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경 : 왜 이러세요. 이거 놔주세요.
완이 : 놔줘? 놔줬으면 좋겠어? 그럼 있는 힘껏 뿌리치고
빠져나가봐! 아니면 주먹이라도 날려보든가!
여기 기억나? 독립투사 이름을 팔아 저질책자나 운반한다면서
니가 나한테 주먹을 날렸던데잖아. 좋은말로 할때 꺼지라고
살벌하게 노려보면서. 기억 안나?
나, 그때 무지 쪽팔렸다! 난생 처음으로 여자한테 맞아봤거든.
그것도 경성 한복판에서. 그때 너! 목숨은 그런 걸레 따위에 거는게
아니라고 감히 나한테 설교할만큼 강단있었어. 다음!
여긴 기억나지! 내가 너를 조마자라고 불렀다가 정강이를 걷어채인
장소! 내 10년 작업 경력이 한큐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진짜.
여경 : 갑자기 나타나서 뭐하시는거예요 지금.
완이 : 하여간 성질은 드러워가지고. 깐깐하고, 폭력적이고, 하지만
그때 너! 너 그때 이 경성 최고의 황태자라 불리는 나를 무릎 끊게
만들만큼 강력한 파워가 있었어. 에잇, 쪽팔려. 다음!
여기 기억나지? 니가 고무신 하나에 목숨걸고 길길이 날뛰던 장소!
싫다는 사람 억지로 링위에 밀어넣고는, 기어이 솥단지 타게 만들었잖아.
고무신 못탔다고 구박은 또 얼마냐 했냐!
아, 맞다! 우리 처음 만난데도 여기잖아. 뻐꾸기를 날려보자는둥,
신발끈을 바싹 묶으라는둥 하다가 니가 내가방 들고 튀었잖아.
그래! 바로 그거야! 그렇게 웃어!
패기와 기백하면 조마자! 생기발랄 나여경! 잊었냐 그새? 다음!
여경 : 지옥같은 그곳에서 빼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완이 : 그거야 뭐... 내덕인가, 부모 잘만난덕이지. 많이.. 힘들었지?
여경 : 그런데, 사람이 어떻게 그럴수가 있습니까? 사람이 아프다고
하면, 한번쯤 찾아와서 어디가 아프냐, 얼마나 아프냐 물어봐야
하는거 아닙니까?
완이 : 그렇지. 그래야 사람이지.
여경 : 얼굴이라도 들여다봐야 되는거 아닙니까? 무슨일인지
궁금하지도 않습니까?
완이 : 그렇지, 잘한다!
여경 : 무슨일로 끌려갔는지, 어떻게 풀려났는지, 죽었는지 살았는지
궁금하지도 않았습니까?
완이 : 그래, 바로 그거야! 너는 이렇게 깐깐하고 당동한게 훨씬
매력있다니까! 니가 좋아한다던 그 사람한테도 지금처럼 씩씩하게
다가가! 그럼 틀림없이 니 마음을 받아줄테니까. 염려마! 내가 팍팍
밀어줄께! 그 자식이랑 내가 친구였던거 알지? 자, 다음!
여기서 양음료 한잔 같이 마시려고 했다가 내가 너한테 수모를
당했던거 기억나냐?
여경 : 기억납니다.
완이 : 그날 내머리 완전 박살날뻔 했잖아.
그날, 고무신 하나가 세상 전부가 될수도 있는 아이들이라는 니 말에,
내가 그 아이한테 세상 전부를 주었다는 니 말에, 나 솔직히 쬐끔
감동 받았었다. 너를 만날때마다 본의아니게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 몇번이나 반복됐지만, 살아있는것 같았어.
넌 그런 애였어. 뼛속 깊숙이 룸펜인 나에게 니가 살아가는 세상을
전염시킬만큼 생명력이 펄펄 끓어 넘치는 애였다구.
비록... 실은 천둥도 무서워하고... 경찰도 무서워하고.. 취조도 무서워하고...
그렇겠지만, 두려움을 자신의 의지로 밝게 승화시킬줄 알았어.
그래서, 마지막 장소는 여기야. 개필파티장.
여경 : 여기는 별로 들어가고 싶지 않습니다.
완이 : 바로 그거야! 담력 훈련을 위해서는 가장 적절한 장소란거지.
여경 : 당신은 내 기분이 어떤지 몰라요.
완이 : 알아 나두. 그날은 나한테도 상처고, 공포였으니까.
그러니까 함께 그 공포를 극복해보자.