때에도 확실한 기억을 곧 바로 잊고 말하지
않았는지 아니면
"젊으니까 돈이 얼마나 필요했으면 돈을 달아고 할까 적극적으로
승부를 내어서 빨리 집도 사고 싶어서 잘살려고 하는 모습으로 보였으니까요
하긴 오빠들도 빨리 이미 결혼을 하라고 주입식 세뇌학습을 시켰으니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나는 결혼이란게 뭔지도 모르고 그냥 오빠들이
누군지 한명걸리면 바로 결혼을 해라하고 못박았으니 나는 그런대로
결혼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한 거죠
전화가 따르릉!!
1985년 12월 13일 예비시아버지께서도 전화가 왔어요
혼수를 준비 하자는 거였어요
그러면서 반지를 다이아몬드 20만원짜리를 사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느 우리도 사드려야죠
했는데. 남편이 와 있었구
어요
아들이 1000만원을 달라는데 그게 무슨 소리죠?
너가 돈 준다고 했냐? 부모님은 제게 물었죠
돈을 가진게 얼마냐고 묻길래요
아마 다 모으면 그정도가 되나싶어서...그만....
먼저 돈을 묻는다는게
결혼장사하려는 거 아니냐고 ...흔히들
남녀간의 만남에서 돈얘기를 하면서 돈벌자고 결혼을 하자면서.....
돈 얘기부터 먼저한 사람은 처음 봤다면서 사람들은
도둑넘(도둑뇬)이라고 말을 했던 것인데...
하긴 결혼첫날밤에 뭐라고 하신줄아세요
첫째도 절약
둘째도 절약
셋째도 절약
그런데, 그 일뿐 만이 아니라
또 한가지가 문제가 더 생겼어요
뭐냐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